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까지 집회·시위 6만 2천 건...예년보다 50% 나 늘어
"현재 집회의 모습은 2016~2017년 촛불 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사건 기자는 집회와 시위를 챙깁니다.
저는 KBS 사회2부 사건 기자입니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를 중심으로 사건 사고를 취재 보도하는 것이 제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사건 기자는 특히 '보고'를 잘해야 합니다.
사건 기자의 일과도 '아침 보고'로 시작하죠. 제가 맡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를 챙기고 오늘 하루 무슨 취재를 할 것인지도 정리해 보고하는 겁니다.
이때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집회나 시위 일정을 챙기는 것이죠. 취재해야 하니까요. 사건 기자들의 보고를 종합하면 오늘 하루 시내에서 예정된 주요 집회나 시위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1년을 되돌아보는 요즘, 사건 기자로 일하면서 올해 집회와 시위는 예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집회 중'
올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 건수는 무려 6만 2천여 건입니다. 지난 4년간 평균이 4만 5천여 건 수준인 것에 비해 50%나 늘었습니다. 한 달이 빠진 집계인데도 그렇습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직원들의 총수 일가 규탄 집회,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택시기사들의 카카오 카풀 반대 집회 등 굵직한 집회들이 많았습니다.
특이점은 또 있습니다. 2015년과 2016년까지 3천3백 명 수준이던 집회 현장 입건자 수가 지난해 천 4백여 명으로 반 토막 나더니 올해는 5백여 명에 그쳤습니다. 집회는 늘었는데, 정부의 집회 대응은 오히려 유연해진 겁니다.
"더 작게, 더 쉽게"… 생활밀착형 집회 늘었다
노동이나 정치 이슈 같은 거대 담론 위주의 집회들뿐 아니라 취미나 먹거리 등을 주제로 한 생활밀착형 집회가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지난 8월 광화문에서는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는 '맨머리 유니언' 집회가 열렸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헬멧을 쓰라고 강제할 게 아니라, 헬멧을 쓰지 않아도 안전한 교통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집 앞 슈퍼에 자전거를 타고가도 헬멧을 써야 하느냐며 이 정책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자회견 후에는 몸에 플래카드를 붙이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시위도 벌였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자전거 관련 돈벌이와는 무관한 동호인이었습니다. '취미생활' 영역도 이제 집회·시위의 주제가 된 겁니다.
이밖에 시민들이 나무 분장을 하고 도로에서 퍼포먼스를 벌인 제주 비자림로 지키기 집회나 유기된 토끼를 살리자는 몽마르뜨 토끼 보호 집회 등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날것의 목소리, 직접 맞붙었다
올해는 같은 주제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한 집회도 많았습니다. 난민 인정 찬반 집회나 개 식용 찬반 집회처럼 물리적 충돌을 빚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 같은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은 올해 8월부터 '대화경찰관'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스웨덴 경찰을 벤치마킹 한 건데, '대화경찰'들은 충돌 우려가 있는 집회 현장에 배치돼 각종 갈등 상황을 관리합니다.
대형집회가 여러건 열렸던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에 나가봤습니다. 이날 광화문 미 대사관 근처에서는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와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보수집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가 열리자 보수집회에 참가자 대여섯이 심한 욕설을 하며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현장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들은 이들을 '대화로' 진정시키느라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같은 맞불집회 증가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된 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보다는 혐오의 정서가 커진다는 위험성도 갖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집회, 왜 이렇게 변했나?"
올해 집회는 왜 이렇게 다른 양상을 보인 걸까요? 전문가들은 가장 큰 변화로 시민운동 자체가 다각화하고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민주주의, 노동자·농민들의 생존권 요구 등의 집회는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올해는 페미니즘, 환경, 동물 생명권, 갑질 척결 등을 요구하는 집회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의 관심사가 늘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SNS 등을 통해서 먼저 소통하고 실제 집회 현장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전보다는 거리낌 없이 당당해졌고요.
