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무역전쟁 치르는 중국인 머릿속엔 ‘아편전쟁’ 트라우마가!

입력 2019.01.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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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마음속 깊은 상처 아편전쟁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암담한 처지에 있었고 중국 인민은 전란이 그칠 새 없고 강산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백성들이 도탄에서 허덕이는 극심한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19차 당 대회 개막 연설에서 '신시대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사명'을 강조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중국인에게 아편전쟁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치욕과 굴욕의 상처이자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모두를 아래로 내려다본 황제국가가 이른바 서양 오랑캐들에 의해 철저히 능욕당한 기억이다.

시진핑 주석의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은 강성했던 중화 민족의 부흥을 의미한다. 1840년 아편전쟁 이전 세계사에서 차지했던 중국의 막강했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제 좀 해볼 만한 상황이 되자 아편전쟁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바로 미국이 걸어온 무역전쟁이다. 많은 중국인은 이번 미·중 무역전쟁을 아편전쟁과 비교하고 있다.


놀랍도록 비슷한 아편전쟁과 무역전쟁

아편전쟁과 무역전쟁은 너무도 닮았다. 180년 전 세계의 패권국 대영제국이 일으킨 아편전쟁은 지금 영국 패권 계승자 미국이 무역전쟁으로 이어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당하는 쪽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이다. 과거 영국은 중국과 교역에서 매년 2천3백만 냥의 은(銀)을 손해 봤다. 중국의 큰 시장이 탐이나 문을 열긴 열었는데 기대했던 인도산 면직물은 안 팔리고 오히려 중국의 차(茶)와 도자기가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영국은 억지로라도 무역수지 불균형을 잡기 위해 인도산 아편을 수출했고, 이에 중국이 저항하자 군사력을 동원했다. 결국, 중국은 1, 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아편 수입을 합법화했고, 홍콩을 잃었다. 억지로 개항을 했으며, 관세를 제한당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18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의 군사력은 패권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중국을 도와줄 이렇다 할 동맹도 없다. 무역전쟁 초기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지도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유무역 수호'라는 명분으로 미국에 함께 맞서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모두 외면했다. 유럽연합, 일본 등은 오히려 지금 미국 편에 서 있다.


세계 최고 부자나라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

아편전쟁 직전 중국, 청나라의 경제력은 명실상부한 세계 1위였다. 경제 사학자들은 당시 중국의 GDP가 전 세계의 30%를 웃돌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당시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체 GDP가 20% 웃돌 정도였다. 중국 외에 모든 나라를 오랑캐라고 내려 보던 위풍당당하던 중국은 그러나 아편전쟁을 겪으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대청제국의 수백만 군대가 고작 만 9천여 명 영국 해군에게 쩔쩔매자 다른 서구 열강들까지도 중국을 먹잇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역사와 크기, 잠재력을 두려워하던 열강의 시선이 점차 오만과 경멸의 시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은 고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차 아편전쟁, 연합국의 중국 침략, 중일전쟁 등 한번 얕잡아 보인 중국의 고난은 숨돌릴 틈 없이 계속됐다. 결국, 중국은 반(半)식민지화 됐다.

최신식 화기로 무장한 영국의 철제 증기선은 일방적으로 청국의 목함을 파괴했다. 최신식 화기로 무장한 영국의 철제 증기선은 일방적으로 청국의 목함을 파괴했다.

중국 공산당의 명운이 걸린 무역전쟁의 결말은?

관영 매체는 아니지만, 일부 중국 칼럼니스트들은 아편전쟁 당시 영국이 중국을 세계 산업체계에 강제 편입시키려 했다면, 이번엔 미국이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을 세계 금융질서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분석을 내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계 금융질서로 중국을 끌어들여 목줄을 죄려 한다는 우려다. 첨단 기술 탈취, 지식재산권 보호, 무역수지 적자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은 중국을 다시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반식민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란 우려다.

