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뉴스타파 공동취재] 현대家의 ‘자유항공’ 탈취 40년사

입력 2019.02.12 (23:00) 수정 2019.02.13 (10:4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주영의 자유항공 탈취”

1970년대 중반 현대건설 회장 정주영이 한 여인이 경영하던 여행사를 탈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재섭은 40여 년 전인 1977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자유항공’ 여행사를 정주영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누구든 외국에 나갈 경우 항공운송대리점업 면허를 가진 여행사를 통해서만 항공권을 구입해야 했는데 면허를 가지고 있던 자유항공은 한 해 만 명 이상이던 현대건설의 중동 노동자 송출을 사실상 전담했다. 그러던 중 정주영이 심재섭에게 여행사의 경영권을 넘길 것을 간곡히 제안했고, 자유항공 주식의 7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3억 원을 약속했는데 계약금인 8천만 원만 주고 회사를 통째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당시 현대건설 내에서 자유항공 인수에 관여했던 사람은 회장 정주영, 사장 이명박, 이사 박규직, 실무자였던 대리 나명오 네 사람뿐이었다. 현대건설 상무와 현대 서산농장 사장을 지낸 나명오는 자유항공 인수는 “정주영 회장의 지시”였을 것이라며 “처음부터 자유항공을 지정해서 계약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우선 경영권 인수는 자유항공 주식의 70%를 인수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법적으로 항공운송대리점업 면허를 매매,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권이 정상적으로 현대건설에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자유항공 주식 30%는 여전히 심재섭의 소유였지만, 정주영은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다. 주식의 70%를 인수하는 조건이었다는 것은 인수에 관여했던 박규직과 나명오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현대건설은 자유항공 주식의 70%를 인수하면서 심재섭에게 얼마를 지불했을까? 1977년 10월 27일 자 동아일보는 현대그룹을 인용해 “현대가 8천만 원에 자유항공을 매입”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8천만 원으로 당시 면허를 가진 여행사를 인수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심재섭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제안이 있기 전 “대기업이던 율산에서 먼저 제안이 있었는데 가격은 5억 원”이었다. 그러나 심재섭은 오랫동안 사업 관계를 유지했던 현대건설을 선택했고 “양측이 구두로 합의한 가격이 3억 원”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율산은 자유항공 인수가 무산된 뒤 역시 면허를 가진 ‘신한관광’을 인수했는데 보도에 따르면 인수 협의 금액은 당시 6억 5천만 원이었다.

동아일보 8천만 원 보도동아일보 8천만 원 보도

율산 신한관광 6억 5천만 원 보도율산 신한관광 6억 5천만 원 보도

심재섭은 현대가 주장하는 8천만 원은 약속된 3억 원 가운데 계약금이며, 나머지 2억 2천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실무자였던 나명오는 “액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자신이 계약금을 직접 줬을 것이라며, 중도금과 잔금이 갔는지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건설과 자유항공 사이에는 어떤 계약도 체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현대건설은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심재섭의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가계약까지 추진했다. 심재섭이 가계약에 서명을 하지 않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추가로 주겠다는 이면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심재섭은 가계약은 물론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가계약서와 정식 계약서에는 당사자들의 서명이 없었다.

그렇다면 정주영은 어떻게 자유항공의 경영권을 가져간 것일까? 심재섭은 자신이 “해외 출장을 갔다 온 사이 현대건설 측이 자신의 도장과 대표이사 사임서를 무단으로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1977년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일지를 제시했다. 일지 작성 시점에 대한 전문가 감정 결과 일지는 1977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일지에는 경영권이 현대로 넘어가는 부분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돼 있었다.

1977. 10. 6.
아침부터 현대 나 대리에게 전화로 소리 소리 질렀다. 대표이사 도장과 이사 사임서를 우리 애들로부터 받아 간 과정이 기분 나빴던 것이다. 조금 후 박 이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열심히 변명하였다.

- 심재섭 일지 중에서

1977년 10월 6일 심재섭 일기1977년 10월 6일 심재섭 일기

이에 대해 나명오는 “자유항공까지 간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만나서 받았을 것이다. 대표이사 도장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필요한 서류들을 받았다”며 자신이 도장을 가져간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당시 이사였던 박규직은 “모든 계약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계약서에 자신이 직접 서명했다고 주장하는 등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들을 내놓았다.

심재섭의 기억과 일지의 신뢰성, 현대건설 당사자들의 증언과 문서, 그리고 당시 법규와 정황 등을 종합해 보면 1977년 정주영이 자유항공을 탈취해 갔다는 심재섭의 주장은 진실인 것으로 판단된다.

