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알박기 집회는 회장님 방탄용?’…직접 취업해보니

입력 2019.01.0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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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그룹 사옥 앞에서 매일 열리는 '알박기 집회'…왜?
「끈질긴 K」취재진, 직접 취업해 잠입 취재해보니…경비·용역업체 '알박기 집회' 동원
현대차 측 "합법 집회" VS 전직 HDS 직원 "불법인 거 다 알아"

대법원 판결에도 꿈쩍 않는 현대차 그룹…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하나 나왔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자신들의 사옥 앞에서 집회하는 데 대해 "현대차 직원이 신고한 집회는 경비업무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법이 보장해야 할 집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다른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자리를 선점하는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 관행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사람들을 동원해 '알박기 집회'를 이어가며 다른 집회나 시위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미 현대차 사측의 알박기 집회 역사는 10년이 넘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정몽구 회장 규탄 1인 시위 방해정몽구 회장 규탄 1인 시위 방해

위의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에 동원된 인력들이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집요하게 가로막는 장면인데, 자세히 보면 시위자가 들고 있는 팻말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외에도 현대차 그룹 앞에서 여러 단체들이 하는 집회는 대부분 정몽구 회장 등 총수 일가를 겨냥하고 있다.

결국 정몽구 회장 등 현대차 그룹 총수 일가를 규탄하거나 회사를 비판하는 그 어떤 목소리와 행동도 틀어막겠다는 집념이 '알박기'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KBS는 이같은 영상과 여러 제보를 바탕으로 지난해 5월부터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 문제를 취재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단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동원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알박기 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가서 물어봤지만, 집회에 동원된 인력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었고, 누구 하나 제대로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도대체 내막을 알 수 없네...직접 취업해 알아볼까?

취재가 답보에 빠진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초,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에 동원됐던 사람이었다.

전직 경비업체 직원이 KBS에 제보한 화면전직 경비업체 직원이 KBS에 제보한 화면

제보자는 자신이 일했던 A 경비용역업체가 날마다 현대차의 집회에 투입됐다며 '알박기 집회'의 실체를 낱낱이 알려주겠다고 했다. 또한, 최저임금도, 야간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일을 했으며, 업체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을 경우 임금을 제때 주지 않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제보자에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어렵게 다시 연락됐지만, 더 이상의 접촉은 꺼리는 분위기였다.

취재진은 현대차 알박기 집회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직접 경비용역업체에 취업해 현장을 잠입하는 방법으로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KBS 취재진, 용역업체 면접 시도KBS 취재진, 용역업체 면접 시도

A 경비용역업체의 주소는 서울 관악구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현대차 옆에 있는 마트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여기서 만난 관계자는 "노조에서 현대차 본사 앞에 좋은 자리를 잡아 집회를 하기 전에, 우리가 선점하는 역할을 한다"며 "현대차의 자체 보안팀이 법적으로 하지 못하는 거를 대신 해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잠입 취재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면접을 제대로 했나? 의구심이 들었는데 덜컥 합격했으니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취재진은 며칠 뒤 KBS가 아니라 실제 알박기 집회를 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 사옥으로 출근했다. 도착하자 인원 점검을 한 뒤 곧바로 알박기 집회 근무에 투입됐다.

KBS 기자가 취업해 잠입 취재하는 모습KBS 기자가 취업해 잠입 취재하는 모습

'건전한 노사관계 만들기'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회사 밖 인도에 서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집회처럼 보이기 위해 가끔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집회에서 흔히 하는 구호 한번 외치지 않았다.

알박기 집회에는 현대차 정직원도 투입됐는데, 이들은 저녁 6시가 되자 퇴근했다. 물론 잠입 취재를 하고 있는 취재진을 포함한 용역업체 직원들은 밤이 돼도 자리를 지켰다. 알박기 집회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있었다.

오전 8시, 24시간 알박기 집회 근무를 마치고 교대를 하자 모든 일과가 끝났다.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은 14만 원. 야간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알박기 집회, 법적 문제는?

