[취재후] ‘갑질 사학’ 교사들의 제보…그들은 왜 나섰나

입력 2018.12.11 (08:10) 수정 2018.12.1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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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K] KBS 사학비리 연속 보도

KBS는 지난달부터 '사학 비리'와 관련한 연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15편의 리포트가 방송됐고, 앞으로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사립 학교법인은 설립자와 재산출연자(학교 운영권 보유자) 일가 또는 측근이 학교 운영과 관련한 전권을 쥔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각종 비리가 잇따르는 등 부조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첫 보도 직후 접수한 제보를 취재한 결과입니다. KBS뉴스9로 보도됐지만 부연 설명이 필요한 사실 관계와 취재에 협조해주신 선생님들의 얘기를 재구성했습니다. 사학 비리와 관련한 추가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는 교사 OOO입니다. 용기를 내어 학교의 이상한 점을 제보하고자 합니다."

KBS 사학비리 첫 보도 직후 이메일로 접수된 제보 한 통. A4 용지 6장 분량을 꽉꽉 채운 한 교사의 절절한 토로였다. 채용 비리 의혹과 학생 성적 삭제, 이사장의 각종 인권 침해와 갑질 의혹 등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고 믿기 힘든 얘기들, 한마디로 '갑질 왕국'... 대구에 있는 70년 전통의 한 사학, 영남공업고등학교의 민낯이었다.

한 전직 교사의 고백…"부친이 이사장에게 금품을 줬어요. 전 정교사가 됐습니다."


대구의 한 카페에서 학교를 그만 둔 지 2년이 넘었다는 한 전직 교사를 만났다. 2012년, 기간제 교사로 영남공고에 들어간 이 교사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정교사가 됐다. 다른 교사와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빠른 기간이었다.

"부모님이 이사장에게 현금 1억 원 상당을 주기로 하고, 임용이 된다 이거를 나중에 돼서야 알았어요."

"아버지와 지금 현 이사장이 대학교 동창인데,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가 이사장과 연락이 닿았던 모양이에요. 여러 학교 중 하나로 일단 원서를 쓰게 돼 기간제 교사로 들어갔고, 정식 임용이 됐는데, 돈이 오간 건 나중에 알게 된 거죠."

전직 교사의 통장 내역. 일주일 동안 6백만 원씩 5차례에 걸쳐 3천만 원이 빠져나갔다.전직 교사의 통장 내역. 일주일 동안 6백만 원씩 5차례에 걸쳐 3천만 원이 빠져나갔다.

이사장에게 건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금만 3천만 원. 부모님이 통장을 관리했는데, 이 돈을 포함해 상품권과 고가 안경테 등 현물까지 포함하면 5천만 원 정도를 아버지가 직접 이사장한테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학교 생활은 지옥이었다. 이사장의 조직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을 감시하며 학생들 앞에서 질타하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선생님들 아무도 저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고, 각종 불이익이 잇따랐습니다. 이사장이 직접 부모님 가게를 찾아오기도 했어요. 아들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등..의 얘기를 아버지가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약속한 돈(1억 원)이 덜 가서 그런 것 같다고……. 아버지가 추측하셨어요."

결국, 몇 달 뒤 이사장은 현금 일부를 돌려줬고,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이 교사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과를 드리는 게 맞겠죠. 무엇보다 학교가 적어도 애들을 위한 학교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게 한 사람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공간이 아니고…."

50여 일 만에 사라진 자격 요건 … 교장 딸의 이상한 채용?

2015년 11월. 2016년도 교사 채용 공고문이 올라왔다. 중국어 교사 채용 모집 인원 1명. 1명이 지원했는데, 탈락했다. 겉으로 보면 이상할 것 없는 이 채용 과정에 영남공고의 많은 전·현직 교사들이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시험 출제 위원은 기 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A 씨. 당시 중국어 정교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기간제 교사가 문제를 냈다. 알고 보니 A 씨는 학교 교장의 딸이었다.

