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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45자까지 OK, 초과하면 NO?”…‘흉기 112신고 사건’의 전말
입력 2019.01.22 (17:10) 수정 2019.01.22 (17:34) 취재후
[취재후] “45자까지 OK, 초과하면 NO?”…‘흉기 112신고 사건’의 전말
사건의 발단, 파란 패딩을 입은 남성의 등장

지난 19일 토요일 밤 10시 반쯤, 23살 여성 김 모 씨는 친구와 함께 서울 당산역 부근에서 마을버스에 탔습니다. 두 사람은 제일 뒷자리에 앉았고 이후 버스에 승객들이 들어찼습니다.

파란 패딩을 입은 20대 남성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됐습니다. 이 남성은 버스에 타자마자 주변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바로 옆에 서 있던 여성도 결국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 모 씨 / 목격자
"비집고 들어오면서 욕설을 하면서 들어왔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눈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X발 걸리적 거리네 이렇게 얘기해서 그분이 비키셨고..."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서 칼날을 넣다 뺐고 허공에 휘두르기까지 했습니다.

김 모 씨
"커터칼을 꺼내면서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가만히 있다가 자기 앞을 휘두르면서 "걸리적거린다 가까이 오기만 해봐라." 이러면서 걸리적거린다고 얘기했고..."

■목격자, 112문자 신고...경찰, 5분 만에 출동


김 씨는 이를 목격하자마자 인상착의 등을 112 문자 메시지로 신고했습니다. 신고 사실을 모르게 해달라는 메시지까지 보냈습니다. 이후 두 차례 경찰과 통화하며 버스의 번호와 현재 위치까지 알렸습니다. 신고 후 5분 만에 다음 정류장에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서 있던 남성은 경찰을 보자마자 이동해 김 씨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김 모 씨
"저희를 비집고 들어와서 저희 왼쪽에 앉아있던 상황이었고, 친구는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느끼기에도 상당히 무서워했거든요. 덜덜 떨어서 저도 얼었으니까..."

김 씨는 극도의 두려움에 빠졌지만 출동한 경찰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순식간에 공포로 변했습니다.

경찰은 우선 버스 기사에게 소란이 있었는지 물었는데 "모르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뒷문으로 가서 큰소리로 "신고자가 있느냐"라고 두 차례 물었는데 버스에는 정적만 흘렀습니다. 흉기를 든 남성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내가 신고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이번엔 김 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씨는 신고 사실이 노출될까 봐 전화를 계속 끊어야 했습니다. 신고자가 나타나지 않자 경찰은 현장을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김 모 씨
"경찰들이 '신고자 없으니까 내리자.' 이렇게 얘기를 했고. 남성이 처음 칼을 꺼냈을 때보다 경찰들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내리겠다고 했을 때 더 큰 위협을 느꼈거든요."

그러자 다른 승객이 "지금 철수를 하면 신고자는 어떻게 되는 거냐"며, 경찰에 항의했고 몇 분간의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김 씨 등은 버스에서 도망치듯 내리며 신고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렸습니다.

김 모 씨
친구가 내렸고 저도 따라서 내렸는데 밖에 있는 경찰에게 맨 뒷자리 왼쪽에 앉아있는 금발 머리 파란 패딩 남자니까 오른쪽 주머니에 칼이 있으니까 조사를 해달라고 하고 택시를 잡고 집에 갔어요

이후 경찰은 남성을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에 남은 승객들에게 물었습니다. 승객들은 남성이 욕설은 했지만, 흉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결국, 피해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남성의 신원만 확인하고 귀가 조처했습니다.

■ "커터칼 들고 있습니다"가 물음표(?)로 바뀐 이유는?

