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능수능란한 협상꾼 ‘북한 파워맨’ 김영철

입력 2019.02.0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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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과 독대…이름까지 고쳐”
■대를 이은 협상 책임자…능수능란한 협상꾼
■대남도발 상징에서 외교 사절로

▶대미·대남 라인 최고 실세


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린다고 발표되면서, 실무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측근 인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워싱턴 백악관을 찾아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본 북한의 최고위 인사는 누구일까? 최초 인물은 2000년 10월 백악관을 방문해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만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선인민군 차수)이다. 그리고 18년 세월이 흐른 뒤 2018년과 2019년 두 번 연속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이다. 김영철은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에도 배석한 인물이어서 현 시점에서 북한의 대남.대미 라인의 최고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김영철은 북한 군부의 대표적인 존재로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의 배후로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 어떻게 대남.대미 협상의 중추적인 인물로 떠오르게 됐을까?

▶“김일성 주석과 독대…이름도 바꿔”


1946년 북한 양강도 출생인 김영철은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북한의 대표적 군부 인사다.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 출신의 김영철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남북 고위급 예비회담 때부터였다. 당시 인민무력부 부국장의 직책으로 회담에 참석한 김영철은 직설적인 화법과 물러서지 않는 원칙주의로 주목을 받았다. 예비회담에 이어 본회담까지 참가하면서 김영철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일성 주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김영철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김일성 주석을 독대하고 개명까지 했다는 게 탈북 외교관의 증언이다. 케냐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중 탈북한 고영환 씨는 "김일성 주석이 회담 장면을 CCTV로 보다가 김영철이라는 사람이 똑똑하니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말해서 회담 끝난 다음 평양에 들어가서 김영철이 김일성 주석과 독대했다. 김일성 주석이 '어떻게 그리 논리가 정연하고 말을 잘 하냐. 원래 이름이 뭐냐' 그러니까 '김동수입니다' 답했다. 당시 회담에는 김영철이라는 가명을 쓰고 나왔는데 김일성 주석이 김영철이란 이름이 좋다고 하니까 그 이름이 김일성한테 하사를 받은 이름처럼 돼버렸다. 김영철이 그러면서 그때부터 출세가 시작된 거다." 라고 설명했다.

▶대를 이은 협상 전문가…능수능란한 협상꾼


김일성 주석 사망 후에도 김영철에 대한 김 씨 일가의 신임은 계속됐다. 김영철은 2006년과
그 이듬해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국방장관회담 등 주요 남북회담의 실무자로 이름을 올렸다.당시 남측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예비역 장성은 김영철의 농익은 협상전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남북 장성급회담 남측 차석대표를 지낸 문성묵 예비역 준장은 "김영철은 오랫동안 이 업무를 수행했고 이 분야에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이른바 협상꾼이라고 볼 수 있다. 능수능란하게 상대방을 다루면서 극단적으로 상대방을 코너에 몰아붙이고 윽박지르고 협박을 하다가 필요할 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완전히 얼굴을 바꿔가지고 나 좀 도와달라 제발 좀 도와달라며 아주 사정 모드로 전환을 한다. 그러니까 협상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협상의 귀재라고 할 수 있겠다"라고 평가했다.


2008년,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돼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작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김영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정찰총국장으로 발탁되며 김정은 위원장과도 신뢰를 쌓아간다. 집권 직후인 2012년 3월, 판문점을 현지 시찰한 김정은의 곁에도 김영철이 동행했고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김영철은 정전협정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들고 선두에 나섰다. 또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으로 남북이 극한 대치를 이어갈 때 김영철은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뢰 도발을 강하게 부인하며 무모한 도발은 값비싼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위협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남 도발 상징에서 외교 사절로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대화에 임하는 김영철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남측 예술단의 방북 공연에서 김영철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도종환 문화부 장관과 손을 맞잡으며 공연을 주관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통전부 산하 초대소로 예술단을 초청해 예정에 없던 만찬도 주재했다. 그동안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던 김영철이 대화를 자처하고 나선 건 달라진 김정은 정권의 대남, 대외 정책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기 위한 처세술로 분석된다.


지난해 3번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김영철은 가까운 거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했고,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을 제외하면 회담장에 배석한 유일한 인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영철의 위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회담장에 배석하고 관련 서류를 손수 챙기는 김영철의 행보와 함께 리수용, 리용호와 같은 외무성 엘리트들을 뒤로 두고 김영철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김영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신뢰감이 돋보였다.


북한 당국이 김영철을 협상 전면에 내세우는 진짜 이유는 모든 협상의 중심에 핵(核)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이를 정당화하고 싶은 북한 당국이 원칙주의자이자 강경파인 군부 인사를 전면에 내세워 반복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는 "북한은 이제 핵 보유국의 위치에서 미국과 협상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외무성의 보고서라는 것은 미국의 실체를 오히려 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미국에 대해서 강 대 강 구조, 특히 대등한 입장을 주장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오히려 핵강국. 핵보유 주체로 협상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김영철의 강공 보고서가 외무성의 유연한 보고서보다는 김정은 입장에서 더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라고 분석했다.