"정식 선생님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교장 선생님 딸이 출제하고 채점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다른 학교에서는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 전 영남공고 교사

실제 교육청이 감사를 하며 해당 시험 문제를 공립학교 중국어과 교사 5명에게 교원 채용 시험 문제로 적정한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응답자 5명 모두가 적정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16년도 영남공고 교원 채용 1차·2차 공고 비교2016년도 영남공고 교원 채용 1차·2차 공고 비교

결국, 1차에서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고, 50여 일 만에 2차 채용 공고가 올라왔는데, 응시 자격요건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인증서 (3급 이상) 취득자 항목이 빠졌다. 교장 딸인 A 씨는 한국사 인증서가 없어 1차에 지원할 요건이 되지 못했는데, 2차 채용에 지원해 결국 정교사가 됐다.

"(교사 중에 한국사 자격증이 없는 분이) 제가 알기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교장 딸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다른 교사들이 추정하고 있는 거죠." - 현 영남공고 교사 B

경찰은 최근, 돈 거래 의혹과 관련해 내사에 착수했다.

아들 실수 덮으려…학생 500명 성적 삭제?

취재진이 접촉한 영남공고의 전·현직 교사는 10명 정도. 이들 얘기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모든 의혹과 갑질의 중심에는 현 이사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해당 시험지. 객관식 보기 중 한 개씩이 흐릿해 보인다.해당 시험지. 객관식 보기 중 한 개씩이 흐릿해 보인다.

2015년 현장 실습 과목 기말고사 시험지. 모든 객관식 문제 보기 중 한 개씩이 흐릿해 보였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학생들이라면 흐릿하게 인쇄된 보기가 정답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해당 과목 교사가 실수로 정답을 노출한 것. 2012년에도 다른 교과 시험에서 정답이 표시되는 오류가 있어 재시험을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재시험 없이 해당 과목 시험을 본 학생 500여 명의 시험 성적이 모두 삭제됐다. 학생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실수한 교사는 이사장 아들. 교사들은 입을 모아 이사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시험 오류가 났는데도 그렇게 처리한 건 이사장 아들을 덮어주려고 그런 거죠. 제가 뭐 그런 실수를 했으면 분명히 징계를 내렸겠죠." -현 영남공고 교사 C

올 초 이 이사장 아들의 결혼식 이후에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결혼식에 참석한 교사들이 식권을 받지 못했는데, 결혼식 9일 뒤인 방학 중에 결혼 답례 식사가 학교 급식실에서 이뤄진 것이다. 비용 대부분은 이사장이 냈지만, 쌀 150인분과 양념비 등은 학생 급식비에서 나갔고 급식실 직원도 동원됐다.

1월 29일 영남공고 급식 메뉴 알림1월 29일 영남공고 급식 메뉴 알림


"이 식당만 가야 하나요?" … 이사장의 특정 식당 사랑?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한 식당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한 식당

이사장의 영향력은 일과 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한 식당. 이 식당에선 지난 8년 동안 학교 회식이 무려 159차례가 열렸다. 영남공고 간담회 전체 금액의 83%, 1억 2천만 원어치가 모두 이 식당에서 쓰였다. 2010년부터 가게 이름만 6번이 바뀌고 메뉴도 바뀌었지만, 특정 인물이 운영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목산회'라는 등산 친목회 또한 월 2회 정도 이용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학교에서 이 식당을 들른다고 볼 수 있었다.

특정식당 이용내역. 교육청 감사보고서 발췌특정식당 이용내역. 교육청 감사보고서 발췌

학교 교사들은 입을 모아 강제적으로 이 식당을 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학교 관련 대부분의 행사는 이 식당에서 이뤄졌고, 식당 선택 자율권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결재선에서 이 식당이 아니면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심한 경우는 이 식당 예약이 다 차서 학교 행사 일정을 바꾼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맛도, 서비스도 좋지도 않고, 이사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현 영남공고 교사 D

무엇보다 황당한 건 이 식당을 운영하는 대표자는 수의 계약으로 교내 매점을 운영하다 감사에서 적발돼 나가게 된 매점 운영자였다.

교사들 간에도 왕따가 있다?

"이사장님한테 만약에 찍히게 되면 학교생활은 거의 끝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찍힌 선생님하고는 인사를 하면 안 돼요. 당사자를 철저하게 외톨이로 만들어요. 이 사람이 만약에 결혼을 한다? 그럼 결혼식장에도 못 가요."

