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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쓸모] 아빠들이 보면 더 좋은 영화 ‘툴리’
입력 2018.12.17 (17:01) 수정 2019.04.09 (17:16)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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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쓸모] 아빠들이 보면 더 좋은 영화 ‘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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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걸까? 영화 '툴리'는 육아의 고통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을 넘어 육아하는 엄마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세심한 장치들을 고안하고 연출한 솜씨가 탁월한 작품입니다. 특히 이번 영화를 위해 체중 22kg을 불린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가 압권입니다.

주인공 마를로가 셋째 출산을 앞두고 만삭인 상태에서 시작하는 영화, 둘째 아들에겐 가벼운 자폐 증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를 위해 특수학교로 옮기는 게 좋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동네 커피숍에 들른 마를로는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납니다. 이 대화 장면에서 주인공이 친구를 볼 때, 통상적인 방식으로 카메라가 어깨 뒤에서 주인공을 바라보지만, 주인공이 말할 때는 카메라가 상대방의 어깨 뒤로 가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눈높이를 유지하면서 조금 멀찌감치서 바라봅니다.

이런 앵글로 '배울 만큼 배우고 직장도 다니는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내던져졌을 때 활기찬 친구와 비교되는 느낌, 자신의 몸이 세상으로부터 관찰당하는 느낌, 경력이 단절된 느낌 같은 것들을 공 들여 보여주면서 영화 초반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를로에게는 돈 많은 오빠가 있습니다. 오빠는 곧 아기가 나올테니 야간 보모를 구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출산 기념으로 자동차를 한 대 사주겠다거나 큰 돈을 주겠다는 게 아니라, 여동생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게 밤에 육아를 맡아줄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이렇게 정확한 배려를 해주는, 돈 많고, 그것도 남자사람인 가족이 있다는 설정이 참 대단해보이는데요.

사실은 영화 종반의 충격적인 반전과 연관이 있습니다.

곧 아기가 탄생합니다. 보통의 출산 장면에서 산모의 표정은 '아이구 우리 애기 예뻐라' 이런 톤으로 연출되곤 합니다만, 출산하는 순간부터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모성애를 이 영화는 거부합니다. 대신 둘째까지 키워본 경험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근심걱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육아전쟁에 한창인 상황. 둘째를 특수학교로 보내야겠다는 학교 선생님의 말을 듣고 마를로는 폭발 직전이 됩니다. 갓난 아기를 차에 두고 밖에서 고함을 치는데 울어대는 아기를 화면 구석에 배치한 다음 카메라는 차 안에서 주인공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고함소리조차 답답하게 들리고,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넓은 바깥세상이 아니라 아기를 봐야 하는 이 좁은 곳이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배우의 동선과 카메라의 위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버티다 못한 마를로, 결국 야간 보모를 고용합니다.

마를로가 보기에도 매력 넘치는 보모 툴리, 20대로 보이는데, 육아 박사입니다. 마를로는 비로소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배려심까지 최고인 툴리와 친구가 된 마를로는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의지합니다.

이 영화가 남다른 부분은 남편을 그저 나쁜 놈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성격도 온화하고, 주인공도 이런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나몰라라 하는 남편은 아닌데 직장일에 바쁘고 출장도 잦아서 가사노동이나 육아로부터 한번 멀어지기 시작하면 자기가 주도하는 육아가 아니라 가끔 돕다가 마는 정도가 돼버리는, 아주 흔한 가정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포일러여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인공이 후반부에 어떤 일을 겪게 되는데, 그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난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 남편의 대사가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고, 겉으로 큰 문제가 없어보이는 아주 많은 가정이 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육아나 가사노동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남편이라면, '못돼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현실, 세상에 좋은 남편도 있고 못된 남편도 있지만 모르는 남편은 더 많다는 얘기를 이 영화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샤를리즈 테론은 몸무게를 엄청나게 늘렸을 뿐 아니라 육아에 지친 저녁 남편이 돌아왔을 때 짐짓 태연한 척 하면서도 그렇다고 지친 표정을 바꾸지도 못하는 미세한 얼굴 근육의 변화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보여주면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데요, 이 영화로 내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있습니다.

