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유기와 안락사, 그 끔찍한 악순환

입력 2019.01.19 (07:00) 수정 2019.04.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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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진의 신작 애니메이션 '언더독'이 개봉했습니다. 최근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불법 안락사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반려동물 유기와 안락사,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언더독'은 주인공 뭉치가 주인으로부터 버려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뭉치는 다른 유기견들과 재개발 예정지에서 무리 지어 살게 됩니다. 유기견들은 개장수들의 표적이지요. 보호소에 보내 재입양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대개는 돈을 주고 어딘가로 팔아넘깁니다. 개 식용 문화가 있는 이 나라에서 어디로 팔려나갈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 유기·유실 동물 한해 10만 마리…'처리'는?

개장수가 법을 지켜 보호소로 보낸다고 해도, 적지 않은 보호소들은 수많은 유기견들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됩니다. 2017년 정부 통계로 유기·유실 동물 수가 10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이 또한 해마다 늘고 있는데,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의 어두운 면이라 하겠습니다.

이 10만여 마리에 대한 처리 결과는, 분양 30%, 자연사 27%, 안락사 20% 순입니다. 4만에서 5만마리는 보호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이 숫자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출간돼 화제가 된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著)에는 그 악순환 구조에 대해 면밀한 취재 결과가 담겨있습니다. 전국의 개농장과 번식장, 보호소 등을 조사한 심층 르포입니다.

책에서는 일부 보호소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보신탕집에 팔아넘긴 뒤 '분양'했다고 속이는 경우가 허다한 사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연사' 역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동물을 그냥 방치하는 경우를 말하기도 합니다. '안락사'의 경우 마취제 없이 개들이 극도의 고통을 느끼며 독극물을 주입받기도 합니다. 분양, 자연사, 안락사, 모두 숫자로만 보고 넘겨선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대량 생산 → 대량 유기…'야만'의 악순환

이런 끔찍한 학대의 근본에는 동물 유기가 너무나도 많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유기견들이 이상향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로드무비로서 '언더독'은 그 유기의 악순환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개는 평균 생후 2개월 정도 어미 개와 함께 지내며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나라 애견숍에서 판매되는 강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 개로부터 떨어집니다. 몸집이 작아야 잘 팔리기 때문이랍니다. 이를 '구입'해온 사람은 기초 지식 없이 적절한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문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동물 유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구미 대다수 국가에서는 애견숍 자체가 없습니다. 승인받은 농장을 갖춘 브리더, 즉 공인된 사육자에게만 개를 입양보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보통 수백만 원의 입양비를 준비하고, 어미 개가 임신하기 전 브리더에게 예약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출산 때까지 기다리며 집 환경을 개에 맞춰 바꾸고, 개의 생활과 행동에 대한 기초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개를 집에 들이기까지의 당연한 과정입니다.

■'애호가'들만의 문제 아닌 '생명체의 권리'로 인식돼야

동물권 분야의 고전이 된 피터 싱어의 저서「동물 해방」은 1975년 출간돼 미국사회에 지적 충격을 안겨준책입니다. 이 책의 취지를 요약하자면, 예컨대 흑인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사람을 '흑인 애호가'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애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권리의 문제를 '좋아해도 되고 안 좋아해도 그만'인 '취향'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저자는 동물의 경우 역시 '애호'가 아닌 모든 생명체가 마땅히 갖는 '권리'의 문제로, 우리 마음가짐부터 법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화 '언더독'은 그런 차원에서, 기존에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과는 달리 동물권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출발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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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쓸모] 유기와 안락사, 그 끔찍한 악순환
    • 입력 2019-01-19 07:00:46
    • 수정2019-04-09 17: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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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진의 신작 애니메이션 '언더독'이 개봉했습니다. 최근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불법 안락사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반려동물 유기와 안락사,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언더독'은 주인공 뭉치가 주인으로부터 버려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뭉치는 다른 유기견들과 재개발 예정지에서 무리 지어 살게 됩니다. 유기견들은 개장수들의 표적이지요. 보호소에 보내 재입양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대개는 돈을 주고 어딘가로 팔아넘깁니다. 개 식용 문화가 있는 이 나라에서 어디로 팔려나갈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 유기·유실 동물 한해 10만 마리…'처리'는? 개장수가 법을 지켜 보호소로 보낸다고 해도, 적지 않은 보호소들은 수많은 유기견들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됩니다. 2017년 정부 통계로 유기·유실 동물 수가 10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이 또한 해마다 늘고 있는데,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의 어두운 면이라 하겠습니다. 이 10만여 마리에 대한 처리 결과는, 분양 30%, 자연사 27%, 안락사 20% 순입니다. 4만에서 5만마리는 보호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이 숫자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출간돼 화제가 된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著)에는 그 악순환 구조에 대해 면밀한 취재 결과가 담겨있습니다. 전국의 개농장과 번식장, 보호소 등을 조사한 심층 르포입니다. 책에서는 일부 보호소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보신탕집에 팔아넘긴 뒤 '분양'했다고 속이는 경우가 허다한 사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연사' 역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동물을 그냥 방치하는 경우를 말하기도 합니다. '안락사'의 경우 마취제 없이 개들이 극도의 고통을 느끼며 독극물을 주입받기도 합니다. 분양, 자연사, 안락사, 모두 숫자로만 보고 넘겨선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대량 생산 → 대량 유기…'야만'의 악순환 이런 끔찍한 학대의 근본에는 동물 유기가 너무나도 많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유기견들이 이상향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로드무비로서 '언더독'은 그 유기의 악순환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개는 평균 생후 2개월 정도 어미 개와 함께 지내며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나라 애견숍에서 판매되는 강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 개로부터 떨어집니다. 몸집이 작아야 잘 팔리기 때문이랍니다. 이를 '구입'해온 사람은 기초 지식 없이 적절한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문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동물 유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구미 대다수 국가에서는 애견숍 자체가 없습니다. 승인받은 농장을 갖춘 브리더, 즉 공인된 사육자에게만 개를 입양보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보통 수백만 원의 입양비를 준비하고, 어미 개가 임신하기 전 브리더에게 예약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출산 때까지 기다리며 집 환경을 개에 맞춰 바꾸고, 개의 생활과 행동에 대한 기초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개를 집에 들이기까지의 당연한 과정입니다. ■'애호가'들만의 문제 아닌 '생명체의 권리'로 인식돼야 동물권 분야의 고전이 된 피터 싱어의 저서「동물 해방」은 1975년 출간돼 미국사회에 지적 충격을 안겨준책입니다. 이 책의 취지를 요약하자면, 예컨대 흑인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사람을 '흑인 애호가'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애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권리의 문제를 '좋아해도 되고 안 좋아해도 그만'인 '취향'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저자는 동물의 경우 역시 '애호'가 아닌 모든 생명체가 마땅히 갖는 '권리'의 문제로, 우리 마음가짐부터 법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화 '언더독'은 그런 차원에서, 기존에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과는 달리 동물권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출발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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