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독도 훈련’에 日 딴죽…‘러’엔 말도 못 하면서

입력 2018.12.14 (07:00) 수정 2018.12.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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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역사 왜곡 문제는 물론 영토 문제에 대해서도 이웃 나라와 항상 갈등을 빚어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상대국에 따라 대응 태도가 오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섬 탈환 작전을 위한 일본판 해병대를 창설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영토 독도와 관련해서는, 자신들의 영유권을 강변하며 내정간섭에 버금가는 트집을 마다치 않고 있다.

반면, 러시아가 실질 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서는 선뜩 영유권 주장을 펴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역사적·군사적·외교적 배경이 있겠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북방영토에 대해서 비굴하리만큼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日외무성, 독도 방어훈련에 항의문

13일부터 이틀 일정의 독도방어 훈련에 대해 일본 정부가 또 발끈했다. 외무성은 '한국군에 의한 다케시마(일본 주장 독도명) 방어 훈련에 대한 항의'라는 제목의 보도발표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가나스기 겐지 아시아 대양주 국장이 김경한 주일 한국대사관 차석공사에게,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는 김영길 외교부 동북아 국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본건은 다케시마(일본 주장 독도명)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입장에 비쳐 도저히 수용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다. 이 훈련의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외무성 발표문(2018.6.17)외무성 발표문(2018.6.17)

공교롭게도 이러한 항의문은 지난 6월 17일 외무성이 발표한 항의문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달라진 것은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 이름 정도이다. 독도 방어훈련은 우리 영토에 대한 우리 군의 통상적 활동의 일환이다. 우리의 통상적 훈련에 대해서 일본은 틀에 박힌 듯한 항의문을 낸 셈이다.

日정부, 러시아엔 '쿠릴열도(북방영토)' 언급도 회피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 외무상의 잇단 상식 밖 대응이 논란을 불렀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지난 11월 기자회견에서 '쿠릴열도 4개 섬이 일본 고유 영토냐'는 질문을 받자, "협상을 앞두고 있어서 정부 생각을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독도에 대해서는 '역사'와 '국제법' 등등을 운운하며 영유권을 강변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러시아 눈치 보기 아니냐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됐다.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는 고노 다로 외무상이 이른바 북방영토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을 4차례나 잇따라 무시해 물의를 일으켰다.

앞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러일 평화협정과 관련해 "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 조건임을 일본에 전했다"면서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2차 대전 결과로 쿠릴열도(북방영토)가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을 일본이 인정하지 않으면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거듭 강조하면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다음 질문" 반복 日외무상, 내놓고 '영토 질문' 무시

11일 기자회견에서, 고노 외무상에게 이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지지통신 기자 : 러일관계에 관해 묻겠습니다. 러시아 외무장관이 러일 평화조약 체결에 대해서는 2차 세계대전 결과를 일본이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한 장관의 입장을 부탁드립니다.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요미우리신문기자 : 러시아 외무장관과 대변인 등의 여러 가지 입장 표명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을 공개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맞나요?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교도통신 기자 : 장관은 좋은 환경을 정비하겠다며 발언을 억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측에서 점점 지금까지처럼 발언이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불균형 상황이 실제 회담에도 영향을 줄 우려도 나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교도통신 기자 : 장관, 무슨 질문에 '다음 질문 바랍니다'라고 말합니까?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이례적일 만큼 집요한 질문에, 이례적일 만큼 집요한 무시. 쿠릴열도(북방영토)에 대한 질의응답은 이처럼 생뚱맞게 끝났다. 논란과 비난을 각오한 외무상의 일탈적 집념이 돋보였다면 돋보였다.

"외무상으로 실격"..."앞으로도 러시아 측엔 코멘트 보류"

공영방송 NHK는 회견 직후 "협상을 위해 국회에서도 종종 발언 자제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지만, 질문 자체에 대응하지 않는 태도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쓰지모토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기자의 질문 뒤에는 국민이 있다.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외무상으로 실격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라고 비난했다.

외무성 기자클럽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기자회견에 성실히 응할 것을 요구했다. 논란이 커지자, 오스카 다케시 외무성 보도관이 이튿날 해명 기자회견을 했다. 고노 외무상이 답변하지 않은 것은 "러일 교섭을 위한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또 외무상이 기자클럽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답한 것으로 알다며 알듯 모를 듯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앞으로도 러시아 측 발언에 논평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미디어를 통한 러시아 측 발언 하나하나에 대한 코멘트는 보류하기로 했다. 협상을 위한 환경을 제대로 갖추고 싶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답변 태도는 바꾸겠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사실상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3일, 일본의 주요 신문들이 일제히 비판 기사를 실었다. 아사히신문은 "질문 무시는 너무 심하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고노 외무상의 회견 태도를 비판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외교는 국민의 이해를 토대로 비로소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다음 질문'이라는 오만함'"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고노 씨는 원래 정보공개와 설명 책임의 중요성을 호소해온 정치가 아니었느냐"고 비판했다. 산케이신문도 "일본의 입장을 버린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대로는 교섭력이 약화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내정간섭 논란도 불사하는 듯한 태도, 그러나 러시아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아베 정권' 외교의 현주소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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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독도 훈련’에 日 딴죽…‘러’엔 말도 못 하면서
    • 입력 2018-12-14 07:00:58
    • 수정2018-12-14 15:36:15
    특파원 리포트
일본은 역사 왜곡 문제는 물론 영토 문제에 대해서도 이웃 나라와 항상 갈등을 빚어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상대국에 따라 대응 태도가 오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섬 탈환 작전을 위한 일본판 해병대를 창설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영토 독도와 관련해서는, 자신들의 영유권을 강변하며 내정간섭에 버금가는 트집을 마다치 않고 있다.

