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대출 필요하세요?”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의 정체는…

입력 2019.01.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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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평온했다."

한 중국인이 어느 날 30분도 채 안돼 18통의 스팸 전화를 받았다. 모두 상하이, 산둥, 충칭 등 대륙 각지에서 걸려온 전화들이었다. 참다못한 그 중국인은 결국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았다.

전화로 주택 구매를 권유받았다는 또 다른 중국인은 '이상한 전화'였다고 표현했다. 집을 안 사겠다고 거절했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끊지 않고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마치 '로봇'처럼 집을 계속해서 소개했다는 것이다. 중국 매체 신경보(新京報)에 따르면 이 스팸 전화의 상당수는 인공지능(AI) 로봇이 걸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 매체들에서 AI 로봇이 거는 스팸 전화의 부작용이 많이 지적되고 있다. 대출, 보험, 자동차 등 각종 분야의 판매자에게 개인정보가 불법으로 유출돼, AI 로봇의 통화 리스트에 올라간다는 하소연이다. AI 강국인 중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中 AI 기술 세계 최고…스팸 전화는 낮은 기술로도 충분

AI 로봇이 소비자와 통화하는 원리는 이렇다. 고객의 음성데이터를 문자데이터로 바꾼 뒤 컴퓨터가 변환된 문자 데이터 속에서 중요 키워드를 파악해 단어와 대화의 뜻과 맥락을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음성인식 딥러닝 알고리즘을 생성한다. 이러한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알고리즘이 만든 시나리오별로 AI 로봇이 고객과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베이징이공대 장영훈 교수는 AI 로봇이 스팸 전화를 거는 것은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으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술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봤다. 구매를 권유하는 스팸 전화는 고객과의 대화 패턴과 필요한 단어 수 등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이미 중국은 길게는 20년 전부터 음성 인식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상당수준의 기술을 확보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방언도 많고 억양도 다양하기 때문에 AI가 음성 인식자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파악할 수준으로 훈련하려면 몇 천만 명의 데이터가 축적돼야 하는데 빅데이터 기술 발달과 클라우딩 컴퓨팅을 통한 저장 능력의 향상 등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정밀한 대화도 가능한 수준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례로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의 고객 상담용 챗봇 '뎬샤오미(店小蜜)'는 고객 문의 내용의 90% 이상을 이해하면서 하루 350만 건의 상담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 2펀()에 팔리는 개인 정보, AI 로봇의 전화 리스트에 '쏙'

AI 전화 로봇 시스템을 판매하는 업체에 따르면 AI 로봇은 하루 1,000통까지도 전화를 걸 수 있다. 중국에서 일반 전화 판매 근로자의 한 달 임금을 3천 위안이라고 봤을 때, AI 로봇을 고용(?)하면 같은 3천 위안으로 4대의 로봇이 작업할 수 있다. 로봇 1개가 하루에 500~1,000통의 전화를 걸 수 있지만, 사람은 200~400통만 걸 수 있어서 결국 인건비의 80%를 절감 할 수 있다고 업체는 주장했다. 그리고 사람과 달리 24시간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도 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하루 1,000통이나 쉼 없이 전화를 거는 상대는 누구일까? 중국 매체들을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 가능성도 지적했다. 신경보(新京報)가 만나본 업자는 50만 개에 달하는 휴대전화 번호를 포함해 한 건당 2푼(한화 3.3원)에 개인정보를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번호들의 출처는 모두 은행 고객 명단이라고도 덧붙였다. 중국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이런 업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중국 내 관련 업계는 AI 전화 로봇을 유망 창업 분야 중 하나라고 광고하고 있다. AI 기술로 타깃 고객을 선별해 낼 수 있어 최적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불거지는 문제는 AI가 고객을 분석하기 위해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할 가능성이다. 중국에서도 통화 중 무단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금지된다. 하지만 AI 전화 로봇에 대한 세부 규제는 아직 곳곳이 미비한 상태여서 오늘도 중국인들은 불법적인 개인 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블랙 AI' 잡는 '화이트 AI'

물론 통화에서 AI 기술은 긍정적인 부분도 크다. 소비자 콜센터의 예를 들어보자. 소비자가 휴대전화 요금제 변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면 AI가 대화 중의 '요금제', '변경'이라는 키워드를 인식해 관련 매뉴얼을 신속히 모니터에 띄워주는 식의 기술은 국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구글에서 만든 세 번째 스마트폰 '픽셀3' 시리즈에 단연 주목되는 기능은 '스팸 전화 차단'이었다. '스크린 콜'이라 불리는 이 기능은 스팸으로 의심되는 전화를 AI가 대신 받아 실시간으로 통화 내용을 알려준다. 사용자는 해당 전화를 스팸 처리할지,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응답할지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AI 로봇이 스팸 전화를 걸었다면 이 전화를 걸러주는 것도 AI인 것이다.

장영훈 교수는 특정 기술 분야의 성장 과정에서 초반에 개입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특성상 AI 로봇이 걸어오는 스팸 전화는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중관춘에서 최근 가장 뜨는 스타트업이 얼굴 인식과 음성인식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만큼, AI 스팸 전화를 잡는 AI 기술 역시 빠르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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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대출 필요하세요?”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의 정체는…
    • 입력 2019-01-28 17:50:41
    특파원 리포트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평온했다."

