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받은 ‘인생 2막’…그 이면엔 ‘온정주의’ 심사

입력 2019.01.2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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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공직자는 퇴직 전 5년 동안 맡은 업무와 '밀접한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는 퇴직 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퇴직 전 근무한 기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방패막이를 쳐 둔 것이다.

공직사회에 바라는 국민들의 청렴 수준이 높아지고, 또, 정부가 부패 척결을 강조함에 따라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제도'는 해마다 엄격해지고 있다. 하지만, "공직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살릴 수 있고, 퇴직자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의견, 이에 반해 "세금으로 월급 받고 퇴직 이후 연금까지 받는데 고위공직자에게 고소득 일자리까지 제공하는 것은 반칙이자 특혜이다"는 의견 등 퇴직공직자의 취업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부산시가 공개하고 있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자료’부산시가 공개하고 있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자료’

KBS 부산 심층취재팀이 2015년부터 2018년, 4년 치 부산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자료를 분석했다. 대상은 3급 이하 공직자들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산교통공사에서 본부장으로 재직하다 2015년 1월 퇴직한 박 모 씨. 퇴직 이듬해 그는 부산도시철도 10개 역사의 안전문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업체에 '고문'으로 들어갔다. 이 업체는 박 씨가 본부장으로 재임할 당시부터 같은 업무를 맡고 있던 곳. 눈에 띄는 점은 2013년, 이 업체의 계열사가 교통공사에 내기로 돼 있던 '지체보상금'이다. 준공을 7개월 지연시킨 데 따른 지체보상금이 당초 113억 원이었는데, 중재 신청 결과 25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회사가 중재 신청을 낸 시기가 공교롭게도 박 전 본부장이 합류한 이후이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박 전 본부장이 취업한 회사는 부산교통공사와 수십억 원의 지체보상금 등의 문제가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얽힌 사업체와 계열사이다. 특히 그런 문제는 그 분이 재직 중에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많이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하지만 부산시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박 씨에 대해 '취업 가능' 결정을 내렸다.

부산교통공사 외경부산교통공사 외경

한해 20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부산 고등어식품전략사업단. 이 사업단은 김 모 씨가 부산시 수산유통과장으로 있던 2015년 12월 출범했다. 김 씨는 재임 당시 고등어 브랜드화 사업에 주력했고, 사업단을 본궤도에 올린 주요 인물. 김 씨는 사업단을 발족시킨 뒤 2017년 12월 퇴직했는데 그 이듬해, 사업단의 '단장'으로 취업했다. 사업단은 부산시로부터 예산과 행정 감시를 받는, 부산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곳으로 업무 관련성이 매우 크다. 부산 고등어식품전략사업단 관계자는 "부산시와 구청 모두 사업단의 감독기관이다. 사업단 측에서 사업을 수행하면 보조금 교부랑 지침 이행 여부를 관리 감독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취업심사에서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됐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취업승인'이 떨어졌다.

 KBS 심층취재팀이 ‘부산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자료’를 분석했다 KBS 심층취재팀이 ‘부산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자료’를 분석했다

이 밖에도 부적절해 보이는 취업심사 결과는 눈에 띄었다. 한 기술공단에 부사장으로 취업한 부산교통공사 전 본부장. 이 공단은 과거 수차례, 부산도시철도 실시 설계 공사를 맡은 곳이기도 하다. 또, 부산지역 도시개발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부산도시공사에서 '상임감사'로 있던 퇴직공직자는 퇴직과 동시에 지역 건설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는 부산지역 건설협회의 '상근부회장'으로 취업했다. 부산시 산하 단체들이 퇴직공직자들의 취업 놀이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반부패정책학회장인 김용철 부산대학교 교수는 "공직사회의 형식주의가 배타적인 행정문화와 결합하면서 공사의 구분이 불명확해지고 비합리적인 결과도 초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최근 2년간 부산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통과율 100%최근 2년간 부산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통과율 100%

