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버블’의 상징이 된 고흐의 ‘해바라기’

입력 2019.01.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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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 ‘해바라기’ 1888년 유채 캔버스

〈 타박타박 도쿄 미술관 2 〉

- 38개의 황색톤으로 표현됐다는 '해바라기'
- 일본 버블기 막강한 자금력으로 구입

"다음 전시실로 들어가 왼쪽 벽면을 바라보자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이 미술관을 찾은 이유, 오직 저 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만난 순간이다.

고흐, 너무도 유명해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를 화가다. 인상파의 대표 화가라는 상투적 미술사적 해설부터,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초상화를 그린 화가라는 정신 병리학적 설명, 거기에 평생 자신의 작품은 단 한 점 밖에 팔지 못했지만 사후 그 누구보다 각광받았던 스토리까지...

하지만 어떤 설명도 그의 그림을 직접 봤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근거림과 감정의 요동침만큼 그를 온전히 알게 해주는 것은 없다.

프랑스의 밝은 여름 햇살만큼이나 빛나는 채도 속에 해바라기도 화병도 배경도 전부 각각의 노란빛으로 빛난다. 초록 노랑, 아보카도 속살 같은 노랑, 황금빛 노랑, 회백색 노랑, 풀잎 노랑, 갈잎 노랑, 붉은 노랑...심지어 검은노랑까지...

저 그림 속에 숨 쉬는 색을 전부 표현하지 못하는 건, 국어의 한계일까? 내 표현력의 부족일까? 어두운 색이 없는데도 밝음 속에 또 밝음이, 그 각각이 모두 다 다 빛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도쿄에서 생애 처음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를 만난 날 그림 앞에 앉아 휘갈긴 메모를 들춰보니 새삼 그날 내가 받은 감각적 벅참의 크기가 남달랐다는 것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그 후 몇 차례 또 해바라기를 보러 갔지만 역시 첫날 받았던 임팩트가 가장 컸던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는 모두 6점이 존재하는데, 개인 소장품을 제외하고 대중에게 공개된 5개 작품 중 한 점이 도쿄에 있다. 오늘은 그 해바라기를 만나보려고 한다.

38개의 황색톤으로 표현됐다는 '해바라기'

고흐가 해바라기를 처음 그린 것은 1888년이다. 고흐가 머물던 파리 근교 아를로 올 예정이었던 친우 고갱을 위해, 고흐는 그가 사용할 침실을 해바라기 그림으로 꾸며 맞으려 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1988년 여름 그려진 2개의 작품이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뮌헨 노이 피나코테크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해바라기'다.

그리고 이후 작품이 추가돼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 그리고 도쿄 신주쿠에 있는 '손포 재팬 닛폰 코아 미술관' 등 현재 세계 5곳의 미술관에서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조금씩 연관성과 상이성을 갖는데, 도쿄에 있는 해바라기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를 보고 그렸다고 추정되는 작품이다. 두 그림이 일부 색상 톤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같은 구도에 같은 대상으로 그린 작품이어서 한때 '모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고흐 미술관 등 전문가 감정 끝에 도쿄의 작품도 진품으로 판명이 났다.

앞서 도쿄의 '해바라기'를 두고 빛나는 노란빛의 향연에 대해 표현했지만, 실제 고흐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에 있는 해바라기의 경우 38개의 각기 다른 황색톤으로 표현되고 있어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룬다고 한다.

버블의 상징이 된 '해바라기'


현재 도쿄에서 해바라기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은 일본의 보험회사인 '손보 재팬 닛폰 코아'다. 1988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87년 구입한 작품이 '해바라기'이다.

해바라기가 이 회사가 세워졌던 1888년, 같은 해 그려졌던 만큼 이 작품을 사들여 기념하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쪽과 치열한 경쟁 끝에 낙찰받은 가격은 53억 엔. 현재 우리 돈 530억 원 정도로 당시 회화 거래 가격으로 신기록을 세우며 '해바라기'는 일본의 품에 안겼다.