중국 공산당은 아편전쟁 이후 100년 동안 계속되던 질곡의 봉건 역사를 타파하고 신중국을 바로 세워 지금까지 발전시킨 것을 가장 최고의 업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중국 공산당에 최고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말로 하다가 안 되면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것은 역사의 공식이다. 중국은 지금 미국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군사력, 특히 해군력 증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아직 격차가 크지만,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국방예산을 14%가량 줄인 반면 중국은 매년 10%씩 국방예산을 늘려오고 있다. 아직 진짜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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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6 17:01:54
    특파원 리포트
중국인 마음속 깊은 상처 아편전쟁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암담한 처지에 있었고 중국 인민은 전란이 그칠 새 없고 강산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백성들이 도탄에서 허덕이는 극심한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19차 당 대회 개막 연설에서 '신시대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사명'을 강조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중국인에게 아편전쟁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치욕과 굴욕의 상처이자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모두를 아래로 내려다본 황제국가가 이른바 서양 오랑캐들에 의해 철저히 능욕당한 기억이다.

시진핑 주석의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은 강성했던 중화 민족의 부흥을 의미한다. 1840년 아편전쟁 이전 세계사에서 차지했던 중국의 막강했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제 좀 해볼 만한 상황이 되자 아편전쟁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바로 미국이 걸어온 무역전쟁이다. 많은 중국인은 이번 미·중 무역전쟁을 아편전쟁과 비교하고 있다.


놀랍도록 비슷한 아편전쟁과 무역전쟁

아편전쟁과 무역전쟁은 너무도 닮았다. 180년 전 세계의 패권국 대영제국이 일으킨 아편전쟁은 지금 영국 패권 계승자 미국이 무역전쟁으로 이어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당하는 쪽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이다. 과거 영국은 중국과 교역에서 매년 2천3백만 냥의 은(銀)을 손해 봤다. 중국의 큰 시장이 탐이나 문을 열긴 열었는데 기대했던 인도산 면직물은 안 팔리고 오히려 중국의 차(茶)와 도자기가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영국은 억지로라도 무역수지 불균형을 잡기 위해 인도산 아편을 수출했고, 이에 중국이 저항하자 군사력을 동원했다. 결국, 중국은 1, 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아편 수입을 합법화했고, 홍콩을 잃었다. 억지로 개항을 했으며, 관세를 제한당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18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의 군사력은 패권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중국을 도와줄 이렇다 할 동맹도 없다. 무역전쟁 초기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지도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유무역 수호'라는 명분으로 미국에 함께 맞서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모두 외면했다. 유럽연합, 일본 등은 오히려 지금 미국 편에 서 있다.


세계 최고 부자나라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

아편전쟁 직전 중국, 청나라의 경제력은 명실상부한 세계 1위였다. 경제 사학자들은 당시 중국의 GDP가 전 세계의 30%를 웃돌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당시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체 GDP가 20% 웃돌 정도였다. 중국 외에 모든 나라를 오랑캐라고 내려 보던 위풍당당하던 중국은 그러나 아편전쟁을 겪으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대청제국의 수백만 군대가 고작 만 9천여 명 영국 해군에게 쩔쩔매자 다른 서구 열강들까지도 중국을 먹잇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역사와 크기, 잠재력을 두려워하던 열강의 시선이 점차 오만과 경멸의 시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은 고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차 아편전쟁, 연합국의 중국 침략, 중일전쟁 등 한번 얕잡아 보인 중국의 고난은 숨돌릴 틈 없이 계속됐다. 결국, 중국은 반(半)식민지화 됐다.

최신식 화기로 무장한 영국의 철제 증기선은 일방적으로 청국의 목함을 파괴했다.
중국 공산당의 명운이 걸린 무역전쟁의 결말은?

관영 매체는 아니지만, 일부 중국 칼럼니스트들은 아편전쟁 당시 영국이 중국을 세계 산업체계에 강제 편입시키려 했다면, 이번엔 미국이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을 세계 금융질서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분석을 내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계 금융질서로 중국을 끌어들여 목줄을 죄려 한다는 우려다. 첨단 기술 탈취, 지식재산권 보호, 무역수지 적자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은 중국을 다시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반식민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란 우려다.

중국 공산당은 아편전쟁 이후 100년 동안 계속되던 질곡의 봉건 역사를 타파하고 신중국을 바로 세워 지금까지 발전시킨 것을 가장 최고의 업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중국 공산당에 최고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말로 하다가 안 되면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것은 역사의 공식이다. 중국은 지금 미국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군사력, 특히 해군력 증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아직 격차가 크지만,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국방예산을 14%가량 줄인 반면 중국은 매년 10%씩 국방예산을 늘려오고 있다. 아직 진짜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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