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끝나지 않는 노란조끼 시위…‘결코 남의 일이 아닌’

입력 2018.12.1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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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도 프랑스 전역에서는 '노란조끼 시위'가 열렸다. 5차 집회였다. 시위대 규모는 4차 집회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 전국적으로 6만6천여명이 모이는데 그쳤지만, 지난 10일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도 시위를 끝나게 만들지는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조끼 시위를 촉발했던 유류세 인상을 백지화했고 최저임금 인상, 은퇴자 사회보장세 인상 철회, 추가근무수당 비과세 등의 회유책을 내놨다. 언론은 마크롱이 백기를 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위자들의 구호는 여전히 '마크롱 퇴진'이다. 그들은 왜, 마크롱이 내려와야만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 정반대의 구호로 유럽 곳곳에 확산되는 노란조끼 시위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가 잦아들기도 전에,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연이어 대규모 시위가 터져나오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이른바 '노예노동법'이라 불리는 '연간 400시간 초과 근무 요청을 허가하는 법'이 통과돼 수도 부다페스트에만 만여명이 넘게 모여 시위를 벌였다. 사용자의 권한을 극대화했다는 노동자들의 불만이다. 세르비아에서는 독재에 저항하는 노란조끼 시위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연금 확대 등을 요구하는 노란조끼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에서는 살비니 정부의 반난민정책에 항의하는 집회가 일어났고, 벨기에에서는 유엔이주민협약에 반발하는 즉 반난민을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서로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서유럽의 프랑스와 동유럽의 헝가리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지고, 극우 반난민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와 찬성하는 집회가 동시에 벌어지는 유럽의 이 상황은 얼핏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실 시위의 방향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노란조끼시위'가 시작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위는 유류세 인상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됐다. 세금 인상에 대한 반대, 지구온난화 대응책에 대한 반대, 게다가 반난민 구호까지 터져나온 시위는 마치 극우민족주의 시위처럼 비쳐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각종 시민단체들까지 연대해 수십만 규모로 확대된 '노란조끼 시위'의 최종 구호는 '마크롱 퇴진'이었다. 그리고 이 시위의 정신은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저항'으로 귀결돼갔다.

전문가들은 이들 시위가 전혀 다른 성격처럼 보이나 사실은 같은 절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무너져가는 복지국가 유럽의 이상, 해법이 난망한 빈부 격차의 확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여력이 없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절망이다. 유럽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확산될 것이 분명한, 지구상 서민들의 광범위한 불안의 원인들이기도 하다.

헝가리 ‘노예노동법’ 반대 시위헝가리 ‘노예노동법’ 반대 시위

■ "마크롱, 당신에게도 해법은 없었다"

지난 2017년, 서유럽은 물론 북유럽까지 유럽 전역으로 번진 반난민 극우민족주의의 뜨거운 기세 속에서도 프랑스는 좀 다른 선택을 했다. 친난민적 좌파와 친기업적 우파 등 기성정치에 지친 건 프랑스인들도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반난민을 내세운 민족주의적 대안 대신, 복지와 관용의 나라 프랑스를 되찾을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젊은 정치인을 택했다. 압도적 지지를 받은 마크롱은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실용적 대안으로 프랑스의 이상을 다시 세울 구세주로 여겨졌다'고 알자지라는 당시의 분위기를 되짚었다.

그러나, 1980년대초 미테랑 대통령의 긴축정책 이후 계속 축소되는 복지, 심화되는 빈부 격차, 높은 실업률로 무너져가는 중산층에게 마크롱이 제시한 해법은 '부유세 폐지'였다. 대신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찔끔찔끔 인상해온 유류세를 또다시 인상한다는 소식에 서민층이 '노란조끼 시위'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유류세는 단지 기름에 붙는 세금이 아니라고, 에두아르 테뜨로는 월드크런치에 기고한 글에서 분석했다. 프랑스의 4천만 운전자들 즉 서민 전체에게 광범위하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높아지는 집세 때문에 교통이 편리한 파리 도심에서 살 수 없어 외곽에서 자동차로 통근을 해야 하는 서민 다인가족에게 특히 부담을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그는 지적했다. 부유세를 폐지하고 대신 올리는 유류세는 절대적으로 반서민적이라는 것이다.

노란조끼 시위에 백기를 들었다는 마크롱은 그러나 끝내 '부유세 폐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마크롱은 여전히 '부유세 폐지'를 골자로 한 투자와 일자리를 일으키기 위한 개혁방안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마크롱에게 노란조끼 시위대는 '당신에게도 대안은 없었다, 그냥 내려와라'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서구 중산층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

프랑스 기업가이자 작가인 니콜라 꼴랑은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노란조끼 시위는, 대량생산시대에서 기업가시대로 전환한 뒤 지난 40년간 서구 사회 중산층의 삶의 질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의 표상이라고 분석한다.