특히 갑질 반대, 갑질 척결을 요구한 집회는 눈여겨봐야 하는데요. 대한항공의 한진그룹 일가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승무원 등 직원들에게 행한 '갑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양대 항공사 직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공동 집회를 열고 경영진 퇴진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자의 문제라든가 생존권 문제에 집중해서 임금인상 등을 주로 요구했는데, 이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인간인데 왜 나는 이런 처우를 받아야 되느냐'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여태까지 참아왔었던 것을 이제는 집회나 시위를 통해서 반대를 하기 시작했던 거죠."
현재의 집회는 촛불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현재 집회의 모습은 연인원 1,700만 명이 참가했던 2016~2017 촛불집회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이렇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촛불집회 이후의 큰 변화는 집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이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집회를 한다라고 하면 정권과 크게 싸워야 하고 탄압을 받아야 하고 이런 것들이 국민들한테 상당히 강했을 텐데요. 촛불집회를 하면서 공권력이 그렇게 막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경찰 대응의 변화도 있고요."
송경재 경희대 연구교수도 비슷하게 분석했습니다.
"오랜 기간 촛불 집회를 하면서 폭력 사건이라든가 집회 관련 구속자라든가 이런 게 등장하지 않았고, 특히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은 사실 유례를 찾기 힘든 큰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런 경험들이 아! 집회나 시위에 참여해도 내가 큰 피해를 보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정당한 민주시민의 하나의 의식, 권리다, 이런 측면들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는 집회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규모 집회가 많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인근의 상인들, 영업에 크게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택시 기사분들도 도로가 통제되고 길이 막혀 운행이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올해 집회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 택시기사 권혁철 씨 -
"불편해도 손님들이 이해해주고 이러면 돌아가더라도 가면 되죠. 예전에는 아유..저렇게 힘들게 저렇게 하나..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막상 우리가 당하고 보면(카카오 카풀 서비스 반대) 아, 이래서 집회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죠.
[연관기사] 집회 어떻게 생각하세요?…현장 인터뷰 ‘집회 Talk’
"현재 집회의 모습은 2016~2017년 촛불 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사건 기자는 집회와 시위를 챙깁니다.
저는 KBS 사회2부 사건 기자입니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를 중심으로 사건 사고를 취재 보도하는 것이 제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사건 기자는 특히 '보고'를 잘해야 합니다.
사건 기자의 일과도 '아침 보고'로 시작하죠. 제가 맡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를 챙기고 오늘 하루 무슨 취재를 할 것인지도 정리해 보고하는 겁니다.
이때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집회나 시위 일정을 챙기는 것이죠. 취재해야 하니까요. 사건 기자들의 보고를 종합하면 오늘 하루 시내에서 예정된 주요 집회나 시위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1년을 되돌아보는 요즘, 사건 기자로 일하면서 올해 집회와 시위는 예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집회 중'
올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 건수는 무려 6만 2천여 건입니다. 지난 4년간 평균이 4만 5천여 건 수준인 것에 비해 50%나 늘었습니다. 한 달이 빠진 집계인데도 그렇습니다.
최근 5년간 집회 시위 개최 건수. 경찰청 제공.
대한항공·아시아나 직원들의 총수 일가 규탄 집회,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택시기사들의 카카오 카풀 반대 집회 등 굵직한 집회들이 많았습니다.
특이점은 또 있습니다. 2015년과 2016년까지 3천3백 명 수준이던 집회 현장 입건자 수가 지난해 천 4백여 명으로 반 토막 나더니 올해는 5백여 명에 그쳤습니다. 집회는 늘었는데, 정부의 집회 대응은 오히려 유연해진 겁니다.
"더 작게, 더 쉽게"… 생활밀착형 집회 늘었다
노동이나 정치 이슈 같은 거대 담론 위주의 집회들뿐 아니라 취미나 먹거리 등을 주제로 한 생활밀착형 집회가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지난 8월 광화문에서는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는 '맨머리 유니언' 집회가 열렸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헬멧을 쓰라고 강제할 게 아니라, 헬멧을 쓰지 않아도 안전한 교통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집 앞 슈퍼에 자전거를 타고가도 헬멧을 써야 하느냐며 이 정책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자회견 후에는 몸에 플래카드를 붙이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시위도 벌였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자전거 관련 돈벌이와는 무관한 동호인이었습니다. '취미생활' 영역도 이제 집회·시위의 주제가 된 겁니다.
