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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요행동’…10년 넘겨 이어 온 양심의 목소리
입력 2019.02.04 (21:19) 수정 2019.02.04 (21:46)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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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요행동’…10년 넘겨 이어 온 양심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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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다카하시 마코토, 10년째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앞에서 금요행동을 하는 일본 시민입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일본인 변호사 40여명, 일본 시민 9백여명.

이들의 노력으로 이른바 일제 근로정신대의 실체가 드러났고 대법원에서 미쓰비시 배상 판결이 나기도 했습니다.

국가으로서 일본이 아닌 개인으로서 일본의 양심을 만나보시죠.

도쿄에서 이승철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도쿄 한 복판.

매주 금요일, 미쓰비시 중공업 앞에서 진실에 마주하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집니다.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매주 열리는 집회, '금요행동'입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진실은 저희에게 있고, 미쓰비시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큰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2007년부터..."]

금요일을 행동의 날로 잡은 것은 미쓰비시 계열사 사장단 모임이 금요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쓰비시 비행기 공장에서 일하다 지진으로 숨진 이들을 위한 추모비입니다.

["이정숙, 김향남..."]

묻혀있던 '근로정신대'의 존재는 비에 희생자 이름을 새기기 위해 다카하시 씨 등이 한국으로 유가족을 찾아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1999년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한 피해자들을 도와 일본 법원에서 피해배상소송을 시작했습니다.

40여 명의 변호사, 900여 명의 일본 시민들이 함께했는데, 이들이 금요행동의 근간입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지진 희생자 관이) 너무 가벼워서 이건 도대체 누구지 하고 열어보니 정말 어린 소녀였다고..."]

일제는 1944년 전쟁 와중에 '일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속여 10대 소녀 300여 명을 데려온 뒤 군수 공장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결정적 증거가 된 순직자 명부.

["(주소가?) 전라남도 목포."]

당시 사진 속 소녀들은 앳되기만 합니다.

막내는 12살이었습니다.

17개월 간 강제로 일에 내몰렸지만 전쟁이 끝나자 한푼도 주지 않고 쫓아내듯 한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이건 가해국 시민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할머니들 얼굴을 보고 그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저며옵니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한 장의 사진.

지금은 평온해 보이는 그곳이지만, 과거 전쟁의 광기가 넘쳐났던 곳입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천황의 나라라고, 그래서 '우리들은 일본 제국의 승리를 위해 힘쓰겠습니다'라고 맹세를 강요하고..."]

차가운 금요일 새벽, 다카하시 씨는 오늘도 집회를 위해 도쿄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10여 년을 한결같이 오가는 여정입니다.

올해부터는 외무성 앞에서도 마이크를 듭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소송 원고 11명 가운데 한 명, 동생을 미쓰비시 공장에서 잃고 부인 또한 근로정신대 피해자였던 김중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눈물이 북받쳐 오르지만, 참고 또 참습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포기하지 않는다면 꼭 해결될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도쿄에서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 일본 ‘금요행동’…10년 넘겨 이어 온 양심의 목소리
    • 입력 2019.02.04 (21:19)
    • 수정 2019.02.04 (21:46)
    뉴스 9
일본 ‘금요행동’…10년 넘겨 이어 온 양심의 목소리
[앵커]

다카하시 마코토, 10년째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앞에서 금요행동을 하는 일본 시민입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일본인 변호사 40여명, 일본 시민 9백여명.

이들의 노력으로 이른바 일제 근로정신대의 실체가 드러났고 대법원에서 미쓰비시 배상 판결이 나기도 했습니다.

국가으로서 일본이 아닌 개인으로서 일본의 양심을 만나보시죠.

도쿄에서 이승철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도쿄 한 복판.

매주 금요일, 미쓰비시 중공업 앞에서 진실에 마주하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집니다.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매주 열리는 집회, '금요행동'입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진실은 저희에게 있고, 미쓰비시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큰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2007년부터..."]

금요일을 행동의 날로 잡은 것은 미쓰비시 계열사 사장단 모임이 금요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쓰비시 비행기 공장에서 일하다 지진으로 숨진 이들을 위한 추모비입니다.

["이정숙, 김향남..."]

묻혀있던 '근로정신대'의 존재는 비에 희생자 이름을 새기기 위해 다카하시 씨 등이 한국으로 유가족을 찾아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1999년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한 피해자들을 도와 일본 법원에서 피해배상소송을 시작했습니다.

40여 명의 변호사, 900여 명의 일본 시민들이 함께했는데, 이들이 금요행동의 근간입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지진 희생자 관이) 너무 가벼워서 이건 도대체 누구지 하고 열어보니 정말 어린 소녀였다고..."]

일제는 1944년 전쟁 와중에 '일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속여 10대 소녀 300여 명을 데려온 뒤 군수 공장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결정적 증거가 된 순직자 명부.

["(주소가?) 전라남도 목포."]

당시 사진 속 소녀들은 앳되기만 합니다.

막내는 12살이었습니다.

17개월 간 강제로 일에 내몰렸지만 전쟁이 끝나자 한푼도 주지 않고 쫓아내듯 한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이건 가해국 시민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할머니들 얼굴을 보고 그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저며옵니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한 장의 사진.

지금은 평온해 보이는 그곳이지만, 과거 전쟁의 광기가 넘쳐났던 곳입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천황의 나라라고, 그래서 '우리들은 일본 제국의 승리를 위해 힘쓰겠습니다'라고 맹세를 강요하고..."]

차가운 금요일 새벽, 다카하시 씨는 오늘도 집회를 위해 도쿄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10여 년을 한결같이 오가는 여정입니다.

올해부터는 외무성 앞에서도 마이크를 듭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소송 원고 11명 가운데 한 명, 동생을 미쓰비시 공장에서 잃고 부인 또한 근로정신대 피해자였던 김중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눈물이 북받쳐 오르지만, 참고 또 참습니다.

[다카하시/나고야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대표 : "포기하지 않는다면 꼭 해결될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도쿄에서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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