1988년은 일본의 거품 경제가 정점으로 치닫던 때로 당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자산을 사들이던 일본 경제의 막강한 힘은 세계 최고가 기록까지 갈아치우며 '해바라기'를 사오기까지에 이르렀다.

1989년 미쓰비시가 뉴욕의 자존심이라는 '록펠러 빌딩'을 사면서 미국에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었는데, 뉴욕에서 버블의 상징이 일본 것이 됐던 '록펠러 빌딩'이라면 도쿄에서 버블의 상징은 어쩌면 저 '해바라기'일지도 모른다.

지난 20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약 5,000억 원에 낙찰됐고, 해바라기가 낙찰된 몇 년 뒤인 1990년 고흐의 또 다른 작품이 8,250만 달러(약 900억 원)에 낙찰된 것을 감안하면 현재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버블의 힘(?)으로 일본의 것이 된 '해바라기'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그림 한 점으로 이 미술관은 2017년 기준 18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일본 내 손꼽히는 미술관이 될 수 있었다.

고갱과 고흐...그리고 세잔

고갱 ‘아를의 알샹프 가로수 길’ 1888년. 유채 캔버스고갱 ‘아를의 알샹프 가로수 길’ 1888년. 유채 캔버스

세잔 ‘사과와 냅킨’ 1879~80년. 유채 캔버스세잔 ‘사과와 냅킨’ 1879~80년. 유채 캔버스

고흐의 해바라기 양옆으로는 '세잔'과 '고갱'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특히 고갱은 고흐가 직접 해바라기를 그리는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으로 이후 '해바라기' 그림을 요청하기도 했던 인연도 가지고 있다.

특히 고갱의 작품은 1888년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렸을 당시 고갱이 캠버스를 사들여 절반은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으로 자기 그림을 그린 것으로 두 그림의 인연을 알고 나면 또 흥미로워지는 부분이 있다.

고갱과 세잔의 작품은 '해바라기'를 구입한 1년 뒤 각각 7억 9,000만 엔(고갱), 23억 엔(세잔)을 주고 산 작품들이다. 역시 버블의 힘이었을까? 하지만 그 당시 쌓은 부의 문화적 혜택은 온전히 현재의 일본 사람들이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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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0 12:00:14
    특파원 리포트
▲ 고흐 ‘해바라기’ 1888년 유채 캔버스

〈 타박타박 도쿄 미술관 2 〉

- 38개의 황색톤으로 표현됐다는 '해바라기'
- 일본 버블기 막강한 자금력으로 구입

"다음 전시실로 들어가 왼쪽 벽면을 바라보자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이 미술관을 찾은 이유, 오직 저 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만난 순간이다.

고흐, 너무도 유명해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를 화가다. 인상파의 대표 화가라는 상투적 미술사적 해설부터,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초상화를 그린 화가라는 정신 병리학적 설명, 거기에 평생 자신의 작품은 단 한 점 밖에 팔지 못했지만 사후 그 누구보다 각광받았던 스토리까지...

하지만 어떤 설명도 그의 그림을 직접 봤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근거림과 감정의 요동침만큼 그를 온전히 알게 해주는 것은 없다.

프랑스의 밝은 여름 햇살만큼이나 빛나는 채도 속에 해바라기도 화병도 배경도 전부 각각의 노란빛으로 빛난다. 초록 노랑, 아보카도 속살 같은 노랑, 황금빛 노랑, 회백색 노랑, 풀잎 노랑, 갈잎 노랑, 붉은 노랑...심지어 검은노랑까지...

저 그림 속에 숨 쉬는 색을 전부 표현하지 못하는 건, 국어의 한계일까? 내 표현력의 부족일까? 어두운 색이 없는데도 밝음 속에 또 밝음이, 그 각각이 모두 다 다 빛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도쿄에서 생애 처음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를 만난 날 그림 앞에 앉아 휘갈긴 메모를 들춰보니 새삼 그날 내가 받은 감각적 벅참의 크기가 남달랐다는 것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그 후 몇 차례 또 해바라기를 보러 갔지만 역시 첫날 받았던 임팩트가 가장 컸던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는 모두 6점이 존재하는데, 개인 소장품을 제외하고 대중에게 공개된 5개 작품 중 한 점이 도쿄에 있다. 오늘은 그 해바라기를 만나보려고 한다.

