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예수 생일보다 마오 생일…중국 성탄절 논란 뒷얘기

입력 2018.12.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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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생일인 12월 26일 중국 곳곳에서는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12월 25일은 알면서 26일은 누구 생일인지 몰라?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크리스마스 금지'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나오는 동영상이 흥미롭다. 소학교, 우리 초등학교 여선생이 학생들에게 "12월 25일은 무슨 명절입니까?"라고 묻자 학생들은 일제히 "성탄절입니다!"라고 외친다. 선생이 다시 "12월 26일은 무슨 명절입니까?"라고 묻자 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선생은 깊은 한숨을 쉬며 "참 무섭다! 아무도 모르다니! 12월 26일은 우리 위대한 수령 마오쩌둥의 탄생일입니다."라고 말한다. 일부 중국인들은 이 영상을 보면서 "요즘 어린 것들은…."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모양이다. 종교와 정치가 또 문화와 정치가 묘하게 뒤섞인 자세히 보면 교조화된 중국 사회의, 아니 중국 공산당의 실체다.

허베이성 바오딩시 도시관리국의 크리스마스 금지 공문허베이성 바오딩시 도시관리국의 크리스마스 금지 공문

크리스마스 금지 논란...일부 국수주의자들의 오버액션?

미국의 중국 관련 매체 NTD가 최근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 랑팡시 도시관리국 명의의 공문을 입수해 보도했다. 크리스마스 관련 트리와 장식, 물품을 없애고 크리스마스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약과다. 12월 23일부터 성탄 당일인 25일까지 각 단위의 모든 노동자는 전원 출근해 휴가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이른바 공청단이 성명을 냈다. "공산당원들은 공산주의 신념을 따르는 모범이 돼야 한다. 미신과 아편과 같은 서방정신을 맹목적으로 따라선 안 된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 내에서 크리스마스 금지령은 없다고 강변한다. 맞다! 중앙 정부 차원, 공산당 중앙 차원에서 일관된 지시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 공산당 지부 차원에서 일부 국수주의자들 차원에서 크리스마스는 중국의 수치라는 식의 인식이 확산하고 있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관철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 산시성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양 명절을 거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중국 산시성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양 명절을 거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금지한 사람은 없어도 부추긴 사람은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크리스마스를 중국화(中國化)해서 받아들여 왔다. 크리스마스이브, 성탄전야를 평안한 밤이라는 뜻인 평안야(平安夜)라고 부르며 발음이 비슷한 사과를 선물하는 풍습으로 발전시켜 왔다.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지금 중국의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이런 것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지난해 10월 19차 당 대회 이후다.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시진핑 주석이 당 대회 연설에서 문화적 자신감과 인민의 사상 무장을 강조한 이후부터다. 중국 문화의 위대한 부활, 중국몽(中國夢)을 말했는데 이것이 외국 문화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실제로 최근 전통명절 진흥 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크리스마스 금지를 지시한 사람은 없었지만 부추긴 사람이 있었다.

중국의 위인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시위. 마오쩌둥 사상을 알리자는 표어도 보인다.중국의 위인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시위. 마오쩌둥 사상을 알리자는 표어도 보인다.

종교 탄압의 또 다른 모습...중국 공산당의 뒷걸음질

크리스마스 금지 논란은 중국 공산당의 종교 탄압, 특히 기독교 탄압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공산당은 올해 초 종교사무조례 제정, 중국 기독교 중국화 5개년 계획 발표 등을 통해 중국 내 교회들을 서방의 교회들과 완전히 단절시키고 중국 공산당과 사회주의 혁명 정신을 찬양하는 교리를 이식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판 성경을 새로 집필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벌써 많은 교회가 강제 철거당했고, 많은 목회자가 구속되거나 추방됐다.

