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의 눈] 존엄사법 1년…“죽음은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거예요”

입력 2019.02.03 (21:13) 수정 2019.02.0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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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10년 1월 10일.

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2010년 1월 10일 9시 뉴스 :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받아 지난해 6월 인공호흡기를 뗐던 김 할머니가 오늘 별세했습니다."]

이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고민, 바로 '품위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결국, 지난해 2월 4일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습니다.

내일(4일)이 시행 딱 1년입니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이고, 평소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뜻을 남겼다면,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뜻을 알기 힘든 경우 가족 전원이 동의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명치료를 중단한 환자는 3만 5천여 명입니다.

한 해 사망자가 30만 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존엄사 비중이 작지 않습니다.

연명치료 중단으로 달라진 죽음에 대한 인식, 최유경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61살 강남수 씨는 대장암 말기입니다.

진단받은 지 이제 한 달,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가만있어, 먹여 줄게."]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의료진은 이미 시한부 판정을 했습니다.

오늘 강 씨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의미 없는 치료는 받지 말자, 연명 의료계획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김선영/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 "심폐소생술, 혈액투석하고 인공호흡기는 제가 일단 안 하시는 걸로 그렇게 설명을 드렸고 환자분도 동의하시는 거고요. (네.) 항암제는 일단은 저희가 유보를 해놓겠습니다."]

앞으로 강 씨는 의학적 임종 단계에 접어들어도, 생을 연장하는 치료는 받지 않습니다.

의외로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가족과 함께 맞겠다는 바람이 컸습니다.

[강남수/대장암 말기 환자 : "주위에 힘들게 연명하시다가 돌아가신 것 보고 '아, 그럴 필요 없겠다'. 가족이나 환자나 그래도 덜 고통스러울 때 편안하게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그런 결심을 했죠."]

100여 차례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건강했던 최 모 씨.

지난해 말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는데, 생전에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 연명치료를 중단시킬 수 없었습니다.

[윤OO/최 씨 아내 : "중환자실에 올라가자마자 가망이 없다고. 내가 근데 왜 저렇게 붙들고 있느냐고 (그랬죠). (의사들이) 숨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자기네 의무를 다해야 된대요."]

연명치료 기간 동안 장기가 썩고 전신 욕창이 생겼습니다.

[윤OO/최 씨 아내 : "모든 장기가 다 나가버리고 약만 투여하고 나중에는 몸도 그렇게 돼가는데 사람 진짜 너무 보기가 안타깝더라고요."]

무의미한 연명의 고통을 지켜본 가족들은 스스로 사전연명 의료의향서를 썼습니다.

[최OO/딸 : "내가 저렇게 누워있다고 하면 난 제발 나 좀 놔달라고 할 거 같아요. 죽음에 대한 그런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계기 없이 자발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결심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애들한테 이제 좀 부담을 나중에 주게 될까 봐. (아, 자녀들에게 부담을 안 주려고?)"]

4남매를 둔 팔순 부부는 자녀들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김순자/서울 도봉구 : "이건 자식들이 권유를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죠?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그냥 이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김선영/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많이 드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존엄사법 시행 1년.

죽음은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유경입니다.

[앵커]

어떻게 보셨습니까.

무거운 주제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다음 달 28일부터는 연명치료 중단이 더 쉬워집니다.

지금까진 본인의 뜻을 모를 경우, 배우자와 직계 가족 '전원'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배우자, 부모, 자녀만 동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중단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도 확대됩니다.

앞으로는 수혈이나 혈압약 투여, 심장이나 폐순환 장치 사용도 멈출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연명치료 중단이 너무 쉬워지는 거 아니냐, 우려도 나옵니다.

환자 가족이 상속이나 보험금, 돌봄 부담 때문에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거죠.

지난 1년 동안 연명치료 중단 3건 중 1건이 환자가 아닌 가족이 선택했습니다.