"인사를 잘했던 선생님들이 인사를 안 하니까…. 학생들도 알고, 원래 제자였던 선생님들도 학교에 기간제 교사나 정식 임용을 많이 왔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도 인사를 안 하니까, 이 선생님이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현 영남공고 교사 E

학생들 간 따돌림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사. 영남공고에서는 사실상 조직적인 왕따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는 증언이었다. 고립된 교사들은 학교를 그만두는 수순을 밟았다고 한다.

'인권'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 '인권'이 없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어렵게 만난 전직 영남공고 계약직 교사는 임용 당시 '출산 금지 서약서'를 쓰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계약 기간 내에 출산이나 결혼이나 뭐 하지 않을 것을 각서처럼 이렇게 해서 사인을 받더라고요."

사내 연애 때문에 퇴사한 교사들도 더러 있었다.

"선생님들끼리 이제 마음이 맞는 분들끼리 만나서 교제할 수 있는 건데, 저희 학교에서는 그거를 못하게 하더라고요. 한 세 커플인가 두 커플인가 사내연애가 걸려서 불려가서 사귀는 게 맞냐고 추궁하고……. 뭐 만나면 징계를 내린다고 했나? 그 이후로는 사내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돌아서 실제로 헤어지신 분들도 있고." - 현 영남공고 교사 F

아이러니하게도 올 초 결혼한 이사장 아들은 학교 재직 중에 사내 연애를 해 결혼을 했다. 교사들은 결혼 휴가도 결혼한 직후가 아닌 방학 기간에 가야 했고, 병가나 육아 휴직 기간도 이사장실에 가서 미리 물어보는 등 모든 것은 '이사장'을 통해야 했다고 말했다.
"북한 공업고등학교라고 불러요"

인터뷰한 영남공고의 전·현직 교사들에게 공통적인 질문을 했다.

(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이사장의 권력이 정말 절대적이에요. 우리 교사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좀 있어요. 권력자에게 얼마나 충성하느냐에 따라서 승진이 되고, 인정을 받기 때문에…."

"이사장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어요. 농담삼아 여긴 북한이라고 하니까요. 북한 공업고등학교."

10명의 교사와 인터뷰를 끝낸 뒤 도저히 이사장을 직접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현 이사장은 영남공업교육학원의 설립자가 아닌, 교장 출신이었다. 설립자가 사학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뒤 이사를 거쳐 2014년에 이사장이 됐고, 그가 이사장이 된 이후 학교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굉장히 과장된 게 많아요…말이 안 되는 얘기를 질문하지 마세요!"

기자가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의혹들에 대해 질문했다.기자가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의혹들에 대해 질문했다.

출근 시간을 기다려 어렵게 만난 이사장은 기자의 잇따른 질문에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교사 채용 과정에 금품 수수가 있었다는데요?)
"그런 거 없었어요. 그런 게 있었다고 하면 뭐 조사하면 나올 거고요. 기자님, 좀 알고 기사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3차 공고를 내도 사람이 없습니다. 기자님,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십시오."

(사내 연애를 못 하게 하셨다거나, 출산 금지 서약서를 쓰게 했다거나 하셨단 얘기가 있는데요?)
"기자님, 여자분이시죠? 대통령이라도 너 애 낳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를 질문하지 마세요."
"문제가 있었던 건 시정할 거니까 수사 결과 나오면 움직일 건 움직이고, 지금 말씀드리는 거는 너무 과장된 게 많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수많은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던 건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은 교사로서의 양심 때문이었다. 지난해 교육청이 현장 감사에 나섰지만, 이사장 아들의 성적 삭제 부분에 대해서만 교장의 정직을 요구하는 정도로 그쳤다. 다른 부분들은 사실관계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교육부, 국민신문고 등에도 민원을 접수했지만, 바
뀐 건 없었다.

지난달 29일, 영남공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검찰에 영남공고 이사장과 교장을 고발했다.지난달 29일, 영남공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검찰에 영남공고 이사장과 교장을 고발했다.

