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세계문화유산 속에 자리잡은 ‘모네’의 숨결

입력 2019.01.14 (07: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타박타박 도쿄 미술관 1 >

- 세계문화유산이 된 미술관
- 마츠가타 컬렉션의 반환, 프랑스가 요구했던 미술관
-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모네 컬렉션'
- 중세부터 현재까지 한자리에 만나는 서양미술사

한 나라의 미술관은 그 나라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주는 좋은 척도가 된다.

이탈리아의 미술관들은 르네상스가 꽃피웠던 인간을 향한 아름다움의 정열을 보여주고, 프랑스의 미술관들은 인상파 등 근현대 미술 흐름을 선도했던 그 시대 파리 사람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의 미술관들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에는 미술관이 많다. 줄잡아 2천여 곳의 미술관들이 있다고 이야기되고 있고, 각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관객들을 맞는다. 그 일본 미술관들이 특징은 '경제'다. 일본의 미술관들을 돌아보다 보면 급격히 쌓은 부를 통해 '신흥 부자'의 벽면을 채운 미술품 전시장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고는 한다.

많은 개인과 기업이 부를 쌓아 작품을 사고 미술관을 만들어 공개한 덕에 일본 국민들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미술 분야에서 단연 풍족한 문화적 향유의 혜택을 받고 있다. 가볍게 집을 나서 전철을 타고 타박타박 걸어가, 고흐와 모네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한껏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일본 미술관들을 둘러본다. 그리고 그 쌓아올린 부를 다시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노력한 여러 일본인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국립서양미술관, 세계문화유산이 된 건물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을 꼽으라면 단연 도쿄 우에노에 자리 잡은 '국립서양미술관'을 들 수 있다.

이 미술관은 건축물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된다. 서양미술관을 설계한 사람은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로 그가 만든 7개 대륙에 있는 건물들이 '근대 건축의 방향성'에 공헌한 가치가 인정되면서 각각의 17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한꺼번에 등록된 매우 드문 사례를 기록하게 됐다.

일본에 있는 프랑스 사람이 만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독특성만으로도 국립서양미술관은 방문해볼 만한 가치를 가지는 곳이다.

서양미술관 중앙 ‘19세기 홀’서양미술관 중앙 ‘19세기 홀’

미술관의 상설 전시 구역을 처음 들어서면 맞는 것은 '19세기 홀'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이 전시돼 있는 이 공간은 천장의 창을 통해 흘러드는 햇볕이 건물의 중핵에 자리 잡고 있는 홀에 따뜻함을 전하며 전시실 전체로 그 빛을 산란시켜 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건물을 띄우는 필로티와 옥상 테라스, 자유로운 내부 평면 구조 등 근대 건축물을 성립시킬 수 있는 5요소를 정의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설계한 이 미술관에 그 요소들을 모두 투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무한히 확장되는 미술 역사를 보여주려고 했다. 설계자의 배려 속에 관람객들은 19세기 홀에서 시작해, 경사면과 복도와 전시실을 중복된 여정 없이 지나는 흐름 속에 중세부터 현대 미술 작품을 차례로 감상할 수 있다.

마츠가타 컬렉션의 반환...그리고 프랑스가 요구했던 건물

국립서양미술관의 이야기할 때 마츠가타 컬렉션을 빼고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 현재 서양미술관의 시작과 근간이 된 미술 작품군이다.

가와사키 조선소 사장이었던 마츠가타는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1916년부터 1923년까지 유럽에서 각종 미술품을 수집했는데 각종 문헌과 기록 등에 따르면 수집된 컬렉션은 모두 1만 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럽 등에서 수집한 그림 등 서양의 미술품만 줄잡아 2천7백 점에 이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립서양미술관 측은 "마츠가타가 이처럼 미술에 정열을 쏟았던 것은 자신의 취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일본에 미술관을 만들어 일본의 젊은 화가들에게 진정한 서양미술을 보여주고자 작품을 수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마츠가타 컬렉션은 영국의 한 창고에 보관되던 중 1939년 화재로 소실되고, 다만 파리에 보관 중이던 400점 가량만이 살아남게 된다.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적국 일본인 소유의 수집품들은 프랑스 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1950년대 이 작품 중 일부를 일본 정부가 협상을 통해 돌려받으면서 이를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국립서양미술관'이다.

당시 모두 375점의 작품이 반환되는데, 프랑스 정부는 이 작품들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그림 등을 전시할 수 있는 '프랑스 미술관'을 요구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해 만든 것이 국립서양미술관이다.