편집 : 이임정
촬영 : 임태준
  • [영화의 쓸모] 아빠들이 보면 더 좋은 영화 ‘툴리’
    • 입력 2018.12.17 (17:01)
    • 수정 2019.04.09 (17:16)
    문화
[영화의 쓸모] 아빠들이 보면 더 좋은 영화 ‘툴리’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걸까? 영화 '툴리'는 육아의 고통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을 넘어 육아하는 엄마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세심한 장치들을 고안하고 연출한 솜씨가 탁월한 작품입니다. 특히 이번 영화를 위해 체중 22kg을 불린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가 압권입니다.

주인공 마를로가 셋째 출산을 앞두고 만삭인 상태에서 시작하는 영화, 둘째 아들에겐 가벼운 자폐 증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를 위해 특수학교로 옮기는 게 좋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동네 커피숍에 들른 마를로는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납니다. 이 대화 장면에서 주인공이 친구를 볼 때, 통상적인 방식으로 카메라가 어깨 뒤에서 주인공을 바라보지만, 주인공이 말할 때는 카메라가 상대방의 어깨 뒤로 가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눈높이를 유지하면서 조금 멀찌감치서 바라봅니다.

이런 앵글로 '배울 만큼 배우고 직장도 다니는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내던져졌을 때 활기찬 친구와 비교되는 느낌, 자신의 몸이 세상으로부터 관찰당하는 느낌, 경력이 단절된 느낌 같은 것들을 공 들여 보여주면서 영화 초반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를로에게는 돈 많은 오빠가 있습니다. 오빠는 곧 아기가 나올테니 야간 보모를 구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출산 기념으로 자동차를 한 대 사주겠다거나 큰 돈을 주겠다는 게 아니라, 여동생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게 밤에 육아를 맡아줄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이렇게 정확한 배려를 해주는, 돈 많고, 그것도 남자사람인 가족이 있다는 설정이 참 대단해보이는데요.

사실은 영화 종반의 충격적인 반전과 연관이 있습니다.

곧 아기가 탄생합니다. 보통의 출산 장면에서 산모의 표정은 '아이구 우리 애기 예뻐라' 이런 톤으로 연출되곤 합니다만, 출산하는 순간부터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모성애를 이 영화는 거부합니다. 대신 둘째까지 키워본 경험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근심걱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육아전쟁에 한창인 상황. 둘째를 특수학교로 보내야겠다는 학교 선생님의 말을 듣고 마를로는 폭발 직전이 됩니다. 갓난 아기를 차에 두고 밖에서 고함을 치는데 울어대는 아기를 화면 구석에 배치한 다음 카메라는 차 안에서 주인공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고함소리조차 답답하게 들리고,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넓은 바깥세상이 아니라 아기를 봐야 하는 이 좁은 곳이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배우의 동선과 카메라의 위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버티다 못한 마를로, 결국 야간 보모를 고용합니다.

마를로가 보기에도 매력 넘치는 보모 툴리, 20대로 보이는데, 육아 박사입니다. 마를로는 비로소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배려심까지 최고인 툴리와 친구가 된 마를로는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의지합니다.

이 영화가 남다른 부분은 남편을 그저 나쁜 놈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성격도 온화하고, 주인공도 이런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나몰라라 하는 남편은 아닌데 직장일에 바쁘고 출장도 잦아서 가사노동이나 육아로부터 한번 멀어지기 시작하면 자기가 주도하는 육아가 아니라 가끔 돕다가 마는 정도가 돼버리는, 아주 흔한 가정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포일러여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인공이 후반부에 어떤 일을 겪게 되는데, 그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난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 남편의 대사가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고, 겉으로 큰 문제가 없어보이는 아주 많은 가정이 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육아나 가사노동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남편이라면, '못돼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현실, 세상에 좋은 남편도 있고 못된 남편도 있지만 모르는 남편은 더 많다는 얘기를 이 영화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샤를리즈 테론은 몸무게를 엄청나게 늘렸을 뿐 아니라 육아에 지친 저녁 남편이 돌아왔을 때 짐짓 태연한 척 하면서도 그렇다고 지친 표정을 바꾸지도 못하는 미세한 얼굴 근육의 변화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보여주면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데요, 이 영화로 내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있습니다.

편집 : 이임정
촬영 :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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