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오도독] 손혜원의 이해상충을 기자들에게 적용한다면…

입력 2019.01.28 (07:02) 수정 2019.01.28 (07:1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실을 통해 금감원에 요청한 자료를 전달받은 건 2018년 10월쯤이었습니다. 거래소, 코스닥에 등록 및 상장된 기업들의 사외이사 명단이 궁금했습니다. 한국의 사외이사제도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경영진을 견제하거나 감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연, 학연 등에 얽혀 거수기 또는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국세청 고위 관료나 검찰 출신 변호사 등의 기업 로비 창구 역할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심도 받아왔지요.


예상대로 국세청 출신이 많았습니다.
3,750명의 사외이사 명단을 전직 경력으로 분류해보니 국세청 출신 관료들이 92명으로 최다를 차지했고, 검찰출신 변호사들이 84명,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61명, 금융감독원 출신이 52명,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이 25명 등이었습니다. 특별히 김앤장 출신(전, 현직)들이 많아서 이들을 따로 분류해보니 젼,현직 김앤장 변호사들도 44명이나 됐습니다.


검찰, 법원, 국세청이나 금융당국 출신의 선배들이 밖으로 나와 기업의 사외이사를 하며 정부에, 검찰에, 법원에 과연 어떤 로비나 청탁의 전화 한통이 오가지 않았을까요? 지연과 학연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오가지 않았을 거라, 모든 공직자 출신들이나 변호사 등은 각종의 이해상충으로부터 스스로에게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을 거라고 믿는 국민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해상충’의 문제를 비판해온 언론인들은 이 사외이사 명단에 없었는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꽤 많았습니다.


KBS 출신의 전직 간부들을 보면 전 보도국장, 전 경영본부장, 기자출신의 전 부사장, PD출신의 전 부사장, 전 방송문화연구소장, 전 스포츠국장, 전 편성부주간, 전 제작본부장, 전 정치부 차장, 전 보도본부 부장 등이 사외이사를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MBC는 부국장, 아나운서실장, 해설위원실 주간, 경제부장 등의 경력을 거친 사람들이 사외이사 명단에 들어 있었고, SBS는 전 사장, 전 보도본부장, 전 보도국장 등이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매일경제도 논설주간, 논설실장, 편집국장 이사, 주필, 편집국장 대우 등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MBN 역시 보도본부장, 수석논설위원, 해설위원, 앵커 출신이 기업 사외이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디지털조선의 고문, 동아일보와 한국경제신문의 논설실장이나 한국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문화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의 논설위원, 그리고 중앙일보 편집국장 등의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사외이사들입니다.


언론인 경력이 5년 미만으로 짧고, 이후 관료나 기업인 등으로 변신한 사람들은 제외했는데도 이 정도입니다. 누가 봐도 이 정도 경력이면 이 사람은 언론인이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 하나씩 추려서 그 숫자를 세어봤습니다. 총 41명이나 됩니다. 공정거래위 출신 25명보다 훨씬 많고, 김&장 출신 44명에 육박하는 숫자입니다.


이래서 한국사회는 정치,경제,관료,언론이 모두 유착되어 있는 '정경언 유착사회'라고 하나봅니다. 이렇게 끈끈히 유착되어 있는 풍경에서 벌어지는 행태 한 가지를 소개할까요? 현직 중앙 일간지 기자가 1년 여전 저에게 직접 말해준 자기가 다녔던 신문사 뉴스룸의 풍경입니다.


“세상에 타부서 부장이 다른 부원들이 다 듣는데도 아랑곳없이 전화를 해서 “그 크기에 1면으로 원하시면 2천만원입니다. 그 이하로는 안 되요” 하면서 취재원과 지면 인터뷰 기사를 가지고 가격 협상을 하는 거에요. 저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무슨 행사포럼 티켓까지 팔고 다녔어요.정부 00부 국장님이 많이 사주셔서 제가 사내에서 제일 많이 팔았다고 부장에게 칭찬도 들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자괴감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


공기업 사장이나 공공기관장, 민간기업 CEO 인터뷰 기사 등이 거래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언론계에서는 꽤 오래된 정설입니다. 공공기관 홍보팀장도 똑같은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줬습니다. 홍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왕 나가는 홍보비, 기관장 홍보성 인터뷰 기사로 나가주면 훨씬 모양새가 좋다는 것입니다. 홍보 '실적'이 된다는 것이지요. 신문사 입장에서는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도 돈을 받고, 광고 지면에는 또 다른 광고를 받을 수 있으니 거의 모든 지면을 광고로 팔아먹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누리게 되지요. 이른바 '경영 효율성'이 극대화된 작업이라고 할까요?