□ 정몽구의 개입과 무마 정황

자유항공을 가져간 간 정주영은 회사를 셋째 아들인 정몽근에게 넘겼다. 자유항공은 이후 금강항공과 서진항공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현대백화점 그룹 계열사인 현대드림투어가 되어 있다. 심재섭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현대가를 상대로 1977년 당시 자유항공 주식 30%, 미지급된 경영권 인수 금액 2억 2천만 원, 이면으로 약속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현재 가치로 환산해서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KBS는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현대자동차에 정몽구의 입장을 물었다. 정몽구의 공식 입장은 “나와 무관하기 때문에 답변할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정몽구가 2008년 자유항공 문제에 개입해 심재섭의 보상 요구를 무마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황에 따르면 정몽구는 아버지 정주영의 자유항공 탈취를 사실상 인정했다.


심재섭은 2008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후 이명박 부인 김윤옥의 큰언니인 김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심재섭과 김춘은 중학교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이다. 김춘에 따르면 자유항공 문제는 이명박에게 보고됐고 이명박을 대신해 재산관리인이자 처남인 김재정이 직접 개입했다. 정주영이 자유항공을 탈취해 갈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자유항공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이명박 측의 압박에 정몽구 대리인 자격으로 심재섭을 직접 만나 회유, 무마한 사람은 정몽구의 측근으로 알려진 당시 현대차 부회장 김용문이었다. 심재섭이 김용문을 만나는 자리에는 이명박 큰 처형인 김춘과 그의 딸 김 모 씨 등도 동석했다. 심재섭과 김용문은 2008년 5월부터 서울 신라호텔과 하얏트호텔 등에서 8번 만났고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심재섭 일지에 기록되어 있다.

심재섭과 김춘, 그리고 김 모 씨에 따르면 김용문은 “자신이 정몽구의 대리인”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2008년 5월 13일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첫 만남에서 김용문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소송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몽구가 지금 사건이 있어서 외국도 못 나가고 또 봉사하러 다니기 때문에 소송을 하면 곤란하니까 그것을 우리가 전부 다 해결할 테니까 자기하고 의논하자고 이렇게 나온 거죠.”
심재섭 / 자유항공 전 대표이사

“처음 만났을 때 정몽구 회장이 사회봉사 다니고 그러니까 소송까지 가면 되겠냐, 자기가 이제 가서 회장님 만나서 이야기해 보겠다.”
김 모 씨 / 이명박 조카

실제로 2006년 천억 원대 비자금과 8백억 원에 가까운 횡령 혐의로 구속된 정몽구는 2008년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김용문은 또 제주도에 있는 현대차 소유 호텔에 가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제주도인가 별장이 있으니까 별장에 가 계시면 세금 문제도 다 처리해 가지고. 오늘 내로 못 드리는데 그래도 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심재섭 / 자유항공 전 대표이사

“제주도에 시설이 현대에서 잘 돼 있으니까 꼭 나를 한번 초청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
김춘 / 이명박 큰 처형


그러나 김용문은 계속 시간을 끌었다. 그러던 중 2008년 7월 이후부터는 심재섭과 연락을 끊었다. 동시에 심재섭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김재정도 “소송을 하라”는 말과 함께 접촉을 끊었다.

2008년 7월 9일
오전 11시경에 김용문 부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 갑자기 만나자고 한다. 한 30분 후에 김 부회장이 나타났다. 계속 미안하단 말만 되풀이하고 현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 심재섭 일지 중에서

2008년 7월 9일 심재섭 일기2008년 7월 9일 심재섭 일기

2008년 7월 23일
오전 11시에 김춘의 남동생 김재정 씨를 방문했다. 청와대 전일 요일에 들어가서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일에 대해서 의논했다고 한다. 김재정 씨는 아무래도 소송을 해야 될 것 아닌가 한다. 우리 삼 모자는 조금 섭섭하고 허망하다.

- 심재섭 일지 중에서

자유항공과 심재섭을 아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김용문은 “만났다 안 만났다를 알 수가 없다”며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몽구와 이명박 측이 동시에 심재섭과 연락을 끊은 후 자유항공 문제는 다른 테이블 위로 옮겨져 있었다. 정몽구와 이명박이 자유항공 문제를 놓고 직접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다. 의혹의 핵심은 자유항공 문제를 해결하라는 이명박 측의 압박에 정몽구가 현대자동차의 알짜배기 손자회사인 현대엠시트를 무상 또는 헐값에 이명박의 다스에 넘기려 했다는 것이다.


