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2개월째 생업 중단” 택시 기사의 악몽 같은 그 날

입력 2018.12.29 (09:40) 수정 2018.12.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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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얼마 줄까?"

60대 택시 기사 A씨를 폭행한 20대 피의자가 경찰서에서 A씨에게 한 말입니다. A씨는 얼굴을 심하게 맞아 망막이 손상됐습니다. 눈앞에 번갯불이 치는 것처럼 계속 번쩍거리고, 파리 같은 검은 물체가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A씨는 이것보다 "너 얼마 줄까"라는 말이 아직도 너무 아프다고 얘기했습니다. 아들보다 어린 청년이 그렇게 말하는 게 분해서 불면증에도 시달렸습니다. 결국 A씨는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A씨는 사건 발생 두 달이 넘도록 생업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밤의 기억

지난 10월 18일 저녁 9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길가에서 A씨는 카카오 예약 손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남자가 택시 문을 열었습니다. A씨는 예약하신 분이 맞냐고 물었습니다. 술에 취해 있던 그 남자는 다른 행선지를 말했습니다. A씨는 지금 예약을 받고 가고 있다며 휴대전화 화면에 뜬 카카오 예약 화면을 보여줬습니다. 그 순간 남자가 욕을 했습니다. "X 까는 소리 하지마" 화가 난 A씨도 받아쳤습니다. 폭행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방송을 통해 보도된 영상은 상당부분 편집됐습니다. 폭행은 실제로 무자비했습니다. A씨는 안전벨트를 메고 있어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갑작스런 주먹에 당황해서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했습니다. 20대의 취객은 그런 A씨의 얼굴에 주먹을 10차례나 날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주변에 지나가던 승객이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사고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만취 승객 또 택시기사 폭행…“망막 손상돼 일도 못해”

■반복되는 택시 기사 폭행…어떻게 해결?

택시나 버스 기사 폭행 사건은 매년 3천 건 내외로 발생합니다. 평균적으로 매일 8건씩 폭행 사건이 발생하는 수치입니다.버스는 2006년부터 운전석 칸막이 설치가 의무화 됐기 때문에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가 택시 기사입니다.

지난 8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선 70대 택시 기사가 30대 승객과 요금 문제로 다투다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택시 기사들은 승차거부에 대해 자신들도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가벼운 폭행이라도 그런 일을 한 번 겪고나면 다시는 취객을 태우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줄일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보다 폭행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합니다. 처벌을 강화하는 건 어차피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취객에게 큰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운전 중인 기사를 폭행하는 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일반 폭행보다 이미 처벌 수위가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행 사건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보다도 더 처벌 수위를 높여야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술에 취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조심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당장 오늘밤에도 폭행 위협에 시달릴 수 있는 택시 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보호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내년부터 택시 격벽 설치 지원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하지만 택시 250대 정도를 지원하는 규모의 시범 사업이어서 전체 택시에 다 설치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전망입니다.


■무너진 일상…아직 사과조차 없는 피의자

A씨 사건은 현재 중앙지검에서 조사 중입니다. 아직 검찰의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경위에 대해선 조사가 대략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A씨가 예약 승객을 받은 상태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카오에서 A씨의 정보도 받아갔습니다. 늦어도 다음 달 내로는 20대 남성의 기소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A씨가 원하는 대로 사건이 마무리되더라도 이미 무너진 A씨의 일상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력이 회복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데 경제적인 피해도 극심합니다. A씨가 일을 하지 못 한 두 달여의 시간 동안 택시 업체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 했습니다. 변호사도 A씨가 개인적으로 의뢰했습니다.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그 20대 남성은 A씨가 두 달 동안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렸고,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알았다면 사건 이후 한번쯤은 연락을 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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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2개월째 생업 중단” 택시 기사의 악몽 같은 그 날
    • 입력 2018-12-29 09:40:16
    • 수정2018-12-29 13:28:40
    취재후·사건후
"너 얼마 줄까?"

60대 택시 기사 A씨를 폭행한 20대 피의자가 경찰서에서 A씨에게 한 말입니다. A씨는 얼굴을 심하게 맞아 망막이 손상됐습니다. 눈앞에 번갯불이 치는 것처럼 계속 번쩍거리고, 파리 같은 검은 물체가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A씨는 이것보다 "너 얼마 줄까"라는 말이 아직도 너무 아프다고 얘기했습니다. 아들보다 어린 청년이 그렇게 말하는 게 분해서 불면증에도 시달렸습니다. 결국 A씨는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A씨는 사건 발생 두 달이 넘도록 생업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밤의 기억

지난 10월 18일 저녁 9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길가에서 A씨는 카카오 예약 손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남자가 택시 문을 열었습니다. A씨는 예약하신 분이 맞냐고 물었습니다. 술에 취해 있던 그 남자는 다른 행선지를 말했습니다. A씨는 지금 예약을 받고 가고 있다며 휴대전화 화면에 뜬 카카오 예약 화면을 보여줬습니다. 그 순간 남자가 욕을 했습니다. "X 까는 소리 하지마" 화가 난 A씨도 받아쳤습니다. 폭행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방송을 통해 보도된 영상은 상당부분 편집됐습니다. 폭행은 실제로 무자비했습니다. A씨는 안전벨트를 메고 있어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갑작스런 주먹에 당황해서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했습니다. 20대의 취객은 그런 A씨의 얼굴에 주먹을 10차례나 날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주변에 지나가던 승객이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사고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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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택시 기사 폭행…어떻게 해결?

택시나 버스 기사 폭행 사건은 매년 3천 건 내외로 발생합니다. 평균적으로 매일 8건씩 폭행 사건이 발생하는 수치입니다.버스는 2006년부터 운전석 칸막이 설치가 의무화 됐기 때문에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가 택시 기사입니다.

지난 8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선 70대 택시 기사가 30대 승객과 요금 문제로 다투다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택시 기사들은 승차거부에 대해 자신들도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가벼운 폭행이라도 그런 일을 한 번 겪고나면 다시는 취객을 태우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줄일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보다 폭행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합니다. 처벌을 강화하는 건 어차피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취객에게 큰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운전 중인 기사를 폭행하는 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일반 폭행보다 이미 처벌 수위가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행 사건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보다도 더 처벌 수위를 높여야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술에 취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조심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당장 오늘밤에도 폭행 위협에 시달릴 수 있는 택시 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보호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내년부터 택시 격벽 설치 지원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하지만 택시 250대 정도를 지원하는 규모의 시범 사업이어서 전체 택시에 다 설치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전망입니다.


■무너진 일상…아직 사과조차 없는 피의자

A씨 사건은 현재 중앙지검에서 조사 중입니다. 아직 검찰의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경위에 대해선 조사가 대략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A씨가 예약 승객을 받은 상태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카오에서 A씨의 정보도 받아갔습니다. 늦어도 다음 달 내로는 20대 남성의 기소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A씨가 원하는 대로 사건이 마무리되더라도 이미 무너진 A씨의 일상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력이 회복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데 경제적인 피해도 극심합니다. A씨가 일을 하지 못 한 두 달여의 시간 동안 택시 업체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 했습니다. 변호사도 A씨가 개인적으로 의뢰했습니다.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그 20대 남성은 A씨가 두 달 동안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렸고,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알았다면 사건 이후 한번쯤은 연락을 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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