이게 한국언론의 자화상입니다. 2019년 오늘도 별반 달라진 게 없을 겁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지금 국회의원의 '이해상충'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손혜원 의원의 “이해상충”을 비판하는 언론인들이 정말 그렇게 자신들 스스로에게 떳떳합니까? 손 의원의 이해상충 이슈가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는 것이 꼭 손 의원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맹목적인‘정치적 편들기' 이기만 한 것일까요? 우리의 독자와 시청자들은 어쩌면 우리 언론인들에게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나 잘하세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한국언론 오도독] 손혜원의 이해상충을 기자들에게 적용한다면…
    • 입력 2019-01-28 07:02:15
    • 수정2019-01-28 07:11:54
    한국언론 오도독
정의당 추혜선 의원실을 통해 금감원에 요청한 자료를 전달받은 건 2018년 10월쯤이었습니다. 거래소, 코스닥에 등록 및 상장된 기업들의 사외이사 명단이 궁금했습니다. 한국의 사외이사제도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경영진을 견제하거나 감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연, 학연 등에 얽혀 거수기 또는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국세청 고위 관료나 검찰 출신 변호사 등의 기업 로비 창구 역할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심도 받아왔지요.


예상대로 국세청 출신이 많았습니다.
3,750명의 사외이사 명단을 전직 경력으로 분류해보니 국세청 출신 관료들이 92명으로 최다를 차지했고, 검찰출신 변호사들이 84명,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61명, 금융감독원 출신이 52명,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이 25명 등이었습니다. 특별히 김앤장 출신(전, 현직)들이 많아서 이들을 따로 분류해보니 젼,현직 김앤장 변호사들도 44명이나 됐습니다.


검찰, 법원, 국세청이나 금융당국 출신의 선배들이 밖으로 나와 기업의 사외이사를 하며 정부에, 검찰에, 법원에 과연 어떤 로비나 청탁의 전화 한통이 오가지 않았을까요? 지연과 학연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오가지 않았을 거라, 모든 공직자 출신들이나 변호사 등은 각종의 이해상충으로부터 스스로에게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을 거라고 믿는 국민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해상충’의 문제를 비판해온 언론인들은 이 사외이사 명단에 없었는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꽤 많았습니다.


KBS 출신의 전직 간부들을 보면 전 보도국장, 전 경영본부장, 기자출신의 전 부사장, PD출신의 전 부사장, 전 방송문화연구소장, 전 스포츠국장, 전 편성부주간, 전 제작본부장, 전 정치부 차장, 전 보도본부 부장 등이 사외이사를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MBC는 부국장, 아나운서실장, 해설위원실 주간, 경제부장 등의 경력을 거친 사람들이 사외이사 명단에 들어 있었고, SBS는 전 사장, 전 보도본부장, 전 보도국장 등이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매일경제도 논설주간, 논설실장, 편집국장 이사, 주필, 편집국장 대우 등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MBN 역시 보도본부장, 수석논설위원, 해설위원, 앵커 출신이 기업 사외이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디지털조선의 고문, 동아일보와 한국경제신문의 논설실장이나 한국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문화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의 논설위원, 그리고 중앙일보 편집국장 등의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사외이사들입니다.


언론인 경력이 5년 미만으로 짧고, 이후 관료나 기업인 등으로 변신한 사람들은 제외했는데도 이 정도입니다. 누가 봐도 이 정도 경력이면 이 사람은 언론인이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 하나씩 추려서 그 숫자를 세어봤습니다. 총 41명이나 됩니다. 공정거래위 출신 25명보다 훨씬 많고, 김&장 출신 44명에 육박하는 숫자입니다.


이래서 한국사회는 정치,경제,관료,언론이 모두 유착되어 있는 '정경언 유착사회'라고 하나봅니다. 이렇게 끈끈히 유착되어 있는 풍경에서 벌어지는 행태 한 가지를 소개할까요? 현직 중앙 일간지 기자가 1년 여전 저에게 직접 말해준 자기가 다녔던 신문사 뉴스룸의 풍경입니다.


“세상에 타부서 부장이 다른 부원들이 다 듣는데도 아랑곳없이 전화를 해서 “그 크기에 1면으로 원하시면 2천만원입니다. 그 이하로는 안 되요” 하면서 취재원과 지면 인터뷰 기사를 가지고 가격 협상을 하는 거에요. 저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무슨 행사포럼 티켓까지 팔고 다녔어요.정부 00부 국장님이 많이 사주셔서 제가 사내에서 제일 많이 팔았다고 부장에게 칭찬도 들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자괴감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


공기업 사장이나 공공기관장, 민간기업 CEO 인터뷰 기사 등이 거래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언론계에서는 꽤 오래된 정설입니다. 공공기관 홍보팀장도 똑같은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줬습니다. 홍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왕 나가는 홍보비, 기관장 홍보성 인터뷰 기사로 나가주면 훨씬 모양새가 좋다는 것입니다. 홍보 '실적'이 된다는 것이지요. 신문사 입장에서는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도 돈을 받고, 광고 지면에는 또 다른 광고를 받을 수 있으니 거의 모든 지면을 광고로 팔아먹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누리게 되지요. 이른바 '경영 효율성'이 극대화된 작업이라고 할까요?


이게 한국언론의 자화상입니다. 2019년 오늘도 별반 달라진 게 없을 겁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지금 국회의원의 '이해상충'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손혜원 의원의 “이해상충”을 비판하는 언론인들이 정말 그렇게 자신들 스스로에게 떳떳합니까? 손 의원의 이해상충 이슈가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는 것이 꼭 손 의원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맹목적인‘정치적 편들기' 이기만 한 것일까요? 우리의 독자와 시청자들은 어쩌면 우리 언론인들에게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나 잘하세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