취재: 최문호, 계현우(KBS), 김강민(뉴스타파)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KBS-뉴스타파 공동취재] 현대家의 ‘자유항공’ 탈취 40년사
    • 입력 2019-02-12 23:00:40
    • 수정2019-02-13 10:44:20
    탐사K

□“정주영의 자유항공 탈취”

1970년대 중반 현대건설 회장 정주영이 한 여인이 경영하던 여행사를 탈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재섭은 40여 년 전인 1977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자유항공’ 여행사를 정주영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누구든 외국에 나갈 경우 항공운송대리점업 면허를 가진 여행사를 통해서만 항공권을 구입해야 했는데 면허를 가지고 있던 자유항공은 한 해 만 명 이상이던 현대건설의 중동 노동자 송출을 사실상 전담했다. 그러던 중 정주영이 심재섭에게 여행사의 경영권을 넘길 것을 간곡히 제안했고, 자유항공 주식의 7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3억 원을 약속했는데 계약금인 8천만 원만 주고 회사를 통째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당시 현대건설 내에서 자유항공 인수에 관여했던 사람은 회장 정주영, 사장 이명박, 이사 박규직, 실무자였던 대리 나명오 네 사람뿐이었다. 현대건설 상무와 현대 서산농장 사장을 지낸 나명오는 자유항공 인수는 “정주영 회장의 지시”였을 것이라며 “처음부터 자유항공을 지정해서 계약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우선 경영권 인수는 자유항공 주식의 70%를 인수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법적으로 항공운송대리점업 면허를 매매,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권이 정상적으로 현대건설에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자유항공 주식 30%는 여전히 심재섭의 소유였지만, 정주영은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다. 주식의 70%를 인수하는 조건이었다는 것은 인수에 관여했던 박규직과 나명오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현대건설은 자유항공 주식의 70%를 인수하면서 심재섭에게 얼마를 지불했을까? 1977년 10월 27일 자 동아일보는 현대그룹을 인용해 “현대가 8천만 원에 자유항공을 매입”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8천만 원으로 당시 면허를 가진 여행사를 인수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심재섭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제안이 있기 전 “대기업이던 율산에서 먼저 제안이 있었는데 가격은 5억 원”이었다. 그러나 심재섭은 오랫동안 사업 관계를 유지했던 현대건설을 선택했고 “양측이 구두로 합의한 가격이 3억 원”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율산은 자유항공 인수가 무산된 뒤 역시 면허를 가진 ‘신한관광’을 인수했는데 보도에 따르면 인수 협의 금액은 당시 6억 5천만 원이었다.

동아일보 8천만 원 보도
율산 신한관광 6억 5천만 원 보도
심재섭은 현대가 주장하는 8천만 원은 약속된 3억 원 가운데 계약금이며, 나머지 2억 2천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실무자였던 나명오는 “액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자신이 계약금을 직접 줬을 것이라며, 중도금과 잔금이 갔는지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건설과 자유항공 사이에는 어떤 계약도 체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현대건설은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심재섭의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가계약까지 추진했다. 심재섭이 가계약에 서명을 하지 않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추가로 주겠다는 이면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심재섭은 가계약은 물론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가계약서와 정식 계약서에는 당사자들의 서명이 없었다.

그렇다면 정주영은 어떻게 자유항공의 경영권을 가져간 것일까? 심재섭은 자신이 “해외 출장을 갔다 온 사이 현대건설 측이 자신의 도장과 대표이사 사임서를 무단으로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1977년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일지를 제시했다. 일지 작성 시점에 대한 전문가 감정 결과 일지는 1977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일지에는 경영권이 현대로 넘어가는 부분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돼 있었다.

1977. 10. 6.
아침부터 현대 나 대리에게 전화로 소리 소리 질렀다. 대표이사 도장과 이사 사임서를 우리 애들로부터 받아 간 과정이 기분 나빴던 것이다. 조금 후 박 이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열심히 변명하였다.

- 심재섭 일지 중에서

1977년 10월 6일 심재섭 일기
이에 대해 나명오는 “자유항공까지 간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만나서 받았을 것이다. 대표이사 도장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필요한 서류들을 받았다”며 자신이 도장을 가져간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당시 이사였던 박규직은 “모든 계약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계약서에 자신이 직접 서명했다고 주장하는 등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들을 내놓았다.

심재섭의 기억과 일지의 신뢰성, 현대건설 당사자들의 증언과 문서, 그리고 당시 법규와 정황 등을 종합해 보면 1977년 정주영이 자유항공을 탈취해 갔다는 심재섭의 주장은 진실인 것으로 판단된다.

