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굴뚝에 왜 올라갔습니까…‘파인텍 411일’을 묻다

입력 2018.12.27 (11:14) 수정 2018.12.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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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가 굴뚝을 찾는 크리스마스에 굴뚝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일자리를 요구하며 오늘(27일)까지 411일째 굴뚝 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입니다.

그제(25일) 취재한 건 KBS 9시 뉴스에 2분 넘게 방송됐습니다. 통상 방송 리포트 길이가 1분 20초인 걸 고려하면 꽤 긴 시간을 할애해서 사연을 자세히 소개한 겁니다. 그럼에도 "왜 굴뚝에 올라가서 400일 넘게 내려오지 않는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연관기사]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파인텍 ‘굴뚝 농성’ 409일째

400일 넘게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다가 힘들면 적당히 타협할 생각이었다면 75미터, 아파트 25층 높이의 아득한 굴뚝에 올라가지 못했을 겁니다.

남은 질문은 "왜 올라갔느냐?" 입니다. 바꿔 말하면 "굴뚝 농성 말고는 방법이 없었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파인텍 사태'를 정리해봐야 합니다.


◆'한국합섬→스타케미칼→파인텍'…8년의 투쟁

김옥배, 박준호, 조정기, 차광호, 홍기탁. 파인텍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원래 '한국합섬'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경북 구미에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섬유 가공업체입니다.

한국합섬은 2006년 파산했고, 2010년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인수했습니다. 스타플렉스는 한국합섬을 기반으로 '스타케미칼'을 만들었고, 차광호 씨 등 한국합섬 노동자 100여 명은 스타케미칼 노동자가 됐습니다.

스타케미칼은 문을 연 지 1년 7개월 만에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차광호 씨 등은 김세권 대표가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먹튀'를 하는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스타케미칼 노동자 대부분은 희망퇴직원을 내고 회사를 떠났지만, 차광호 씨 등 28명은 끝까지 싸웠습니다. 2014년 5월 스타케미칼이 완전히 문을 닫자 차광호 씨가 굴뚝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 굴뚝 농성입니다.

408일 동안 굴뚝 농성을 해서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생계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으로 만들어진 회사가 파인텍인데, 스타플렉스의 자회사가 아닌 별도 회사였고, 회사 대표는 김세권 대표가 아닌 스타플렉스 임원이 맡았습니다.

2016년 1월 파인텍에 출근을 했는데, 회사가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었습니다. 노동자를 더 채용하지도 않았고, 월급은 최저임금이 간신히 넘는 120만여만 원을 줬습니다. 노사가 10여 차례 만났지만, 단체협약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세권 대표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노동자들은 2016년 10월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는 지난해 8월 공장에서 기계를 빼갔습니다. 지난해 11월 12일 박준호, 홍기탁 씨는 두 번째 굴뚝에 올랐습니다.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가 잘 보이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입니다.


◆"방법은 굴뚝농성과 단식 뿐"

이렇게 '파인텍 사태'가 8년 동안 이어지면서 함께 싸우던 28명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건 5명. 5명 중 한 명인 김옥배 씨에게 왜 굴뚝에 올라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고용해달라고 법원에 민사소송을 낼 수 있겠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나려면 5년이 넘게 걸린다. 소송에서 우리가 이기더라도 사측은 벌금 내고 고용을 안 하면 그만이다. 대법원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정규직 고용을 하지 않고 있는 한국GM이나 현대기아차랑 마찬가지다."

법은 너무 멀고, 실질적이지도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스타플렉스 앞에서 선전전도 해보고, 김세권 대표 집 앞에서 선전전도 해봤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 같은 작은 사업장은 언론에서 관심도 없더라.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굴뚝 농성 아니면 단식농성이었다."

법으로는 안 되는데 5명이 내는 소리는 너무 작다며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택한 게 굴뚝이라는 겁니다.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 더 물어보겠다며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도 다 떠나고 5명만 남았으니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사회가 IMF 외환위기 이후 많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고 정리해고돼서 살 길 찾아가며 자영업자 되고, 지금 1,0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3가지를 걸고 굴뚝에 올라갔다. '스타플렉스가 책임져라, 노동악법 철폐하라, 적폐 청산하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안 했기 때문에 김용균 동지나 구의역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문제랑 우리 문제를 언론에서 좀 연관 지어서 봐 줬으면 좋겠다."


굴뚝 농성 410일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굴뚝 농성 기록입니다. 차광호 씨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세웠던 408일 기록을 깼습니다. 파인텍 노동자가 세운 기록을 파인텍 노동자가 깬 겁니다.
두 번째 굴뚝 농성이 408일에 가까워져 오자 언론을 비롯한 사회에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408일 기록을 깨자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그 관심의 힘으로 김세권 대표는 오늘(27일) 파인텍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남입니다.

