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1만 7천 원이 뭐길래…500밧에 나타난 태국 빈부격차의 현실

입력 2018.12.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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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anook.com


지난 주말(12월 8일)부터 이번 주 초까지 태국 거리에서는 진풍경 하나가 펼쳐졌다.
태국에서는 신용카드보다 현금 사용이 많아 현금지급기가 거리 곳곳에 설치돼 있는데 저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을 중심으로 국영 크룽타이(Krungthai) 은행의 현금지급기 앞에 돈을 찾기 위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심지어 한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돈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단돈 500밧 찾으려고 ATM 앞에 몰려든 시민들

이들이 이렇게 애써 찾고자 하는 돈은 겨우 500밧, 우리 돈 1만 7천 원 정도이다.
태국 정부는 연간 소득 10만 밧(약 34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에게 복지카드를 발급해 주는데 정부가 '새해 선물(new year bonus)'이라며 복지카드에 현금 500밧씩을 입금해 줬기 때문이다.

태국 저소득층에게 발급되는 복지카드 (출처:Krungthai Bank)태국 저소득층에게 발급되는 복지카드 (출처:Krungthai Bank)

"선심성 정책" 비판에도 사흘 만에 절반 찾아가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내년 2월 24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선심성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돈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현금 인출 개시일에 맞춰 현금지급기 앞으로 뛰어간 것일까? 줄이 길면 나중에 한가할 때 찾을 법도 한데 이들은 긴 기다림을 견뎌 500밧을 손에 쥐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현금 인출이 개시된 12월 8일부터 사흘 동안 대상자의 절반이 바로 돈을 찾아갔다.

현금지급기 앞에서 500밧을 찾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출처: Khaosod)현금지급기 앞에서 500밧을 찾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출처: Khaosod)

"빨리 인출 하지 않으면 정부가 돈 회수"…. 근거 없는 소문까지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흘 안에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정부가 이 돈을 회수해 간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면서 결국 정부가 직접 해명하는 촌극 탓도 있었지만, 이들이 500밧에 이렇게 신속하게 반응한 것은 저소득층에게 500밧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태국 저소득층 500밧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태국은 상·하류 계층 사이의 물가 수준 차이가 심하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120~130밧, 우리 돈으로 4천 원 이상을 내야 하지만 거리에서 파는 브랜드 없는 커피를 마실 요량이면 15밧(510원)으로도 가능하다. 한 끼 식사로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사 먹으려면 35밧(1,200원)이면 족하다. 그러니 500밧도 저소득층에게는 제법 큰 돈이 될 수 있다.

500밧 타내려고 부자가 복지카드 부정발급?

그래서 그런지 태국에는 이 500밧 때문에 연일 뉴스가 터져 나온다.
한 예로 일부 부유한 사람들이 복지카드를 부정 발급받아 500밧을 타갔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여성은 복지카드로 500밧을 찾은 기념으로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네티즌으로부터 복지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는 부자라는 집중 공격을 받았다.

왼쪽 : 과거 승용차를 구입하면서 찍은 기념사진 / 오른쪽 : 복지카드로 500밧을 찾은 뒤 찍은 셀카 (출처 Facebook)왼쪽 : 과거 승용차를 구입하면서 찍은 기념사진 / 오른쪽 : 복지카드로 500밧을 찾은 뒤 찍은 셀카 (출처 Facebook)

네티즌들은 그녀의 페이스북 사진에서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그가 승용차를 사면서 찍은 기념사진을 볼 때 500밧을 타 갈 만큼 가난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쁘라윳 태국 총리도 재무부에 철저한 조사를 통해 부정발급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시골의 한 79세 노인은 현금지급기 조작이 서툴러 뒤에 서 있는 여성에게 기기 조작을 부탁했다가 그 여성이 자신의 돈을 찾아 도망갔다며 자신의 500밧을 찾아달라고 경찰을 찾기도 했다.

태국에서 이 복지카드가 발급된 저소득층은 1,130만 명. 태국 인구가 6천 9백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무시 못할 규모다.

출처: The Nation출처: The Nation

태국 빈부격차 세계 최고 수준…. 상위 1%가 전체 부 66.9% 소유

태국은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큰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 빈곤퇴치를 위해 설립된 옥스팜(OXFAM) 자료를 보면 태국은 러시아와 인도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빈부격차가 심한 국가이다. 또 국제적 투자기관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태국의 상위 1%가 태국 전체 부의 66.9%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최고 부자인 CP그룹의 다닌(Dhanin Chearavanont)회장과 그 가족의 재산은 무려 300억 달러에 이른다.

