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책방] ‘윷놀이만큼 재밌는’ 책을 골라 보았습니다

입력 2019.02.0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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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라 책을 읽고, 새해가 되어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연휴가 연휴이니만큼 책 생각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역에서, 버스 터미널에서 짬이 나 나도 모르게 서점으로 발걸음이 향할 수도 있겠지요. 친지들을 만나는 대신 혼자 명절을 보내야 하는 분들도 손에 책을 들고 있으면 외로움이 덜 할지도 모릅니다. 요즘 읽기 딱 좋은 책을 골라보았습니다.


'돼지해'에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사랑할까, 먹을까'.

맞습니다. 돼지를 사랑해야 할지, 먹어야 할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영화감독 황윤 씨가 돼지 사육 실태와 대안을 모색한 다큐멘터리《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제작 과정과 뒷이야기를 책으로 냈습니다.

'돼지 축사' 하면 우선 고약한 분뇨 냄새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원가자농 돼지 축사에서는 악취가 전혀 나지 않았다. (…) 돼지는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영리하다. (…) 돼지가 굉장히 복잡한 인지능력을 가졌으며 개보다 영리하고 심지어 서너 살짜리 아이보다 영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본문 중에서

친숙하게 여기고 잘 아는 동물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어떤 동물인지 알지 못하는 돼지. 풍요와 복의 상징이라 여기지만 동시에 탐욕스럽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돼지. 우리나라에서 돼지 천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데도, 정작 돼지가 어떻게 사육되는지를 보기는 매우 힘들고, 마트에 진열된 '고기'로만 만나게 되는 상황은 모순적이지 않는가, 하고 감독은 묻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돼지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 나섭니다. 그 과정에는 우리가 돼지를 고기로 소비하기 위해 어떤 '공장식 축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일반적인' 돼지 농장에서 어미 돼지는 인공적으로 임신하고, 몸을 뒤척일 자유조차 빼앗긴 채 끝없는 출산과 수유, 그리고 다시 임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보다 훨씬 윤리적인 농장에서 야생초를 먹고 볏짚을 쓰고 놀며 자연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돼지 역시 때가 되면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돼지의 슬픈 눈을 바라보며,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묻지만, 야생동물의 지킴이인 그녀의 남편 역시 고기를 사랑합니다. 아직 결론은 없습니다. 그래서 '잡식가족의 딜레마' 인 거겠지요.

이제는 고기 좀 그만 먹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도, 책은 충분히 재밌습니다. 책을 읽은 뒤에 영화를 찾아봐도 이해의 깊이를 더 할 수 있습니다.


"50년 묵은 정치, 이제는 갈아엎어야 합니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판이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어록 중에서 - 2004.3.20. KBS 심야토론)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을 대변해 참가한 토론에서 남긴 촌철살인의 한 마디. '정치인이었으나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기억되는 사람' 노회찬 씨입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서 활동할 때나 노동의 현장을 함께 할 때, 혹은 토론회나 간담회에 참석할 때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일은 때론 남루하고 때론 땀 냄새가 나는 것이었지만, 그 일상이 현장에서 남긴 기록에 생생하게 남았습니다. 2004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그가 남긴 기록과 발표문, 그리고 어록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국회의원이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모임을 하고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남겨놓은 책에는 노회찬이라는 인간의 향기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 상황과 진보인사들의 뒤풀이 문화 등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시선이 살아있습니다.

능력 있고 잘 알려진 사람은 모두 정치를 해야 하는가? 원래 정치는 덜 빼어난 2류들이 하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나 빼어난 1류들은 과학기술, 교육, 문학, 예술, 사법 등 각 방면에서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문명사회를 이끌고 있다. 한국정치가 늘 불신을 면치 못하는 것은 그 속에 1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3류와 4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06.1.31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어야 한다》


중국에선 빻은 멥쌀을 시루에 쪄 시루떡을 만들고, 일본에선 찐 찹쌀을 돌절구에 쳐 모찌를 만듭니다. 우리는 찐 멥쌀을 돌절구에 쳐서 떡을 만들지요. 또 우리는 겨울철 주식으로 떡국을 먹지만, 중국과 일본은 떡을 주식이 아닌 부식으로 먹습니다. 한중일 3국 모두 '떡'을 먹지만, 만드는 법도 다르고 먹는 방식도 다릅니다.