최근, 대구 내 시민단체들이 '영남공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영남공고 이사장과 교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육청이 사학 법인의 이사장에게 내릴 수 있는 처분은 '이사장 취임 취소'와 '주의', '경고'. 주의나 경고는 백번, 천 번을 받아도 이사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교의 변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사들이 제대로 된 사학법 개정과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처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취재로 한 두 사람의 전횡으로 학교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두 눈으로, 두 귀로 목격할 수 있었다. 사학이 앞세운 교육 현장은 어느새 누군가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장이 되어 있었다. 사학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언론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꾸준히 사학 비리에 대한 추가 취재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KBS <사학비리 특별 취재팀>이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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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갑질 사학’ 교사들의 제보…그들은 왜 나섰나
    • 입력 2018-12-11 08:10:43
    • 수정2018-12-11 14:02:53
    취재후·사건후
[탐사K] KBS 사학비리 연속 보도

KBS는 지난달부터 '사학 비리'와 관련한 연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15편의 리포트가 방송됐고, 앞으로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사립 학교법인은 설립자와 재산출연자(학교 운영권 보유자) 일가 또는 측근이 학교 운영과 관련한 전권을 쥔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각종 비리가 잇따르는 등 부조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첫 보도 직후 접수한 제보를 취재한 결과입니다. KBS뉴스9로 보도됐지만 부연 설명이 필요한 사실 관계와 취재에 협조해주신 선생님들의 얘기를 재구성했습니다. 사학 비리와 관련한 추가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는 교사 OOO입니다. 용기를 내어 학교의 이상한 점을 제보하고자 합니다."

KBS 사학비리 첫 보도 직후 이메일로 접수된 제보 한 통. A4 용지 6장 분량을 꽉꽉 채운 한 교사의 절절한 토로였다. 채용 비리 의혹과 학생 성적 삭제, 이사장의 각종 인권 침해와 갑질 의혹 등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고 믿기 힘든 얘기들, 한마디로 '갑질 왕국'... 대구에 있는 70년 전통의 한 사학, 영남공업고등학교의 민낯이었다.

한 전직 교사의 고백…"부친이 이사장에게 금품을 줬어요. 전 정교사가 됐습니다."


대구의 한 카페에서 학교를 그만 둔 지 2년이 넘었다는 한 전직 교사를 만났다. 2012년, 기간제 교사로 영남공고에 들어간 이 교사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정교사가 됐다. 다른 교사와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빠른 기간이었다.

"부모님이 이사장에게 현금 1억 원 상당을 주기로 하고, 임용이 된다 이거를 나중에 돼서야 알았어요."

"아버지와 지금 현 이사장이 대학교 동창인데,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가 이사장과 연락이 닿았던 모양이에요. 여러 학교 중 하나로 일단 원서를 쓰게 돼 기간제 교사로 들어갔고, 정식 임용이 됐는데, 돈이 오간 건 나중에 알게 된 거죠."

전직 교사의 통장 내역. 일주일 동안 6백만 원씩 5차례에 걸쳐 3천만 원이 빠져나갔다.
이사장에게 건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금만 3천만 원. 부모님이 통장을 관리했는데, 이 돈을 포함해 상품권과 고가 안경테 등 현물까지 포함하면 5천만 원 정도를 아버지가 직접 이사장한테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학교 생활은 지옥이었다. 이사장의 조직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을 감시하며 학생들 앞에서 질타하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선생님들 아무도 저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고, 각종 불이익이 잇따랐습니다. 이사장이 직접 부모님 가게를 찾아오기도 했어요. 아들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등..의 얘기를 아버지가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약속한 돈(1억 원)이 덜 가서 그런 것 같다고……. 아버지가 추측하셨어요."

결국, 몇 달 뒤 이사장은 현금 일부를 돌려줬고,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이 교사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과를 드리는 게 맞겠죠. 무엇보다 학교가 적어도 애들을 위한 학교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게 한 사람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공간이 아니고…."

50여 일 만에 사라진 자격 요건 … 교장 딸의 이상한 채용?

2015년 11월. 2016년도 교사 채용 공고문이 올라왔다. 중국어 교사 채용 모집 인원 1명. 1명이 지원했는데, 탈락했다. 겉으로 보면 이상할 것 없는 이 채용 과정에 영남공고의 많은 전·현직 교사들이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시험 출제 위원은 기 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A 씨. 당시 중국어 정교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기간제 교사가 문제를 냈다. 알고 보니 A 씨는 학교 교장의 딸이었다.

