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병 전 진단·치료”…영화같은 핀란드의 ‘빅데이터 의료’

입력 2019.02.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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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정부, 전 국민 의료정보 전자화해 수집
의료 빅데이터 민간에 개방…혁신 서비스 개발에 활용


온라인에서 내 의료정보 확인 가능…의료 기관도 활용

핀란드 헬싱키에 사는 71세 사리타 마야-헬만(Sarita Maja-Hellman) 씨는 몸이 불편할 때면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핀란드 정부에서 운영하는 '마이데이터' 페이지에 들어가면 언제든 자신의 의료 기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지금까지 병원에서 받았던 진단서는 물론 처방전, 건강검진결과까지 모든 의료 정보가 홈페이지에 총 망라돼 있습니다. 자신이 예전에 어디가 아팠는지 의사가 어떤 처방을 내렸는지는 물론 지금까지 먹은 약물까지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리타 씨는 "의사에게 정확하게 뭐라고 진단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면 홈페이지에서 다 확인할 수 있다"며 마이데이터 시스템이 매우 편리하다고 말합니다.

헬싱키 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한 원격 화상 의료상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상담소를 찾지 않아도 웹캠을 통해 상담원과 대화를 나누며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상담원들은 온라인 의료기록을 보며 노인들에게 약을 제때 먹었는지, 산책은 했는지 묻습니다. 또 노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약물 처방 기록 등을 참고해 조언해줍니다. 모든 상담 내용은 다시 해당 노인의 온라인 의료 정보에 기록돼 다른 의료기관에서 참고할 수 있게 합니다.


핀란드 환자 기록 98% 전자화…민간에 개방

이처럼 편리한 핀란드의 온라인 의료 서비스의 비결은 정부가 관리하는 '의료정보시스템' 덕분입니다. 핀란드 정부는 1950년대부터 국민들의 모든 진료 기록을 수집해 왔습니다. 또 이 정보를 전산화해 현재는 550만 핀란드 국민의 환자 기록 중 98%가 전자 문서로 저장돼 있습니다. 진료 기록이나 검진 결과, 처방전 등 문서는 물론이고 X레이·CT 사진, 환자 동영상 등 시청각 자료까지 의료정보시스템에 모입니다. 핀란드인 550만 명의 의료 빅데이터가 자동으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에 더해 핀란드 정부는 모아놓은 데이터를 연구나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개방했습니다. 정부기관이나 국공립 병원뿐 아니라 민간 기업, 연구자들도 자유롭게 정보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핀란드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최첨단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소아 뇌성마비 진단…정부 제공 환자 영상 ‘머신러닝’

의료 스타트업인 '뉴로이벤트랩(Neuro Event Labs)'이 개발한 '인공지능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환자의 동영상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는 서비스입니다. 현재 헬싱키 대학 병원에 시범 도입돼 소아 뇌성마비 판정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갓난아기의 뇌성마비를 판정하려면 전문 인력이 필요했는데 인력 한계와 시간 문제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카아포 안날라(Kaapo Annala) 뉴로이벤트랩 대표는 "생후 3~6개월 때 뇌성마비를 발견하고 치료하면 손상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지만 뇌성마비의 첫 증상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진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희 인공지능 서비스는 1분에서 3분 정도의 아기 동영상만 있으면 뇌성마비를 판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진단 정확도는 95% 정도에 이릅니다.

이 같은 혁신 서비스는 핀란드 정부에서 개방한 의료 빅데이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카아포 대표의 말입니다. 뉴로이벤트랩의 인공지능은 의료정보시스템에 있던 환자 동영상 천여 개를 보며 학습해왔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인공지능이 접할수록 더 지능화돼 정확성이 높아집니다." 이어 카아포 대표는 "병원들이 치료한 데이터를 토대로 어떤 치료법이 더 효과적인지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습니다."라며 핀란드의 의료 정보 시스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4시간 전 감염 진단…이상 조직 AI가 자동 판별

이 밖에도 취재 과정에서 많은 신기한 의료 서비스를 목격했습니다. 헬싱키 대학병원에서는 '신생아 패혈증 예측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패혈증은 신생아에게 치명적인데 감염되기 24시간 전 인공지능이 경고를 보내주는 시스템입니다.

