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책방] 이스라엘 전차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이유

입력 2018.12.2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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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대신 병사를 살린다…세계를 놀라게 한 전차 '메르카바'

1979년 이스라엘 전차 '메르카바'의 등장은 세계 무기 역사의 혁명 같은 사건이었다. 국산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전차를 개발했다는 사실도 주목을 받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전차의 디자인이었다.

일반적인 전차는 엔진이 차체 뒤편에 있는 것이 당연한데 메르카바는 엔진을 차체 맨 앞에 장착했다. 이스라엘의 신형 전차 개발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타리크 장군의 아이디어였다. 그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전차의 심장인 엔진을 방패로 삼더라도 조종수의 목숨은 살려야 한다는. 군인 한 명의 목숨이 전차보다 소중한 이스라엘이 택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스라엘의 전차, 메르카바이스라엘의 전차, 메르카바

결과는 어땠을까. 1982년 레바논 전쟁에 첫 출전한 메르카바는 소련의 T-72 전차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전차를 잘 다루는 정예 병사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전투 능력도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메르카바의 디자인을 조롱하던 세계 군사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스라엘이 병역거부에 대처하는 방법

이스라엘에도 병역거부 문제가 있다. 초정통파 유대인으로 경전 연구자 집단인 하레디(Haredi)는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병역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수가 총인구의 12%(100만 명)를 넘을 정도로 늘어나자 2014년 이스라엘 정부는 법을 바꿔 하레디를 징집 대상에 포함시켰다. 하레디는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정부의 태도는 완강했다.

초정통파 유대인, 하레디초정통파 유대인, 하레디

하레디의 병역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레디 부대를 만들어 경전 연구 시간을 보장해줬다. 율법에 따른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급식 체계도 개선하고, 전역 후 취업이나 창업에 활용할 컴퓨터 기술을 '군대에서' 가르쳐줬다. 이스라엘은 도대체 왜 병역기피자들을 위해 이런 파격적인 투자를 했을까. 병역이행자와 병역기피자 사이에 벌어지는 내부 갈등이 적국의 핵미사일보다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문제의식은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군대는 다 똑같다는 편견 뚫고 '정예강군' 만든 연어들

비효율과 무능의 대명사 같은 조직인 군대. 똑똑한 유대인들이 모인 이스라엘군은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이스라엘 군도 똑같다'는 의외의 결론을 내놓는다. 딱딱한 조직문화는 물론 무책임한 관료주의와 지독한 파벌까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군대는 군대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거센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 같은 인재들이 이스라엘군에 유독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위기의 순간마다 연어들이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강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을 극복하고 어렵게 세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엘리트들의 용기가 강한 이스라엘 군대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돔

이스라엘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이란 책 제목만 보고 딱딱한 군사 서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대라는 창(窓)을 통해 본 이스라엘의 생존 전략, 중동 정세의 난맥상을 다룬 책에 가깝다.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대해 찬양 일색이지도 않다. 가자 지구의 민간인 피해 문제나 모사드의 불법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잃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출신 특유의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 덕분에 속도감 있게 책이 읽힌다. 글을 쓴 노석조 기자는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서 공부하고 예루살렘 등에서 500일 넘게 중동 특파원 생활을 한 자타공인 '중동통'이다.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는 중동에 관한 가장 믿음직한 소식통으로 꼽힌다. 책에서는 이스라엘군 관계자들의 수십 명의 인터뷰와 최신 통계들을 인용하고 있어 '지금의 이스라엘'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노석조 지음,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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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2 07:06:28
    여의도책방
엔진 대신 병사를 살린다…세계를 놀라게 한 전차 '메르카바'

1979년 이스라엘 전차 '메르카바'의 등장은 세계 무기 역사의 혁명 같은 사건이었다. 국산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전차를 개발했다는 사실도 주목을 받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전차의 디자인이었다.

일반적인 전차는 엔진이 차체 뒤편에 있는 것이 당연한데 메르카바는 엔진을 차체 맨 앞에 장착했다. 이스라엘의 신형 전차 개발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타리크 장군의 아이디어였다. 그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전차의 심장인 엔진을 방패로 삼더라도 조종수의 목숨은 살려야 한다는. 군인 한 명의 목숨이 전차보다 소중한 이스라엘이 택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스라엘의 전차, 메르카바
결과는 어땠을까. 1982년 레바논 전쟁에 첫 출전한 메르카바는 소련의 T-72 전차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전차를 잘 다루는 정예 병사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전투 능력도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메르카바의 디자인을 조롱하던 세계 군사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스라엘이 병역거부에 대처하는 방법

이스라엘에도 병역거부 문제가 있다. 초정통파 유대인으로 경전 연구자 집단인 하레디(Haredi)는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병역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수가 총인구의 12%(100만 명)를 넘을 정도로 늘어나자 2014년 이스라엘 정부는 법을 바꿔 하레디를 징집 대상에 포함시켰다. 하레디는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정부의 태도는 완강했다.

초정통파 유대인, 하레디
하레디의 병역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레디 부대를 만들어 경전 연구 시간을 보장해줬다. 율법에 따른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급식 체계도 개선하고, 전역 후 취업이나 창업에 활용할 컴퓨터 기술을 '군대에서' 가르쳐줬다. 이스라엘은 도대체 왜 병역기피자들을 위해 이런 파격적인 투자를 했을까. 병역이행자와 병역기피자 사이에 벌어지는 내부 갈등이 적국의 핵미사일보다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문제의식은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군대는 다 똑같다는 편견 뚫고 '정예강군' 만든 연어들

비효율과 무능의 대명사 같은 조직인 군대. 똑똑한 유대인들이 모인 이스라엘군은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이스라엘 군도 똑같다'는 의외의 결론을 내놓는다. 딱딱한 조직문화는 물론 무책임한 관료주의와 지독한 파벌까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군대는 군대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거센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 같은 인재들이 이스라엘군에 유독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위기의 순간마다 연어들이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강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을 극복하고 어렵게 세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엘리트들의 용기가 강한 이스라엘 군대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돔
이스라엘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이란 책 제목만 보고 딱딱한 군사 서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대라는 창(窓)을 통해 본 이스라엘의 생존 전략, 중동 정세의 난맥상을 다룬 책에 가깝다.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대해 찬양 일색이지도 않다. 가자 지구의 민간인 피해 문제나 모사드의 불법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잃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출신 특유의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 덕분에 속도감 있게 책이 읽힌다. 글을 쓴 노석조 기자는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서 공부하고 예루살렘 등에서 500일 넘게 중동 특파원 생활을 한 자타공인 '중동통'이다.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는 중동에 관한 가장 믿음직한 소식통으로 꼽힌다. 책에서는 이스라엘군 관계자들의 수십 명의 인터뷰와 최신 통계들을 인용하고 있어 '지금의 이스라엘'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노석조 지음,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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