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인이 지구를 구한다”…찰리우드가 우주에 집착하는 이유

입력 2019.02.0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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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SF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 공식 포스터


中 춘절에 박스오피스 신기록..올해 중국 SF 영화 약진

중국 최대 명절 춘절 당일인 지난 5일, 중국 박스오피스 흥행 수익이 14억 5,500만 위안(한화 약 2,400억 원)을 돌파하며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종전 기록은 지난해 춘절에 세운 12억 7,700만 위안으로 중국에서 나왔다.

'찰리우드(Chollywood)'라고도 불리는 중국 영화 시장에서 춘절은 최대 성수기이다. 일주일 이상 되는 휴가 기간 가족·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절에 맞춰 유명 감독과 화려한 배우진을 앞세운 영화들이 야심 차게 개봉된다. 올해는 모두 8편의 영화가 대전을 치르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중국 공상과학(SF·Science Fiction) 영화의 약진이다.

춘절 흥행의 선두에 선 영화는 <크레이지 에이리언(瘋狂的外星人)>으로, 제목처럼 '외계인' 이야기를 다룬 SF 코미디 영화이다. 춘절인 5일 하루에만 4억 500만 위안을 벌어들였다.

흥행 4위를 기록한 <유랑지구(流浪地球·The Wandering Earth)>는 중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SF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태양이 수명을 다해 곧 폭발을 앞두자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지구에 거대한 추진기를 달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두 편의 영화 모두 SF 소설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劉慈欣)의 작품이 원작으로, 중국 대륙에서는 특히 <유랑지구>가 가진 의미들에 열광하고 있다.


美 NASA도 인정하는 우주 강국 中, 스크린에서는…

중국은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도 인정하는 우주 강국이다. 지난달 3일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인류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하자 NASA는 "인류 최초이자 감격스러운 성공"이라고 축하했다. 중국은 내년쯤 화성 탐사선도 발사할 예정이다.

우주 강국으로서 중국의 위상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묘사되기도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The Martian)'에서 화성에 조난된 주인공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 도움을 준 건 중국이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도 우주에 고립됐던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몸을 실은 건 중국의 선저우호였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어디까지나 할리우드가 만들고 미국을 배경으로 했다. 중국이 만든 SF 영화들은 스토리 전개나 컴퓨터 그래픽 등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며 중국 관객들로부터도 외면받아 왔던 게 현실이었다.

중국 SF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 이미지중국 SF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 이미지

"중국 SF 영화의 원년"…"중국인이 지구를 구할 차례"

그렇다면 중국의 유명한 평점 사이트 도우반(豆辯)에서 8점대 초반의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중국 SF 영화의 '원년'을 만들었다는 <유랑지구>의 수준은 어떨까. 중국 매체와 네티즌들은 제작 기간 4년을 투자한 <유랑지구>도 전반적 만듦새는 아직 할리우드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하지만 '따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중국 매체 신경보(新京报)에 따르면 <유랑지구> 제작진의 90%가 중국 국내 팀이고, 특수효과도 4분의 3이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동양적 정서와 철학이다. 이 영화를 만든 궈판(郭帆) 감독은 시사회에서 중국 문화의 배경 위에 세워진 SF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를 본 상당수 중국 관객들은 "마침내 중국인이 지구를 구할 차례가 됐다." "지구를 구한 것은 미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고도 강조했다.

전문가와 외신의 평가도 후하다. 신화통신은 "중국 영화 기술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 중국 스크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우주로 날아간다."라는 다이진화(戴锦华) 베이징대 교수의 평가를 인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5일 "중국 영화 산업이 마침내 우주 경쟁에 합류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은 우주 탐사의 후발 주자이고 마찬가지로 영화업계에서도 SF 분야에서 뒤늦게 출발했지만 이런 국면은 곧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中 '우주 굴기' 영화 산업에서도 가능할까?

궈판 감독이 신경보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중국 영화국은 2014년 궈판을 비롯한 젊은 감독들을 미국에 보내 미·중 간 영화 산업의 격차를 눈으로 보고 겪게 했다. 2014년은 <인터스텔라>, <트랜스포머4>, <그래비티> 등 할리우드 SF 영화들이 미국은 물론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은 뒤이다. 당시 함께 미국에 갔던 닝하오 감독이 만든 영화가 춘절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SF 영화 <크레이지 에이리언>이다.