지난 9월 열린 맨머리 유니언의 집회 모습.
이밖에 시민들이 나무 분장을 하고 도로에서 퍼포먼스를 벌인 제주 비자림로 지키기 집회나 유기된 토끼를 살리자는 몽마르뜨 토끼 보호 집회 등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날것의 목소리, 직접 맞붙었다
올해는 같은 주제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한 집회도 많았습니다. 난민 인정 찬반 집회나 개 식용 찬반 집회처럼 물리적 충돌을 빚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 같은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은 올해 8월부터 '대화경찰관'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스웨덴 경찰을 벤치마킹 한 건데, '대화경찰'들은 충돌 우려가 있는 집회 현장에 배치돼 각종 갈등 상황을 관리합니다.
지난 22일 광화문 광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화경찰의 모습.
대형집회가 여러건 열렸던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에 나가봤습니다. 이날 광화문 미 대사관 근처에서는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와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보수집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가 열리자 보수집회에 참가자 대여섯이 심한 욕설을 하며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현장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들은 이들을 '대화로' 진정시키느라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같은 맞불집회 증가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된 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보다는 혐오의 정서가 커진다는 위험성도 갖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집회, 왜 이렇게 변했나?"
올해 집회는 왜 이렇게 다른 양상을 보인 걸까요? 전문가들은 가장 큰 변화로 시민운동 자체가 다각화하고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민주주의, 노동자·농민들의 생존권 요구 등의 집회는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올해는 페미니즘, 환경, 동물 생명권, 갑질 척결 등을 요구하는 집회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의 관심사가 늘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SNS 등을 통해서 먼저 소통하고 실제 집회 현장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전보다는 거리낌 없이 당당해졌고요.
특히 갑질 반대, 갑질 척결을 요구한 집회는 눈여겨봐야 하는데요. 대한항공의 한진그룹 일가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승무원 등 직원들에게 행한 '갑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양대 항공사 직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공동 집회를 열고 경영진 퇴진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자의 문제라든가 생존권 문제에 집중해서 임금인상 등을 주로 요구했는데, 이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인간인데 왜 나는 이런 처우를 받아야 되느냐'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여태까지 참아왔었던 것을 이제는 집회나 시위를 통해서 반대를 하기 시작했던 거죠."
현재의 집회는 촛불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현재 집회의 모습은 연인원 1,700만 명이 참가했던 2016~2017 촛불집회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이렇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촛불집회 이후의 큰 변화는 집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이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집회를 한다라고 하면 정권과 크게 싸워야 하고 탄압을 받아야 하고 이런 것들이 국민들한테 상당히 강했을 텐데요. 촛불집회를 하면서 공권력이 그렇게 막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경찰 대응의 변화도 있고요."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
송경재 경희대 연구교수도 비슷하게 분석했습니다.
"오랜 기간 촛불 집회를 하면서 폭력 사건이라든가 집회 관련 구속자라든가 이런 게 등장하지 않았고, 특히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은 사실 유례를 찾기 힘든 큰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런 경험들이 아! 집회나 시위에 참여해도 내가 큰 피해를 보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정당한 민주시민의 하나의 의식, 권리다, 이런 측면들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는 집회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규모 집회가 많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인근의 상인들, 영업에 크게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택시 기사분들도 도로가 통제되고 길이 막혀 운행이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올해 집회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 택시기사 권혁철 씨 -
"불편해도 손님들이 이해해주고 이러면 돌아가더라도 가면 되죠. 예전에는 아유..저렇게 힘들게 저렇게 하나..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막상 우리가 당하고 보면(카카오 카풀 서비스 반대) 아, 이래서 집회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죠.
