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성인’ 되기 싫다는 일본 젊은이들

입력 2019.01.15 (15:19) 수정 2019.01.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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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일본 언론은 한 의류 대여 회사의 돌연 휴업을 거의 매일 대서특필했다.

회사 이름은 '하레노히'. 주요 취급 품은 '후리 소데'라고 하는 일본의 여성들이 성인식이나 결혼식에서 입는 전통 의상으로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성인식을 위해 옷을 빌려주는 회사다.

일본에서는 1월 두 번째 월요일을 성인의 날, 휴일로 정해 만 스무 살이 된 새롭게 어른이 되는 젊은이들을 성대하게 축하한다. 각 지자체 등이 따로 기념식을 열고 성인이 된 이들을 모아 축하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새롭게 성년이 된 여성들이 이날을 기념해 입는 복장이 '후리 소데'다. 후리 소데는 기모노의 일종인데, 사실 이 날 한 차례 빼고는 입을 일이 별로 없어 사기보다는 빌려 입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빌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최저 5만 엔(약 50만 원)에서 10만 엔(100만 원)을 주고 하루 이용하게 된다.

여기에 당일 기념촬영 비용 등까지 포함하면 200만 원을 훌쩍 넘는 것이 렌탈 '후리 소데' 상품 가격이다.


여기에 성인식이 끝나면 파티 등도 이어지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복장은 또 따로다. NHK는 이 때문에 성인식을 치르기 위한 비용이 여성의 경우 쉽게 50만 엔(우리 돈 500만 원)은 되는 것 같다는 한 부모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돈까지 들여가며 옷을 마련하고 성인식 날을 손꼽아 기다렸건만,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인식 의복 대여 업체가 '성인의 날' 직전 사실상 영업을 중단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할머니가 이날을 위해 언제부터 돈을 부어왔다는 사연부터, 후리 소데를 구하지 못해 눈물짓는 당사자의 모습까지 거의 일주일 가까이 이 회사 관련 뉴스가 이어졌다. 또 한쪽에서는 피해자들을 위해 급하게 지자체에서 옷을 공수했다, 누군가 옷을 마련해 줬다는 미담까지 곁들여졌다.

성인식에 일본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은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재단이 전국 17~19세의 남녀 800명을 조사한 결과 "성인식이 공식 행사로서 필요하냐"는 질문에 69.8%, 즉 10명 중 7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됐어요"라는 공식 선언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만 하다.

그런데 반면 또 한쪽에서는 어른이 되는 선언이 싫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는데...일본 민법이 개정돼 성인의 나이를 20세에서 18세로 낮추기로 하면서 과연 성인식을 몇 세에 맞춰 치러야 하는 문제가 떠오르게 됐다. 이토록 성인식을 중요시하는 일본 젊은이들이기에 당연히 성인식도 빨리하자고 할 줄 알았건만, 결과는 정반대. 그래도 성인식은 20세에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일본재단 조사에서 "성인식이 행해지는 게 어울리는 연령"에 대한 질문에 74%는 20세를 선택했고, 18세를 이야기한 응답자는 23.9%에 머물렀다.

법이야 어떻게 바뀌든 성인으로 공식 선언하는 나이는 낮추기 싫다는 의미인데, 구체적인 답을 들여다보면 일본 젊은이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20세로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응답자의 62.8%는 "18세는 입시와 겹치는 시기이거나 입시를 앞둔 시기이기 때문에"라고 답했고(만 18세 생일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대학 입시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38.2%는 "성인식에 걸맞게 술을 먹는다거나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민법상 성년이 18세로 바뀌지만, 음주 등의 기준은 여전히 20세를 적용한다).

그리고 33.6%는 "진학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23.8%는 "18세라면 취업 준비를 하는 시기여서"라고 답했다.

반면 18세에 성인식을 하자고 답한 이들은 "하향한 성인연령에 맞아서(62.8%)"가 주류를 이뤘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성인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 과정에 있는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 고민이 함께 겹쳐지는 시기에 '성인식'까지 앞당겨 치르기 싫다는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성인식에 여러 비용적인 부담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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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성인’ 되기 싫다는 일본 젊은이들
    • 입력 2019-01-15 15:19:34
    • 수정2019-01-16 10:42:59
    특파원 리포트
지난해 1월 일본 언론은 한 의류 대여 회사의 돌연 휴업을 거의 매일 대서특필했다.