현행 경비업법 제15조의2 2항에서는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돼있다.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현대차가 경비용역업체를 동원해 알박기 집회에 투입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 KBS는 추가 취재를 통해 현대차의 2년 치(2015~2016년) 집회 신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취재 결과 집회 주최자는 현대차 보안관리팀 직원인데, 집회 신고자는 HDS라는 업체 직원이었다.

HDS는 현대차 사옥의 경비 및 보안 업무를 위탁받은 경비업체다. 현대차의 하청업체라는 건데, 어렵게 연락이 닿은 전직 HDS 직원은 HDS 직원들이 당번을 짠 뒤, 돌아가며 현대차 알박기 집회 신고를 하러 경찰서에 갔다고 밝혔다.

전직 직원은 현대차 집회 신고를 누가 지시했는지 묻자 "자신이 2015년 입사했을 때부터 해왔고, 자신이 입사하기 전부터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해온 걸로 안다"며 "집회 신고서를 보면 누가 시켜서 했는지 알 수 있지 않냐"라고 반문했다.

현대차 그룹 측(현대엔지니어링)이 HDS에 경비 용역을 주고 HDS가 다시 하청받은 여러 용역업체를 관리하는 일종의 '불법의 외주화'인 셈이다.

전직 직원은 통화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거기에서 일한 사람이라면 그것(알박기 집회)이 불법이라는 걸 누구나 알지 알았을까요? 몰랐다면 거짓말이죠."

알박기는 현대차 사옥 앞뿐만 아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집 앞 골목길에서도 수상한 움직임이 보였다. 차량 2대도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길에 불법 주차 차량들이 몇 달째 빼곡히 들어서 있는 것이었다.

 KBS 기자가 정몽구 회장 집 앞 ‘불법 주차’ 차량을 보고 있다 KBS 기자가 정몽구 회장 집 앞 ‘불법 주차’ 차량을 보고 있다

취재진은 정몽구 회장 집 앞에 현대차 경비업체인 HDS 직원들이 계속 차를 불법 주차해 놓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실제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5차례 이상 현장을 찾았다.

분명히 같은 차량들이 몇 달째 비슷한 장소에 세워져 있는 모습은 확인했지만, 누가 주차해 놓은 건지는 알 수 없었는데,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달 5일, HDS 직원들이 관여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알박기 주차'된 차량들을 손질하던 HDS 직원들은 취재진이 다가가자 '무직이다,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며 정몽구 회장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HDS 한남동 사무실에서 다시 발견됐다.


‘합법적 절차에 따른 집회’라는 현대차…하지만 사회적 책무 있어

KBS는 취재를 마친 뒤 현대차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현대차 사옥 앞에서 진행하고 있는 집회는 유령, 알박기 집회가 아닌 현행 집시법에 따라 신고하고 직원들이 하는 합법적인 집회입니다. 사옥 주변의 무분별한 집회로 인해 당사직원 및 방문객, 시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바, 직원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숙한 집회문화 정착을 요구하는 내용의 집회입니다.”

라는 짧은 이메일 서면 답변을 보냈다.

정몽구 회장 집 앞 '알박기 주차 의혹'에 대해선 현대차와 관련이 없고, 거기서 일하는 HDS 직원들의 경우 총수 일가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거듭 현대차 사옥 앞 '알박기 집회'에 대한 불가피성을 얘기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다른 집회에 덜 시달릴 수 있다는 취지였다.

물론 현대차도 거듭되는 시민단체·노조의 항의나 비판이 듣기 싫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무가 작다고 할 수 없는 대기업이 '집회의 자유'를 악용해 다른 이들의 집회를 방해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미디어 접근 능력'을 갖지 못하는 사회 경제적 소수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목소리를 키워서 시민 사회를 향해, 또는 항의의 대상을 향해 큰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라면, 그런 시민들의 목소리 또는 노조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알박기 집회와 같이 집회 장소를 아예 선점해버리고, 사회 경제적 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도 박탈해버리는 행위는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 그룹이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면 곱씹어볼 만한 지적이다.