미국과 러시아보다 뒤늦게 우주 개발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국가 차원의 막대한 지원으로 기념비적인 도약을 이루고 있는 중국. <유랑지구>처럼 다른 중국산 SF 영화들도 우주 대탐험의 궤도에 안착할 수 있을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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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7 15:37:36
    특파원 리포트
▲ 중국 SF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 공식 포스터


中 춘절에 박스오피스 신기록..올해 중국 SF 영화 약진

중국 최대 명절 춘절 당일인 지난 5일, 중국 박스오피스 흥행 수익이 14억 5,500만 위안(한화 약 2,400억 원)을 돌파하며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종전 기록은 지난해 춘절에 세운 12억 7,700만 위안으로 중국에서 나왔다.

'찰리우드(Chollywood)'라고도 불리는 중국 영화 시장에서 춘절은 최대 성수기이다. 일주일 이상 되는 휴가 기간 가족·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절에 맞춰 유명 감독과 화려한 배우진을 앞세운 영화들이 야심 차게 개봉된다. 올해는 모두 8편의 영화가 대전을 치르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중국 공상과학(SF·Science Fiction) 영화의 약진이다.

춘절 흥행의 선두에 선 영화는 <크레이지 에이리언(瘋狂的外星人)>으로, 제목처럼 '외계인' 이야기를 다룬 SF 코미디 영화이다. 춘절인 5일 하루에만 4억 500만 위안을 벌어들였다.

흥행 4위를 기록한 <유랑지구(流浪地球·The Wandering Earth)>는 중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SF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태양이 수명을 다해 곧 폭발을 앞두자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지구에 거대한 추진기를 달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두 편의 영화 모두 SF 소설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劉慈欣)의 작품이 원작으로, 중국 대륙에서는 특히 <유랑지구>가 가진 의미들에 열광하고 있다.


美 NASA도 인정하는 우주 강국 中, 스크린에서는…

중국은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도 인정하는 우주 강국이다. 지난달 3일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인류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하자 NASA는 "인류 최초이자 감격스러운 성공"이라고 축하했다. 중국은 내년쯤 화성 탐사선도 발사할 예정이다.

우주 강국으로서 중국의 위상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묘사되기도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The Martian)'에서 화성에 조난된 주인공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 도움을 준 건 중국이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도 우주에 고립됐던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몸을 실은 건 중국의 선저우호였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어디까지나 할리우드가 만들고 미국을 배경으로 했다. 중국이 만든 SF 영화들은 스토리 전개나 컴퓨터 그래픽 등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며 중국 관객들로부터도 외면받아 왔던 게 현실이었다.

중국 SF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 이미지
"중국 SF 영화의 원년"…"중국인이 지구를 구할 차례"

그렇다면 중국의 유명한 평점 사이트 도우반(豆辯)에서 8점대 초반의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중국 SF 영화의 '원년'을 만들었다는 <유랑지구>의 수준은 어떨까. 중국 매체와 네티즌들은 제작 기간 4년을 투자한 <유랑지구>도 전반적 만듦새는 아직 할리우드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하지만 '따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중국 매체 신경보(新京报)에 따르면 <유랑지구> 제작진의 90%가 중국 국내 팀이고, 특수효과도 4분의 3이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동양적 정서와 철학이다. 이 영화를 만든 궈판(郭帆) 감독은 시사회에서 중국 문화의 배경 위에 세워진 SF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를 본 상당수 중국 관객들은 "마침내 중국인이 지구를 구할 차례가 됐다." "지구를 구한 것은 미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고도 강조했다.

전문가와 외신의 평가도 후하다. 신화통신은 "중국 영화 기술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 중국 스크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우주로 날아간다."라는 다이진화(戴锦华) 베이징대 교수의 평가를 인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5일 "중국 영화 산업이 마침내 우주 경쟁에 합류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은 우주 탐사의 후발 주자이고 마찬가지로 영화업계에서도 SF 분야에서 뒤늦게 출발했지만 이런 국면은 곧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中 '우주 굴기' 영화 산업에서도 가능할까?

궈판 감독이 신경보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중국 영화국은 2014년 궈판을 비롯한 젊은 감독들을 미국에 보내 미·중 간 영화 산업의 격차를 눈으로 보고 겪게 했다. 2014년은 <인터스텔라>, <트랜스포머4>, <그래비티> 등 할리우드 SF 영화들이 미국은 물론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은 뒤이다. 당시 함께 미국에 갔던 닝하오 감독이 만든 영화가 춘절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SF 영화 <크레이지 에이리언>이다.

미국과 러시아보다 뒤늦게 우주 개발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국가 차원의 막대한 지원으로 기념비적인 도약을 이루고 있는 중국. <유랑지구>처럼 다른 중국산 SF 영화들도 우주 대탐험의 궤도에 안착할 수 있을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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