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는 신데렐라? 자정 전에 귀가하는 이유

입력 2019.01.1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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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본의 아니게 밤샘조사를 없앤 임종헌
■ 자정 직전에 귀가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전략'은?

"지금 내려갑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첫 소환된 지난 11일 밤 11시 53분.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조사를 마치고 내려간다고 취재진에게 알렸습니다.

정확히 2분 뒤, 양 전 원장이 검찰청 1층으로 내려왔고 귀가했습니다. 자정이 되기 딱 5분 전이었습니다.

실제 조사는 더 이른 저녁 8시 40분에 끝났습니다. 그 이후는 양 전 원장이 직접 조서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혐의가 40개가 넘는 피의자, 조사 시간이 짧은 것도 같은데요. 검찰은 왜 서둘렀을까요.

지난해 10월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지난해 10월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양승태의 심복, 밤샘조사를 없애다?

양승태 전 원장의 조사를 일찍 마치게 해준 사람. 그의 심복이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입니다.

지난해 10월, 임 전 차장은 검찰에 소환돼 밤샘조사를 받고 다음날 새벽 5시에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임 전 차장이 귀가한 지 2시간 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페이스북과 내부게시판에 밤샘조사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잠을 재우지 않고 밤새워 묻고 또 묻는 것은 고문과 다름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2017년 3월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2017년 3월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물론 검찰이 임 전 차장만 '특별히' 미워서 밤샘조사를 한 건 아닙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7년 3월 밤샘조사를 받고 날이 밝은 뒤 집에 갔습니다. 밤샘조사는 반드시 피의자 동의를 받아야 하고, 임 전 차장도 동의했다고 합니다.

밤샘조사가 문제 되는 이유는, 사실 인권을 무시한 수사 기법이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피의자를 못 자게 하고, 밤새 붙잡아놓고 압박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수단이었던 거죠. 강 부장판사 말대로 '고문' 비슷합니다. 인권에 반합니다. 피의자 동의를 받더라도 강제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법무부도 밤샘조사를 없애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강 부장판사 지적이 맞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다' '왜 하필 지금 그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강민구 부장판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 '밤샘조사' 문제는 정치권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최고의 방패를 뚫으려면…'12시를 지켜라'

이래저래 밤샘조사 문제가 불거지니, 검찰도 고민일 될 수밖에 없었겠죠. 곧장 밤샘조사가 사라졌습니다.

임 전 차장 이후 검찰에 불려 나온 전직 대법관들은 '밤 12시'를 아슬아슬하게 지켜서 나왔습니다. 박병대 전 대법관 귀가 시간은 밤 11시 50분, 고영한 전 대법관은 밤 11시 37분이었습니다.

밤샘조사가 논란이 된 것도 부담이었겠지만, 상대가 양승태·고영한·박병대라는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피의자 신분이지만, 전직 대법관들과 양승태 전 원장은 모두 사실상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 전문가들입니다. 양 전 원장은 조사를 받는 시간보다 조서를 직접 읽고 확인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합니다. 재판에서 지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법리를 계산해보는 '판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죠.

이런 까다로운 상대를 조사해야 하니, 본류가 아닌 문제로 꼬투리를 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게 검찰의 전략입니다. 자칫 재판 과정에서 밤샘조사가 '강요'였고 '불법'이었다는 주장이 나오면, 골치 아파집니다. 이런 논란거리를 싹부터 자르기 위해 밤샘조사를 멈춘 셈입니다.


밤샘조사 문제 외에도 검찰은 어느 때보다 양 전 원장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양 전 원장 추가 소환도 기자들에게 철저하게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청에서 양 전 원장을 우연히 목격한 기자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조사 중이다'라고 알리는 정도입니다.

검찰 조사에 반발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임종헌 전 차장처럼, 어느 순간 양 전 원장이 입을 다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가 갑자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나올 경우까지 검찰은 계산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사법농단에 해당하는 행정처의 활동 대부분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고받거나 지시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키맨'인 임종헌 전 차장은 이를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는지 대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 전 원장이 뭐든 말해주는 것이 검찰에겐 중요합니다. 양 전 원장의 진술이 만약 물증과 비교했을 때 거짓이라면, 영장 청구의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서, 오늘도 검찰은 그를 12시 전에 내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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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승태는 신데렐라? 자정 전에 귀가하는 이유
    • 입력 2019-01-15 18:57:48
    취재K
▲지난 11일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본의 아니게 밤샘조사를 없앤 임종헌
■ 자정 직전에 귀가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전략'은?

