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제천 참사 1년…“변한 건 하나도 없어요”

입력 2018.12.21 (08:33) 수정 2018.12.2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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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지난해 화재가 발생해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사건 기억하십니까?

정확히 지난해 오늘인데요.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피해자와 유족들, 또 화재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에게 화재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천 참사 1년, 화재 현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9층 건물을 집어삼켰습니다.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순식간에 29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 후 1년 화재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2층 높이까지 가림막을 해놨습니다.

[이웃 주민/음성변조 : "여기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이 네 분이었어요. 무서워서 그길로 못 다니겠고……."]

[이웃 주민/음성변조 : "빈 상가가 된 지가 1년이 넘었어요."]

[이웃 주민/음성변조 : "그 사건 때문에 그런지 가게가 잘 안 나고 있는 거죠."]

건물이 있는 곳은 제천의 번화가.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눈에 띄게 사람이 줄고, 하나 둘 빈 가게가 늘고 있는데요.

[허남인/인근 상인 : "오랜 단골들도 이쪽에 와서 밥 먹고 싶지가 않대요. 그냥 다른 데로 가자 해서 차 돌려서 가고 하셨다고……."]

활기를 잃은 골목만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인들.

발길을 끊은 단골들 보다 지난 1년 마음이 무거웠던 건 다른 이유였습니다.

[허남인/인근 상인 : "단골들도 희생이 되셨고, 아침에 인사하신 분도 오후에 운동 가셨다가 돌아가셨고 전날 여기서 식사하신 분도 운동 가셨다가 돌아가시고 머리가 한 보름은 멍하더라고요."]

화재 참사 일주년을 하루 앞두고 화재 현장을 찾은 민동일 씨.

[민동일/제천 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저희 어머니하고 제 여동생하고 제 여동생 딸인 제 조카하고 우리 흔히 그냥 하는 얘기로 삼대 세 명의 가족을 잃었죠. (여기) 사실은 와서 보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오면 생각이 많이 나니까요."]

29명의 참사 희생자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목욕탕에서 발견된 가족들.

사고 이후 지난 일 년 간 민 씨의 시계는 멈췄습니다.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고, 화재 진상 규명에 매달렸습니다.

참사 희생자 유족 가운데 아예 제천을 떠난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민동일/제천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다른 지역으로 간 사람도 있어요. 아예 이사를 간 사람도 있어요. 도저히 못 있겠다는 거죠. 제천이라는 도시에 있기 싫고…."]

화재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는데요. 이 곳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김남수/이웃주민 : "이름이라도 보려고 왔지요. 비 세운 건 잘 몰랐고 오늘 해놨다고 해서 그냥 보러 온 거예요. 목사님 보고도 싶잖아요."]

그곳에서 화재 현장에 있었던 한 피해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일 다시 보자하며 헤어졌던 게 마지막이 됐던 그 날을 생각하면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을환/화재 피해자 : "'오라버니 운동 많이 하셨나 보네요. 땀나는 거 보니까.' '그래 열심히 하고 가거라.'하고 내려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네요."]

운동 후 샤워를 하려다 불이 난 걸 알고 9층으로 대피를 했다는데요.

[한을환/화재 피해자 : "(소방) 사다리차가 올라오더니 주저앉고 말았어요. 어떠한 이유인지 몰라도 헬기는 (멀리) 날아갔고요."]

모든 희망을 버리고 아내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한을환/화재 피해자 : "아내한테 자식한테 하고 싶은 얘길 했어요. 이제는 마지막인가 보다 했는데, 정말로 민간 사다리차가 올라와서 살아났습니다."]

구조 직후 옥상까지 불길이 번졌지만, 사다리차를 끌고 온 한 시민 덕분에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올 여름까지 약물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을환/화재 피해자 : "제 친구가 아내를 잃어버렸고, 만나는 것조차도 정말로 미안하기 때문에 못 만나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 생각이 나요. 잠이 들더라도 깊이 잠들지를 못하고 그냥 일찍 깨고 마는 겁니다."]

옥상으로 대피했던 3명을 구조한건 크레인 기사 이양섭씨. 그 역시 지난 일 년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양섭/제천 화재 의인 :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해서 29명이라는 사람이 좀 더 살았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죠."]

현장에 있었던 모두에게 지난 1년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고 합니다.

[민동일/제천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저희 유가족이 느끼기에는 변화된 게 하나도 없어요. 아직도 왜 희생자가 이렇게 컸는지에 대한 원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누구도 아직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게다가 화재 당시 소방차의 진입을 막았던 도로의 차들. 지금은 어떨까요?

[인근 상인/음성변조 : "똑같죠. 나아진 게 뭐가 있어요. 주차할 데가 없으니까 지금처럼 새워 놓은 거지."]

충북소방본부에서 4천여개 건물을 조사한 결과 불법 증·개축과 방화시설 위반사항은 580여 건이 적발됐고, 천4백여 곳의 비상구와 피난 통로 단속에선 130여 곳이 적발됐습니다.

[민동일/제천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분들한테 참사가 잊힌다는 게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이런 참사가 앞으로 생기면 안 되잖아요. 원인 규명을 위해서 유가족들이 하는 부분은 왜 저 사람이 저렇게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좀 알아주신다면……."]

반복되는 화재 속에, 만약 같은 곳에서 또 불이 난다면 과연 피해를 막을 수는 있을까요?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1주기 추모식은 오늘 오후 3시에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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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제천 참사 1년…“변한 건 하나도 없어요”
    • 입력 2018-12-21 08:40:54
    • 수정2018-12-21 08: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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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지난해 화재가 발생해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사건 기억하십니까?