압류된 미술품, 전쟁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그림들, 그리고 이를 전시하기 위해 프랑스의 요구로 만들어진 미술관과 이후 프랑스와 함께 이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일본 등 근대사를 꿰뚫는 스토리가 이 미술관에는 깃들여 있다.

세계적인 모네 컬렉션

서양미술관 내 모네 갤러리서양미술관 내 모네 갤러리

마츠가타가 프랑스에서 미술품을 사 모을 당시에는 이미 인상파의 시대는 저물고 큐비즘과 아방가르드가 파리 미술계의 주류로 떠올랐을 때다.

"하지만 마츠가타는 그 전 시대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있었죠. 19세기 말의 화가들에 더 마음이 끌리면서 동시대에서 수십 년 전 작품들을 주로 수집했습니다. (아츠시 신푸시/국립서양미술관 학예과 연구원)"

그리고 프랑스 현지에 있던 유명 작가 중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여 다수를 구입한대상이 바로 '모네'이다. 마츠가타는 모네로부터 모두 18점의 작품을 사들였는데 그 가운데 13점이 서양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클로드모네 ‘노란 아이리스’ 1914-17경 캔버스에유채클로드모네 ‘노란 아이리스’ 1914-17경 캔버스에유채

"프랑스 미술관과 비교하면 작품의 크기나 일급 작품의 수 등에서 미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186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반세기의 모네의 작품이 모두 있어, 모네 그림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훌륭한 모네 갤러리로 손꼽힌다. 대표작은 역시 모네의 그림 세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수련'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대작 '수련'시리즈를 제작하기 직전 그렸던 그림으로 실제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클로드모네 ‘수련’ 1916 캔버스에 유채클로드모네 ‘수련’ 1916 캔버스에 유채

마츠가타 컬렉션 가운데는 돌아오지 않는 작품도 있는데, 그 중 폭 4m 높이 2m의 대형 '수련' 그림이 최근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의 창고에서 발견됐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의 2배 크기로 둘둘 말려진 상태로 처박혀 있어서 지금까지 어디에 있는지 파악되지 않던 작품이다. 서양미술관 측은 이를 프랑스로부터 들여와 수복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올해 안에 개관 60주년 전시를 통해 공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속칭 고흐의 방)도 원래는 마츠가타 컬렉션 중의 하나로 올해 안에 새롭게 발견된 모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중세에서 현대까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서양미술사

현재 서양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작품은 모두 6,000여 점 정도. 인상파 작품 뿐 아니라 60년대 후반부터 중세 이후 르네상스, 20세기까지 작품으로 지평을 넓혀 서양미술의 흐름을 모두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5개의 국립미술관(서양미술관, 근대미술관, 오사카 국제 미술관, 교토 국제 미술관, 신미술관)을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작품 구매를 하지 않는 신미술관을 제외한 4개 미술관은 매년 27억 엔(약 270억 원 상당) 정도의 공통 예산으로 작품을 구입하고 있다.

서양미술관이 다양한 시대의 작품으로 컬렉션을 확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모네 갤러리로서 명성이 높지만, 그 밖에도 르누아르, 고흐, 고갱, 세잔, 드가, 밀레, 피카소 등 익히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대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이곳에서 가질 수 있다.

서양미술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슬픔의 성모'는 바로크 시대 작품으로 유럽의 화상을 통해 지난 98년 런던에서 사들인 작품이다. 서양미술관은 예산이 한정돼 있고, 작품을 구매할 때 그 가격까지 결정해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흔히 고가 작품의 유통 방법이 되는 '경매'에는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 매물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 이른바 유럽의 화상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카를로 돌치 ‘슬픔의성모’ 1655경 캔버스에 유채카를로 돌치 ‘슬픔의성모’ 1655경 캔버스에 유채

'슬픔의 성모' 또한 유럽의 화상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검토 끝에 구매한 작품으로 푸른 빛이 떠도는 성스러운 분위기와 비애와 온화함이 함께 깃든 얼굴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슬픔의 성모'가 성스러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작품이라면 르누아르의 '장미'는 화사한 빛깔과 인물화를 주로 그렸던 르누아르의 정물화라는 점에서 사람의 기분을 푸근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서양미술관에는 '장미'라는 제목으로 고흐와 르누아르가 그린 각각의 작품이 있는데,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고흐의 '장미'는 고흐가 생애 말년에 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으로 그의 불안했던 정신세계가 반영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르누아르의 '장미'는 화가의 예술혼이 녹아있기보다는 일반인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게 미술관 측의 설명이다.