헬싱키 대학병원의 비자 혼카넨(Visa Honkanen) 전략개발본부장은 "아기가 괜찮다가도 한순간에 치명적인 상태로 바뀌는 게 패혈증"이라며 이를 예측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프로그램이 경고를 보내면 아기가 24시간 후에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기 침대 옆에 미리 모든 장비를 준비해 놓고 첫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치료해 감염을 초기 단계에서 예방합니다."

또 눈여겨볼 만한 서비스는 '아이포리아(Aiforia)'가 개발한 '신체 조직 자동분석 시스템'입니다. 기존 임상병리학은 의사들이 종일 현미경으로 인체 조직을 들여다보며 암세포나 세균 등 이상 부위를 찾아야 했습니다. 새 서비스는 신체 조직 사진 한 장만 있으면 1분도 안 돼 이상이 있는 곳을 인공지능이 찾아줍니다. 암과 파킨슨병 진단 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 또한 정부가 개방한 의료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해 만들어낸 서비스입니다. 카이사 헬미넨(Kaisa Helminen) 아이포리아 대표는 "정부가 수집한 많은 양의 샘플 데이터와 환자 정보를 활용했다"며 "우리 서비스는 다시 환자나 병원에 효율적인 질병 분석 방법을 제공한다"고 의료 빅데이터의 선순환 체계를 설명했습니다.


유전자 정보-빅데이터 결합…‘맞춤형 진료·발병 전 예방’ 초점

이에 더해 핀란드는 최근 국민들의 유전자 정보까지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국민의 10분의 1인 50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핀젠(FinnGen) 프로젝트'입니다. 기존에 수집한 의료 빅데이터에 유전자 정보를 결합해 새로운 차원의 의료 체계를 만들겠다는 과감한 계획입니다.

아르노 팔로티에(Aarno Palotie) 헬싱키 의대 분자의학연구소 교수는 "장기간 쌓인 환자 기록과 유전자 정보를 결합해 공통적인 질병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 한다"고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더불어 "개인의 유전자 배경을 분석해 개개인에게 특화된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고, 나아가 병에 걸리기 전 예방까지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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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병 전 진단·치료”…영화같은 핀란드의 ‘빅데이터 의료’
    • 입력 2019-02-10 09:01:51
    취재K
핀란드 정부, 전 국민 의료정보 전자화해 수집
의료 빅데이터 민간에 개방…혁신 서비스 개발에 활용


온라인에서 내 의료정보 확인 가능…의료 기관도 활용

핀란드 헬싱키에 사는 71세 사리타 마야-헬만(Sarita Maja-Hellman) 씨는 몸이 불편할 때면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핀란드 정부에서 운영하는 '마이데이터' 페이지에 들어가면 언제든 자신의 의료 기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지금까지 병원에서 받았던 진단서는 물론 처방전, 건강검진결과까지 모든 의료 정보가 홈페이지에 총 망라돼 있습니다. 자신이 예전에 어디가 아팠는지 의사가 어떤 처방을 내렸는지는 물론 지금까지 먹은 약물까지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리타 씨는 "의사에게 정확하게 뭐라고 진단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면 홈페이지에서 다 확인할 수 있다"며 마이데이터 시스템이 매우 편리하다고 말합니다.

헬싱키 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한 원격 화상 의료상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상담소를 찾지 않아도 웹캠을 통해 상담원과 대화를 나누며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상담원들은 온라인 의료기록을 보며 노인들에게 약을 제때 먹었는지, 산책은 했는지 묻습니다. 또 노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약물 처방 기록 등을 참고해 조언해줍니다. 모든 상담 내용은 다시 해당 노인의 온라인 의료 정보에 기록돼 다른 의료기관에서 참고할 수 있게 합니다.