우리는 파인텍 노동자들에게 왜 굴뚝에 올라갔느냐고 물었지만, 파인텍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굴뚝에 올라갈 때까지 뭘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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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굴뚝에 왜 올라갔습니까…‘파인텍 411일’을 묻다
    • 입력 2018-12-27 11:14:14
    • 수정2018-12-27 11:41:41
    취재후·사건후
산타클로스가 굴뚝을 찾는 크리스마스에 굴뚝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일자리를 요구하며 오늘(27일)까지 411일째 굴뚝 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입니다.

그제(25일) 취재한 건 KBS 9시 뉴스에 2분 넘게 방송됐습니다. 통상 방송 리포트 길이가 1분 20초인 걸 고려하면 꽤 긴 시간을 할애해서 사연을 자세히 소개한 겁니다. 그럼에도 "왜 굴뚝에 올라가서 400일 넘게 내려오지 않는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연관기사]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파인텍 ‘굴뚝 농성’ 409일째

400일 넘게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다가 힘들면 적당히 타협할 생각이었다면 75미터, 아파트 25층 높이의 아득한 굴뚝에 올라가지 못했을 겁니다.

남은 질문은 "왜 올라갔느냐?" 입니다. 바꿔 말하면 "굴뚝 농성 말고는 방법이 없었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파인텍 사태'를 정리해봐야 합니다.


◆'한국합섬→스타케미칼→파인텍'…8년의 투쟁

김옥배, 박준호, 조정기, 차광호, 홍기탁. 파인텍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원래 '한국합섬'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경북 구미에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섬유 가공업체입니다.

한국합섬은 2006년 파산했고, 2010년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인수했습니다. 스타플렉스는 한국합섬을 기반으로 '스타케미칼'을 만들었고, 차광호 씨 등 한국합섬 노동자 100여 명은 스타케미칼 노동자가 됐습니다.

스타케미칼은 문을 연 지 1년 7개월 만에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차광호 씨 등은 김세권 대표가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먹튀'를 하는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스타케미칼 노동자 대부분은 희망퇴직원을 내고 회사를 떠났지만, 차광호 씨 등 28명은 끝까지 싸웠습니다. 2014년 5월 스타케미칼이 완전히 문을 닫자 차광호 씨가 굴뚝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 굴뚝 농성입니다.

408일 동안 굴뚝 농성을 해서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생계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으로 만들어진 회사가 파인텍인데, 스타플렉스의 자회사가 아닌 별도 회사였고, 회사 대표는 김세권 대표가 아닌 스타플렉스 임원이 맡았습니다.

2016년 1월 파인텍에 출근을 했는데, 회사가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었습니다. 노동자를 더 채용하지도 않았고, 월급은 최저임금이 간신히 넘는 120만여만 원을 줬습니다. 노사가 10여 차례 만났지만, 단체협약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세권 대표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노동자들은 2016년 10월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는 지난해 8월 공장에서 기계를 빼갔습니다. 지난해 11월 12일 박준호, 홍기탁 씨는 두 번째 굴뚝에 올랐습니다.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가 잘 보이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입니다.


◆"방법은 굴뚝농성과 단식 뿐"

이렇게 '파인텍 사태'가 8년 동안 이어지면서 함께 싸우던 28명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건 5명. 5명 중 한 명인 김옥배 씨에게 왜 굴뚝에 올라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고용해달라고 법원에 민사소송을 낼 수 있겠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나려면 5년이 넘게 걸린다. 소송에서 우리가 이기더라도 사측은 벌금 내고 고용을 안 하면 그만이다. 대법원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정규직 고용을 하지 않고 있는 한국GM이나 현대기아차랑 마찬가지다."

법은 너무 멀고, 실질적이지도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스타플렉스 앞에서 선전전도 해보고, 김세권 대표 집 앞에서 선전전도 해봤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 같은 작은 사업장은 언론에서 관심도 없더라.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굴뚝 농성 아니면 단식농성이었다."

법으로는 안 되는데 5명이 내는 소리는 너무 작다며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택한 게 굴뚝이라는 겁니다.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 더 물어보겠다며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도 다 떠나고 5명만 남았으니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사회가 IMF 외환위기 이후 많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고 정리해고돼서 살 길 찾아가며 자영업자 되고, 지금 1,0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3가지를 걸고 굴뚝에 올라갔다. '스타플렉스가 책임져라, 노동악법 철폐하라, 적폐 청산하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안 했기 때문에 김용균 동지나 구의역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문제랑 우리 문제를 언론에서 좀 연관 지어서 봐 줬으면 좋겠다."


굴뚝 농성 410일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굴뚝 농성 기록입니다. 차광호 씨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세웠던 408일 기록을 깼습니다. 파인텍 노동자가 세운 기록을 파인텍 노동자가 깬 겁니다.
두 번째 굴뚝 농성이 408일에 가까워져 오자 언론을 비롯한 사회에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408일 기록을 깨자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그 관심의 힘으로 김세권 대표는 오늘(27일) 파인텍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남입니다.

우리는 파인텍 노동자들에게 왜 굴뚝에 올라갔느냐고 물었지만, 파인텍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굴뚝에 올라갈 때까지 뭘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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