4년간 취업심사를 받은 3급 이상 부산 퇴직공직자는 44명인데 이 중 탈락한 사람은 고작 3명, 심사 통과율이 93%를 넘는다. 심지어 2017년과 2018년 2년간은 100% 심사를 통과해 재취업했다. 이 정도면 취업심사를 왜 하나, 하는 지적이 나온다. 도대체 취업심사를 어떻게 하길래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취재팀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비공개 심사 회의 내용을 일부 확인했다. 도시철도 안전문 관리업체에 취업한 부산교통공사 전 본부장의 취업심사. "신고하지 않고 취업한 데 대한 과태료는 부과"하도록 결정하면서도, "업무 관련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임 당시 출범시킨 사업단에 단장으로 취업한 부산시 전 과장의 취업심사. "보조금 지원 등 업무 관련성은 존재"하지만, "사업이 이사회 의결로 정해지는 만큼 영향력 행사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퇴직한 공직자의 재취업을 까다롭게 하기 위한 장치인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가 '제 식구 감싸기'로 흐른다는 지적이 제기될 만하다. 이에 대해 류제성 부산시 감사관은 "업무 관련성이라든지 취업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 객관적 자료를 더 충실히 확보해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적발되지 않았을 뿐, 업무 관련성이 있는 곳에 임의로 취업한 공직자는 더 있다. 부산시의 한 퇴직공직자는 "회원사 관리를 하러 모 단체에 취업을 해서 관여를 하게 됐는데 자칫 잘못 알려지면 '취업제한'에 걸릴 수 있다. 퇴직 전 하던 일과 관련 있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털어놨다.

부산시청 외경부산시청 외경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부분은 퇴직자들이 취업한 곳의 '업종'. 부산시설공단과 부산테크노파크, 협동조합과 산업단지관리공단 등 공공/법인/협회와 같은, 부산시와 긴밀하게 연결된 공적 분야의 취업자가 15명으로 월등히 많았다. 부산시설공단에는 2년 동안 퇴직공직자 3명이 재취업했다. 토목/건설 분야에도 4년 동안 9명이 취업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직에 있는 공무원들을 봤을 때 시민들이 '아, 저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퇴직 후에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이구나'고 하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럼 공직 사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게 되고 전반적인 사회에 불신감, 특히 공무원 사회에 대한 불신이 조장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공무원 조직과 부산시에서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자료는 여전히 철저하게 비공개 되고 있다.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없는 '온정주의' 심사는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이다.

(자료조사 탁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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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9 16:17:45
    취재K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공직자는 퇴직 전 5년 동안 맡은 업무와 '밀접한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는 퇴직 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퇴직 전 근무한 기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방패막이를 쳐 둔 것이다.

공직사회에 바라는 국민들의 청렴 수준이 높아지고, 또, 정부가 부패 척결을 강조함에 따라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제도'는 해마다 엄격해지고 있다. 하지만, "공직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살릴 수 있고, 퇴직자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의견, 이에 반해 "세금으로 월급 받고 퇴직 이후 연금까지 받는데 고위공직자에게 고소득 일자리까지 제공하는 것은 반칙이자 특혜이다"는 의견 등 퇴직공직자의 취업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부산시가 공개하고 있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자료’
KBS 부산 심층취재팀이 2015년부터 2018년, 4년 치 부산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자료를 분석했다. 대상은 3급 이하 공직자들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산교통공사에서 본부장으로 재직하다 2015년 1월 퇴직한 박 모 씨. 퇴직 이듬해 그는 부산도시철도 10개 역사의 안전문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업체에 '고문'으로 들어갔다. 이 업체는 박 씨가 본부장으로 재임할 당시부터 같은 업무를 맡고 있던 곳. 눈에 띄는 점은 2013년, 이 업체의 계열사가 교통공사에 내기로 돼 있던 '지체보상금'이다. 준공을 7개월 지연시킨 데 따른 지체보상금이 당초 113억 원이었는데, 중재 신청 결과 25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회사가 중재 신청을 낸 시기가 공교롭게도 박 전 본부장이 합류한 이후이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박 전 본부장이 취업한 회사는 부산교통공사와 수십억 원의 지체보상금 등의 문제가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얽힌 사업체와 계열사이다. 특히 그런 문제는 그 분이 재직 중에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많이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하지만 부산시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박 씨에 대해 '취업 가능' 결정을 내렸다.