▶뛰어난 처세술…3대 이어 자리 지킨 비결

북한은 최고지도자인 수령의 유일 영도만이 국가를 지배하는 나라다. 그만큼 북한의 엘리트들에 대한 해임과 숙청, 복권도 지도자의 심경 변화에 따라 자주 이뤄질 수 밖에 없다.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불리었던 리영호, 장성택, 황병서도 모두 숙청, 처형되거나 해임됐다. 그러나 김영철 부위원장은 김 씨 일가 3대를 거치면서도 큰 부침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평범한 출신 배경이다. 이른바 항일 빨치산 가문의 엘리트들은 출신 성분을 믿고 경솔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김영철의 경우 한번 숙청되면 복권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최대한 강경한 자세로 북한 당국의 정책을 떠받들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 시절의 외교 경험이다. 판문점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유엔군과 남한 군사를 상대하면서 일찌감치 협상가로의 토대를 닦은 김영철이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살려 내부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대남 정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평양의 권력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가 무사히 전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마지막으로 김영철만의 뛰어난 처세술을 들 수 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김영철은 김정은의 해외지향적인 정책 스타일을 일찍이 간파하고 외교 분야에서 김정은의 신뢰를 얻을 기회를 노려왔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계기로 전격 외교 무대에 데뷔했고 이제 대미 외교에 있어서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평가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김영철 부위원장의 존재감 역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협상대표의 변동 가능성을 추측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의 김영철의 역할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전 북한 외교관 고영환 씨는 "김영철은 계속해서 세게 나가면서 미국을 약간 쥐었다 놨다 하는 것처럼 하면서 강경하게 나가면서 북한 다루기가 쉽지 않구나 하는 인상을 계속 주기 위해 아직도 할 역할이 많다.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고 영변기지 핵사찰이 이뤄질 때쯤엔 외무성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겠지만 그 큰 틀을 만들기 전에 김영철이가 빠지기는 어려울 거 같다" 라고 분석했다. 30년간 수많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며 북한의 책임 협상가로 올라선 김영철. 그의 발언이나 행보가 곧 북한 당국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만큼 노회한 협상가에게 모아지는 관심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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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9 08: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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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과 독대…이름까지 고쳐”
■대를 이은 협상 책임자…능수능란한 협상꾼
■대남도발 상징에서 외교 사절로

▶대미·대남 라인 최고 실세


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린다고 발표되면서, 실무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측근 인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워싱턴 백악관을 찾아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본 북한의 최고위 인사는 누구일까? 최초 인물은 2000년 10월 백악관을 방문해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만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선인민군 차수)이다. 그리고 18년 세월이 흐른 뒤 2018년과 2019년 두 번 연속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이다. 김영철은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에도 배석한 인물이어서 현 시점에서 북한의 대남.대미 라인의 최고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김영철은 북한 군부의 대표적인 존재로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의 배후로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 어떻게 대남.대미 협상의 중추적인 인물로 떠오르게 됐을까?

▶“김일성 주석과 독대…이름도 바꿔”


1946년 북한 양강도 출생인 김영철은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북한의 대표적 군부 인사다.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 출신의 김영철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남북 고위급 예비회담 때부터였다. 당시 인민무력부 부국장의 직책으로 회담에 참석한 김영철은 직설적인 화법과 물러서지 않는 원칙주의로 주목을 받았다. 예비회담에 이어 본회담까지 참가하면서 김영철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일성 주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김영철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김일성 주석을 독대하고 개명까지 했다는 게 탈북 외교관의 증언이다. 케냐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중 탈북한 고영환 씨는 "김일성 주석이 회담 장면을 CCTV로 보다가 김영철이라는 사람이 똑똑하니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말해서 회담 끝난 다음 평양에 들어가서 김영철이 김일성 주석과 독대했다. 김일성 주석이 '어떻게 그리 논리가 정연하고 말을 잘 하냐. 원래 이름이 뭐냐' 그러니까 '김동수입니다' 답했다. 당시 회담에는 김영철이라는 가명을 쓰고 나왔는데 김일성 주석이 김영철이란 이름이 좋다고 하니까 그 이름이 김일성한테 하사를 받은 이름처럼 돼버렸다. 김영철이 그러면서 그때부터 출세가 시작된 거다." 라고 설명했다.

