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일본 초계기 논란…한국 언론 ‘프레임의 덫’에 빠졌나?

입력 2019.01.17 (10:00) 수정 2019.01.17 (14:1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1일 시작된 일본 초계기 논란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번갈아가며 논란을 키우다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가 싶더니, 한일 협의에 맞춰 '논란 키우기'가 재연됐다.

일본의 의도를 분석하는 단계는 지난 것 같다. 안보 위기론을 부추길 때마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요동치며 올라갔다. '무력 증강'과 '전쟁가능 개헌 추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른바 전문가적 식견이 구태여 필요할까?

대신, 한국 언론의 '프레임(틀)'문제를 주목해보자. 일본 언론과 유사한 프레임이 한국 언론에서 낯설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프레임은 과연 타당하고 객관적인가? 일본 측이 파놓은 '프레임의 덫'에 잘 모르고 빠진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빠진 것일까?

'무례'와 '불공정 요구', 그리고 일본 자위대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일 군사 협의는 성과 없이 끝났다. 아니, 성과는 있었다. 특단의 변화 없이는 앞으로도 협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교훈 정도?


처음부터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한국 정부는 자위대 초계기의 위협적 저공비행 문제를 일관되게 지적해왔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 초계기가 사격 관제 레이더 조준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양측의 관심 의제가 달랐다.

실무 협의가 끝나자마자, 일본 측이 기다렸다는 듯 포문을 열었다. 15일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일본 자위대의 전파 기록 제공을 타진했으나, 한국 측이 동의하지 않아 합의가 무산됐다'는 취지의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자위대 초계기의 전파기록을 보여주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 측이 구축함의 전파 관련 기록을 보여줄 것을 제안했는데, 한국 측이 기밀 보호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 반박이 곧바로 나왔다. 국방부는 15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일본 측이 우리 구축함의 레이더 정보 전체를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자위대 초계기가 수신했다고 주장하는 레이더의 주파수는 공개되지 않았고, 일부 데이터만 이야기하면서 그 대가로 한국 함정의 레이더 데이터 전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일본의 요구가 "받아들이기 힘든, 대단히 무례한 요구이며,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국방부 반박에 따르면, 일본 측의 요구는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요구라고 할 수 있다. 협상 결렬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요구였다.

대외 협의는 국내용?...일본 정부의 '여론몰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자위대 초계기가 사격 관제 레이더의 전파 조사를 받았다는 일방적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해당 전파 수신 정보 등 관련 증거는 '비밀'이라며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 정부는 문제의 자위대 초계기가 구난 작전 현장에서 위협적으로 저공 비행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15일 오전,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 기자들에게, 싱가포르 협의에서 한국 측에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일본 측이 (피해의 근거가 될) 레이더 주파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한국 측 발표에 대해 "상대방과의 관계도 있으니 자세한 협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후 기자회견에서는 "상호주의 관점에서 양측이 필요한 데이터를 보이는 것이 불가결하다. 일본 측이 이러한 제안을 했지만 한국 측 동의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스가 장관은 오전·오후 브리핑와 민방 출연 등 3차례 걸쳐, 초계기 관련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한국 측 대응을 비난했다.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도 기자들에게, '정보 비대칭' 요구 논란에 대한 해명은 없이, 한국 측이 전파 상호 공개 요구를 거부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초계기 위협비행에 대한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사죄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무라카와 유타카 해상자위대 막료장도 기자들 앞에 나와, '레이더 전파 정보를 한국 측 데이터와 대조해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정보 비대칭' 요구에 대한 명확한 해명은 없었다.


