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심문만 6개월”…누가봐도 중국 인질인데

입력 2019.01.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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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부에 구금된 호주국적 시사 평론가 양헝쥔


중국 정부 또 호주국적 시사 평론가 '억류'

이번엔 호주국적의 중국계 시사 평론가 '양헝쥔'이다. 호주 정부는 양훵쥔이 중국 정보기관에 체포돼 억류 중이라는 사실을 23일 공식 확인했다. 중국 하이난성 공무원이었던 양헝쥔은 시드니기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0년 호주 국적을 취득한 인물이다. 호주 매체는 양헝쥔이 지난 19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 도착했고, 부인, 자녀와 함께 상하이에 있는 친지를 방문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양헝쥔은 SNS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글을 게재해 왔다. 중국 공산당 체제에 반대하는, 중국 공무원 이력을 가진 인물. 그의 글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만 명의 중국 청년들이 시드니에서 사실상의 시위를 벌이자, 중국이 호주 내정에 간섭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외신들은 중국 정보기관의 양헝쥔 체포를 두고,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 체포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호주정부가 중국에서 체포된 2명의 캐나다인 사건을 두고 '인질 외교'라며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 체포된 캐나다 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프릭중국 정부에 체포된 캐나다 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프릭

캐나다인 2명 40여 일째 구금 중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힘까지 빌렸지만, 마이클 코브릭과 마이클 스페이버 구금 사건은 한 달을 넘겨 40여 일 째에 접어들었다. 캐나다 총리실은 "트뤼도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중국 정부가 두 사람을 체포한 것은 '임의적인 구금'이라며 두 정상이 독립적인 사법 절차와 법의 지배 원칙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중국 외교부는 12월 8일 주중국 캐나다 대사를 불러, '멍완저우 CFO'를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면서 그렇지 않으면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경고 이틀 뒤 캐나다 국적의 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브릭과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를 체포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당시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캐나다인 억류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체포에 대한 보복이라며, 이는 중국의 일관된 보복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중국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어, 멍완저우 부회장처럼 보석도 불가능하다.

매번 꺼내 든 카드는 '국가안보'

중국 외교부가 밝힌 3명의 체포 사유는 '국가안전 위해(危害)' 혐의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23일 "베이징 국가안전국이 양헝쥔(중국 정부가 밝힌 이름은 양쥔楊軍 이다)을 중국의 국가 안전을 해치는 범죄 활동을 한 혐의로 강제 조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3일 중국 외교부는 마이클 코브릭, 마이클 스페이버 체포에 대해서도 "사안의 성격으로 볼 때 두 사람 모두 중국 안보에 피해를 주는 활동에 종사했고, 베이징시와 랴오닝성 안보 당국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멍완저우 사안과 연관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중국은 법과 규정에 따라 행동한다"고 답했다.

중국 정부가 체포한 외국인 3명에 대해 적용한 법규는 2015년 7월 개정한 '국가안전법'이다. 1993년 제정된 과거의 국가안전법을 대체한 이 법은 국가안보의 개념을 크게 확대한 까닭에 제정 당시 국제사회의 우려가 제기됐다. 국가안보의 범위를 '국가 전복과 분열 선동, 매국 행위, 국가기밀 누설' 등 기존 개념뿐 아니라, 금융, 경제, 식량, 인터넷, 종교, 심지어 우주와 해저 부분까지 확장했기 때문이다.