▶대를 이은 협상 전문가…능수능란한 협상꾼


김일성 주석 사망 후에도 김영철에 대한 김 씨 일가의 신임은 계속됐다. 김영철은 2006년과
그 이듬해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국방장관회담 등 주요 남북회담의 실무자로 이름을 올렸다.당시 남측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예비역 장성은 김영철의 농익은 협상전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남북 장성급회담 남측 차석대표를 지낸 문성묵 예비역 준장은 "김영철은 오랫동안 이 업무를 수행했고 이 분야에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이른바 협상꾼이라고 볼 수 있다. 능수능란하게 상대방을 다루면서 극단적으로 상대방을 코너에 몰아붙이고 윽박지르고 협박을 하다가 필요할 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완전히 얼굴을 바꿔가지고 나 좀 도와달라 제발 좀 도와달라며 아주 사정 모드로 전환을 한다. 그러니까 협상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협상의 귀재라고 할 수 있겠다"라고 평가했다.


2008년,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돼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작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김영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정찰총국장으로 발탁되며 김정은 위원장과도 신뢰를 쌓아간다. 집권 직후인 2012년 3월, 판문점을 현지 시찰한 김정은의 곁에도 김영철이 동행했고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김영철은 정전협정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들고 선두에 나섰다. 또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으로 남북이 극한 대치를 이어갈 때 김영철은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뢰 도발을 강하게 부인하며 무모한 도발은 값비싼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위협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남 도발 상징에서 외교 사절로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대화에 임하는 김영철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남측 예술단의 방북 공연에서 김영철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도종환 문화부 장관과 손을 맞잡으며 공연을 주관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통전부 산하 초대소로 예술단을 초청해 예정에 없던 만찬도 주재했다. 그동안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던 김영철이 대화를 자처하고 나선 건 달라진 김정은 정권의 대남, 대외 정책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기 위한 처세술로 분석된다.


지난해 3번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김영철은 가까운 거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했고,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을 제외하면 회담장에 배석한 유일한 인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영철의 위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회담장에 배석하고 관련 서류를 손수 챙기는 김영철의 행보와 함께 리수용, 리용호와 같은 외무성 엘리트들을 뒤로 두고 김영철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김영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신뢰감이 돋보였다.


북한 당국이 김영철을 협상 전면에 내세우는 진짜 이유는 모든 협상의 중심에 핵(核)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이를 정당화하고 싶은 북한 당국이 원칙주의자이자 강경파인 군부 인사를 전면에 내세워 반복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는 "북한은 이제 핵 보유국의 위치에서 미국과 협상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외무성의 보고서라는 것은 미국의 실체를 오히려 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미국에 대해서 강 대 강 구조, 특히 대등한 입장을 주장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오히려 핵강국. 핵보유 주체로 협상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김영철의 강공 보고서가 외무성의 유연한 보고서보다는 김정은 입장에서 더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라고 분석했다.

▶뛰어난 처세술…3대 이어 자리 지킨 비결

북한은 최고지도자인 수령의 유일 영도만이 국가를 지배하는 나라다. 그만큼 북한의 엘리트들에 대한 해임과 숙청, 복권도 지도자의 심경 변화에 따라 자주 이뤄질 수 밖에 없다.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불리었던 리영호, 장성택, 황병서도 모두 숙청, 처형되거나 해임됐다. 그러나 김영철 부위원장은 김 씨 일가 3대를 거치면서도 큰 부침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평범한 출신 배경이다. 이른바 항일 빨치산 가문의 엘리트들은 출신 성분을 믿고 경솔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김영철의 경우 한번 숙청되면 복권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최대한 강경한 자세로 북한 당국의 정책을 떠받들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 시절의 외교 경험이다. 판문점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유엔군과 남한 군사를 상대하면서 일찌감치 협상가로의 토대를 닦은 김영철이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살려 내부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대남 정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평양의 권력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가 무사히 전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마지막으로 김영철만의 뛰어난 처세술을 들 수 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김영철은 김정은의 해외지향적인 정책 스타일을 일찍이 간파하고 외교 분야에서 김정은의 신뢰를 얻을 기회를 노려왔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계기로 전격 외교 무대에 데뷔했고 이제 대미 외교에 있어서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평가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김영철 부위원장의 존재감 역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협상대표의 변동 가능성을 추측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의 김영철의 역할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전 북한 외교관 고영환 씨는 "김영철은 계속해서 세게 나가면서 미국을 약간 쥐었다 놨다 하는 것처럼 하면서 강경하게 나가면서 북한 다루기가 쉽지 않구나 하는 인상을 계속 주기 위해 아직도 할 역할이 많다.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고 영변기지 핵사찰이 이뤄질 때쯤엔 외무성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겠지만 그 큰 틀을 만들기 전에 김영철이가 빠지기는 어려울 거 같다" 라고 분석했다. 30년간 수많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며 북한의 책임 협상가로 올라선 김영철. 그의 발언이나 행보가 곧 북한 당국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만큼 노회한 협상가에게 모아지는 관심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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