그런데 경찰의 안일한 대응보다 더욱 어이가 없는 일이 드러났습니다. 남성이 흉기를 가지고있다는 신고 내용을 출동 경찰관들이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통화내용
경찰 : 선생님이 문자 주신 신고내역 112시스템 내용을 보면 파란 패딩 입은 남자가 욕하고 여기까지가 끊어져 있어요. 버스 안에서 어떤 욕설이라든지 행태가 있었구나 이렇게 알고...
김 모 씨: "욕설하며 커터칼 들고 있습니다."까지 써서 보냈거든요?
경찰 : 저희 시스템에는 그렇게 접수가 돼 있어요


경찰에 접수된 신고 내용에는 커터칼을 들고 있다는 내용은 빠져 있고 대신에 물음표만 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글로 45자까지만 접수되는 112문자 신고시스템의 허점이 있었습니다.

112자 문자신고 시스템은 2003년 서울지방경찰청에 처음 도입됐는데, 당시에는 단문 문자메시지의 최대 용량은 한글로 45자였습니다. 71자 이상이면 MMS, 멀티 메시지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초기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단문 메시지 최대 용량을 45자로 설정했습니다.

이후 문자신고 시스템은 2013년 1월 전국으로 확대 시행됐습니다. 그런데 2014년 7월에 단문 메시지 최대 용량이 70자까지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스템 설정 값은 여전히 최대 용량이 45자에 머물러 있던 겁니다. 때문에 46자부터 70자 사이 메시지는 자동으로 삭제되는 일종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이러한 오류를 처음 알았습니다. 첫 보도가 나간 다음날 경찰청은 서버를 관리하는 통신사와 긴급 협의를 했고, 당일 저녁 5시 반에 시작해 7시에 시스템 오류 작업을 모두 마쳤습니다. 1시간 30분이면 개선할 수 있었던 오류가 5년 동안이나 방치된 셈입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류 발생 기간 동안 삭제된 112문자 신고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이라도 오류를 바로잡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위급한 상황에서 중요한 현장 정보를 45글자 이상으로 적어보내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신고자는 없었을까요? 이번 사례가 보도 안됐다면 아직도 45자 이상의 문자 신고는 잘린 상태로 경찰에 전달되고 있을 겁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전방에 있는 경찰의 보다 세심한 112신고 시스템 관리가 아쉽습니다.
  • [취재후] “45자까지 OK, 초과하면 NO?”…‘흉기 112신고 사건’의 전말
    • 입력 2019.01.22 (17:10)
    • 수정 2019.01.22 (17:34)
    취재후
[취재후] “45자까지 OK, 초과하면 NO?”…‘흉기 112신고 사건’의 전말
사건의 발단, 파란 패딩을 입은 남성의 등장

지난 19일 토요일 밤 10시 반쯤, 23살 여성 김 모 씨는 친구와 함께 서울 당산역 부근에서 마을버스에 탔습니다. 두 사람은 제일 뒷자리에 앉았고 이후 버스에 승객들이 들어찼습니다.

파란 패딩을 입은 20대 남성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됐습니다. 이 남성은 버스에 타자마자 주변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바로 옆에 서 있던 여성도 결국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 모 씨 / 목격자
"비집고 들어오면서 욕설을 하면서 들어왔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눈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X발 걸리적 거리네 이렇게 얘기해서 그분이 비키셨고..."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서 칼날을 넣다 뺐고 허공에 휘두르기까지 했습니다.

김 모 씨
"커터칼을 꺼내면서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가만히 있다가 자기 앞을 휘두르면서 "걸리적거린다 가까이 오기만 해봐라." 이러면서 걸리적거린다고 얘기했고..."

■목격자, 112문자 신고...경찰, 5분 만에 출동


김 씨는 이를 목격하자마자 인상착의 등을 112 문자 메시지로 신고했습니다. 신고 사실을 모르게 해달라는 메시지까지 보냈습니다. 이후 두 차례 경찰과 통화하며 버스의 번호와 현재 위치까지 알렸습니다. 신고 후 5분 만에 다음 정류장에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서 있던 남성은 경찰을 보자마자 이동해 김 씨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김 모 씨
"저희를 비집고 들어와서 저희 왼쪽에 앉아있던 상황이었고, 친구는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느끼기에도 상당히 무서워했거든요. 덜덜 떨어서 저도 얼었으니까..."