빈센트 반 고흐 ‘장미’ 1889년 캔버스에 유채빈센트 반 고흐 ‘장미’ 1889년 캔버스에 유채

오귀스트 르느와르 ‘장미’오귀스트 르느와르 ‘장미’

하지만 그림을 보고 어떤 감동을 얻어가느냐는 건 배경이 아니라, 느낌으로부터 일 것이다.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은 그런 의미에서 서양 미술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세계문화유산 속에 자리잡은 ‘모네’의 숨결
    • 입력 2019-01-14 07:01:34
    특파원 리포트
< 타박타박 도쿄 미술관 1 >

- 세계문화유산이 된 미술관
- 마츠가타 컬렉션의 반환, 프랑스가 요구했던 미술관
-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모네 컬렉션'
- 중세부터 현재까지 한자리에 만나는 서양미술사

한 나라의 미술관은 그 나라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주는 좋은 척도가 된다.

이탈리아의 미술관들은 르네상스가 꽃피웠던 인간을 향한 아름다움의 정열을 보여주고, 프랑스의 미술관들은 인상파 등 근현대 미술 흐름을 선도했던 그 시대 파리 사람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의 미술관들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에는 미술관이 많다. 줄잡아 2천여 곳의 미술관들이 있다고 이야기되고 있고, 각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관객들을 맞는다. 그 일본 미술관들이 특징은 '경제'다. 일본의 미술관들을 돌아보다 보면 급격히 쌓은 부를 통해 '신흥 부자'의 벽면을 채운 미술품 전시장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고는 한다.

많은 개인과 기업이 부를 쌓아 작품을 사고 미술관을 만들어 공개한 덕에 일본 국민들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미술 분야에서 단연 풍족한 문화적 향유의 혜택을 받고 있다. 가볍게 집을 나서 전철을 타고 타박타박 걸어가, 고흐와 모네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한껏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일본 미술관들을 둘러본다. 그리고 그 쌓아올린 부를 다시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노력한 여러 일본인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국립서양미술관, 세계문화유산이 된 건물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을 꼽으라면 단연 도쿄 우에노에 자리 잡은 '국립서양미술관'을 들 수 있다.

이 미술관은 건축물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된다. 서양미술관을 설계한 사람은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로 그가 만든 7개 대륙에 있는 건물들이 '근대 건축의 방향성'에 공헌한 가치가 인정되면서 각각의 17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한꺼번에 등록된 매우 드문 사례를 기록하게 됐다.

일본에 있는 프랑스 사람이 만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독특성만으로도 국립서양미술관은 방문해볼 만한 가치를 가지는 곳이다.

서양미술관 중앙 ‘19세기 홀’
미술관의 상설 전시 구역을 처음 들어서면 맞는 것은 '19세기 홀'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이 전시돼 있는 이 공간은 천장의 창을 통해 흘러드는 햇볕이 건물의 중핵에 자리 잡고 있는 홀에 따뜻함을 전하며 전시실 전체로 그 빛을 산란시켜 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건물을 띄우는 필로티와 옥상 테라스, 자유로운 내부 평면 구조 등 근대 건축물을 성립시킬 수 있는 5요소를 정의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설계한 이 미술관에 그 요소들을 모두 투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무한히 확장되는 미술 역사를 보여주려고 했다. 설계자의 배려 속에 관람객들은 19세기 홀에서 시작해, 경사면과 복도와 전시실을 중복된 여정 없이 지나는 흐름 속에 중세부터 현대 미술 작품을 차례로 감상할 수 있다.

마츠가타 컬렉션의 반환...그리고 프랑스가 요구했던 건물

국립서양미술관의 이야기할 때 마츠가타 컬렉션을 빼고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 현재 서양미술관의 시작과 근간이 된 미술 작품군이다.

가와사키 조선소 사장이었던 마츠가타는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1916년부터 1923년까지 유럽에서 각종 미술품을 수집했는데 각종 문헌과 기록 등에 따르면 수집된 컬렉션은 모두 1만 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럽 등에서 수집한 그림 등 서양의 미술품만 줄잡아 2천7백 점에 이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립서양미술관 측은 "마츠가타가 이처럼 미술에 정열을 쏟았던 것은 자신의 취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일본에 미술관을 만들어 일본의 젊은 화가들에게 진정한 서양미술을 보여주고자 작품을 수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마츠가타 컬렉션은 영국의 한 창고에 보관되던 중 1939년 화재로 소실되고, 다만 파리에 보관 중이던 400점 가량만이 살아남게 된다.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적국 일본인 소유의 수집품들은 프랑스 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1950년대 이 작품 중 일부를 일본 정부가 협상을 통해 돌려받으면서 이를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국립서양미술관'이다.

당시 모두 375점의 작품이 반환되는데, 프랑스 정부는 이 작품들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그림 등을 전시할 수 있는 '프랑스 미술관'을 요구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해 만든 것이 국립서양미술관이다.

