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한국이 되살리는 미얀마 중세 유적…해외원조의 진화

입력 2018.12.11 (08:10) 수정 2018.12.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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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낙원 '바간'…한국, 중세 유적 복원에 도전하다

미얀마 바간은 불교가 꿈꾸는 낙원과 가장 닮았다. 높은 탑에 올라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을 바라보면 이곳이 왜 세계 3대 불교 성지인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3천 개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넓은 평야에 펼쳐져 있는 경관은 신비로움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곳에 불탑 세 개가 붙은 독특한 형태인 파야톤주 사원이 있다.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복원을 맡은 중세 유적이다. 한국으로선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복원에 이은 새로운 도전이다.


벽화의 비밀 품은 사원…날림 복원으로 훼손 심해져

13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야톤주 사원은 정교한 내부 벽화가 특징이다. 연결된 형태인 불탑 세 개에는 각각 미완성, 중간, 완성 단계 벽화들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다. 이런 방식으로 사원 벽화가 그려진 이유는 밝혀지진 않았지만, 당시 벽화의 제작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1975년과 2016년 바간에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사원 천정이 무너지고 균열이 생겼다. 미얀마 군부가 여기에 시멘트로 땜질식 보수를 해놓아 훼손은 더 심해졌다. 한국은 사원의 외벽 보수와 내부 벽화에 대한 보존 처리를 맡았다. 현재까지 구조 안전 진단과 벽화의 재료 등을 밝히는 기초 조사가 진행됐다. 본격적인 공사는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13세기 중반에 건립된 파야톤주 사원 내부에 있는 벽화13세기 중반에 건립된 파야톤주 사원 내부에 있는 벽화

한국 도움으로 세계유산 등재 '청신호'

문화재청은 사원 복원 외에도 미얀마가 문화재를 스스로 지켜나갈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바간고고학국립박물관 직원 3명이 한국에서 보존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박물관에는 수장고와 항온항습 장비 등 각종 기자재를 제공했다. 한국의 도움으로 각종 기반 시설이 마련되면서 내년에 결정될 미얀마 바간의 세계유산 등재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의 도움으로 제모습을 갖추게 된 바간고고학국립박물관한국의 도움으로 제모습을 갖추게 된 바간고고학국립박물관

한국의 첫 번째 해외 문화재 복원사업이었던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에는 현재까지 50억여 원이 투입됐다. 미얀마 파야톤주 사원 복원에는 8억 원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문화재 중에도 보수정비가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왜 우리 돈을 들여 다른 나라 문화재를 복원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달 라오스와 미얀마에서 열린 '국제문화재복원기술조정포럼'에서 선진국 학자들을 만나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달 19일 미얀마 바간에서 열린 국제문화재복원기술조성포럼 지난달 19일 미얀마 바간에서 열린 국제문화재복원기술조성포럼

"문화 유산 복원은 가장 고차원적인 ODA 사업"

프랑스국립극동연구원(EFFO)의 크리스토퍼는 "프랑스는 150년 전부터 라오스 문화재를 복원해왔다."라면서 "문화재 복원은 일방적 원조가 아니라 기술·경험을 축적할 수 있고 공익에도 기여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ODA 사업"이라고 말했다.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 자문위원인 사이먼 워렉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가장 소외되고 방치되는 게 바로 문화재"라면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선진국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후대에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엉 비치한 유네스코 방콕사무소 문화팀장은 "동남아시아에선 잦은 내전과 자연재해, 난개발로 문화재 훼손이 심각하다."라면서 "기술 수준과 역사적 배경 등을 고려했을 때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이 유적 복원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사이먼 워렉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자문위원사이먼 워렉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자문위원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들…한국의 역할은?

우리는 세계유산 등재를 국제 문화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세계유산 등재에 집착하는 것도 관광 산업에 득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다. 하지만 세계유산의 취지는 최고의 관광지를 뽑는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인류 문명의 흔적들에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선진국들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 제도는 1960년대 이집트 아부심벨 대신전이 수장될 처지에 놓이고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가지며 탄생했다. 당시 가난했던 우리나라도 신전 이전 비용으로 50만 달러를 보탰다.

