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금정산’ 최고봉이 미국인 손에 넘어간 사연은?

입력 2018.12.19 (18:44) 수정 2018.12.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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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의 끝자락 부산 ‘금정산’ 일대

서울로 치면 북한산에 해당하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산인 금정산의 고당봉 일대가 지난 5월 미국인 손에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소유권이 넘어간 금정산 땅은 축구장 면적의 120배 크기다. 금정산 국립공원과의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부산 금정산은 8개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최고봉은 해발 815m의 고당봉이다. 이 고당봉을 꼭지점으로 해서 좌로 미륵사 일대, 우로 금정산성 북문을 잇는 삼각형 모양의 땅이 금정구 금성동 산 1-1이다. 이 곳을 포함한 고당봉 주변 땅이 대거 미국인 손에 넘어간 것이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소유권이 이전된 땅은 모두 30여 개 필지. 총 면적 87만 ㎡로, 축구장 면적의 120배다. 행정기관측은 "모두 33개 필지로 금성동이다. 세금은 3.5%에 지방교육세와 농특세 합쳐 약 4%를 냈다. 정상적으로 납부가 완료됐다"고 말했다.

이 땅은 우리나라 에너지 업계의 이름난 동업 기업인 주식회사 삼천리와 주식회사 삼탄이 나눠 소유하고 있다. 최대 지분 보유자는 전체의 30%를 갖고 있는 주식회사 삼탄 유 모 회장. 그런데 유 회장은 지난 5월 미국 국적의 둘째 아들에게 땅 지분을 모두 넘겼다. 법적 용어로 '증여'다. 이에 대해 주식회사 삼탄 측은 "시기가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통상적인 개인 재산 증여일 뿐 금정산 국립공원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미국 국적 아들의 증여 사실이 나타나 있는 등기부등본미국 국적 아들의 증여 사실이 나타나 있는 등기부등본

그렇다면 삼천리와 삼탄, 두 에너지 기업이 금정산 땅을 왜 그렇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 또 하필 왜 이 시점에 미국 국적 아들에게 땅을 넘겼는지, 의문이 남는다. 내막을 들여다보았다.

총 자산 6조 5천억 원, 국내 재계 순위 53위인 대형 에너지 기업 삼천리와 총 자산 2조 원의 중견 에너지 기업 삼탄. 이 두 회사는 창업주 시절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동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 6월, 두 회사 회장 일가는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지을 생각으로 금정산 땅을 사들였다. 땅 소유권은 절반씩 나눠 가졌다. 하지만 골프장 조성 계획은 환경훼손 논란 속에 사업 신청과 철회를 거듭하다 10년 만에 백지화되고 만다.

그로부터 28년. 금정산 국립공원화 움직임이 한창인 올해 그 땅의 30%가 미국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우연일까, 의도한 걸까.

부산시가 진행한 ‘금정산 국립공원 사업’ 연구 용역 보고서부산시가 진행한 ‘금정산 국립공원 사업’ 연구 용역 보고서

부산에서는 금정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부산시 민·관 합동 연구용역에서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이 '타당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산시는 이를 바탕으로 이르면 내년 상반기, 환경부에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하려고 한다. 만약 이대로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삼천리·삼탄 일가가 사둔 금정산 땅은 자산으로서 가치를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영원히 땅을 갖고 있거나, 공시지가 수준의 헐값으로 정부에 넘겨주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38년 전, 땅을 살 때 기대한 투자 이익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겁니다.

시민환경단체는 토지 증여를 ‘협상력 높이기’ 수단으로 보고 있다시민환경단체는 토지 증여를 ‘협상력 높이기’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 땅 증여가 '토지 보상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시민단체는 지적한다. 유진철 범시민금정산보존회 생태국장은 "증여를 했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숨은 의도가 있는 걸로 보이고, 어떤 저의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로 갈 경우 토지 강제 수용은 어려워진다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로 갈 경우 토지 강제 수용은 어려워진다

공공개발을 위한 사유지 강제 수용은 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처럼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나라의 국민이 소유한 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영어로 'ISD'라고 하는 국제 중재제도를 활용한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땅 강제 수용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수용을 하더라도 보상 가격은 반드시 당사자와 합의하게 되어 있다. 송기호 국제소송 전문 변호사는 "국제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인 배상액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공공사업의 어떤 장애를 가하는, 다시 말해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그런 어떤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KBS 취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부산시는 부랴부랴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섰다. 미국 국적 아들에 금정산 땅을 넘긴 에너지기업 회장 일가. 만약 땅 보상 협상에 대비한 것이라는 관측이 맞다면, 앞으로 금정산 국립공원 추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관 기사] 부산 금정산 일대, 미국인 손에 넘어가…국립공원 지정 차질 우려