핀란드 환자 기록 98% 전자화…민간에 개방

이처럼 편리한 핀란드의 온라인 의료 서비스의 비결은 정부가 관리하는 '의료정보시스템' 덕분입니다. 핀란드 정부는 1950년대부터 국민들의 모든 진료 기록을 수집해 왔습니다. 또 이 정보를 전산화해 현재는 550만 핀란드 국민의 환자 기록 중 98%가 전자 문서로 저장돼 있습니다. 진료 기록이나 검진 결과, 처방전 등 문서는 물론이고 X레이·CT 사진, 환자 동영상 등 시청각 자료까지 의료정보시스템에 모입니다. 핀란드인 550만 명의 의료 빅데이터가 자동으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에 더해 핀란드 정부는 모아놓은 데이터를 연구나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개방했습니다. 정부기관이나 국공립 병원뿐 아니라 민간 기업, 연구자들도 자유롭게 정보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핀란드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최첨단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소아 뇌성마비 진단…정부 제공 환자 영상 ‘머신러닝’

의료 스타트업인 '뉴로이벤트랩(Neuro Event Labs)'이 개발한 '인공지능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환자의 동영상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는 서비스입니다. 현재 헬싱키 대학 병원에 시범 도입돼 소아 뇌성마비 판정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갓난아기의 뇌성마비를 판정하려면 전문 인력이 필요했는데 인력 한계와 시간 문제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카아포 안날라(Kaapo Annala) 뉴로이벤트랩 대표는 "생후 3~6개월 때 뇌성마비를 발견하고 치료하면 손상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지만 뇌성마비의 첫 증상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진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희 인공지능 서비스는 1분에서 3분 정도의 아기 동영상만 있으면 뇌성마비를 판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진단 정확도는 95% 정도에 이릅니다.

이 같은 혁신 서비스는 핀란드 정부에서 개방한 의료 빅데이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카아포 대표의 말입니다. 뉴로이벤트랩의 인공지능은 의료정보시스템에 있던 환자 동영상 천여 개를 보며 학습해왔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인공지능이 접할수록 더 지능화돼 정확성이 높아집니다." 이어 카아포 대표는 "병원들이 치료한 데이터를 토대로 어떤 치료법이 더 효과적인지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습니다."라며 핀란드의 의료 정보 시스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4시간 전 감염 진단…이상 조직 AI가 자동 판별

이 밖에도 취재 과정에서 많은 신기한 의료 서비스를 목격했습니다. 헬싱키 대학병원에서는 '신생아 패혈증 예측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패혈증은 신생아에게 치명적인데 감염되기 24시간 전 인공지능이 경고를 보내주는 시스템입니다.

헬싱키 대학병원의 비자 혼카넨(Visa Honkanen) 전략개발본부장은 "아기가 괜찮다가도 한순간에 치명적인 상태로 바뀌는 게 패혈증"이라며 이를 예측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프로그램이 경고를 보내면 아기가 24시간 후에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기 침대 옆에 미리 모든 장비를 준비해 놓고 첫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치료해 감염을 초기 단계에서 예방합니다."

또 눈여겨볼 만한 서비스는 '아이포리아(Aiforia)'가 개발한 '신체 조직 자동분석 시스템'입니다. 기존 임상병리학은 의사들이 종일 현미경으로 인체 조직을 들여다보며 암세포나 세균 등 이상 부위를 찾아야 했습니다. 새 서비스는 신체 조직 사진 한 장만 있으면 1분도 안 돼 이상이 있는 곳을 인공지능이 찾아줍니다. 암과 파킨슨병 진단 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 또한 정부가 개방한 의료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해 만들어낸 서비스입니다. 카이사 헬미넨(Kaisa Helminen) 아이포리아 대표는 "정부가 수집한 많은 양의 샘플 데이터와 환자 정보를 활용했다"며 "우리 서비스는 다시 환자나 병원에 효율적인 질병 분석 방법을 제공한다"고 의료 빅데이터의 선순환 체계를 설명했습니다.


유전자 정보-빅데이터 결합…‘맞춤형 진료·발병 전 예방’ 초점

이에 더해 핀란드는 최근 국민들의 유전자 정보까지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국민의 10분의 1인 50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핀젠(FinnGen) 프로젝트'입니다. 기존에 수집한 의료 빅데이터에 유전자 정보를 결합해 새로운 차원의 의료 체계를 만들겠다는 과감한 계획입니다.

아르노 팔로티에(Aarno Palotie) 헬싱키 의대 분자의학연구소 교수는 "장기간 쌓인 환자 기록과 유전자 정보를 결합해 공통적인 질병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 한다"고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더불어 "개인의 유전자 배경을 분석해 개개인에게 특화된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고, 나아가 병에 걸리기 전 예방까지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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