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대화방에 도착하자 급속 확산’…‘나영석PD 가짜뉴스’ 70단계 거쳤다

입력 2019.02.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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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유포'부터 '받은글' 재가공, 급속 확산까지 모두 SNS에서 이뤄져
■ 수백 명 모인 '오픈 대화방'이 결정적 역할..."방송 작가들한테 소문 듣고 썼다"


# 지난해 10월, 나영석 PD "거짓 불륜 소문 퍼뜨린 사람 처벌해달라" 고소
지난해 10월 17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급상승 검색어에는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 씨의 이름이 줄곧 오르내렸습니다. 두 사람이 방송 프로그램을 함께 찍으면서 불륜 관계로 발전했다는 내용을 담은 가짜 뉴스, 이른바 '지라시'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졌기 때문입니다. 각종 기사도 앞다퉈 올라오며 두 사람이 불륜설에 휘말렸다는 근거가 없는 소문을 전했습니다. 결국 둘은 하루만에 공식 입장문을 내고 '말도 안되는 거짓 소문을 퍼트린 이들을 찾아 처벌해 달라'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수사 개시 석 달여만인 오늘(12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라시'의 최초 작성자를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정 모(29)씨와 방송 작가 이 모(30)씨가 가짜 뉴스의 '최초 작성 및 유포자'로 지목됐습니다. 이들이 퍼트린 '지라시'를 카페나 블로그 등에 올린 6명과, 관련 기사 댓글란에 정 씨와 나 씨를 비방하는 욕설을 남긴 김 모(39)씨도 함께 입건됐습니다.

# "단체 오픈 채팅방이 거짓 소문 확산에 결정적 역할"
경찰은 가짜 불륜설을 퍼트린 데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일정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카카오톡 대화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당 채팅방에 '지라시'를 올린 사람을 찾아 입수 경위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경찰이 파악한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10월 14일 새벽 1시, 이 씨는 동료 방송 작가들한테 들은 소문을 바탕으로 '지라시' 형태의 가짜뉴스를 만든 뒤, '업데이트'라는 말머리를 달아 지인에게 카톡으로 전송합니다. 비슷한 시기인 10월 15일 오전 11시, 친구와 카톡 대화를 주고받던 정 씨도 '최근 이런 소문을 들었다'며 불륜설을 언급합니다.


정 씨의 친구가 지인에게 이를 전하면서, 소문은 1시간 만에 4명을 거쳐 IT 회사원 이 모(32)씨에게 닿습니다. 이 씨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줄글로 정리하고, '받은 글'이라는 말머리를 붙여 공유합니다.

정 씨가 퍼트리고 이 씨가 다듬은 이 '받은 글'은 17일 오후 3시, 수백 명이 모인 한 '오픈 채팅방'에 도착합니다. 10분 뒤에는 '업데이트' 말머리를 단 '지라시'가 연달아 들어왔습니다.

"거기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고 해요. 기자들도 많고. '지라시' 주고받았다가 시간 지나면 폭파하는 그런 방 있잖아요." 경찰 관계자는 해당 카톡방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카톡방에 들어와 있던 기자들은 방송사와 종합일간지, 전문지와 연예지 등 매체 성격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출입이 자유로운 '오픈 카톡'인 만큼, 하루에도 수십 명이 드나들었습니다. 이 카톡방에서 두 '지라시'가 합쳐진 이른바 '종합본'이 만들어진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종합본을 받아봤습니다.


# "대한민국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받아봤다고 봐야죠"
경찰은 이 카톡방에 '지라시'가 도착한 순서대로 정 씨를 1차 유포자, 이 씨를 2차 유포자로 보고 있습니다. 이 씨가 만든 가짜 뉴스는 나흘, 정 씨의 가짜 뉴스는 단 사흘 만에 카톡방에 도착했는데, 이 때 각자 거쳐간 '중간 유포자'가 각각 70명과 50명에 이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지만, 이 경우에는 근거 없는 뜬소문이 카톡을 통해 나흘간 최소 120명에게 퍼져나간 겁니다. 오픈카톡방에 내용이 올라온 뒤에는 몇 명에게 퍼졌는지 추정하는 것조차 힘듭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이 '지라시'를 받았을까요?" 가짜뉴스의 전파 규모를 묻는 질문에 경찰 관계자는 "대한민국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받았다고 봐야죠."라며 쓰게 웃었습니다.

다만 경찰은 이번에 적발한 10명 가운데, 자신이 받은 가짜뉴스를 주위에 전송한 '중간 유포자'에 대해서는 나 씨와 정 씨가 고소 취하 의사를 밝힌 만큼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로 했습니다. '최초 유포자를 찾아 처벌해 달라'는 두 사람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로 최초 유포자는 붙잡혔지만, 나 씨와 정 씨가 입은 피해는 다시 되돌리기 힘듭니다. 거짓 뉴스를 만들어 퍼트린 정 씨와 이 씨 등은 모두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별 생각 없이 재미삼아 그랬다, 이렇게 큰 일이 될 줄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몇몇 피의자들은 나 씨와 정 씨 변호인들에게 뒤늦게 잘못을 뉘우치며 반성문을 제출했다고도 전해집니다.