2015년 9월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ZEID Raad Al Hussein)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중국의 새 국가안전법에서 정의한 국가안보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여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윌리엄 니 국제앰네스티 중국 연구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안전법의 적용 범위가 넓어, 정부 비판도 범죄로 취급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체포된 3명이 국가안전법상 어떤 부분을 위반했는지 아직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광범위한 국가안보 정의 탓에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 억류 2년 만에 석방된 캐나다인 케빈 캐럿 씨, 2016년 9월중국 억류 2년 만에 석방된 캐나다인 케빈 캐럿 씨, 2016년 9월

"심문만 6개월, 영사접견은 한 달에 한 번"

중국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치게 될까? 이를 짐작게 하는 사건이 2014년 발생했다. 이른바 '개럿 부부'사건이다. 캐나다 정부는 2014년 7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중국인 사업가 쑤빈을 체포한다. 미국 국방부 계약업체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 군사 기밀을 훔친 혐의였다.(쑤빈은 미국으로 인도돼 2016년 범죄 공모죄를 인정, 4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정부는 쑤빈이 중국 군인과 공모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 발생 한 달 뒤 중국 정부는 북·중 접경도시 단둥에서 캐나다인 2명을 전격 체포한다. 케빈 개럿과 줄리아 개럿 부부다. 30년 동안 단둥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던 이 부부가 체포된 이유는 군사정보 절취와 스파이 혐의. 이를 두고 당시 캐나다 정부는 '인질 외교'라며 석방을 요구했지만, 케빈 개럿이 석방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중국 국가안전법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는 최장 6개월까지 심문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적 조력 없이 구금된 상태로 꼬박 6개월 동안 심문을 받는다면 이를 당해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케빈 개럿은 최근 미국 C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심정을 털어놓았다. "좁은 방에 다른 14명과 함께 수용돼, 한 달에 한 번, 딱 30분만 허용된 캐나다 대사관 직원과의 면담 외에는 방에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케빈 개럿은 2016년 9월 석방돼 캐나다로 돌아갔다. 심문과 구금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했고, 구금 기간에 발생한 비용도 모두 지급해야 했다. 부인 줄리아 개럿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그래도 중국 당국이 좀 달라졌으랴 생각했는데, 누가 알아겠느냐, 이것(마이클 코프릭, 마이클 스페이버 사건)은 다름 아닌 보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안전의 개념이 국가의 생존문제뿐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관련한 문제까지 포함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터져 나오는 외국인 구금 사건은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한다. '누가 보더라도 인질인데...' 중국 정부만 아니라고 한다. 과연 중국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나라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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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7 10:00:52
    특파원 리포트
▲ 중국 정부에 구금된 호주국적 시사 평론가 양헝쥔


중국 정부 또 호주국적 시사 평론가 '억류'

이번엔 호주국적의 중국계 시사 평론가 '양헝쥔'이다. 호주 정부는 양훵쥔이 중국 정보기관에 체포돼 억류 중이라는 사실을 23일 공식 확인했다. 중국 하이난성 공무원이었던 양헝쥔은 시드니기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0년 호주 국적을 취득한 인물이다. 호주 매체는 양헝쥔이 지난 19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 도착했고, 부인, 자녀와 함께 상하이에 있는 친지를 방문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양헝쥔은 SNS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글을 게재해 왔다. 중국 공산당 체제에 반대하는, 중국 공무원 이력을 가진 인물. 그의 글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만 명의 중국 청년들이 시드니에서 사실상의 시위를 벌이자, 중국이 호주 내정에 간섭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외신들은 중국 정보기관의 양헝쥔 체포를 두고,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 체포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호주정부가 중국에서 체포된 2명의 캐나다인 사건을 두고 '인질 외교'라며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 체포된 캐나다 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프릭
캐나다인 2명 40여 일째 구금 중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힘까지 빌렸지만, 마이클 코브릭과 마이클 스페이버 구금 사건은 한 달을 넘겨 40여 일 째에 접어들었다. 캐나다 총리실은 "트뤼도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중국 정부가 두 사람을 체포한 것은 '임의적인 구금'이라며 두 정상이 독립적인 사법 절차와 법의 지배 원칙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중국 외교부는 12월 8일 주중국 캐나다 대사를 불러, '멍완저우 CFO'를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면서 그렇지 않으면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경고 이틀 뒤 캐나다 국적의 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브릭과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를 체포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당시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캐나다인 억류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체포에 대한 보복이라며, 이는 중국의 일관된 보복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중국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어, 멍완저우 부회장처럼 보석도 불가능하다.