[자료조사 : 최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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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대간 ‘금정산’ 최고봉이 미국인 손에 넘어간 사연은?
    • 입력 2018-12-19 18:44:37
    • 수정2018-12-19 20:16:29
    취재K
▲ 백두대간의 끝자락 부산 ‘금정산’ 일대

서울로 치면 북한산에 해당하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산인 금정산의 고당봉 일대가 지난 5월 미국인 손에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소유권이 넘어간 금정산 땅은 축구장 면적의 120배 크기다. 금정산 국립공원과의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부산 금정산은 8개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최고봉은 해발 815m의 고당봉이다. 이 고당봉을 꼭지점으로 해서 좌로 미륵사 일대, 우로 금정산성 북문을 잇는 삼각형 모양의 땅이 금정구 금성동 산 1-1이다. 이 곳을 포함한 고당봉 주변 땅이 대거 미국인 손에 넘어간 것이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소유권이 이전된 땅은 모두 30여 개 필지. 총 면적 87만 ㎡로, 축구장 면적의 120배다. 행정기관측은 "모두 33개 필지로 금성동이다. 세금은 3.5%에 지방교육세와 농특세 합쳐 약 4%를 냈다. 정상적으로 납부가 완료됐다"고 말했다.

이 땅은 우리나라 에너지 업계의 이름난 동업 기업인 주식회사 삼천리와 주식회사 삼탄이 나눠 소유하고 있다. 최대 지분 보유자는 전체의 30%를 갖고 있는 주식회사 삼탄 유 모 회장. 그런데 유 회장은 지난 5월 미국 국적의 둘째 아들에게 땅 지분을 모두 넘겼다. 법적 용어로 '증여'다. 이에 대해 주식회사 삼탄 측은 "시기가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통상적인 개인 재산 증여일 뿐 금정산 국립공원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미국 국적 아들의 증여 사실이 나타나 있는 등기부등본
그렇다면 삼천리와 삼탄, 두 에너지 기업이 금정산 땅을 왜 그렇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 또 하필 왜 이 시점에 미국 국적 아들에게 땅을 넘겼는지, 의문이 남는다. 내막을 들여다보았다.

총 자산 6조 5천억 원, 국내 재계 순위 53위인 대형 에너지 기업 삼천리와 총 자산 2조 원의 중견 에너지 기업 삼탄. 이 두 회사는 창업주 시절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동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 6월, 두 회사 회장 일가는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지을 생각으로 금정산 땅을 사들였다. 땅 소유권은 절반씩 나눠 가졌다. 하지만 골프장 조성 계획은 환경훼손 논란 속에 사업 신청과 철회를 거듭하다 10년 만에 백지화되고 만다.

그로부터 28년. 금정산 국립공원화 움직임이 한창인 올해 그 땅의 30%가 미국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우연일까, 의도한 걸까.

부산시가 진행한 ‘금정산 국립공원 사업’ 연구 용역 보고서
부산에서는 금정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부산시 민·관 합동 연구용역에서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이 '타당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산시는 이를 바탕으로 이르면 내년 상반기, 환경부에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하려고 한다. 만약 이대로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삼천리·삼탄 일가가 사둔 금정산 땅은 자산으로서 가치를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영원히 땅을 갖고 있거나, 공시지가 수준의 헐값으로 정부에 넘겨주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38년 전, 땅을 살 때 기대한 투자 이익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겁니다.

시민환경단체는 토지 증여를 ‘협상력 높이기’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 땅 증여가 '토지 보상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시민단체는 지적한다. 유진철 범시민금정산보존회 생태국장은 "증여를 했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숨은 의도가 있는 걸로 보이고, 어떤 저의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로 갈 경우 토지 강제 수용은 어려워진다
공공개발을 위한 사유지 강제 수용은 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처럼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나라의 국민이 소유한 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영어로 'ISD'라고 하는 국제 중재제도를 활용한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땅 강제 수용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수용을 하더라도 보상 가격은 반드시 당사자와 합의하게 되어 있다. 송기호 국제소송 전문 변호사는 "국제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인 배상액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공공사업의 어떤 장애를 가하는, 다시 말해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그런 어떤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KBS 취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부산시는 부랴부랴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섰다. 미국 국적 아들에 금정산 땅을 넘긴 에너지기업 회장 일가. 만약 땅 보상 협상에 대비한 것이라는 관측이 맞다면, 앞으로 금정산 국립공원 추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관 기사] 부산 금정산 일대, 미국인 손에 넘어가…국립공원 지정 차질 우려

[자료조사 : 최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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