태국에서도 이러한 빈부격차를 큰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상속세가 없어 부의 대물림을 쉽게 할 수 있었던 태국에서 지난 2016년 태국 역사상 처음으로 상속세가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상속세 과세 규모가 1억 밧(34억 원) 이상인 데다 세율도 자녀는 5%, 타인 10%가 고작이다. 또 대상도 부동산과 예금, 주식, 자동차로 한정돼 보석류나 기타 자산은 해당하지 않는다. 상속세를 피할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단돈 500밧을 찾기 위해 ATM 앞으로 몰려드는 저소득층을 보며 태국 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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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1만 7천 원이 뭐길래…500밧에 나타난 태국 빈부격차의 현실
    • 입력 2018-12-15 14:05:10
    특파원 리포트
▲출처: Sanook.com


지난 주말(12월 8일)부터 이번 주 초까지 태국 거리에서는 진풍경 하나가 펼쳐졌다.
태국에서는 신용카드보다 현금 사용이 많아 현금지급기가 거리 곳곳에 설치돼 있는데 저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을 중심으로 국영 크룽타이(Krungthai) 은행의 현금지급기 앞에 돈을 찾기 위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심지어 한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돈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단돈 500밧 찾으려고 ATM 앞에 몰려든 시민들

이들이 이렇게 애써 찾고자 하는 돈은 겨우 500밧, 우리 돈 1만 7천 원 정도이다.
태국 정부는 연간 소득 10만 밧(약 34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에게 복지카드를 발급해 주는데 정부가 '새해 선물(new year bonus)'이라며 복지카드에 현금 500밧씩을 입금해 줬기 때문이다.

태국 저소득층에게 발급되는 복지카드 (출처:Krungthai Bank)
"선심성 정책" 비판에도 사흘 만에 절반 찾아가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내년 2월 24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선심성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돈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현금 인출 개시일에 맞춰 현금지급기 앞으로 뛰어간 것일까? 줄이 길면 나중에 한가할 때 찾을 법도 한데 이들은 긴 기다림을 견뎌 500밧을 손에 쥐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현금 인출이 개시된 12월 8일부터 사흘 동안 대상자의 절반이 바로 돈을 찾아갔다.

현금지급기 앞에서 500밧을 찾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출처: Khaosod)
"빨리 인출 하지 않으면 정부가 돈 회수"…. 근거 없는 소문까지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흘 안에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정부가 이 돈을 회수해 간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면서 결국 정부가 직접 해명하는 촌극 탓도 있었지만, 이들이 500밧에 이렇게 신속하게 반응한 것은 저소득층에게 500밧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태국 저소득층 500밧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태국은 상·하류 계층 사이의 물가 수준 차이가 심하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120~130밧, 우리 돈으로 4천 원 이상을 내야 하지만 거리에서 파는 브랜드 없는 커피를 마실 요량이면 15밧(510원)으로도 가능하다. 한 끼 식사로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사 먹으려면 35밧(1,200원)이면 족하다. 그러니 500밧도 저소득층에게는 제법 큰 돈이 될 수 있다.

500밧 타내려고 부자가 복지카드 부정발급?

그래서 그런지 태국에는 이 500밧 때문에 연일 뉴스가 터져 나온다.
한 예로 일부 부유한 사람들이 복지카드를 부정 발급받아 500밧을 타갔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여성은 복지카드로 500밧을 찾은 기념으로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네티즌으로부터 복지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는 부자라는 집중 공격을 받았다.

왼쪽 : 과거 승용차를 구입하면서 찍은 기념사진 / 오른쪽 : 복지카드로 500밧을 찾은 뒤 찍은 셀카 (출처 Facebook)
네티즌들은 그녀의 페이스북 사진에서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그가 승용차를 사면서 찍은 기념사진을 볼 때 500밧을 타 갈 만큼 가난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쁘라윳 태국 총리도 재무부에 철저한 조사를 통해 부정발급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시골의 한 79세 노인은 현금지급기 조작이 서툴러 뒤에 서 있는 여성에게 기기 조작을 부탁했다가 그 여성이 자신의 돈을 찾아 도망갔다며 자신의 500밧을 찾아달라고 경찰을 찾기도 했다.

태국에서 이 복지카드가 발급된 저소득층은 1,130만 명. 태국 인구가 6천 9백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무시 못할 규모다.

출처: The Nation
태국 빈부격차 세계 최고 수준…. 상위 1%가 전체 부 66.9% 소유

태국은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큰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 빈곤퇴치를 위해 설립된 옥스팜(OXFAM) 자료를 보면 태국은 러시아와 인도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빈부격차가 심한 국가이다. 또 국제적 투자기관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태국의 상위 1%가 태국 전체 부의 66.9%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최고 부자인 CP그룹의 다닌(Dhanin Chearavanont)회장과 그 가족의 재산은 무려 300억 달러에 이른다.

태국에서도 이러한 빈부격차를 큰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상속세가 없어 부의 대물림을 쉽게 할 수 있었던 태국에서 지난 2016년 태국 역사상 처음으로 상속세가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상속세 과세 규모가 1억 밧(34억 원) 이상인 데다 세율도 자녀는 5%, 타인 10%가 고작이다. 또 대상도 부동산과 예금, 주식, 자동차로 한정돼 보석류나 기타 자산은 해당하지 않는다. 상속세를 피할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단돈 500밧을 찾기 위해 ATM 앞으로 몰려드는 저소득층을 보며 태국 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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