[연관기사] [끈질긴K] 현대차 10년 넘게 ‘알박기 갑질’…법도 인권도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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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 알박기 집회는 회장님 방탄용?’…직접 취업해보니
    • 입력 2019-01-05 07:03:26
    취재K
■ 현대차 그룹 사옥 앞에서 매일 열리는 '알박기 집회'…왜?
「끈질긴 K」취재진, 직접 취업해 잠입 취재해보니…경비·용역업체 '알박기 집회' 동원
현대차 측 "합법 집회" VS 전직 HDS 직원 "불법인 거 다 알아"

대법원 판결에도 꿈쩍 않는 현대차 그룹…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하나 나왔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자신들의 사옥 앞에서 집회하는 데 대해 "현대차 직원이 신고한 집회는 경비업무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법이 보장해야 할 집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다른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자리를 선점하는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 관행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사람들을 동원해 '알박기 집회'를 이어가며 다른 집회나 시위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미 현대차 사측의 알박기 집회 역사는 10년이 넘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정몽구 회장 규탄 1인 시위 방해
위의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에 동원된 인력들이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집요하게 가로막는 장면인데, 자세히 보면 시위자가 들고 있는 팻말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외에도 현대차 그룹 앞에서 여러 단체들이 하는 집회는 대부분 정몽구 회장 등 총수 일가를 겨냥하고 있다.

결국 정몽구 회장 등 현대차 그룹 총수 일가를 규탄하거나 회사를 비판하는 그 어떤 목소리와 행동도 틀어막겠다는 집념이 '알박기'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KBS는 이같은 영상과 여러 제보를 바탕으로 지난해 5월부터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 문제를 취재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단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동원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알박기 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가서 물어봤지만, 집회에 동원된 인력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었고, 누구 하나 제대로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도대체 내막을 알 수 없네...직접 취업해 알아볼까?

취재가 답보에 빠진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초,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에 동원됐던 사람이었다.

전직 경비업체 직원이 KBS에 제보한 화면
제보자는 자신이 일했던 A 경비용역업체가 날마다 현대차의 집회에 투입됐다며 '알박기 집회'의 실체를 낱낱이 알려주겠다고 했다. 또한, 최저임금도, 야간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일을 했으며, 업체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을 경우 임금을 제때 주지 않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제보자에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어렵게 다시 연락됐지만, 더 이상의 접촉은 꺼리는 분위기였다.

취재진은 현대차 알박기 집회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직접 경비용역업체에 취업해 현장을 잠입하는 방법으로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KBS 취재진, 용역업체 면접 시도
A 경비용역업체의 주소는 서울 관악구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현대차 옆에 있는 마트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여기서 만난 관계자는 "노조에서 현대차 본사 앞에 좋은 자리를 잡아 집회를 하기 전에, 우리가 선점하는 역할을 한다"며 "현대차의 자체 보안팀이 법적으로 하지 못하는 거를 대신 해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현대차의 '알박기 집회'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잠입 취재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면접을 제대로 했나? 의구심이 들었는데 덜컥 합격했으니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취재진은 며칠 뒤 KBS가 아니라 실제 알박기 집회를 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 사옥으로 출근했다. 도착하자 인원 점검을 한 뒤 곧바로 알박기 집회 근무에 투입됐다.

KBS 기자가 취업해 잠입 취재하는 모습
'건전한 노사관계 만들기'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회사 밖 인도에 서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집회처럼 보이기 위해 가끔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집회에서 흔히 하는 구호 한번 외치지 않았다.

알박기 집회에는 현대차 정직원도 투입됐는데, 이들은 저녁 6시가 되자 퇴근했다. 물론 잠입 취재를 하고 있는 취재진을 포함한 용역업체 직원들은 밤이 돼도 자리를 지켰다. 알박기 집회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있었다.

오전 8시, 24시간 알박기 집회 근무를 마치고 교대를 하자 모든 일과가 끝났다.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은 14만 원. 야간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알박기 집회, 법적 문제는?

