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영하 40도 극한에서 ‘안전’을 위해 질주한다
입력 2019.01.27 (14:01)
수정 2019.01.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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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철새' 자동차 연구원들의 도래지 중국 '헤이허(黑河)'
1년 내내 추위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영하 20도는 기본이고 영하 30도, 40도까지 떨어지면 더 반가워한다. 자동차 동계 테스트를 하는 연구원들이다.
자동차는 2만여 개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신차 출시에 앞서 완성차 업체와 부품 개발 업체들은 각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주행과 제동에 문제가 없는지 실차 테스트(Vehicle Test)를 하게 된다. 많게는 수천 번 반복되는 시험 과정에서 극한의 환경은 데이터를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동차 연구원들은 추위를 찾아 세계를 헤맨다. 동계 테스트에는 평균 영하 10~20도의 기온을 가진 장애물이 없는 넓은 지역이 적합한데 최적의 장소로 꼽히는 건 추운 지역의 호숫가이다. 두께 1m씩 얼어붙는 거대한 호수가 천연 스노트랙(Snow Track)이 돼 주행 코스를 자유자재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동계 테스트 장소로 꼽히는 지역은 스웨덴의 아르예플로그(Arjeplog), 미국 미시건 주의 킨로스(Kinross), 중국 헤이룽장 성의 헤이허(黑河)이다. 신차 출시 준비는 일 년 내내 이뤄지기 때문에 여름에는 우리와 계절이 반대인 뉴질랜드 와나카(Wanaka)를 이용한다.

이 가운데 중국 헤이허는 뒤늦게 동계 시험장이 생겼지만 새로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북위 47도에서 51도에 걸쳐 있는 헤이허 시험장들은 겨울 평균 기온 영하 23도, 한겨울에는 영하 40도 아래로도 떨어져 동계 테스트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영하 40도 혹한이 만든 얼음 호수 위를 질주하다
헤이룽장 성 헤이허는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천 3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공항에서 다시 차로 20여 분 달려 취재진이 도착한 곳에는 여의도 면적의 1.6배의 달하는 480만 제곱미터 호수가 거대한 빙판이 돼 있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 얼음 두께는 85센티미터. 날이 더 추워지면 1미터까지 두꺼워진다고 한다.
극한의 환경을 찾아 스웨덴까지 가야 했던 2003년, 국내 자동차 부품 기업인 만도는 당시 아무도 관심 없던 얼음덩어리 호수를 중국 정부로부터 30년간 빌려 동계 주행 시험장을 만들었다.
동계 시험장은 크게 호수 트랙과 육상 트랙으로 나뉜다. 육상 트랙은 땅 위에 도심 주택로나 다양한 각도의 경사로를 재구성한 것이다. 취재진은 연구원이 운전하는 차량에 타고 호수 트랙에서 진행되는 시험에 참여해 봤다.
우선 차량의 자세를 제어해 주는 장치 ESC 테스트가 진행됐다. ESC 기능을 끈 채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장애물을 피해 봤다. 하지만 단 몇 번 만에 차체가 순식간에 가려던 방향 밖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고깔 모양의 장애물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하지만 ESC로 미끄러지는 바퀴의 브레이크를 잡아주니 훨씬 부드럽게 핸들링 됐다.

다음으로 진행한 건 브레이크 잠김 방지 시스템 ABS 테스트. 연구원의 안내를 받고 기자가 직접 운전해 봤다.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다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았다. ABS 없이 달릴 땐 앞바퀴가 그대로 멈춰버리며 차가 속절없이 빙판을 쭉 미끄러져 버렸지만, ABS가 작동하니 브레이크가 바퀴를 잡았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안정적으로 멈춰섰다. 동계 시험의 중요성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연구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트랙을 옮겨 다닌다. 차 한 대당 진행되는 시험 기간은 약 10주. 만도의 김세훈 수석연구원은 자동차에서 전기 전자로 제어되는 부품의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온도에 민감한 전자 부품이 혹한에 얼마나 잘 견디느냐는 운전자 안전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꼭꼭 숨겨라"…동계 테스트의 메카가 신차의 각축장으로
헤이허 시험장은 스웨덴보다 뒤늦게 형성됐지만 현재 사용 비중이 가장 높다. 헤이허에는 우리 기업을 시작으로 현재 12곳의 시험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겨울이면 전 세계에서 110여 개 자동차 기업들이 헤이허를 찾는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내에서 생산과 판매를 늘리면서 완성차와 부품사 간에 신속한 피드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등에 비해 저렴한 운영 비용도 헤이허를 선호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위장차가 이 작은 도시에선 곳곳에 출몰한다. 회사 이름조차 짐작할 수 없게 검은 막으로 꽁꽁 싸매거나 얼룩덜룩하게 코팅한 차들이 시내 곳곳을 누비는 진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출시를 앞둔 경쟁사의 차를 몰래 염탐하러 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고 귀띔했다.

헤이허의 날씨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기간은 일 년 중 단 석 달. 극한의 환경에서 세계인의 안전을 위한 테스트, 연구원들의 질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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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은 기자 imlif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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