반면, 러시아가 실질 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서는 선뜩 영유권 주장을 펴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역사적·군사적·외교적 배경이 있겠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북방영토에 대해서 비굴하리만큼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日외무성, 독도 방어훈련에 항의문

13일부터 이틀 일정의 독도방어 훈련에 대해 일본 정부가 또 발끈했다. 외무성은 '한국군에 의한 다케시마(일본 주장 독도명) 방어 훈련에 대한 항의'라는 제목의 보도발표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가나스기 겐지 아시아 대양주 국장이 김경한 주일 한국대사관 차석공사에게,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는 김영길 외교부 동북아 국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본건은 다케시마(일본 주장 독도명)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입장에 비쳐 도저히 수용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다. 이 훈련의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외무성 발표문(2018.6.17)
공교롭게도 이러한 항의문은 지난 6월 17일 외무성이 발표한 항의문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달라진 것은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 이름 정도이다. 독도 방어훈련은 우리 영토에 대한 우리 군의 통상적 활동의 일환이다. 우리의 통상적 훈련에 대해서 일본은 틀에 박힌 듯한 항의문을 낸 셈이다.

日정부, 러시아엔 '쿠릴열도(북방영토)' 언급도 회피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 외무상의 잇단 상식 밖 대응이 논란을 불렀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지난 11월 기자회견에서 '쿠릴열도 4개 섬이 일본 고유 영토냐'는 질문을 받자, "협상을 앞두고 있어서 정부 생각을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독도에 대해서는 '역사'와 '국제법' 등등을 운운하며 영유권을 강변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러시아 눈치 보기 아니냐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됐다.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는 고노 다로 외무상이 이른바 북방영토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을 4차례나 잇따라 무시해 물의를 일으켰다.

앞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러일 평화협정과 관련해 "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 조건임을 일본에 전했다"면서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2차 대전 결과로 쿠릴열도(북방영토)가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을 일본이 인정하지 않으면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거듭 강조하면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다음 질문" 반복 日외무상, 내놓고 '영토 질문' 무시

11일 기자회견에서, 고노 외무상에게 이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지지통신 기자 : 러일관계에 관해 묻겠습니다. 러시아 외무장관이 러일 평화조약 체결에 대해서는 2차 세계대전 결과를 일본이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한 장관의 입장을 부탁드립니다.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요미우리신문기자 : 러시아 외무장관과 대변인 등의 여러 가지 입장 표명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을 공개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맞나요?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교도통신 기자 : 장관은 좋은 환경을 정비하겠다며 발언을 억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측에서 점점 지금까지처럼 발언이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불균형 상황이 실제 회담에도 영향을 줄 우려도 나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교도통신 기자 : 장관, 무슨 질문에 '다음 질문 바랍니다'라고 말합니까?
▷고노 외무상 : 다음 질문 바랍니다.


이례적일 만큼 집요한 질문에, 이례적일 만큼 집요한 무시. 쿠릴열도(북방영토)에 대한 질의응답은 이처럼 생뚱맞게 끝났다. 논란과 비난을 각오한 외무상의 일탈적 집념이 돋보였다면 돋보였다.

"외무상으로 실격"..."앞으로도 러시아 측엔 코멘트 보류"

공영방송 NHK는 회견 직후 "협상을 위해 국회에서도 종종 발언 자제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지만, 질문 자체에 대응하지 않는 태도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쓰지모토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기자의 질문 뒤에는 국민이 있다.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외무상으로 실격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라고 비난했다.

외무성 기자클럽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기자회견에 성실히 응할 것을 요구했다. 논란이 커지자, 오스카 다케시 외무성 보도관이 이튿날 해명 기자회견을 했다. 고노 외무상이 답변하지 않은 것은 "러일 교섭을 위한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또 외무상이 기자클럽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답한 것으로 알다며 알듯 모를 듯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앞으로도 러시아 측 발언에 논평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미디어를 통한 러시아 측 발언 하나하나에 대한 코멘트는 보류하기로 했다. 협상을 위한 환경을 제대로 갖추고 싶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답변 태도는 바꾸겠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사실상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3일, 일본의 주요 신문들이 일제히 비판 기사를 실었다. 아사히신문은 "질문 무시는 너무 심하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고노 외무상의 회견 태도를 비판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외교는 국민의 이해를 토대로 비로소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다음 질문'이라는 오만함'"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고노 씨는 원래 정보공개와 설명 책임의 중요성을 호소해온 정치가 아니었느냐"고 비판했다. 산케이신문도 "일본의 입장을 버린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대로는 교섭력이 약화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내정간섭 논란도 불사하는 듯한 태도, 그러나 러시아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아베 정권' 외교의 현주소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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