일본 언론은 '지원 사격'...그러면 한국 언론은?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표명 방식에는 '패턴' 비슷한 것이 있었다. 특정 언론, 혹은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관계자 인용) 1보가 나오면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이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이를 확인 혹은 해명하는 것이 통례였다. 특히 일본의 보수 매체들은 종종 일본 정부의 입장 혹은 속내를 선제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요미우리신문은 16일 자 관련 기사 제목을 '한국 전파정보 교환 거부'로 뽑았다. 물론, 일본 정부의 '정보 비대칭' 요구에 대해 한국 측이 무례한 요구라며 반발했다는 세부 설명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 측에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언론은 어떨까? 익명의 관계자 발언 혹은 주장을 종종 인용하는 관행은 일본 언론과 유사하다. 그러나 상당수 언론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외교 안보 현안과 관련해 자국 정부를 공격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진실이 국익'이라는 언론 자유의 명제로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일본 정부의 프레임과 유사한 한국 언론

이번 사안은 발단 초기부터 '레이더 조사' 혹은 '레이더 논란'으로 프레임이 형성됐다. 프레임은 논쟁의 틀이자 주제이다. 프레임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한쪽은 공격을, 다른 한쪽은 해명하다가 논쟁이 끝날 수 있다. 이것은 명백히 불평등 게임이다. 정치 현장과 마찬가지로 외교 현장은 프레임의 전장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싸움의 기본'에 충실했고, 지금도 충실하다. 한국 측의 반박도 충실히 보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사의 프레임은 항상 '레이더 조사'이다. 중립적 기사의 외형을 띄고 있으면서도, 기사의 맥락은 언제나 '한국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에 레이더 조사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두고 양측이 다툰다'는 것이다. 이 점은 진보·보수 매체를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 측은 어떠할까? 국방부는 진작부터 이번 갈등이 '초계기의 위협 저공비행'으로 촉발됐음을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며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KBS 등은 사건 초기부터 일관되게 이 문제가 초계기의 운항 행태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제3자적 입장에서 (한국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가장 객관적이고 기계적인) 프레임은 '초계기와 구축함 논란' 혹은 '위협비행과 레이더 논란'이다.


주요 매체를 포함한 상당수 한국 언론이 구태여 선택한 프레임은 '레이더 논란'이다. 상당수 한국 언론의 기사 제목 등에는 '레이더 논란'이라는 일본 측 프레임 용어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인용 보도를 통해서, 그 프레임은 여과 없이 유포되고 있다.

왜 '상당수' 한국 언론은 일본 정부 및 일본 언론이 파놓은 프레임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일본 초계기 논란…한국 언론 ‘프레임의 덫’에 빠졌나?
    • 입력 2019-01-17 10:00:29
    • 수정2019-01-17 14:18:59
    특파원 리포트
지난해 12월 21일 시작된 일본 초계기 논란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번갈아가며 논란을 키우다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가 싶더니, 한일 협의에 맞춰 '논란 키우기'가 재연됐다.

일본의 의도를 분석하는 단계는 지난 것 같다. 안보 위기론을 부추길 때마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요동치며 올라갔다. '무력 증강'과 '전쟁가능 개헌 추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른바 전문가적 식견이 구태여 필요할까?

대신, 한국 언론의 '프레임(틀)'문제를 주목해보자. 일본 언론과 유사한 프레임이 한국 언론에서 낯설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프레임은 과연 타당하고 객관적인가? 일본 측이 파놓은 '프레임의 덫'에 잘 모르고 빠진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빠진 것일까?

'무례'와 '불공정 요구', 그리고 일본 자위대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일 군사 협의는 성과 없이 끝났다. 아니, 성과는 있었다. 특단의 변화 없이는 앞으로도 협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교훈 정도?


처음부터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한국 정부는 자위대 초계기의 위협적 저공비행 문제를 일관되게 지적해왔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 초계기가 사격 관제 레이더 조준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양측의 관심 의제가 달랐다.

실무 협의가 끝나자마자, 일본 측이 기다렸다는 듯 포문을 열었다. 15일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일본 자위대의 전파 기록 제공을 타진했으나, 한국 측이 동의하지 않아 합의가 무산됐다'는 취지의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자위대 초계기의 전파기록을 보여주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 측이 구축함의 전파 관련 기록을 보여줄 것을 제안했는데, 한국 측이 기밀 보호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 반박이 곧바로 나왔다. 국방부는 15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일본 측이 우리 구축함의 레이더 정보 전체를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자위대 초계기가 수신했다고 주장하는 레이더의 주파수는 공개되지 않았고, 일부 데이터만 이야기하면서 그 대가로 한국 함정의 레이더 데이터 전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일본의 요구가 "받아들이기 힘든, 대단히 무례한 요구이며,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국방부 반박에 따르면, 일본 측의 요구는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요구라고 할 수 있다. 협상 결렬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요구였다.