한 중국인이 어느 날 30분도 채 안돼 18통의 스팸 전화를 받았다. 모두 상하이, 산둥, 충칭 등 대륙 각지에서 걸려온 전화들이었다. 참다못한 그 중국인은 결국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았다.

전화로 주택 구매를 권유받았다는 또 다른 중국인은 '이상한 전화'였다고 표현했다. 집을 안 사겠다고 거절했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끊지 않고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마치 '로봇'처럼 집을 계속해서 소개했다는 것이다. 중국 매체 신경보(新京報)에 따르면 이 스팸 전화의 상당수는 인공지능(AI) 로봇이 걸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 매체들에서 AI 로봇이 거는 스팸 전화의 부작용이 많이 지적되고 있다. 대출, 보험, 자동차 등 각종 분야의 판매자에게 개인정보가 불법으로 유출돼, AI 로봇의 통화 리스트에 올라간다는 하소연이다. AI 강국인 중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中 AI 기술 세계 최고…스팸 전화는 낮은 기술로도 충분

AI 로봇이 소비자와 통화하는 원리는 이렇다. 고객의 음성데이터를 문자데이터로 바꾼 뒤 컴퓨터가 변환된 문자 데이터 속에서 중요 키워드를 파악해 단어와 대화의 뜻과 맥락을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음성인식 딥러닝 알고리즘을 생성한다. 이러한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알고리즘이 만든 시나리오별로 AI 로봇이 고객과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베이징이공대 장영훈 교수는 AI 로봇이 스팸 전화를 거는 것은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으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술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봤다. 구매를 권유하는 스팸 전화는 고객과의 대화 패턴과 필요한 단어 수 등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이미 중국은 길게는 20년 전부터 음성 인식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상당수준의 기술을 확보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방언도 많고 억양도 다양하기 때문에 AI가 음성 인식자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파악할 수준으로 훈련하려면 몇 천만 명의 데이터가 축적돼야 하는데 빅데이터 기술 발달과 클라우딩 컴퓨팅을 통한 저장 능력의 향상 등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정밀한 대화도 가능한 수준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례로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의 고객 상담용 챗봇 '뎬샤오미(店小蜜)'는 고객 문의 내용의 90% 이상을 이해하면서 하루 350만 건의 상담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 2펀()에 팔리는 개인 정보, AI 로봇의 전화 리스트에 '쏙'

AI 전화 로봇 시스템을 판매하는 업체에 따르면 AI 로봇은 하루 1,000통까지도 전화를 걸 수 있다. 중국에서 일반 전화 판매 근로자의 한 달 임금을 3천 위안이라고 봤을 때, AI 로봇을 고용(?)하면 같은 3천 위안으로 4대의 로봇이 작업할 수 있다. 로봇 1개가 하루에 500~1,000통의 전화를 걸 수 있지만, 사람은 200~400통만 걸 수 있어서 결국 인건비의 80%를 절감 할 수 있다고 업체는 주장했다. 그리고 사람과 달리 24시간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도 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하루 1,000통이나 쉼 없이 전화를 거는 상대는 누구일까? 중국 매체들을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 가능성도 지적했다. 신경보(新京報)가 만나본 업자는 50만 개에 달하는 휴대전화 번호를 포함해 한 건당 2푼(한화 3.3원)에 개인정보를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번호들의 출처는 모두 은행 고객 명단이라고도 덧붙였다. 중국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이런 업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중국 내 관련 업계는 AI 전화 로봇을 유망 창업 분야 중 하나라고 광고하고 있다. AI 기술로 타깃 고객을 선별해 낼 수 있어 최적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불거지는 문제는 AI가 고객을 분석하기 위해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할 가능성이다. 중국에서도 통화 중 무단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금지된다. 하지만 AI 전화 로봇에 대한 세부 규제는 아직 곳곳이 미비한 상태여서 오늘도 중국인들은 불법적인 개인 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블랙 AI' 잡는 '화이트 AI'

물론 통화에서 AI 기술은 긍정적인 부분도 크다. 소비자 콜센터의 예를 들어보자. 소비자가 휴대전화 요금제 변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면 AI가 대화 중의 '요금제', '변경'이라는 키워드를 인식해 관련 매뉴얼을 신속히 모니터에 띄워주는 식의 기술은 국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구글에서 만든 세 번째 스마트폰 '픽셀3' 시리즈에 단연 주목되는 기능은 '스팸 전화 차단'이었다. '스크린 콜'이라 불리는 이 기능은 스팸으로 의심되는 전화를 AI가 대신 받아 실시간으로 통화 내용을 알려준다. 사용자는 해당 전화를 스팸 처리할지,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응답할지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AI 로봇이 스팸 전화를 걸었다면 이 전화를 걸러주는 것도 AI인 것이다.

장영훈 교수는 특정 기술 분야의 성장 과정에서 초반에 개입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특성상 AI 로봇이 걸어오는 스팸 전화는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중관춘에서 최근 가장 뜨는 스타트업이 얼굴 인식과 음성인식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만큼, AI 스팸 전화를 잡는 AI 기술 역시 빠르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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