정확히 지난해 오늘인데요.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피해자와 유족들, 또 화재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에게 화재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천 참사 1년, 화재 현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9층 건물을 집어삼켰습니다.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순식간에 29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 후 1년 화재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2층 높이까지 가림막을 해놨습니다.

[이웃 주민/음성변조 : "여기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이 네 분이었어요. 무서워서 그길로 못 다니겠고……."]

[이웃 주민/음성변조 : "빈 상가가 된 지가 1년이 넘었어요."]

[이웃 주민/음성변조 : "그 사건 때문에 그런지 가게가 잘 안 나고 있는 거죠."]

건물이 있는 곳은 제천의 번화가.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눈에 띄게 사람이 줄고, 하나 둘 빈 가게가 늘고 있는데요.

[허남인/인근 상인 : "오랜 단골들도 이쪽에 와서 밥 먹고 싶지가 않대요. 그냥 다른 데로 가자 해서 차 돌려서 가고 하셨다고……."]

활기를 잃은 골목만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인들.

발길을 끊은 단골들 보다 지난 1년 마음이 무거웠던 건 다른 이유였습니다.

[허남인/인근 상인 : "단골들도 희생이 되셨고, 아침에 인사하신 분도 오후에 운동 가셨다가 돌아가셨고 전날 여기서 식사하신 분도 운동 가셨다가 돌아가시고 머리가 한 보름은 멍하더라고요."]

화재 참사 일주년을 하루 앞두고 화재 현장을 찾은 민동일 씨.

[민동일/제천 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저희 어머니하고 제 여동생하고 제 여동생 딸인 제 조카하고 우리 흔히 그냥 하는 얘기로 삼대 세 명의 가족을 잃었죠. (여기) 사실은 와서 보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오면 생각이 많이 나니까요."]

29명의 참사 희생자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목욕탕에서 발견된 가족들.

사고 이후 지난 일 년 간 민 씨의 시계는 멈췄습니다.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고, 화재 진상 규명에 매달렸습니다.

참사 희생자 유족 가운데 아예 제천을 떠난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민동일/제천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다른 지역으로 간 사람도 있어요. 아예 이사를 간 사람도 있어요. 도저히 못 있겠다는 거죠. 제천이라는 도시에 있기 싫고…."]

화재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는데요. 이 곳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김남수/이웃주민 : "이름이라도 보려고 왔지요. 비 세운 건 잘 몰랐고 오늘 해놨다고 해서 그냥 보러 온 거예요. 목사님 보고도 싶잖아요."]

그곳에서 화재 현장에 있었던 한 피해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일 다시 보자하며 헤어졌던 게 마지막이 됐던 그 날을 생각하면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을환/화재 피해자 : "'오라버니 운동 많이 하셨나 보네요. 땀나는 거 보니까.' '그래 열심히 하고 가거라.'하고 내려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네요."]

운동 후 샤워를 하려다 불이 난 걸 알고 9층으로 대피를 했다는데요.

[한을환/화재 피해자 : "(소방) 사다리차가 올라오더니 주저앉고 말았어요. 어떠한 이유인지 몰라도 헬기는 (멀리) 날아갔고요."]

모든 희망을 버리고 아내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한을환/화재 피해자 : "아내한테 자식한테 하고 싶은 얘길 했어요. 이제는 마지막인가 보다 했는데, 정말로 민간 사다리차가 올라와서 살아났습니다."]

구조 직후 옥상까지 불길이 번졌지만, 사다리차를 끌고 온 한 시민 덕분에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올 여름까지 약물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을환/화재 피해자 : "제 친구가 아내를 잃어버렸고, 만나는 것조차도 정말로 미안하기 때문에 못 만나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 생각이 나요. 잠이 들더라도 깊이 잠들지를 못하고 그냥 일찍 깨고 마는 겁니다."]

옥상으로 대피했던 3명을 구조한건 크레인 기사 이양섭씨. 그 역시 지난 일 년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양섭/제천 화재 의인 :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해서 29명이라는 사람이 좀 더 살았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죠."]

현장에 있었던 모두에게 지난 1년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고 합니다.

[민동일/제천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저희 유가족이 느끼기에는 변화된 게 하나도 없어요. 아직도 왜 희생자가 이렇게 컸는지에 대한 원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누구도 아직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게다가 화재 당시 소방차의 진입을 막았던 도로의 차들. 지금은 어떨까요?

[인근 상인/음성변조 : "똑같죠. 나아진 게 뭐가 있어요. 주차할 데가 없으니까 지금처럼 새워 놓은 거지."]

충북소방본부에서 4천여개 건물을 조사한 결과 불법 증·개축과 방화시설 위반사항은 580여 건이 적발됐고, 천4백여 곳의 비상구와 피난 통로 단속에선 130여 곳이 적발됐습니다.

[민동일/제천화재 유가족 공동대표 :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분들한테 참사가 잊힌다는 게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이런 참사가 앞으로 생기면 안 되잖아요. 원인 규명을 위해서 유가족들이 하는 부분은 왜 저 사람이 저렇게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좀 알아주신다면……."]

반복되는 화재 속에, 만약 같은 곳에서 또 불이 난다면 과연 피해를 막을 수는 있을까요?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1주기 추모식은 오늘 오후 3시에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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