현행 경비업법 제15조의2 2항에서는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돼있다.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현대차가 경비용역업체를 동원해 알박기 집회에 투입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 KBS는 추가 취재를 통해 현대차의 2년 치(2015~2016년) 집회 신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취재 결과 집회 주최자는 현대차 보안관리팀 직원인데, 집회 신고자는 HDS라는 업체 직원이었다.

HDS는 현대차 사옥의 경비 및 보안 업무를 위탁받은 경비업체다. 현대차의 하청업체라는 건데, 어렵게 연락이 닿은 전직 HDS 직원은 HDS 직원들이 당번을 짠 뒤, 돌아가며 현대차 알박기 집회 신고를 하러 경찰서에 갔다고 밝혔다.

전직 직원은 현대차 집회 신고를 누가 지시했는지 묻자 "자신이 2015년 입사했을 때부터 해왔고, 자신이 입사하기 전부터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해온 걸로 안다"며 "집회 신고서를 보면 누가 시켜서 했는지 알 수 있지 않냐"라고 반문했다.

현대차 그룹 측(현대엔지니어링)이 HDS에 경비 용역을 주고 HDS가 다시 하청받은 여러 용역업체를 관리하는 일종의 '불법의 외주화'인 셈이다.

전직 직원은 통화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거기에서 일한 사람이라면 그것(알박기 집회)이 불법이라는 걸 누구나 알지 알았을까요? 몰랐다면 거짓말이죠."

알박기는 현대차 사옥 앞뿐만 아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집 앞 골목길에서도 수상한 움직임이 보였다. 차량 2대도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길에 불법 주차 차량들이 몇 달째 빼곡히 들어서 있는 것이었다.

 KBS 기자가 정몽구 회장 집 앞 ‘불법 주차’ 차량을 보고 있다
취재진은 정몽구 회장 집 앞에 현대차 경비업체인 HDS 직원들이 계속 차를 불법 주차해 놓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실제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5차례 이상 현장을 찾았다.

분명히 같은 차량들이 몇 달째 비슷한 장소에 세워져 있는 모습은 확인했지만, 누가 주차해 놓은 건지는 알 수 없었는데,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달 5일, HDS 직원들이 관여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알박기 주차'된 차량들을 손질하던 HDS 직원들은 취재진이 다가가자 '무직이다,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며 정몽구 회장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HDS 한남동 사무실에서 다시 발견됐다.


‘합법적 절차에 따른 집회’라는 현대차…하지만 사회적 책무 있어

KBS는 취재를 마친 뒤 현대차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현대차 사옥 앞에서 진행하고 있는 집회는 유령, 알박기 집회가 아닌 현행 집시법에 따라 신고하고 직원들이 하는 합법적인 집회입니다. 사옥 주변의 무분별한 집회로 인해 당사직원 및 방문객, 시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바, 직원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숙한 집회문화 정착을 요구하는 내용의 집회입니다.”

라는 짧은 이메일 서면 답변을 보냈다.

정몽구 회장 집 앞 '알박기 주차 의혹'에 대해선 현대차와 관련이 없고, 거기서 일하는 HDS 직원들의 경우 총수 일가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거듭 현대차 사옥 앞 '알박기 집회'에 대한 불가피성을 얘기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다른 집회에 덜 시달릴 수 있다는 취지였다.

물론 현대차도 거듭되는 시민단체·노조의 항의나 비판이 듣기 싫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무가 작다고 할 수 없는 대기업이 '집회의 자유'를 악용해 다른 이들의 집회를 방해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미디어 접근 능력'을 갖지 못하는 사회 경제적 소수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목소리를 키워서 시민 사회를 향해, 또는 항의의 대상을 향해 큰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라면, 그런 시민들의 목소리 또는 노조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알박기 집회와 같이 집회 장소를 아예 선점해버리고, 사회 경제적 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도 박탈해버리는 행위는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 그룹이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면 곱씹어볼 만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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