부산교통공사 외경
한해 20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부산 고등어식품전략사업단. 이 사업단은 김 모 씨가 부산시 수산유통과장으로 있던 2015년 12월 출범했다. 김 씨는 재임 당시 고등어 브랜드화 사업에 주력했고, 사업단을 본궤도에 올린 주요 인물. 김 씨는 사업단을 발족시킨 뒤 2017년 12월 퇴직했는데 그 이듬해, 사업단의 '단장'으로 취업했다. 사업단은 부산시로부터 예산과 행정 감시를 받는, 부산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곳으로 업무 관련성이 매우 크다. 부산 고등어식품전략사업단 관계자는 "부산시와 구청 모두 사업단의 감독기관이다. 사업단 측에서 사업을 수행하면 보조금 교부랑 지침 이행 여부를 관리 감독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취업심사에서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됐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취업승인'이 떨어졌다.

 KBS 심층취재팀이 ‘부산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자료’를 분석했다
이 밖에도 부적절해 보이는 취업심사 결과는 눈에 띄었다. 한 기술공단에 부사장으로 취업한 부산교통공사 전 본부장. 이 공단은 과거 수차례, 부산도시철도 실시 설계 공사를 맡은 곳이기도 하다. 또, 부산지역 도시개발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부산도시공사에서 '상임감사'로 있던 퇴직공직자는 퇴직과 동시에 지역 건설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는 부산지역 건설협회의 '상근부회장'으로 취업했다. 부산시 산하 단체들이 퇴직공직자들의 취업 놀이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반부패정책학회장인 김용철 부산대학교 교수는 "공직사회의 형식주의가 배타적인 행정문화와 결합하면서 공사의 구분이 불명확해지고 비합리적인 결과도 초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최근 2년간 부산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통과율 100%
4년간 취업심사를 받은 3급 이상 부산 퇴직공직자는 44명인데 이 중 탈락한 사람은 고작 3명, 심사 통과율이 93%를 넘는다. 심지어 2017년과 2018년 2년간은 100% 심사를 통과해 재취업했다. 이 정도면 취업심사를 왜 하나, 하는 지적이 나온다. 도대체 취업심사를 어떻게 하길래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취재팀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비공개 심사 회의 내용을 일부 확인했다. 도시철도 안전문 관리업체에 취업한 부산교통공사 전 본부장의 취업심사. "신고하지 않고 취업한 데 대한 과태료는 부과"하도록 결정하면서도, "업무 관련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임 당시 출범시킨 사업단에 단장으로 취업한 부산시 전 과장의 취업심사. "보조금 지원 등 업무 관련성은 존재"하지만, "사업이 이사회 의결로 정해지는 만큼 영향력 행사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퇴직한 공직자의 재취업을 까다롭게 하기 위한 장치인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가 '제 식구 감싸기'로 흐른다는 지적이 제기될 만하다. 이에 대해 류제성 부산시 감사관은 "업무 관련성이라든지 취업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 객관적 자료를 더 충실히 확보해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적발되지 않았을 뿐, 업무 관련성이 있는 곳에 임의로 취업한 공직자는 더 있다. 부산시의 한 퇴직공직자는 "회원사 관리를 하러 모 단체에 취업을 해서 관여를 하게 됐는데 자칫 잘못 알려지면 '취업제한'에 걸릴 수 있다. 퇴직 전 하던 일과 관련 있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털어놨다.

부산시청 외경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부분은 퇴직자들이 취업한 곳의 '업종'. 부산시설공단과 부산테크노파크, 협동조합과 산업단지관리공단 등 공공/법인/협회와 같은, 부산시와 긴밀하게 연결된 공적 분야의 취업자가 15명으로 월등히 많았다. 부산시설공단에는 2년 동안 퇴직공직자 3명이 재취업했다. 토목/건설 분야에도 4년 동안 9명이 취업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직에 있는 공무원들을 봤을 때 시민들이 '아, 저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퇴직 후에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이구나'고 하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럼 공직 사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게 되고 전반적인 사회에 불신감, 특히 공무원 사회에 대한 불신이 조장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공무원 조직과 부산시에서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자료는 여전히 철저하게 비공개 되고 있다.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없는 '온정주의' 심사는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이다.

(자료조사 탁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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