[연관기사] 집회 어떻게 생각하세요?…현장 인터뷰 ‘집회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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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가 달라졌다?”…사건 기자가 본 2018년 집회
-
- 입력 2018-12-30 07:06:37
올해 11월까지 집회·시위 6만 2천 건...예년보다 50% 나 늘어
"현재 집회의 모습은 2016~2017년 촛불 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사건 기자는 집회와 시위를 챙깁니다.
저는 KBS 사회2부 사건 기자입니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를 중심으로 사건 사고를 취재 보도하는 것이 제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사건 기자는 특히 '보고'를 잘해야 합니다.
사건 기자의 일과도 '아침 보고'로 시작하죠. 제가 맡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를 챙기고 오늘 하루 무슨 취재를 할 것인지도 정리해 보고하는 겁니다.
이때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집회나 시위 일정을 챙기는 것이죠. 취재해야 하니까요. 사건 기자들의 보고를 종합하면 오늘 하루 시내에서 예정된 주요 집회나 시위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1년을 되돌아보는 요즘, 사건 기자로 일하면서 올해 집회와 시위는 예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집회 중'
올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 건수는 무려 6만 2천여 건입니다. 지난 4년간 평균이 4만 5천여 건 수준인 것에 비해 50%나 늘었습니다. 한 달이 빠진 집계인데도 그렇습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직원들의 총수 일가 규탄 집회,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택시기사들의 카카오 카풀 반대 집회 등 굵직한 집회들이 많았습니다.
특이점은 또 있습니다. 2015년과 2016년까지 3천3백 명 수준이던 집회 현장 입건자 수가 지난해 천 4백여 명으로 반 토막 나더니 올해는 5백여 명에 그쳤습니다. 집회는 늘었는데, 정부의 집회 대응은 오히려 유연해진 겁니다.
"더 작게, 더 쉽게"… 생활밀착형 집회 늘었다
노동이나 정치 이슈 같은 거대 담론 위주의 집회들뿐 아니라 취미나 먹거리 등을 주제로 한 생활밀착형 집회가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지난 8월 광화문에서는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는 '맨머리 유니언' 집회가 열렸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헬멧을 쓰라고 강제할 게 아니라, 헬멧을 쓰지 않아도 안전한 교통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집 앞 슈퍼에 자전거를 타고가도 헬멧을 써야 하느냐며 이 정책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자회견 후에는 몸에 플래카드를 붙이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시위도 벌였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자전거 관련 돈벌이와는 무관한 동호인이었습니다. '취미생활' 영역도 이제 집회·시위의 주제가 된 겁니다.
이밖에 시민들이 나무 분장을 하고 도로에서 퍼포먼스를 벌인 제주 비자림로 지키기 집회나 유기된 토끼를 살리자는 몽마르뜨 토끼 보호 집회 등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날것의 목소리, 직접 맞붙었다
올해는 같은 주제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한 집회도 많았습니다. 난민 인정 찬반 집회나 개 식용 찬반 집회처럼 물리적 충돌을 빚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 같은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은 올해 8월부터 '대화경찰관'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스웨덴 경찰을 벤치마킹 한 건데, '대화경찰'들은 충돌 우려가 있는 집회 현장에 배치돼 각종 갈등 상황을 관리합니다.
대형집회가 여러건 열렸던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에 나가봤습니다. 이날 광화문 미 대사관 근처에서는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와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보수집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가 열리자 보수집회에 참가자 대여섯이 심한 욕설을 하며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현장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들은 이들을 '대화로' 진정시키느라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같은 맞불집회 증가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된 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보다는 혐오의 정서가 커진다는 위험성도 갖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집회, 왜 이렇게 변했나?"
올해 집회는 왜 이렇게 다른 양상을 보인 걸까요? 전문가들은 가장 큰 변화로 시민운동 자체가 다각화하고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민주주의, 노동자·농민들의 생존권 요구 등의 집회는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올해는 페미니즘, 환경, 동물 생명권, 갑질 척결 등을 요구하는 집회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의 관심사가 늘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SNS 등을 통해서 먼저 소통하고 실제 집회 현장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전보다는 거리낌 없이 당당해졌고요.