"지금 내려갑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첫 소환된 지난 11일 밤 11시 53분.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조사를 마치고 내려간다고 취재진에게 알렸습니다.

정확히 2분 뒤, 양 전 원장이 검찰청 1층으로 내려왔고 귀가했습니다. 자정이 되기 딱 5분 전이었습니다.

실제 조사는 더 이른 저녁 8시 40분에 끝났습니다. 그 이후는 양 전 원장이 직접 조서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혐의가 40개가 넘는 피의자, 조사 시간이 짧은 것도 같은데요. 검찰은 왜 서둘렀을까요.

지난해 10월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양승태의 심복, 밤샘조사를 없애다?

양승태 전 원장의 조사를 일찍 마치게 해준 사람. 그의 심복이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입니다.

지난해 10월, 임 전 차장은 검찰에 소환돼 밤샘조사를 받고 다음날 새벽 5시에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임 전 차장이 귀가한 지 2시간 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페이스북과 내부게시판에 밤샘조사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잠을 재우지 않고 밤새워 묻고 또 묻는 것은 고문과 다름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2017년 3월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물론 검찰이 임 전 차장만 '특별히' 미워서 밤샘조사를 한 건 아닙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7년 3월 밤샘조사를 받고 날이 밝은 뒤 집에 갔습니다. 밤샘조사는 반드시 피의자 동의를 받아야 하고, 임 전 차장도 동의했다고 합니다.

밤샘조사가 문제 되는 이유는, 사실 인권을 무시한 수사 기법이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피의자를 못 자게 하고, 밤새 붙잡아놓고 압박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수단이었던 거죠. 강 부장판사 말대로 '고문' 비슷합니다. 인권에 반합니다. 피의자 동의를 받더라도 강제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법무부도 밤샘조사를 없애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강 부장판사 지적이 맞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다' '왜 하필 지금 그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강민구 부장판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 '밤샘조사' 문제는 정치권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최고의 방패를 뚫으려면…'12시를 지켜라'

이래저래 밤샘조사 문제가 불거지니, 검찰도 고민일 될 수밖에 없었겠죠. 곧장 밤샘조사가 사라졌습니다.

임 전 차장 이후 검찰에 불려 나온 전직 대법관들은 '밤 12시'를 아슬아슬하게 지켜서 나왔습니다. 박병대 전 대법관 귀가 시간은 밤 11시 50분, 고영한 전 대법관은 밤 11시 37분이었습니다.

밤샘조사가 논란이 된 것도 부담이었겠지만, 상대가 양승태·고영한·박병대라는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피의자 신분이지만, 전직 대법관들과 양승태 전 원장은 모두 사실상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 전문가들입니다. 양 전 원장은 조사를 받는 시간보다 조서를 직접 읽고 확인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합니다. 재판에서 지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법리를 계산해보는 '판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죠.

이런 까다로운 상대를 조사해야 하니, 본류가 아닌 문제로 꼬투리를 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게 검찰의 전략입니다. 자칫 재판 과정에서 밤샘조사가 '강요'였고 '불법'이었다는 주장이 나오면, 골치 아파집니다. 이런 논란거리를 싹부터 자르기 위해 밤샘조사를 멈춘 셈입니다.


밤샘조사 문제 외에도 검찰은 어느 때보다 양 전 원장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양 전 원장 추가 소환도 기자들에게 철저하게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청에서 양 전 원장을 우연히 목격한 기자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조사 중이다'라고 알리는 정도입니다.

검찰 조사에 반발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임종헌 전 차장처럼, 어느 순간 양 전 원장이 입을 다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가 갑자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나올 경우까지 검찰은 계산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사법농단에 해당하는 행정처의 활동 대부분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고받거나 지시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키맨'인 임종헌 전 차장은 이를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는지 대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 전 원장이 뭐든 말해주는 것이 검찰에겐 중요합니다. 양 전 원장의 진술이 만약 물증과 비교했을 때 거짓이라면, 영장 청구의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서, 오늘도 검찰은 그를 12시 전에 내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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