회사 이름은 '하레노히'. 주요 취급 품은 '후리 소데'라고 하는 일본의 여성들이 성인식이나 결혼식에서 입는 전통 의상으로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성인식을 위해 옷을 빌려주는 회사다.

일본에서는 1월 두 번째 월요일을 성인의 날, 휴일로 정해 만 스무 살이 된 새롭게 어른이 되는 젊은이들을 성대하게 축하한다. 각 지자체 등이 따로 기념식을 열고 성인이 된 이들을 모아 축하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새롭게 성년이 된 여성들이 이날을 기념해 입는 복장이 '후리 소데'다. 후리 소데는 기모노의 일종인데, 사실 이 날 한 차례 빼고는 입을 일이 별로 없어 사기보다는 빌려 입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빌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최저 5만 엔(약 50만 원)에서 10만 엔(100만 원)을 주고 하루 이용하게 된다.

여기에 당일 기념촬영 비용 등까지 포함하면 200만 원을 훌쩍 넘는 것이 렌탈 '후리 소데' 상품 가격이다.


여기에 성인식이 끝나면 파티 등도 이어지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복장은 또 따로다. NHK는 이 때문에 성인식을 치르기 위한 비용이 여성의 경우 쉽게 50만 엔(우리 돈 500만 원)은 되는 것 같다는 한 부모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돈까지 들여가며 옷을 마련하고 성인식 날을 손꼽아 기다렸건만,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인식 의복 대여 업체가 '성인의 날' 직전 사실상 영업을 중단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할머니가 이날을 위해 언제부터 돈을 부어왔다는 사연부터, 후리 소데를 구하지 못해 눈물짓는 당사자의 모습까지 거의 일주일 가까이 이 회사 관련 뉴스가 이어졌다. 또 한쪽에서는 피해자들을 위해 급하게 지자체에서 옷을 공수했다, 누군가 옷을 마련해 줬다는 미담까지 곁들여졌다.

성인식에 일본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은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재단이 전국 17~19세의 남녀 800명을 조사한 결과 "성인식이 공식 행사로서 필요하냐"는 질문에 69.8%, 즉 10명 중 7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됐어요"라는 공식 선언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만 하다.

그런데 반면 또 한쪽에서는 어른이 되는 선언이 싫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는데...일본 민법이 개정돼 성인의 나이를 20세에서 18세로 낮추기로 하면서 과연 성인식을 몇 세에 맞춰 치러야 하는 문제가 떠오르게 됐다. 이토록 성인식을 중요시하는 일본 젊은이들이기에 당연히 성인식도 빨리하자고 할 줄 알았건만, 결과는 정반대. 그래도 성인식은 20세에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일본재단 조사에서 "성인식이 행해지는 게 어울리는 연령"에 대한 질문에 74%는 20세를 선택했고, 18세를 이야기한 응답자는 23.9%에 머물렀다.

법이야 어떻게 바뀌든 성인으로 공식 선언하는 나이는 낮추기 싫다는 의미인데, 구체적인 답을 들여다보면 일본 젊은이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20세로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응답자의 62.8%는 "18세는 입시와 겹치는 시기이거나 입시를 앞둔 시기이기 때문에"라고 답했고(만 18세 생일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대학 입시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38.2%는 "성인식에 걸맞게 술을 먹는다거나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민법상 성년이 18세로 바뀌지만, 음주 등의 기준은 여전히 20세를 적용한다).

그리고 33.6%는 "진학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23.8%는 "18세라면 취업 준비를 하는 시기여서"라고 답했다.

반면 18세에 성인식을 하자고 답한 이들은 "하향한 성인연령에 맞아서(62.8%)"가 주류를 이뤘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성인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 과정에 있는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 고민이 함께 겹쳐지는 시기에 '성인식'까지 앞당겨 치르기 싫다는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성인식에 여러 비용적인 부담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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