"정식 선생님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교장 선생님 딸이 출제하고 채점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다른 학교에서는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 전 영남공고 교사

실제 교육청이 감사를 하며 해당 시험 문제를 공립학교 중국어과 교사 5명에게 교원 채용 시험 문제로 적정한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응답자 5명 모두가 적정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16년도 영남공고 교원 채용 1차·2차 공고 비교
결국, 1차에서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고, 50여 일 만에 2차 채용 공고가 올라왔는데, 응시 자격요건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인증서 (3급 이상) 취득자 항목이 빠졌다. 교장 딸인 A 씨는 한국사 인증서가 없어 1차에 지원할 요건이 되지 못했는데, 2차 채용에 지원해 결국 정교사가 됐다.

"(교사 중에 한국사 자격증이 없는 분이) 제가 알기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교장 딸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다른 교사들이 추정하고 있는 거죠." - 현 영남공고 교사 B

경찰은 최근, 돈 거래 의혹과 관련해 내사에 착수했다.

아들 실수 덮으려…학생 500명 성적 삭제?

취재진이 접촉한 영남공고의 전·현직 교사는 10명 정도. 이들 얘기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모든 의혹과 갑질의 중심에는 현 이사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해당 시험지. 객관식 보기 중 한 개씩이 흐릿해 보인다.
2015년 현장 실습 과목 기말고사 시험지. 모든 객관식 문제 보기 중 한 개씩이 흐릿해 보였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학생들이라면 흐릿하게 인쇄된 보기가 정답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해당 과목 교사가 실수로 정답을 노출한 것. 2012년에도 다른 교과 시험에서 정답이 표시되는 오류가 있어 재시험을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재시험 없이 해당 과목 시험을 본 학생 500여 명의 시험 성적이 모두 삭제됐다. 학생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실수한 교사는 이사장 아들. 교사들은 입을 모아 이사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시험 오류가 났는데도 그렇게 처리한 건 이사장 아들을 덮어주려고 그런 거죠. 제가 뭐 그런 실수를 했으면 분명히 징계를 내렸겠죠." -현 영남공고 교사 C

올 초 이 이사장 아들의 결혼식 이후에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결혼식에 참석한 교사들이 식권을 받지 못했는데, 결혼식 9일 뒤인 방학 중에 결혼 답례 식사가 학교 급식실에서 이뤄진 것이다. 비용 대부분은 이사장이 냈지만, 쌀 150인분과 양념비 등은 학생 급식비에서 나갔고 급식실 직원도 동원됐다.

1월 29일 영남공고 급식 메뉴 알림

"이 식당만 가야 하나요?" … 이사장의 특정 식당 사랑?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한 식당
이사장의 영향력은 일과 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한 식당. 이 식당에선 지난 8년 동안 학교 회식이 무려 159차례가 열렸다. 영남공고 간담회 전체 금액의 83%, 1억 2천만 원어치가 모두 이 식당에서 쓰였다. 2010년부터 가게 이름만 6번이 바뀌고 메뉴도 바뀌었지만, 특정 인물이 운영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목산회'라는 등산 친목회 또한 월 2회 정도 이용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학교에서 이 식당을 들른다고 볼 수 있었다.

특정식당 이용내역. 교육청 감사보고서 발췌
학교 교사들은 입을 모아 강제적으로 이 식당을 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학교 관련 대부분의 행사는 이 식당에서 이뤄졌고, 식당 선택 자율권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결재선에서 이 식당이 아니면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심한 경우는 이 식당 예약이 다 차서 학교 행사 일정을 바꾼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맛도, 서비스도 좋지도 않고, 이사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현 영남공고 교사 D

무엇보다 황당한 건 이 식당을 운영하는 대표자는 수의 계약으로 교내 매점을 운영하다 감사에서 적발돼 나가게 된 매점 운영자였다.

교사들 간에도 왕따가 있다?

"이사장님한테 만약에 찍히게 되면 학교생활은 거의 끝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찍힌 선생님하고는 인사를 하면 안 돼요. 당사자를 철저하게 외톨이로 만들어요. 이 사람이 만약에 결혼을 한다? 그럼 결혼식장에도 못 가요."

"인사를 잘했던 선생님들이 인사를 안 하니까…. 학생들도 알고, 원래 제자였던 선생님들도 학교에 기간제 교사나 정식 임용을 많이 왔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도 인사를 안 하니까, 이 선생님이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예요." -현 영남공고 교사 E

학생들 간 따돌림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사. 영남공고에서는 사실상 조직적인 왕따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는 증언이었다. 고립된 교사들은 학교를 그만두는 수순을 밟았다고 한다.