□ 정몽구의 개입과 무마 정황

자유항공을 가져간 간 정주영은 회사를 셋째 아들인 정몽근에게 넘겼다. 자유항공은 이후 금강항공과 서진항공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현대백화점 그룹 계열사인 현대드림투어가 되어 있다. 심재섭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현대가를 상대로 1977년 당시 자유항공 주식 30%, 미지급된 경영권 인수 금액 2억 2천만 원, 이면으로 약속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현재 가치로 환산해서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KBS는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현대자동차에 정몽구의 입장을 물었다. 정몽구의 공식 입장은 “나와 무관하기 때문에 답변할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정몽구가 2008년 자유항공 문제에 개입해 심재섭의 보상 요구를 무마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황에 따르면 정몽구는 아버지 정주영의 자유항공 탈취를 사실상 인정했다.


심재섭은 2008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후 이명박 부인 김윤옥의 큰언니인 김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심재섭과 김춘은 중학교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이다. 김춘에 따르면 자유항공 문제는 이명박에게 보고됐고 이명박을 대신해 재산관리인이자 처남인 김재정이 직접 개입했다. 정주영이 자유항공을 탈취해 갈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자유항공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이명박 측의 압박에 정몽구 대리인 자격으로 심재섭을 직접 만나 회유, 무마한 사람은 정몽구의 측근으로 알려진 당시 현대차 부회장 김용문이었다. 심재섭이 김용문을 만나는 자리에는 이명박 큰 처형인 김춘과 그의 딸 김 모 씨 등도 동석했다. 심재섭과 김용문은 2008년 5월부터 서울 신라호텔과 하얏트호텔 등에서 8번 만났고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심재섭 일지에 기록되어 있다.

심재섭과 김춘, 그리고 김 모 씨에 따르면 김용문은 “자신이 정몽구의 대리인”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2008년 5월 13일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첫 만남에서 김용문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소송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몽구가 지금 사건이 있어서 외국도 못 나가고 또 봉사하러 다니기 때문에 소송을 하면 곤란하니까 그것을 우리가 전부 다 해결할 테니까 자기하고 의논하자고 이렇게 나온 거죠.”
심재섭 / 자유항공 전 대표이사

“처음 만났을 때 정몽구 회장이 사회봉사 다니고 그러니까 소송까지 가면 되겠냐, 자기가 이제 가서 회장님 만나서 이야기해 보겠다.”
김 모 씨 / 이명박 조카

실제로 2006년 천억 원대 비자금과 8백억 원에 가까운 횡령 혐의로 구속된 정몽구는 2008년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김용문은 또 제주도에 있는 현대차 소유 호텔에 가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제주도인가 별장이 있으니까 별장에 가 계시면 세금 문제도 다 처리해 가지고. 오늘 내로 못 드리는데 그래도 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심재섭 / 자유항공 전 대표이사

“제주도에 시설이 현대에서 잘 돼 있으니까 꼭 나를 한번 초청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
김춘 / 이명박 큰 처형


그러나 김용문은 계속 시간을 끌었다. 그러던 중 2008년 7월 이후부터는 심재섭과 연락을 끊었다. 동시에 심재섭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김재정도 “소송을 하라”는 말과 함께 접촉을 끊었다.

2008년 7월 9일
오전 11시경에 김용문 부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 갑자기 만나자고 한다. 한 30분 후에 김 부회장이 나타났다. 계속 미안하단 말만 되풀이하고 현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 심재섭 일지 중에서

2008년 7월 9일 심재섭 일기
2008년 7월 23일
오전 11시에 김춘의 남동생 김재정 씨를 방문했다. 청와대 전일 요일에 들어가서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일에 대해서 의논했다고 한다. 김재정 씨는 아무래도 소송을 해야 될 것 아닌가 한다. 우리 삼 모자는 조금 섭섭하고 허망하다.

- 심재섭 일지 중에서

자유항공과 심재섭을 아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김용문은 “만났다 안 만났다를 알 수가 없다”며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몽구와 이명박 측이 동시에 심재섭과 연락을 끊은 후 자유항공 문제는 다른 테이블 위로 옮겨져 있었다. 정몽구와 이명박이 자유항공 문제를 놓고 직접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다. 의혹의 핵심은 자유항공 문제를 해결하라는 이명박 측의 압박에 정몽구가 현대자동차의 알짜배기 손자회사인 현대엠시트를 무상 또는 헐값에 이명박의 다스에 넘기려 했다는 것이다.


취재: 최문호, 계현우(KBS), 김강민(뉴스타파)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