떡국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밥이 먼저였을까? 떡이 먼저였을까? 복날에는 왜 삼계탕을 먹는 걸까? 피자 배달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식품공학과 조리 외식 경영학을 전공한 요리사인 저자가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식재료 이야기와 음식문화론을 펼쳐놓습니다.

제목부터 '배고플 때 읽으면 위험한' 집밥의 역사. '집밥'이라는 신조어가 자리 잡은 게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니, 그만큼 집밥이 소중한 존재가 됐다는 것인데,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오히려 쉽게 접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음식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짚어갑니다.

콜럼버스가 남미에서 유럽으로 갖고 온 감자는 처음에는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이었다는 군요. 감자꽃을 보기 위해 키운 거죠. 하지만 17세기 전후 기근 대책으로 보급된 뒤 주식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1680~90년 사이에는 유럽의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감자가 풍년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혹은 기차 안에서 가볍게 읽으면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음식인문학입니다.


극성맞은 시아버지의 시집살이를 꿋꿋이 받아내며 여섯 아이를 키운 외할머니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일제 수탈과 광복, 그리고 전쟁을 겪어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이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가 모두 한 편의 역사라 할 수 있겠지요. 세심한 기억력으로 풀어낸 일화들이 어디서 들어본 듯 익숙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명절에 둘러앉아 만두라도 빚을라치면 어머니가 풀어놓으시던 이야기들도 그와 닮아있으니까요. 그러곤 잊어버릴 뻔한 우리의 과거 모습들이 담겨있어 반가운 책입니다.

김은성 작가는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흑백이 선명한 그림체가 판화 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2014년 4권으로 완결된 뒤 절판됐었으나, 최근 다시 주목을 받으며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고향 집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혹은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책을 보면 어떨까요. 가슴이 먹먹해지며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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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책방] ‘윷놀이만큼 재밌는’ 책을 골라 보았습니다
    • 입력 2019-02-01 08:03:18
    여의도책방
명절이라 책을 읽고, 새해가 되어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연휴가 연휴이니만큼 책 생각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역에서, 버스 터미널에서 짬이 나 나도 모르게 서점으로 발걸음이 향할 수도 있겠지요. 친지들을 만나는 대신 혼자 명절을 보내야 하는 분들도 손에 책을 들고 있으면 외로움이 덜 할지도 모릅니다. 요즘 읽기 딱 좋은 책을 골라보았습니다.


'돼지해'에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사랑할까, 먹을까'.

맞습니다. 돼지를 사랑해야 할지, 먹어야 할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영화감독 황윤 씨가 돼지 사육 실태와 대안을 모색한 다큐멘터리《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제작 과정과 뒷이야기를 책으로 냈습니다.

'돼지 축사' 하면 우선 고약한 분뇨 냄새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원가자농 돼지 축사에서는 악취가 전혀 나지 않았다. (…) 돼지는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영리하다. (…) 돼지가 굉장히 복잡한 인지능력을 가졌으며 개보다 영리하고 심지어 서너 살짜리 아이보다 영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본문 중에서

친숙하게 여기고 잘 아는 동물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어떤 동물인지 알지 못하는 돼지. 풍요와 복의 상징이라 여기지만 동시에 탐욕스럽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돼지. 우리나라에서 돼지 천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데도, 정작 돼지가 어떻게 사육되는지를 보기는 매우 힘들고, 마트에 진열된 '고기'로만 만나게 되는 상황은 모순적이지 않는가, 하고 감독은 묻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돼지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 나섭니다. 그 과정에는 우리가 돼지를 고기로 소비하기 위해 어떤 '공장식 축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일반적인' 돼지 농장에서 어미 돼지는 인공적으로 임신하고, 몸을 뒤척일 자유조차 빼앗긴 채 끝없는 출산과 수유, 그리고 다시 임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보다 훨씬 윤리적인 농장에서 야생초를 먹고 볏짚을 쓰고 놀며 자연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돼지 역시 때가 되면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돼지의 슬픈 눈을 바라보며,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묻지만, 야생동물의 지킴이인 그녀의 남편 역시 고기를 사랑합니다. 아직 결론은 없습니다. 그래서 '잡식가족의 딜레마' 인 거겠지요.