'인권'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 '인권'이 없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어렵게 만난 전직 영남공고 계약직 교사는 임용 당시 '출산 금지 서약서'를 쓰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계약 기간 내에 출산이나 결혼이나 뭐 하지 않을 것을 각서처럼 이렇게 해서 사인을 받더라고요."

사내 연애 때문에 퇴사한 교사들도 더러 있었다.

"선생님들끼리 이제 마음이 맞는 분들끼리 만나서 교제할 수 있는 건데, 저희 학교에서는 그거를 못하게 하더라고요. 한 세 커플인가 두 커플인가 사내연애가 걸려서 불려가서 사귀는 게 맞냐고 추궁하고……. 뭐 만나면 징계를 내린다고 했나? 그 이후로는 사내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돌아서 실제로 헤어지신 분들도 있고." - 현 영남공고 교사 F

아이러니하게도 올 초 결혼한 이사장 아들은 학교 재직 중에 사내 연애를 해 결혼을 했다. 교사들은 결혼 휴가도 결혼한 직후가 아닌 방학 기간에 가야 했고, 병가나 육아 휴직 기간도 이사장실에 가서 미리 물어보는 등 모든 것은 '이사장'을 통해야 했다고 말했다.
"북한 공업고등학교라고 불러요"

인터뷰한 영남공고의 전·현직 교사들에게 공통적인 질문을 했다.

(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이사장의 권력이 정말 절대적이에요. 우리 교사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좀 있어요. 권력자에게 얼마나 충성하느냐에 따라서 승진이 되고, 인정을 받기 때문에…."

"이사장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어요. 농담삼아 여긴 북한이라고 하니까요. 북한 공업고등학교."

10명의 교사와 인터뷰를 끝낸 뒤 도저히 이사장을 직접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현 이사장은 영남공업교육학원의 설립자가 아닌, 교장 출신이었다. 설립자가 사학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뒤 이사를 거쳐 2014년에 이사장이 됐고, 그가 이사장이 된 이후 학교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굉장히 과장된 게 많아요…말이 안 되는 얘기를 질문하지 마세요!"

기자가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의혹들에 대해 질문했다.
출근 시간을 기다려 어렵게 만난 이사장은 기자의 잇따른 질문에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교사 채용 과정에 금품 수수가 있었다는데요?)
"그런 거 없었어요. 그런 게 있었다고 하면 뭐 조사하면 나올 거고요. 기자님, 좀 알고 기사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3차 공고를 내도 사람이 없습니다. 기자님,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십시오."

(사내 연애를 못 하게 하셨다거나, 출산 금지 서약서를 쓰게 했다거나 하셨단 얘기가 있는데요?)
"기자님, 여자분이시죠? 대통령이라도 너 애 낳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를 질문하지 마세요."
"문제가 있었던 건 시정할 거니까 수사 결과 나오면 움직일 건 움직이고, 지금 말씀드리는 거는 너무 과장된 게 많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수많은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던 건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은 교사로서의 양심 때문이었다. 지난해 교육청이 현장 감사에 나섰지만, 이사장 아들의 성적 삭제 부분에 대해서만 교장의 정직을 요구하는 정도로 그쳤다. 다른 부분들은 사실관계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교육부, 국민신문고 등에도 민원을 접수했지만, 바
뀐 건 없었다.

지난달 29일, 영남공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검찰에 영남공고 이사장과 교장을 고발했다.
최근, 대구 내 시민단체들이 '영남공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영남공고 이사장과 교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육청이 사학 법인의 이사장에게 내릴 수 있는 처분은 '이사장 취임 취소'와 '주의', '경고'. 주의나 경고는 백번, 천 번을 받아도 이사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교의 변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사들이 제대로 된 사학법 개정과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처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취재로 한 두 사람의 전횡으로 학교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두 눈으로, 두 귀로 목격할 수 있었다. 사학이 앞세운 교육 현장은 어느새 누군가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장이 되어 있었다. 사학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언론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꾸준히 사학 비리에 대한 추가 취재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KBS <사학비리 특별 취재팀>이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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