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정주영이 내 여행사를 빼앗았다”…현대家 40년째 ‘모르쇠’

입력 2019.02.11 (18:23) 수정 2019.02.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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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탐사보도부는 <뉴스타파>와 공동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리고 현대 오너 일가가 뒤얽힌 의혹을 추적했습니다. 40년 전 정주영 회장이 당시 알짜 여행사로 손꼽히던 기업을 빼앗아 갔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취재진은 40여 년 전 ‘자유항공’이라는 여행사를 경영한 심재섭 씨를 만났습니다. 심재섭 씨는 1977년 정주영 회장이 자신의 여행사를 빼앗아갔다고 주장하는 여인입니다. 당시에는 항공운송대리점업 면허를 가진 여행사만이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한 해 1만 명 가까운 노동자를 해외로 보내야 했던 현대건설이 면허를 가진 여행사를 탐냈다는 겁니다. 심 씨는 이를 지시한 사람으로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회장을 지목했습니다.

40년 전의 사건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심 씨 진술을 뒷받침할 물증을 찾던 중 심 씨가 그 날 그 날의 일을 기록해 둔 일지를 확인했습니다. 전문가에게 문서감정을 의뢰한 결과, 77년 당시 심재섭 씨 본인이 작성한 기록이 맞다는 감정이 나왔습니다.


일지와 심재섭 씨 기억, 관여한 인물들의 증언, 당시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 재구성한 ‘현대家의 여행사 탈취 사건’은 이렇습니다. 1977년 현대건설 회장 정주영, 사장 이명박, 이사 박규직, 계약 실무 담당자였던 대리 나명오 등 네 사람은 심재섭 씨의 자유항공 지분 70%를 3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구두 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3억 원이 아닌 계약금 8천만 원만 지급하고는 경영권을 가져갔다는 겁니다. 심 씨는 자신이 일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회사에서 대표이사 도장을 가져가 대표이사 사임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인수 계약서에는 심재섭 씨와 현대 양측 서명조차 없습니다. 사기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빼앗긴 회사에 대한 보상 요구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번번이 '정주영 회장이 곧 해결해 줄 것이다’는 식으로 모면했다는 게 심재섭 씨 설명입니다. 현대로 넘어간 ‘자유항공’은 정주영 회장의 3남 정몽근 손에 맡겨졌고, 지금은 현대백화점 그룹의 ‘현대 드림투어’로 사명을 바꾼 채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 상무를 거쳐, 현대 서산농장 사장을 지내고 퇴직한 사건 당시 실무자 나명오 씨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상당 부분 심재섭 씨의 주장을 인정했습니다. 그 일로 해서 자신도 현대건설에서 재직하는 동안 '사실확인서'를 여러번 심재섭 씨에게 써줬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2008년 대통령에 취임한 것입니다. 심재섭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명박 대통령 처가 쪽의 힘을 빌어 빼앗긴 회사에 대한 보상을 현대 측에 요구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당시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문 부회장을 보내 심재섭씨에 대한 보상 논의에 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몽구 회장도 '여행사 탈취' 사건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셈입니다.

그러나 일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정작 자유항공을 빼앗긴 당사자인 심재섭 씨를 제쳐 놓은 채,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사이에 또다른 뒷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굴지의 재벌 현대家의 오점으로 남게된 여행사 탈취 사건과 이 사실을 속속 들이 알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을 담은 <시사기획 창: 현대家의 '자유항공’탈취 40년사>는 12일 밤 10시 KBS 1TV를 통해 더 상세한 재벌가의 흑역사를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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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1 18:23:12
    • 수정2019-02-11 19:46:00
    탐사K
KBS 탐사보도부는 <뉴스타파>와 공동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리고 현대 오너 일가가 뒤얽힌 의혹을 추적했습니다. 40년 전 정주영 회장이 당시 알짜 여행사로 손꼽히던 기업을 빼앗아 갔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취재진은 40여 년 전 ‘자유항공’이라는 여행사를 경영한 심재섭 씨를 만났습니다. 심재섭 씨는 1977년 정주영 회장이 자신의 여행사를 빼앗아갔다고 주장하는 여인입니다. 당시에는 항공운송대리점업 면허를 가진 여행사만이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한 해 1만 명 가까운 노동자를 해외로 보내야 했던 현대건설이 면허를 가진 여행사를 탐냈다는 겁니다. 심 씨는 이를 지시한 사람으로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회장을 지목했습니다.

40년 전의 사건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심 씨 진술을 뒷받침할 물증을 찾던 중 심 씨가 그 날 그 날의 일을 기록해 둔 일지를 확인했습니다. 전문가에게 문서감정을 의뢰한 결과, 77년 당시 심재섭 씨 본인이 작성한 기록이 맞다는 감정이 나왔습니다.


일지와 심재섭 씨 기억, 관여한 인물들의 증언, 당시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 재구성한 ‘현대家의 여행사 탈취 사건’은 이렇습니다. 1977년 현대건설 회장 정주영, 사장 이명박, 이사 박규직, 계약 실무 담당자였던 대리 나명오 등 네 사람은 심재섭 씨의 자유항공 지분 70%를 3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구두 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3억 원이 아닌 계약금 8천만 원만 지급하고는 경영권을 가져갔다는 겁니다. 심 씨는 자신이 일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회사에서 대표이사 도장을 가져가 대표이사 사임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인수 계약서에는 심재섭 씨와 현대 양측 서명조차 없습니다. 사기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빼앗긴 회사에 대한 보상 요구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번번이 '정주영 회장이 곧 해결해 줄 것이다’는 식으로 모면했다는 게 심재섭 씨 설명입니다. 현대로 넘어간 ‘자유항공’은 정주영 회장의 3남 정몽근 손에 맡겨졌고, 지금은 현대백화점 그룹의 ‘현대 드림투어’로 사명을 바꾼 채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 상무를 거쳐, 현대 서산농장 사장을 지내고 퇴직한 사건 당시 실무자 나명오 씨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상당 부분 심재섭 씨의 주장을 인정했습니다. 그 일로 해서 자신도 현대건설에서 재직하는 동안 '사실확인서'를 여러번 심재섭 씨에게 써줬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2008년 대통령에 취임한 것입니다. 심재섭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명박 대통령 처가 쪽의 힘을 빌어 빼앗긴 회사에 대한 보상을 현대 측에 요구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당시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문 부회장을 보내 심재섭씨에 대한 보상 논의에 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몽구 회장도 '여행사 탈취' 사건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셈입니다.

그러나 일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정작 자유항공을 빼앗긴 당사자인 심재섭 씨를 제쳐 놓은 채,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사이에 또다른 뒷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굴지의 재벌 현대家의 오점으로 남게된 여행사 탈취 사건과 이 사실을 속속 들이 알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을 담은 <시사기획 창: 현대家의 '자유항공’탈취 40년사>는 12일 밤 10시 KBS 1TV를 통해 더 상세한 재벌가의 흑역사를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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