세계화로 서구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저임금국가와 로봇에게로 넘어가고, 금융자본주의의 심화로 자본의 이익은 늘고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었다. 그런데 금융에 대한 과세는 약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재정난에 빠진 정부는 오히려 서민에 대한 세금을 늘린다. 중산층에 대한 복지 혜택은 줄고 정규직 감소로 인한 서민들의 부채는 쌓여간다. 게다가 사회인프라가 점점 도심에 더 집중되면서 높아지는 도심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빠져야 하는 사람들의 소외감은 훨씬 더 가중되고 있다고 꼴랑은 진단한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한편 지구의 지역 간 격차에 의해서도 심화되고 있어서, 가난한 국가들의 사람들은 유럽으로 몰려들고, 유럽에서는 복지 혜택과 재정을 좀먹는다며 난민을 거부하는 민족주의 정서가 심화되지만, 난민을 막는다고 내부적 모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숙련노동자의 선진국 이동으로 만성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헝가리의 우파 정부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대신 무조건적 반난민을 외치다, 노동시간에 대한 권한을 기업가에게 넘겨주는 엉뚱한 선택을 해 거센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근대 정신의 고향이자 제조업 중심 산업혁명의 본거지로서 전후 대량생산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평등한 부의 분배와 복지국가의 이상을 꿈꿨던 유럽이, 게다가 구소련과 동구 공산주의권의 붕괴로 마치 최후의 승자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던 서구사회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 이상 속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원히 안주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유럽의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 실패해온 유럽의 빈부 격차 해소 노력

결국은 해법이,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데 있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전세계 부자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조차 이미 2012년 "자본주의가 고장났다"며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현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을 내릴 바 있다. 현 위기는 1개 국가만의, 한 대륙의 것만도 아닌 전 지구적 차원의 위기라는 진단이기도 하다.

결론이 분명하니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도 전개된다. 현세의 경제적 불평등을 신랄하게 파헤친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스 피케티 등 유럽의 지식인 50명은, 노란조끼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10일 <유럽 민주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 등으로 연간 8천억 유로(현 유럽연합 예산의 4배)의 예산을 확보해 불평등과 기후변화, 이주 문제 등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계획이 실현 가능할 지에 언론은 물음표를 찍었다. 지난 2014년 유럽연합 10개국은 주식 및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 거래의 과다 이익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이른바 '로빈후드세'를 입안했으나 일부 국가들의 탈퇴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다국적 IT기업의 온라인 거래 이익에 대한 세금을 확대하는 디지털세를 추진하고 있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그런데 과연 현 예산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을 대기업과 부자들로부터 거둬들인다는 혁신적 안이 실현될 수 있겠는가?

무너져가는 복지국가 유럽의 이상,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경제불평등 게다가 4차산업혁명에 대한 무방비로 인해 가중되는 미래 불안까지, 서구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갈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이 특권을 포기할 수 있어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사고의 틀을 완전히 전환할 수 있어야, 결국은 모두가 조금씩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데 동의할 수 있어야 제한적인 해법이나마 가능해보인다. 그런데 보통 과거를 부정해야 하는 전환기의 해법은 쉽게 합의되지 않는다. 그러니 유럽의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한참은 더 거리로 뛰쳐나와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의 노란조끼 시위대가 그들 스스로를 루이 14세를 끌어내린 '프랑스 혁명' 시위대에 비유하는 이유다.


■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카카오의 카풀서비스 시행에 맞선 택시기사들의 저항은 생명을 걸 정도로 절박했다. 결국 택시기사 1명이 분신해 숨진 뒤에야 카풀서비스의 시행이 미뤄지고 논의는 더 진지해졌다.

대중교통의 일부인 택시 형태의 서비스가 확대되는 것인데다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기 위해 공유형 서비스 도입에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여론은, 택시업계보다는 카카오카풀서비스쪽으로 기울어있다. 그러나 이를 그렇게만 볼 수 있을 것인가?