대외 협의는 국내용?...일본 정부의 '여론몰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자위대 초계기가 사격 관제 레이더의 전파 조사를 받았다는 일방적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해당 전파 수신 정보 등 관련 증거는 '비밀'이라며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 정부는 문제의 자위대 초계기가 구난 작전 현장에서 위협적으로 저공 비행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15일 오전,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 기자들에게, 싱가포르 협의에서 한국 측에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일본 측이 (피해의 근거가 될) 레이더 주파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한국 측 발표에 대해 "상대방과의 관계도 있으니 자세한 협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후 기자회견에서는 "상호주의 관점에서 양측이 필요한 데이터를 보이는 것이 불가결하다. 일본 측이 이러한 제안을 했지만 한국 측 동의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스가 장관은 오전·오후 브리핑와 민방 출연 등 3차례 걸쳐, 초계기 관련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한국 측 대응을 비난했다.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도 기자들에게, '정보 비대칭' 요구 논란에 대한 해명은 없이, 한국 측이 전파 상호 공개 요구를 거부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초계기 위협비행에 대한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사죄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무라카와 유타카 해상자위대 막료장도 기자들 앞에 나와, '레이더 전파 정보를 한국 측 데이터와 대조해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정보 비대칭' 요구에 대한 명확한 해명은 없었다.


일본 언론은 '지원 사격'...그러면 한국 언론은?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표명 방식에는 '패턴' 비슷한 것이 있었다. 특정 언론, 혹은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관계자 인용) 1보가 나오면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이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이를 확인 혹은 해명하는 것이 통례였다. 특히 일본의 보수 매체들은 종종 일본 정부의 입장 혹은 속내를 선제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요미우리신문은 16일 자 관련 기사 제목을 '한국 전파정보 교환 거부'로 뽑았다. 물론, 일본 정부의 '정보 비대칭' 요구에 대해 한국 측이 무례한 요구라며 반발했다는 세부 설명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 측에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언론은 어떨까? 익명의 관계자 발언 혹은 주장을 종종 인용하는 관행은 일본 언론과 유사하다. 그러나 상당수 언론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외교 안보 현안과 관련해 자국 정부를 공격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진실이 국익'이라는 언론 자유의 명제로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일본 정부의 프레임과 유사한 한국 언론

이번 사안은 발단 초기부터 '레이더 조사' 혹은 '레이더 논란'으로 프레임이 형성됐다. 프레임은 논쟁의 틀이자 주제이다. 프레임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한쪽은 공격을, 다른 한쪽은 해명하다가 논쟁이 끝날 수 있다. 이것은 명백히 불평등 게임이다. 정치 현장과 마찬가지로 외교 현장은 프레임의 전장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싸움의 기본'에 충실했고, 지금도 충실하다. 한국 측의 반박도 충실히 보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사의 프레임은 항상 '레이더 조사'이다. 중립적 기사의 외형을 띄고 있으면서도, 기사의 맥락은 언제나 '한국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에 레이더 조사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두고 양측이 다툰다'는 것이다. 이 점은 진보·보수 매체를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 측은 어떠할까? 국방부는 진작부터 이번 갈등이 '초계기의 위협 저공비행'으로 촉발됐음을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며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KBS 등은 사건 초기부터 일관되게 이 문제가 초계기의 운항 행태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제3자적 입장에서 (한국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가장 객관적이고 기계적인) 프레임은 '초계기와 구축함 논란' 혹은 '위협비행과 레이더 논란'이다.


주요 매체를 포함한 상당수 한국 언론이 구태여 선택한 프레임은 '레이더 논란'이다. 상당수 한국 언론의 기사 제목 등에는 '레이더 논란'이라는 일본 측 프레임 용어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인용 보도를 통해서, 그 프레임은 여과 없이 유포되고 있다.

왜 '상당수' 한국 언론은 일본 정부 및 일본 언론이 파놓은 프레임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