압류된 미술품, 전쟁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그림들, 그리고 이를 전시하기 위해 프랑스의 요구로 만들어진 미술관과 이후 프랑스와 함께 이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일본 등 근대사를 꿰뚫는 스토리가 이 미술관에는 깃들여 있다.

세계적인 모네 컬렉션

서양미술관 내 모네 갤러리
마츠가타가 프랑스에서 미술품을 사 모을 당시에는 이미 인상파의 시대는 저물고 큐비즘과 아방가르드가 파리 미술계의 주류로 떠올랐을 때다.

"하지만 마츠가타는 그 전 시대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있었죠. 19세기 말의 화가들에 더 마음이 끌리면서 동시대에서 수십 년 전 작품들을 주로 수집했습니다. (아츠시 신푸시/국립서양미술관 학예과 연구원)"

그리고 프랑스 현지에 있던 유명 작가 중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여 다수를 구입한대상이 바로 '모네'이다. 마츠가타는 모네로부터 모두 18점의 작품을 사들였는데 그 가운데 13점이 서양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클로드모네 ‘노란 아이리스’ 1914-17경 캔버스에유채
"프랑스 미술관과 비교하면 작품의 크기나 일급 작품의 수 등에서 미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186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반세기의 모네의 작품이 모두 있어, 모네 그림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훌륭한 모네 갤러리로 손꼽힌다. 대표작은 역시 모네의 그림 세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수련'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대작 '수련'시리즈를 제작하기 직전 그렸던 그림으로 실제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클로드모네 ‘수련’ 1916 캔버스에 유채
마츠가타 컬렉션 가운데는 돌아오지 않는 작품도 있는데, 그 중 폭 4m 높이 2m의 대형 '수련' 그림이 최근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의 창고에서 발견됐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의 2배 크기로 둘둘 말려진 상태로 처박혀 있어서 지금까지 어디에 있는지 파악되지 않던 작품이다. 서양미술관 측은 이를 프랑스로부터 들여와 수복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올해 안에 개관 60주년 전시를 통해 공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속칭 고흐의 방)도 원래는 마츠가타 컬렉션 중의 하나로 올해 안에 새롭게 발견된 모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중세에서 현대까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서양미술사

현재 서양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작품은 모두 6,000여 점 정도. 인상파 작품 뿐 아니라 60년대 후반부터 중세 이후 르네상스, 20세기까지 작품으로 지평을 넓혀 서양미술의 흐름을 모두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5개의 국립미술관(서양미술관, 근대미술관, 오사카 국제 미술관, 교토 국제 미술관, 신미술관)을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작품 구매를 하지 않는 신미술관을 제외한 4개 미술관은 매년 27억 엔(약 270억 원 상당) 정도의 공통 예산으로 작품을 구입하고 있다.

서양미술관이 다양한 시대의 작품으로 컬렉션을 확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모네 갤러리로서 명성이 높지만, 그 밖에도 르누아르, 고흐, 고갱, 세잔, 드가, 밀레, 피카소 등 익히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대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이곳에서 가질 수 있다.

서양미술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슬픔의 성모'는 바로크 시대 작품으로 유럽의 화상을 통해 지난 98년 런던에서 사들인 작품이다. 서양미술관은 예산이 한정돼 있고, 작품을 구매할 때 그 가격까지 결정해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흔히 고가 작품의 유통 방법이 되는 '경매'에는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 매물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 이른바 유럽의 화상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카를로 돌치 ‘슬픔의성모’ 1655경 캔버스에 유채
'슬픔의 성모' 또한 유럽의 화상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검토 끝에 구매한 작품으로 푸른 빛이 떠도는 성스러운 분위기와 비애와 온화함이 함께 깃든 얼굴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슬픔의 성모'가 성스러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작품이라면 르누아르의 '장미'는 화사한 빛깔과 인물화를 주로 그렸던 르누아르의 정물화라는 점에서 사람의 기분을 푸근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서양미술관에는 '장미'라는 제목으로 고흐와 르누아르가 그린 각각의 작품이 있는데,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고흐의 '장미'는 고흐가 생애 말년에 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으로 그의 불안했던 정신세계가 반영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르누아르의 '장미'는 화가의 예술혼이 녹아있기보다는 일반인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게 미술관 측의 설명이다.

빈센트 반 고흐 ‘장미’ 1889년 캔버스에 유채
오귀스트 르느와르 ‘장미’
하지만 그림을 보고 어떤 감동을 얻어가느냐는 건 배경이 아니라, 느낌으로부터 일 것이다.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은 그런 의미에서 서양 미술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