매번 꺼내 든 카드는 '국가안보'

중국 외교부가 밝힌 3명의 체포 사유는 '국가안전 위해(危害)' 혐의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23일 "베이징 국가안전국이 양헝쥔(중국 정부가 밝힌 이름은 양쥔楊軍 이다)을 중국의 국가 안전을 해치는 범죄 활동을 한 혐의로 강제 조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3일 중국 외교부는 마이클 코브릭, 마이클 스페이버 체포에 대해서도 "사안의 성격으로 볼 때 두 사람 모두 중국 안보에 피해를 주는 활동에 종사했고, 베이징시와 랴오닝성 안보 당국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멍완저우 사안과 연관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중국은 법과 규정에 따라 행동한다"고 답했다.

중국 정부가 체포한 외국인 3명에 대해 적용한 법규는 2015년 7월 개정한 '국가안전법'이다. 1993년 제정된 과거의 국가안전법을 대체한 이 법은 국가안보의 개념을 크게 확대한 까닭에 제정 당시 국제사회의 우려가 제기됐다. 국가안보의 범위를 '국가 전복과 분열 선동, 매국 행위, 국가기밀 누설' 등 기존 개념뿐 아니라, 금융, 경제, 식량, 인터넷, 종교, 심지어 우주와 해저 부분까지 확장했기 때문이다.

2015년 9월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ZEID Raad Al Hussein)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중국의 새 국가안전법에서 정의한 국가안보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여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윌리엄 니 국제앰네스티 중국 연구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안전법의 적용 범위가 넓어, 정부 비판도 범죄로 취급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체포된 3명이 국가안전법상 어떤 부분을 위반했는지 아직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광범위한 국가안보 정의 탓에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 억류 2년 만에 석방된 캐나다인 케빈 캐럿 씨, 2016년 9월
"심문만 6개월, 영사접견은 한 달에 한 번"

중국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치게 될까? 이를 짐작게 하는 사건이 2014년 발생했다. 이른바 '개럿 부부'사건이다. 캐나다 정부는 2014년 7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중국인 사업가 쑤빈을 체포한다. 미국 국방부 계약업체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 군사 기밀을 훔친 혐의였다.(쑤빈은 미국으로 인도돼 2016년 범죄 공모죄를 인정, 4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정부는 쑤빈이 중국 군인과 공모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 발생 한 달 뒤 중국 정부는 북·중 접경도시 단둥에서 캐나다인 2명을 전격 체포한다. 케빈 개럿과 줄리아 개럿 부부다. 30년 동안 단둥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던 이 부부가 체포된 이유는 군사정보 절취와 스파이 혐의. 이를 두고 당시 캐나다 정부는 '인질 외교'라며 석방을 요구했지만, 케빈 개럿이 석방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중국 국가안전법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는 최장 6개월까지 심문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적 조력 없이 구금된 상태로 꼬박 6개월 동안 심문을 받는다면 이를 당해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케빈 개럿은 최근 미국 C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심정을 털어놓았다. "좁은 방에 다른 14명과 함께 수용돼, 한 달에 한 번, 딱 30분만 허용된 캐나다 대사관 직원과의 면담 외에는 방에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케빈 개럿은 2016년 9월 석방돼 캐나다로 돌아갔다. 심문과 구금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했고, 구금 기간에 발생한 비용도 모두 지급해야 했다. 부인 줄리아 개럿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그래도 중국 당국이 좀 달라졌으랴 생각했는데, 누가 알아겠느냐, 이것(마이클 코프릭, 마이클 스페이버 사건)은 다름 아닌 보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안전의 개념이 국가의 생존문제뿐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관련한 문제까지 포함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터져 나오는 외국인 구금 사건은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한다. '누가 보더라도 인질인데...' 중국 정부만 아니라고 한다. 과연 중국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나라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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