이제는 고기 좀 그만 먹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도, 책은 충분히 재밌습니다. 책을 읽은 뒤에 영화를 찾아봐도 이해의 깊이를 더 할 수 있습니다.


"50년 묵은 정치, 이제는 갈아엎어야 합니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판이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어록 중에서 - 2004.3.20. KBS 심야토론)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을 대변해 참가한 토론에서 남긴 촌철살인의 한 마디. '정치인이었으나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기억되는 사람' 노회찬 씨입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서 활동할 때나 노동의 현장을 함께 할 때, 혹은 토론회나 간담회에 참석할 때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일은 때론 남루하고 때론 땀 냄새가 나는 것이었지만, 그 일상이 현장에서 남긴 기록에 생생하게 남았습니다. 2004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그가 남긴 기록과 발표문, 그리고 어록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국회의원이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모임을 하고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남겨놓은 책에는 노회찬이라는 인간의 향기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 상황과 진보인사들의 뒤풀이 문화 등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시선이 살아있습니다.

능력 있고 잘 알려진 사람은 모두 정치를 해야 하는가? 원래 정치는 덜 빼어난 2류들이 하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나 빼어난 1류들은 과학기술, 교육, 문학, 예술, 사법 등 각 방면에서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문명사회를 이끌고 있다. 한국정치가 늘 불신을 면치 못하는 것은 그 속에 1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3류와 4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06.1.31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어야 한다》


중국에선 빻은 멥쌀을 시루에 쪄 시루떡을 만들고, 일본에선 찐 찹쌀을 돌절구에 쳐 모찌를 만듭니다. 우리는 찐 멥쌀을 돌절구에 쳐서 떡을 만들지요. 또 우리는 겨울철 주식으로 떡국을 먹지만, 중국과 일본은 떡을 주식이 아닌 부식으로 먹습니다. 한중일 3국 모두 '떡'을 먹지만, 만드는 법도 다르고 먹는 방식도 다릅니다.

떡국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밥이 먼저였을까? 떡이 먼저였을까? 복날에는 왜 삼계탕을 먹는 걸까? 피자 배달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식품공학과 조리 외식 경영학을 전공한 요리사인 저자가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식재료 이야기와 음식문화론을 펼쳐놓습니다.

제목부터 '배고플 때 읽으면 위험한' 집밥의 역사. '집밥'이라는 신조어가 자리 잡은 게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니, 그만큼 집밥이 소중한 존재가 됐다는 것인데,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오히려 쉽게 접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음식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짚어갑니다.

콜럼버스가 남미에서 유럽으로 갖고 온 감자는 처음에는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이었다는 군요. 감자꽃을 보기 위해 키운 거죠. 하지만 17세기 전후 기근 대책으로 보급된 뒤 주식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1680~90년 사이에는 유럽의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감자가 풍년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혹은 기차 안에서 가볍게 읽으면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음식인문학입니다.


극성맞은 시아버지의 시집살이를 꿋꿋이 받아내며 여섯 아이를 키운 외할머니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일제 수탈과 광복, 그리고 전쟁을 겪어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이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가 모두 한 편의 역사라 할 수 있겠지요. 세심한 기억력으로 풀어낸 일화들이 어디서 들어본 듯 익숙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명절에 둘러앉아 만두라도 빚을라치면 어머니가 풀어놓으시던 이야기들도 그와 닮아있으니까요. 그러곤 잊어버릴 뻔한 우리의 과거 모습들이 담겨있어 반가운 책입니다.

김은성 작가는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흑백이 선명한 그림체가 판화 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2014년 4권으로 완결된 뒤 절판됐었으나, 최근 다시 주목을 받으며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고향 집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혹은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책을 보면 어떨까요. 가슴이 먹먹해지며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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