절차가 완화되는 만큼 감시와 감독이 더 꼼꼼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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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의 눈] 존엄사법 1년…“죽음은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거예요”
    • 입력 2019-02-03 21:22:02
    • 수정2019-02-03 21:44:11
    뉴스 9
[앵커]

2010년 1월 10일.

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2010년 1월 10일 9시 뉴스 :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받아 지난해 6월 인공호흡기를 뗐던 김 할머니가 오늘 별세했습니다."]

이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고민, 바로 '품위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결국, 지난해 2월 4일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습니다.

내일(4일)이 시행 딱 1년입니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이고, 평소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뜻을 남겼다면,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뜻을 알기 힘든 경우 가족 전원이 동의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명치료를 중단한 환자는 3만 5천여 명입니다.

한 해 사망자가 30만 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존엄사 비중이 작지 않습니다.

연명치료 중단으로 달라진 죽음에 대한 인식, 최유경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61살 강남수 씨는 대장암 말기입니다.

진단받은 지 이제 한 달,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가만있어, 먹여 줄게."]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의료진은 이미 시한부 판정을 했습니다.

오늘 강 씨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의미 없는 치료는 받지 말자, 연명 의료계획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김선영/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 "심폐소생술, 혈액투석하고 인공호흡기는 제가 일단 안 하시는 걸로 그렇게 설명을 드렸고 환자분도 동의하시는 거고요. (네.) 항암제는 일단은 저희가 유보를 해놓겠습니다."]

앞으로 강 씨는 의학적 임종 단계에 접어들어도, 생을 연장하는 치료는 받지 않습니다.

의외로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가족과 함께 맞겠다는 바람이 컸습니다.

[강남수/대장암 말기 환자 : "주위에 힘들게 연명하시다가 돌아가신 것 보고 '아, 그럴 필요 없겠다'. 가족이나 환자나 그래도 덜 고통스러울 때 편안하게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그런 결심을 했죠."]

100여 차례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건강했던 최 모 씨.

지난해 말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는데, 생전에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 연명치료를 중단시킬 수 없었습니다.

[윤OO/최 씨 아내 : "중환자실에 올라가자마자 가망이 없다고. 내가 근데 왜 저렇게 붙들고 있느냐고 (그랬죠). (의사들이) 숨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자기네 의무를 다해야 된대요."]

연명치료 기간 동안 장기가 썩고 전신 욕창이 생겼습니다.

[윤OO/최 씨 아내 : "모든 장기가 다 나가버리고 약만 투여하고 나중에는 몸도 그렇게 돼가는데 사람 진짜 너무 보기가 안타깝더라고요."]

무의미한 연명의 고통을 지켜본 가족들은 스스로 사전연명 의료의향서를 썼습니다.

[최OO/딸 : "내가 저렇게 누워있다고 하면 난 제발 나 좀 놔달라고 할 거 같아요. 죽음에 대한 그런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계기 없이 자발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결심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애들한테 이제 좀 부담을 나중에 주게 될까 봐. (아, 자녀들에게 부담을 안 주려고?)"]

4남매를 둔 팔순 부부는 자녀들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김순자/서울 도봉구 : "이건 자식들이 권유를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죠?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그냥 이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김선영/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많이 드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존엄사법 시행 1년.

죽음은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유경입니다.

[앵커]

어떻게 보셨습니까.

무거운 주제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다음 달 28일부터는 연명치료 중단이 더 쉬워집니다.

지금까진 본인의 뜻을 모를 경우, 배우자와 직계 가족 '전원'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배우자, 부모, 자녀만 동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중단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도 확대됩니다.

앞으로는 수혈이나 혈압약 투여, 심장이나 폐순환 장치 사용도 멈출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연명치료 중단이 너무 쉬워지는 거 아니냐, 우려도 나옵니다.

환자 가족이 상속이나 보험금, 돌봄 부담 때문에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거죠.

지난 1년 동안 연명치료 중단 3건 중 1건이 환자가 아닌 가족이 선택했습니다.

절차가 완화되는 만큼 감시와 감독이 더 꼼꼼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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