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에 방치된 유해 260여 구…중단된 진실 규명
입력 2018.12.11 (21:31)
수정 2018.12.12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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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근현대사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반인권적 범죄나 민간인 학살, 의문사 등을 조사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고자 출범했던 진실 화해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지 8 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006 년부터 약 4 년간 조사활동을 벌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 년에 문을 닫았죠.
그런데 이 진실화해위원회를 다시 출범시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건지 재출범이 실제로 가능한 건지, 최광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경남 진주의 한 야산.
한켠에 푸른 지붕의 컨테이너 박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봤습니다.
플라스틱 상자 속에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유해들이 방치되다시피 쌓여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들로 추정되는데, 이 주변에서만 260구 가량이 수습됐습니다.
["전부 이게 다 유해입니다. 이것뿐이 아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진주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등 2천여 명이 군인과 경찰 등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대량 민간인 학살지는 진주 지역에만 23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발굴이 진행된 곳은 불과 8곳, 나머지 15곳의 유해들은 여전히 땅 속에서 발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거라 기대했던 국가기구,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2010년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안경호/전 진실화해위 조사위원 : "조사 활동 기간이 (기본) 4년에 더해 2년을 더 할수 있게 보장돼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2년 연장을 반대했고, 그래서 미처 사건들을 끝내지 못한..."]
강병현 씨의 아버지도 보도연맹원 회의가 소집됐단 말에 면사무소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됐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강병현/보도연맹 피해자 유족 : "이 안에 우리 아버지의 유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거죠. 땅 밑에 아직 발굴 안됐을 수도 있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요? 누가 봐도... 이게 뭡니까."]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 유족들은 지금도 매일 국회를 찾아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출범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광호입니다.
우리 근현대사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반인권적 범죄나 민간인 학살, 의문사 등을 조사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고자 출범했던 진실 화해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지 8 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006 년부터 약 4 년간 조사활동을 벌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 년에 문을 닫았죠.
그런데 이 진실화해위원회를 다시 출범시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건지 재출범이 실제로 가능한 건지, 최광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경남 진주의 한 야산.
한켠에 푸른 지붕의 컨테이너 박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봤습니다.
플라스틱 상자 속에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유해들이 방치되다시피 쌓여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들로 추정되는데, 이 주변에서만 260구 가량이 수습됐습니다.
["전부 이게 다 유해입니다. 이것뿐이 아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진주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등 2천여 명이 군인과 경찰 등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대량 민간인 학살지는 진주 지역에만 23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발굴이 진행된 곳은 불과 8곳, 나머지 15곳의 유해들은 여전히 땅 속에서 발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거라 기대했던 국가기구,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2010년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안경호/전 진실화해위 조사위원 : "조사 활동 기간이 (기본) 4년에 더해 2년을 더 할수 있게 보장돼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2년 연장을 반대했고, 그래서 미처 사건들을 끝내지 못한..."]
강병현 씨의 아버지도 보도연맹원 회의가 소집됐단 말에 면사무소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됐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강병현/보도연맹 피해자 유족 : "이 안에 우리 아버지의 유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거죠. 땅 밑에 아직 발굴 안됐을 수도 있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요? 누가 봐도... 이게 뭡니까."]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 유족들은 지금도 매일 국회를 찾아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출범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광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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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12-12 07: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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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현대사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반인권적 범죄나 민간인 학살, 의문사 등을 조사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고자 출범했던 진실 화해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지 8 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006 년부터 약 4 년간 조사활동을 벌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 년에 문을 닫았죠.
그런데 이 진실화해위원회를 다시 출범시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건지 재출범이 실제로 가능한 건지, 최광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경남 진주의 한 야산.
한켠에 푸른 지붕의 컨테이너 박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봤습니다.
플라스틱 상자 속에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유해들이 방치되다시피 쌓여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들로 추정되는데, 이 주변에서만 260구 가량이 수습됐습니다.
["전부 이게 다 유해입니다. 이것뿐이 아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진주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등 2천여 명이 군인과 경찰 등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대량 민간인 학살지는 진주 지역에만 23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발굴이 진행된 곳은 불과 8곳, 나머지 15곳의 유해들은 여전히 땅 속에서 발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거라 기대했던 국가기구,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2010년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안경호/전 진실화해위 조사위원 : "조사 활동 기간이 (기본) 4년에 더해 2년을 더 할수 있게 보장돼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2년 연장을 반대했고, 그래서 미처 사건들을 끝내지 못한..."]
강병현 씨의 아버지도 보도연맹원 회의가 소집됐단 말에 면사무소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됐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강병현/보도연맹 피해자 유족 : "이 안에 우리 아버지의 유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거죠. 땅 밑에 아직 발굴 안됐을 수도 있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요? 누가 봐도... 이게 뭡니까."]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 유족들은 지금도 매일 국회를 찾아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출범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광호입니다.
우리 근현대사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반인권적 범죄나 민간인 학살, 의문사 등을 조사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고자 출범했던 진실 화해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지 8 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006 년부터 약 4 년간 조사활동을 벌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 년에 문을 닫았죠.
그런데 이 진실화해위원회를 다시 출범시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건지 재출범이 실제로 가능한 건지, 최광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경남 진주의 한 야산.
한켠에 푸른 지붕의 컨테이너 박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봤습니다.
플라스틱 상자 속에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유해들이 방치되다시피 쌓여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들로 추정되는데, 이 주변에서만 260구 가량이 수습됐습니다.
["전부 이게 다 유해입니다. 이것뿐이 아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진주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등 2천여 명이 군인과 경찰 등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대량 민간인 학살지는 진주 지역에만 23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발굴이 진행된 곳은 불과 8곳, 나머지 15곳의 유해들은 여전히 땅 속에서 발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거라 기대했던 국가기구,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2010년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안경호/전 진실화해위 조사위원 : "조사 활동 기간이 (기본) 4년에 더해 2년을 더 할수 있게 보장돼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2년 연장을 반대했고, 그래서 미처 사건들을 끝내지 못한..."]
강병현 씨의 아버지도 보도연맹원 회의가 소집됐단 말에 면사무소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됐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강병현/보도연맹 피해자 유족 : "이 안에 우리 아버지의 유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거죠. 땅 밑에 아직 발굴 안됐을 수도 있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요? 누가 봐도... 이게 뭡니까."]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 유족들은 지금도 매일 국회를 찾아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출범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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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호 기자 pe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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