특히 갑질 반대, 갑질 척결을 요구한 집회는 눈여겨봐야 하는데요. 대한항공의 한진그룹 일가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승무원 등 직원들에게 행한 '갑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양대 항공사 직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공동 집회를 열고 경영진 퇴진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자의 문제라든가 생존권 문제에 집중해서 임금인상 등을 주로 요구했는데, 이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인간인데 왜 나는 이런 처우를 받아야 되느냐'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여태까지 참아왔었던 것을 이제는 집회나 시위를 통해서 반대를 하기 시작했던 거죠."
현재의 집회는 촛불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현재 집회의 모습은 연인원 1,700만 명이 참가했던 2016~2017 촛불집회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이렇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촛불집회 이후의 큰 변화는 집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이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집회를 한다라고 하면 정권과 크게 싸워야 하고 탄압을 받아야 하고 이런 것들이 국민들한테 상당히 강했을 텐데요. 촛불집회를 하면서 공권력이 그렇게 막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경찰 대응의 변화도 있고요."
송경재 경희대 연구교수도 비슷하게 분석했습니다.
"오랜 기간 촛불 집회를 하면서 폭력 사건이라든가 집회 관련 구속자라든가 이런 게 등장하지 않았고, 특히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은 사실 유례를 찾기 힘든 큰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런 경험들이 아! 집회나 시위에 참여해도 내가 큰 피해를 보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정당한 민주시민의 하나의 의식, 권리다, 이런 측면들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는 집회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규모 집회가 많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인근의 상인들, 영업에 크게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택시 기사분들도 도로가 통제되고 길이 막혀 운행이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올해 집회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 택시기사 권혁철 씨 -
"불편해도 손님들이 이해해주고 이러면 돌아가더라도 가면 되죠. 예전에는 아유..저렇게 힘들게 저렇게 하나..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막상 우리가 당하고 보면(카카오 카풀 서비스 반대) 아, 이래서 집회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죠.
[연관기사] 집회 어떻게 생각하세요?…현장 인터뷰 ‘집회 Talk’
"현재 집회의 모습은 2016~2017년 촛불 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사건 기자는 집회와 시위를 챙깁니다.
저는 KBS 사회2부 사건 기자입니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를 중심으로 사건 사고를 취재 보도하는 것이 제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사건 기자는 특히 '보고'를 잘해야 합니다.
사건 기자의 일과도 '아침 보고'로 시작하죠. 제가 맡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를 챙기고 오늘 하루 무슨 취재를 할 것인지도 정리해 보고하는 겁니다.
이때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집회나 시위 일정을 챙기는 것이죠. 취재해야 하니까요. 사건 기자들의 보고를 종합하면 오늘 하루 시내에서 예정된 주요 집회나 시위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1년을 되돌아보는 요즘, 사건 기자로 일하면서 올해 집회와 시위는 예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집회 중'
올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 건수는 무려 6만 2천여 건입니다. 지난 4년간 평균이 4만 5천여 건 수준인 것에 비해 50%나 늘었습니다. 한 달이 빠진 집계인데도 그렇습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직원들의 총수 일가 규탄 집회,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택시기사들의 카카오 카풀 반대 집회 등 굵직한 집회들이 많았습니다.
특이점은 또 있습니다. 2015년과 2016년까지 3천3백 명 수준이던 집회 현장 입건자 수가 지난해 천 4백여 명으로 반 토막 나더니 올해는 5백여 명에 그쳤습니다. 집회는 늘었는데, 정부의 집회 대응은 오히려 유연해진 겁니다.