김 씨는 극도의 두려움에 빠졌지만 출동한 경찰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순식간에 공포로 변했습니다.

경찰은 우선 버스 기사에게 소란이 있었는지 물었는데 "모르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뒷문으로 가서 큰소리로 "신고자가 있느냐"라고 두 차례 물었는데 버스에는 정적만 흘렀습니다. 흉기를 든 남성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내가 신고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이번엔 김 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씨는 신고 사실이 노출될까 봐 전화를 계속 끊어야 했습니다. 신고자가 나타나지 않자 경찰은 현장을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김 모 씨
"경찰들이 '신고자 없으니까 내리자.' 이렇게 얘기를 했고. 남성이 처음 칼을 꺼냈을 때보다 경찰들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내리겠다고 했을 때 더 큰 위협을 느꼈거든요."

그러자 다른 승객이 "지금 철수를 하면 신고자는 어떻게 되는 거냐"며, 경찰에 항의했고 몇 분간의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김 씨 등은 버스에서 도망치듯 내리며 신고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렸습니다.

김 모 씨
친구가 내렸고 저도 따라서 내렸는데 밖에 있는 경찰에게 맨 뒷자리 왼쪽에 앉아있는 금발 머리 파란 패딩 남자니까 오른쪽 주머니에 칼이 있으니까 조사를 해달라고 하고 택시를 잡고 집에 갔어요

이후 경찰은 남성을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에 남은 승객들에게 물었습니다. 승객들은 남성이 욕설은 했지만, 흉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결국, 피해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남성의 신원만 확인하고 귀가 조처했습니다.

■ "커터칼 들고 있습니다"가 물음표(?)로 바뀐 이유는?

그런데 경찰의 안일한 대응보다 더욱 어이가 없는 일이 드러났습니다. 남성이 흉기를 가지고있다는 신고 내용을 출동 경찰관들이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통화내용
경찰 : 선생님이 문자 주신 신고내역 112시스템 내용을 보면 파란 패딩 입은 남자가 욕하고 여기까지가 끊어져 있어요. 버스 안에서 어떤 욕설이라든지 행태가 있었구나 이렇게 알고...
김 모 씨: "욕설하며 커터칼 들고 있습니다."까지 써서 보냈거든요?
경찰 : 저희 시스템에는 그렇게 접수가 돼 있어요


경찰에 접수된 신고 내용에는 커터칼을 들고 있다는 내용은 빠져 있고 대신에 물음표만 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글로 45자까지만 접수되는 112문자 신고시스템의 허점이 있었습니다.

112자 문자신고 시스템은 2003년 서울지방경찰청에 처음 도입됐는데, 당시에는 단문 문자메시지의 최대 용량은 한글로 45자였습니다. 71자 이상이면 MMS, 멀티 메시지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초기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단문 메시지 최대 용량을 45자로 설정했습니다.

이후 문자신고 시스템은 2013년 1월 전국으로 확대 시행됐습니다. 그런데 2014년 7월에 단문 메시지 최대 용량이 70자까지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스템 설정 값은 여전히 최대 용량이 45자에 머물러 있던 겁니다. 때문에 46자부터 70자 사이 메시지는 자동으로 삭제되는 일종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이러한 오류를 처음 알았습니다. 첫 보도가 나간 다음날 경찰청은 서버를 관리하는 통신사와 긴급 협의를 했고, 당일 저녁 5시 반에 시작해 7시에 시스템 오류 작업을 모두 마쳤습니다. 1시간 30분이면 개선할 수 있었던 오류가 5년 동안이나 방치된 셈입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류 발생 기간 동안 삭제된 112문자 신고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이라도 오류를 바로잡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위급한 상황에서 중요한 현장 정보를 45글자 이상으로 적어보내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신고자는 없었을까요? 이번 사례가 보도 안됐다면 아직도 45자 이상의 문자 신고는 잘린 상태로 경찰에 전달되고 있을 겁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전방에 있는 경찰의 보다 세심한 112신고 시스템 관리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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