세계 17개 나라가 복원에 참여한 앙코르와트세계 17개 나라가 복원에 참여한 앙코르와트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에게도 의무가 있다. 어둠 속에 묻혀가고 있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다시금 빛을 찾도록 하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해외 문화재 복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복원에 힘을 보탠 나라만 17개국이다. 우리는 출발이 늦었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국가 중 가장 늦게 해외 문화재 복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수원화성을 복원해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실력과 특유의 섬세함이 있다. 문화재 복원이 해외 원조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연관 기사] [뉴스9] 한국이 되살리는 ‘세계유산’…인류 미래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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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1 08:10:43
    • 수정2018-12-12 17:58:36
    취재K
불교의 낙원 '바간'…한국, 중세 유적 복원에 도전하다 미얀마 바간은 불교가 꿈꾸는 낙원과 가장 닮았다. 높은 탑에 올라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을 바라보면 이곳이 왜 세계 3대 불교 성지인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3천 개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넓은 평야에 펼쳐져 있는 경관은 신비로움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곳에 불탑 세 개가 붙은 독특한 형태인 파야톤주 사원이 있다.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복원을 맡은 중세 유적이다. 한국으로선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복원에 이은 새로운 도전이다. 벽화의 비밀 품은 사원…날림 복원으로 훼손 심해져 13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야톤주 사원은 정교한 내부 벽화가 특징이다. 연결된 형태인 불탑 세 개에는 각각 미완성, 중간, 완성 단계 벽화들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다. 이런 방식으로 사원 벽화가 그려진 이유는 밝혀지진 않았지만, 당시 벽화의 제작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1975년과 2016년 바간에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사원 천정이 무너지고 균열이 생겼다. 미얀마 군부가 여기에 시멘트로 땜질식 보수를 해놓아 훼손은 더 심해졌다. 한국은 사원의 외벽 보수와 내부 벽화에 대한 보존 처리를 맡았다. 현재까지 구조 안전 진단과 벽화의 재료 등을 밝히는 기초 조사가 진행됐다. 본격적인 공사는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13세기 중반에 건립된 파야톤주 사원 내부에 있는 벽화 한국 도움으로 세계유산 등재 '청신호' 문화재청은 사원 복원 외에도 미얀마가 문화재를 스스로 지켜나갈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바간고고학국립박물관 직원 3명이 한국에서 보존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박물관에는 수장고와 항온항습 장비 등 각종 기자재를 제공했다. 한국의 도움으로 각종 기반 시설이 마련되면서 내년에 결정될 미얀마 바간의 세계유산 등재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의 도움으로 제모습을 갖추게 된 바간고고학국립박물관 한국의 첫 번째 해외 문화재 복원사업이었던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에는 현재까지 50억여 원이 투입됐다. 미얀마 파야톤주 사원 복원에는 8억 원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문화재 중에도 보수정비가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왜 우리 돈을 들여 다른 나라 문화재를 복원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달 라오스와 미얀마에서 열린 '국제문화재복원기술조정포럼'에서 선진국 학자들을 만나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달 19일 미얀마 바간에서 열린 국제문화재복원기술조성포럼 "문화 유산 복원은 가장 고차원적인 ODA 사업" 프랑스국립극동연구원(EFFO)의 크리스토퍼는 "프랑스는 150년 전부터 라오스 문화재를 복원해왔다."라면서 "문화재 복원은 일방적 원조가 아니라 기술·경험을 축적할 수 있고 공익에도 기여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ODA 사업"이라고 말했다.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 자문위원인 사이먼 워렉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가장 소외되고 방치되는 게 바로 문화재"라면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선진국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후대에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엉 비치한 유네스코 방콕사무소 문화팀장은 "동남아시아에선 잦은 내전과 자연재해, 난개발로 문화재 훼손이 심각하다."라면서 "기술 수준과 역사적 배경 등을 고려했을 때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이 유적 복원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사이먼 워렉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자문위원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들…한국의 역할은? 우리는 세계유산 등재를 국제 문화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세계유산 등재에 집착하는 것도 관광 산업에 득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다. 하지만 세계유산의 취지는 최고의 관광지를 뽑는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인류 문명의 흔적들에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선진국들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 제도는 1960년대 이집트 아부심벨 대신전이 수장될 처지에 놓이고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가지며 탄생했다. 당시 가난했던 우리나라도 신전 이전 비용으로 50만 달러를 보탰다. 세계 17개 나라가 복원에 참여한 앙코르와트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에게도 의무가 있다. 어둠 속에 묻혀가고 있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다시금 빛을 찾도록 하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해외 문화재 복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복원에 힘을 보탠 나라만 17개국이다. 우리는 출발이 늦었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국가 중 가장 늦게 해외 문화재 복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수원화성을 복원해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실력과 특유의 섬세함이 있다. 문화재 복원이 해외 원조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연관 기사] [뉴스9] 한국이 되살리는 ‘세계유산’…인류 미래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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