"더 작게, 더 쉽게"… 생활밀착형 집회 늘었다
노동이나 정치 이슈 같은 거대 담론 위주의 집회들뿐 아니라 취미나 먹거리 등을 주제로 한 생활밀착형 집회가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지난 8월 광화문에서는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는 '맨머리 유니언' 집회가 열렸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헬멧을 쓰라고 강제할 게 아니라, 헬멧을 쓰지 않아도 안전한 교통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집 앞 슈퍼에 자전거를 타고가도 헬멧을 써야 하느냐며 이 정책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자회견 후에는 몸에 플래카드를 붙이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시위도 벌였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자전거 관련 돈벌이와는 무관한 동호인이었습니다. '취미생활' 영역도 이제 집회·시위의 주제가 된 겁니다.
이밖에 시민들이 나무 분장을 하고 도로에서 퍼포먼스를 벌인 제주 비자림로 지키기 집회나 유기된 토끼를 살리자는 몽마르뜨 토끼 보호 집회 등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날것의 목소리, 직접 맞붙었다
올해는 같은 주제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한 집회도 많았습니다. 난민 인정 찬반 집회나 개 식용 찬반 집회처럼 물리적 충돌을 빚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 같은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은 올해 8월부터 '대화경찰관'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스웨덴 경찰을 벤치마킹 한 건데, '대화경찰'들은 충돌 우려가 있는 집회 현장에 배치돼 각종 갈등 상황을 관리합니다.
대형집회가 여러건 열렸던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에 나가봤습니다. 이날 광화문 미 대사관 근처에서는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와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보수집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김정은 방남 환영 집회가 열리자 보수집회에 참가자 대여섯이 심한 욕설을 하며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현장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들은 이들을 '대화로' 진정시키느라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같은 맞불집회 증가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된 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보다는 혐오의 정서가 커진다는 위험성도 갖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집회, 왜 이렇게 변했나?"
올해 집회는 왜 이렇게 다른 양상을 보인 걸까요? 전문가들은 가장 큰 변화로 시민운동 자체가 다각화하고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민주주의, 노동자·농민들의 생존권 요구 등의 집회는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올해는 페미니즘, 환경, 동물 생명권, 갑질 척결 등을 요구하는 집회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의 관심사가 늘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SNS 등을 통해서 먼저 소통하고 실제 집회 현장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전보다는 거리낌 없이 당당해졌고요.
특히 갑질 반대, 갑질 척결을 요구한 집회는 눈여겨봐야 하는데요. 대한항공의 한진그룹 일가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승무원 등 직원들에게 행한 '갑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양대 항공사 직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공동 집회를 열고 경영진 퇴진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자의 문제라든가 생존권 문제에 집중해서 임금인상 등을 주로 요구했는데, 이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인간인데 왜 나는 이런 처우를 받아야 되느냐'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여태까지 참아왔었던 것을 이제는 집회나 시위를 통해서 반대를 하기 시작했던 거죠."
현재의 집회는 촛불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현재 집회의 모습은 연인원 1,700만 명이 참가했던 2016~2017 촛불집회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이렇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촛불집회 이후의 큰 변화는 집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이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집회를 한다라고 하면 정권과 크게 싸워야 하고 탄압을 받아야 하고 이런 것들이 국민들한테 상당히 강했을 텐데요. 촛불집회를 하면서 공권력이 그렇게 막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경찰 대응의 변화도 있고요."
송경재 경희대 연구교수도 비슷하게 분석했습니다.
"오랜 기간 촛불 집회를 하면서 폭력 사건이라든가 집회 관련 구속자라든가 이런 게 등장하지 않았고, 특히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은 사실 유례를 찾기 힘든 큰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런 경험들이 아! 집회나 시위에 참여해도 내가 큰 피해를 보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정당한 민주시민의 하나의 의식, 권리다, 이런 측면들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는 집회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규모 집회가 많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인근의 상인들, 영업에 크게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택시 기사분들도 도로가 통제되고 길이 막혀 운행이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올해 집회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 택시기사 권혁철 씨 -
"불편해도 손님들이 이해해주고 이러면 돌아가더라도 가면 되죠. 예전에는 아유..저렇게 힘들게 저렇게 하나..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막상 우리가 당하고 보면(카카오 카풀 서비스 반대) 아, 이래서 집회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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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so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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