중국 공산당의 이런 퇴행적 모습은 얼핏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킨다.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겠다는 명분 아래 시작됐다가 홍위병들의 폭력적 광기로 끝나버린 10년간의 실험. 중국 공산당 스스로 당·국가·인민에게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비판했던 그 길이 자꾸 연상된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 주석이 부주석 시절 산타와 악수한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 주석이 부주석 시절 산타와 악수한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중국 청년들...마르크스 사상은 서양에서 온 것 아니냐?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 지방 도시들에서는 마오쩌둥 사상을 다시 주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공연히 거리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미국과 무역전쟁이 벌어진 탓인지 중국 내에서 편협한 민족주의적 정서가 다시 꿈틀거리는 분위기다. 얼마 전 기자가 만난 자오후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서구화를 비판하고 마오쩌둥 사상(구좌파)을 계승하려는 신좌파적 사조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인터넷 통제로 댓글이 달리는 족족 사라지고 있지만, 젊은이들의 기발한 반발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 디즈니랜드는 왜 들여왔느냐?", "마르크스 사상은 서양에서 온 것 아니냐?" 중국 공산당이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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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예수 생일보다 마오 생일…중국 성탄절 논란 뒷얘기
    • 입력 2018-12-25 13:44:00
    특파원 리포트
▲마오쩌둥 생일인 12월 26일 중국 곳곳에서는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12월 25일은 알면서 26일은 누구 생일인지 몰라?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크리스마스 금지'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나오는 동영상이 흥미롭다. 소학교, 우리 초등학교 여선생이 학생들에게 "12월 25일은 무슨 명절입니까?"라고 묻자 학생들은 일제히 "성탄절입니다!"라고 외친다. 선생이 다시 "12월 26일은 무슨 명절입니까?"라고 묻자 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선생은 깊은 한숨을 쉬며 "참 무섭다! 아무도 모르다니! 12월 26일은 우리 위대한 수령 마오쩌둥의 탄생일입니다."라고 말한다. 일부 중국인들은 이 영상을 보면서 "요즘 어린 것들은…."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모양이다. 종교와 정치가 또 문화와 정치가 묘하게 뒤섞인 자세히 보면 교조화된 중국 사회의, 아니 중국 공산당의 실체다.

허베이성 바오딩시 도시관리국의 크리스마스 금지 공문
크리스마스 금지 논란...일부 국수주의자들의 오버액션?

미국의 중국 관련 매체 NTD가 최근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 랑팡시 도시관리국 명의의 공문을 입수해 보도했다. 크리스마스 관련 트리와 장식, 물품을 없애고 크리스마스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약과다. 12월 23일부터 성탄 당일인 25일까지 각 단위의 모든 노동자는 전원 출근해 휴가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이른바 공청단이 성명을 냈다. "공산당원들은 공산주의 신념을 따르는 모범이 돼야 한다. 미신과 아편과 같은 서방정신을 맹목적으로 따라선 안 된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 내에서 크리스마스 금지령은 없다고 강변한다. 맞다! 중앙 정부 차원, 공산당 중앙 차원에서 일관된 지시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 공산당 지부 차원에서 일부 국수주의자들 차원에서 크리스마스는 중국의 수치라는 식의 인식이 확산하고 있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관철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 산시성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양 명절을 거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금지한 사람은 없어도 부추긴 사람은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크리스마스를 중국화(中國化)해서 받아들여 왔다. 크리스마스이브, 성탄전야를 평안한 밤이라는 뜻인 평안야(平安夜)라고 부르며 발음이 비슷한 사과를 선물하는 풍습으로 발전시켜 왔다.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지금 중국의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이런 것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지난해 10월 19차 당 대회 이후다.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시진핑 주석이 당 대회 연설에서 문화적 자신감과 인민의 사상 무장을 강조한 이후부터다. 중국 문화의 위대한 부활, 중국몽(中國夢)을 말했는데 이것이 외국 문화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실제로 최근 전통명절 진흥 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크리스마스 금지를 지시한 사람은 없었지만 부추긴 사람이 있었다.

중국의 위인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시위. 마오쩌둥 사상을 알리자는 표어도 보인다.
종교 탄압의 또 다른 모습...중국 공산당의 뒷걸음질

크리스마스 금지 논란은 중국 공산당의 종교 탄압, 특히 기독교 탄압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공산당은 올해 초 종교사무조례 제정, 중국 기독교 중국화 5개년 계획 발표 등을 통해 중국 내 교회들을 서방의 교회들과 완전히 단절시키고 중국 공산당과 사회주의 혁명 정신을 찬양하는 교리를 이식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판 성경을 새로 집필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벌써 많은 교회가 강제 철거당했고, 많은 목회자가 구속되거나 추방됐다.

중국 공산당의 이런 퇴행적 모습은 얼핏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킨다.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겠다는 명분 아래 시작됐다가 홍위병들의 폭력적 광기로 끝나버린 10년간의 실험. 중국 공산당 스스로 당·국가·인민에게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비판했던 그 길이 자꾸 연상된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 주석이 부주석 시절 산타와 악수한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중국 청년들...마르크스 사상은 서양에서 온 것 아니냐?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 지방 도시들에서는 마오쩌둥 사상을 다시 주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공연히 거리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미국과 무역전쟁이 벌어진 탓인지 중국 내에서 편협한 민족주의적 정서가 다시 꿈틀거리는 분위기다. 얼마 전 기자가 만난 자오후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서구화를 비판하고 마오쩌둥 사상(구좌파)을 계승하려는 신좌파적 사조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인터넷 통제로 댓글이 달리는 족족 사라지고 있지만, 젊은이들의 기발한 반발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 디즈니랜드는 왜 들여왔느냐?", "마르크스 사상은 서양에서 온 것 아니냐?" 중국 공산당이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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