38개의 황색톤으로 표현됐다는 '해바라기'

고흐가 해바라기를 처음 그린 것은 1888년이다. 고흐가 머물던 파리 근교 아를로 올 예정이었던 친우 고갱을 위해, 고흐는 그가 사용할 침실을 해바라기 그림으로 꾸며 맞으려 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1988년 여름 그려진 2개의 작품이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뮌헨 노이 피나코테크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해바라기'다.

그리고 이후 작품이 추가돼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 그리고 도쿄 신주쿠에 있는 '손포 재팬 닛폰 코아 미술관' 등 현재 세계 5곳의 미술관에서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조금씩 연관성과 상이성을 갖는데, 도쿄에 있는 해바라기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를 보고 그렸다고 추정되는 작품이다. 두 그림이 일부 색상 톤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같은 구도에 같은 대상으로 그린 작품이어서 한때 '모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고흐 미술관 등 전문가 감정 끝에 도쿄의 작품도 진품으로 판명이 났다.

앞서 도쿄의 '해바라기'를 두고 빛나는 노란빛의 향연에 대해 표현했지만, 실제 고흐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에 있는 해바라기의 경우 38개의 각기 다른 황색톤으로 표현되고 있어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룬다고 한다.

버블의 상징이 된 '해바라기'


현재 도쿄에서 해바라기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은 일본의 보험회사인 '손보 재팬 닛폰 코아'다. 1988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87년 구입한 작품이 '해바라기'이다.

해바라기가 이 회사가 세워졌던 1888년, 같은 해 그려졌던 만큼 이 작품을 사들여 기념하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쪽과 치열한 경쟁 끝에 낙찰받은 가격은 53억 엔. 현재 우리 돈 530억 원 정도로 당시 회화 거래 가격으로 신기록을 세우며 '해바라기'는 일본의 품에 안겼다.

1988년은 일본의 거품 경제가 정점으로 치닫던 때로 당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자산을 사들이던 일본 경제의 막강한 힘은 세계 최고가 기록까지 갈아치우며 '해바라기'를 사오기까지에 이르렀다.

1989년 미쓰비시가 뉴욕의 자존심이라는 '록펠러 빌딩'을 사면서 미국에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었는데, 뉴욕에서 버블의 상징이 일본 것이 됐던 '록펠러 빌딩'이라면 도쿄에서 버블의 상징은 어쩌면 저 '해바라기'일지도 모른다.

지난 20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약 5,000억 원에 낙찰됐고, 해바라기가 낙찰된 몇 년 뒤인 1990년 고흐의 또 다른 작품이 8,250만 달러(약 900억 원)에 낙찰된 것을 감안하면 현재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버블의 힘(?)으로 일본의 것이 된 '해바라기'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그림 한 점으로 이 미술관은 2017년 기준 18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일본 내 손꼽히는 미술관이 될 수 있었다.

고갱과 고흐...그리고 세잔

고갱 ‘아를의 알샹프 가로수 길’ 1888년. 유채 캔버스
세잔 ‘사과와 냅킨’ 1879~80년. 유채 캔버스
고흐의 해바라기 양옆으로는 '세잔'과 '고갱'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특히 고갱은 고흐가 직접 해바라기를 그리는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으로 이후 '해바라기' 그림을 요청하기도 했던 인연도 가지고 있다.

특히 고갱의 작품은 1888년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렸을 당시 고갱이 캠버스를 사들여 절반은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으로 자기 그림을 그린 것으로 두 그림의 인연을 알고 나면 또 흥미로워지는 부분이 있다.

고갱과 세잔의 작품은 '해바라기'를 구입한 1년 뒤 각각 7억 9,000만 엔(고갱), 23억 엔(세잔)을 주고 산 작품들이다. 역시 버블의 힘이었을까? 하지만 그 당시 쌓은 부의 문화적 혜택은 온전히 현재의 일본 사람들이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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