과거 개인택시 1대면 부자가 될 수 있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택시요금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제는 택시기사들이 사납금도 못채워 쩔쩔매고 있다. 시대의 변화, 산업의 변화와 함께 택시기사들의 경제적 지위도 변화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앞으로 어떤 분야의 노동자들을 이렇게 위협할 지 모른다. 인공지능과 로봇보다 더 산업 생산에 기여할 인간 노동력의 필요는 얼마나 남게 될까? 우리 사회는 과연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복지국가를 건설해본 적도 없는 한국 즉 광범위한 사회안전망이 마련되지 못한 한국에게는 유럽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노란조끼 시위의 절실함이 닥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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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8 07: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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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도 프랑스 전역에서는 '노란조끼 시위'가 열렸다. 5차 집회였다. 시위대 규모는 4차 집회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 전국적으로 6만6천여명이 모이는데 그쳤지만, 지난 10일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도 시위를 끝나게 만들지는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조끼 시위를 촉발했던 유류세 인상을 백지화했고 최저임금 인상, 은퇴자 사회보장세 인상 철회, 추가근무수당 비과세 등의 회유책을 내놨다. 언론은 마크롱이 백기를 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위자들의 구호는 여전히 '마크롱 퇴진'이다. 그들은 왜, 마크롱이 내려와야만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 정반대의 구호로 유럽 곳곳에 확산되는 노란조끼 시위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가 잦아들기도 전에,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연이어 대규모 시위가 터져나오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이른바 '노예노동법'이라 불리는 '연간 400시간 초과 근무 요청을 허가하는 법'이 통과돼 수도 부다페스트에만 만여명이 넘게 모여 시위를 벌였다. 사용자의 권한을 극대화했다는 노동자들의 불만이다. 세르비아에서는 독재에 저항하는 노란조끼 시위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연금 확대 등을 요구하는 노란조끼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에서는 살비니 정부의 반난민정책에 항의하는 집회가 일어났고, 벨기에에서는 유엔이주민협약에 반발하는 즉 반난민을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서로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서유럽의 프랑스와 동유럽의 헝가리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지고, 극우 반난민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와 찬성하는 집회가 동시에 벌어지는 유럽의 이 상황은 얼핏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실 시위의 방향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노란조끼시위'가 시작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위는 유류세 인상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됐다. 세금 인상에 대한 반대, 지구온난화 대응책에 대한 반대, 게다가 반난민 구호까지 터져나온 시위는 마치 극우민족주의 시위처럼 비쳐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각종 시민단체들까지 연대해 수십만 규모로 확대된 '노란조끼 시위'의 최종 구호는 '마크롱 퇴진'이었다. 그리고 이 시위의 정신은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저항'으로 귀결돼갔다.

전문가들은 이들 시위가 전혀 다른 성격처럼 보이나 사실은 같은 절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무너져가는 복지국가 유럽의 이상, 해법이 난망한 빈부 격차의 확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여력이 없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절망이다. 유럽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확산될 것이 분명한, 지구상 서민들의 광범위한 불안의 원인들이기도 하다.

헝가리 ‘노예노동법’ 반대 시위
■ "마크롱, 당신에게도 해법은 없었다"

지난 2017년, 서유럽은 물론 북유럽까지 유럽 전역으로 번진 반난민 극우민족주의의 뜨거운 기세 속에서도 프랑스는 좀 다른 선택을 했다. 친난민적 좌파와 친기업적 우파 등 기성정치에 지친 건 프랑스인들도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반난민을 내세운 민족주의적 대안 대신, 복지와 관용의 나라 프랑스를 되찾을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젊은 정치인을 택했다. 압도적 지지를 받은 마크롱은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실용적 대안으로 프랑스의 이상을 다시 세울 구세주로 여겨졌다'고 알자지라는 당시의 분위기를 되짚었다.

그러나, 1980년대초 미테랑 대통령의 긴축정책 이후 계속 축소되는 복지, 심화되는 빈부 격차, 높은 실업률로 무너져가는 중산층에게 마크롱이 제시한 해법은 '부유세 폐지'였다. 대신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찔끔찔끔 인상해온 유류세를 또다시 인상한다는 소식에 서민층이 '노란조끼 시위'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유류세는 단지 기름에 붙는 세금이 아니라고, 에두아르 테뜨로는 월드크런치에 기고한 글에서 분석했다. 프랑스의 4천만 운전자들 즉 서민 전체에게 광범위하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높아지는 집세 때문에 교통이 편리한 파리 도심에서 살 수 없어 외곽에서 자동차로 통근을 해야 하는 서민 다인가족에게 특히 부담을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그는 지적했다. 부유세를 폐지하고 대신 올리는 유류세는 절대적으로 반서민적이라는 것이다.

노란조끼 시위에 백기를 들었다는 마크롱은 그러나 끝내 '부유세 폐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마크롱은 여전히 '부유세 폐지'를 골자로 한 투자와 일자리를 일으키기 위한 개혁방안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마크롱에게 노란조끼 시위대는 '당신에게도 대안은 없었다, 그냥 내려와라'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서구 중산층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

프랑스 기업가이자 작가인 니콜라 꼴랑은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노란조끼 시위는, 대량생산시대에서 기업가시대로 전환한 뒤 지난 40년간 서구 사회 중산층의 삶의 질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의 표상이라고 분석한다.

세계화로 서구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저임금국가와 로봇에게로 넘어가고, 금융자본주의의 심화로 자본의 이익은 늘고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었다. 그런데 금융에 대한 과세는 약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재정난에 빠진 정부는 오히려 서민에 대한 세금을 늘린다. 중산층에 대한 복지 혜택은 줄고 정규직 감소로 인한 서민들의 부채는 쌓여간다. 게다가 사회인프라가 점점 도심에 더 집중되면서 높아지는 도심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빠져야 하는 사람들의 소외감은 훨씬 더 가중되고 있다고 꼴랑은 진단한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한편 지구의 지역 간 격차에 의해서도 심화되고 있어서, 가난한 국가들의 사람들은 유럽으로 몰려들고, 유럽에서는 복지 혜택과 재정을 좀먹는다며 난민을 거부하는 민족주의 정서가 심화되지만, 난민을 막는다고 내부적 모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숙련노동자의 선진국 이동으로 만성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헝가리의 우파 정부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대신 무조건적 반난민을 외치다, 노동시간에 대한 권한을 기업가에게 넘겨주는 엉뚱한 선택을 해 거센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근대 정신의 고향이자 제조업 중심 산업혁명의 본거지로서 전후 대량생산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평등한 부의 분배와 복지국가의 이상을 꿈꿨던 유럽이, 게다가 구소련과 동구 공산주의권의 붕괴로 마치 최후의 승자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던 서구사회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 이상 속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원히 안주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유럽의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 실패해온 유럽의 빈부 격차 해소 노력

결국은 해법이,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데 있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전세계 부자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조차 이미 2012년 "자본주의가 고장났다"며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현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을 내릴 바 있다. 현 위기는 1개 국가만의, 한 대륙의 것만도 아닌 전 지구적 차원의 위기라는 진단이기도 하다.

결론이 분명하니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도 전개된다. 현세의 경제적 불평등을 신랄하게 파헤친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스 피케티 등 유럽의 지식인 50명은, 노란조끼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10일 <유럽 민주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 등으로 연간 8천억 유로(현 유럽연합 예산의 4배)의 예산을 확보해 불평등과 기후변화, 이주 문제 등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계획이 실현 가능할 지에 언론은 물음표를 찍었다. 지난 2014년 유럽연합 10개국은 주식 및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 거래의 과다 이익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이른바 '로빈후드세'를 입안했으나 일부 국가들의 탈퇴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다국적 IT기업의 온라인 거래 이익에 대한 세금을 확대하는 디지털세를 추진하고 있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그런데 과연 현 예산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을 대기업과 부자들로부터 거둬들인다는 혁신적 안이 실현될 수 있겠는가?

무너져가는 복지국가 유럽의 이상,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경제불평등 게다가 4차산업혁명에 대한 무방비로 인해 가중되는 미래 불안까지, 서구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갈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이 특권을 포기할 수 있어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사고의 틀을 완전히 전환할 수 있어야, 결국은 모두가 조금씩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데 동의할 수 있어야 제한적인 해법이나마 가능해보인다. 그런데 보통 과거를 부정해야 하는 전환기의 해법은 쉽게 합의되지 않는다. 그러니 유럽의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한참은 더 거리로 뛰쳐나와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의 노란조끼 시위대가 그들 스스로를 루이 14세를 끌어내린 '프랑스 혁명' 시위대에 비유하는 이유다.


■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카카오의 카풀서비스 시행에 맞선 택시기사들의 저항은 생명을 걸 정도로 절박했다. 결국 택시기사 1명이 분신해 숨진 뒤에야 카풀서비스의 시행이 미뤄지고 논의는 더 진지해졌다.

대중교통의 일부인 택시 형태의 서비스가 확대되는 것인데다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기 위해 공유형 서비스 도입에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여론은, 택시업계보다는 카카오카풀서비스쪽으로 기울어있다. 그러나 이를 그렇게만 볼 수 있을 것인가?

과거 개인택시 1대면 부자가 될 수 있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택시요금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제는 택시기사들이 사납금도 못채워 쩔쩔매고 있다. 시대의 변화, 산업의 변화와 함께 택시기사들의 경제적 지위도 변화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앞으로 어떤 분야의 노동자들을 이렇게 위협할 지 모른다. 인공지능과 로봇보다 더 산업 생산에 기여할 인간 노동력의 필요는 얼마나 남게 될까? 우리 사회는 과연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복지국가를 건설해본 적도 없는 한국 즉 광범위한 사회안전망이 마련되지 못한 한국에게는 유럽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노란조끼 시위의 절실함이 닥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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