# '지라시' 단순 유포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 가능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지라시'를 단순하게 유포만 해도 우리 법이 처벌하는 '사이버 명예 훼손'에 해당합니다. 또 카톡으로 받은 가짜 뉴스 내용을 주위 사람과의 대화에서 언급했을 때에도, 공공연히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남이 전해준 가짜뉴스를 받은 뒤 아무에게도 이를 재전송하거나 알리지 않아야만 처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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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픈 대화방에 도착하자 급속 확산’…‘나영석PD 가짜뉴스’ 70단계 거쳤다
    • 입력 2019-02-13 09:01:36
    취재K
■ '최초 유포'부터 '받은글' 재가공, 급속 확산까지 모두 SNS에서 이뤄져
■ 수백 명 모인 '오픈 대화방'이 결정적 역할..."방송 작가들한테 소문 듣고 썼다"


# 지난해 10월, 나영석 PD "거짓 불륜 소문 퍼뜨린 사람 처벌해달라" 고소
지난해 10월 17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급상승 검색어에는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 씨의 이름이 줄곧 오르내렸습니다. 두 사람이 방송 프로그램을 함께 찍으면서 불륜 관계로 발전했다는 내용을 담은 가짜 뉴스, 이른바 '지라시'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졌기 때문입니다. 각종 기사도 앞다퉈 올라오며 두 사람이 불륜설에 휘말렸다는 근거가 없는 소문을 전했습니다. 결국 둘은 하루만에 공식 입장문을 내고 '말도 안되는 거짓 소문을 퍼트린 이들을 찾아 처벌해 달라'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수사 개시 석 달여만인 오늘(12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라시'의 최초 작성자를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정 모(29)씨와 방송 작가 이 모(30)씨가 가짜 뉴스의 '최초 작성 및 유포자'로 지목됐습니다. 이들이 퍼트린 '지라시'를 카페나 블로그 등에 올린 6명과, 관련 기사 댓글란에 정 씨와 나 씨를 비방하는 욕설을 남긴 김 모(39)씨도 함께 입건됐습니다.

# "단체 오픈 채팅방이 거짓 소문 확산에 결정적 역할"
경찰은 가짜 불륜설을 퍼트린 데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일정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카카오톡 대화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당 채팅방에 '지라시'를 올린 사람을 찾아 입수 경위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경찰이 파악한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10월 14일 새벽 1시, 이 씨는 동료 방송 작가들한테 들은 소문을 바탕으로 '지라시' 형태의 가짜뉴스를 만든 뒤, '업데이트'라는 말머리를 달아 지인에게 카톡으로 전송합니다. 비슷한 시기인 10월 15일 오전 11시, 친구와 카톡 대화를 주고받던 정 씨도 '최근 이런 소문을 들었다'며 불륜설을 언급합니다.


정 씨의 친구가 지인에게 이를 전하면서, 소문은 1시간 만에 4명을 거쳐 IT 회사원 이 모(32)씨에게 닿습니다. 이 씨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줄글로 정리하고, '받은 글'이라는 말머리를 붙여 공유합니다.

정 씨가 퍼트리고 이 씨가 다듬은 이 '받은 글'은 17일 오후 3시, 수백 명이 모인 한 '오픈 채팅방'에 도착합니다. 10분 뒤에는 '업데이트' 말머리를 단 '지라시'가 연달아 들어왔습니다.

"거기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고 해요. 기자들도 많고. '지라시' 주고받았다가 시간 지나면 폭파하는 그런 방 있잖아요." 경찰 관계자는 해당 카톡방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카톡방에 들어와 있던 기자들은 방송사와 종합일간지, 전문지와 연예지 등 매체 성격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출입이 자유로운 '오픈 카톡'인 만큼, 하루에도 수십 명이 드나들었습니다. 이 카톡방에서 두 '지라시'가 합쳐진 이른바 '종합본'이 만들어진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종합본을 받아봤습니다.


# "대한민국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받아봤다고 봐야죠"
경찰은 이 카톡방에 '지라시'가 도착한 순서대로 정 씨를 1차 유포자, 이 씨를 2차 유포자로 보고 있습니다. 이 씨가 만든 가짜 뉴스는 나흘, 정 씨의 가짜 뉴스는 단 사흘 만에 카톡방에 도착했는데, 이 때 각자 거쳐간 '중간 유포자'가 각각 70명과 50명에 이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지만, 이 경우에는 근거 없는 뜬소문이 카톡을 통해 나흘간 최소 120명에게 퍼져나간 겁니다. 오픈카톡방에 내용이 올라온 뒤에는 몇 명에게 퍼졌는지 추정하는 것조차 힘듭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이 '지라시'를 받았을까요?" 가짜뉴스의 전파 규모를 묻는 질문에 경찰 관계자는 "대한민국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받았다고 봐야죠."라며 쓰게 웃었습니다.

다만 경찰은 이번에 적발한 10명 가운데, 자신이 받은 가짜뉴스를 주위에 전송한 '중간 유포자'에 대해서는 나 씨와 정 씨가 고소 취하 의사를 밝힌 만큼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로 했습니다. '최초 유포자를 찾아 처벌해 달라'는 두 사람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로 최초 유포자는 붙잡혔지만, 나 씨와 정 씨가 입은 피해는 다시 되돌리기 힘듭니다. 거짓 뉴스를 만들어 퍼트린 정 씨와 이 씨 등은 모두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별 생각 없이 재미삼아 그랬다, 이렇게 큰 일이 될 줄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몇몇 피의자들은 나 씨와 정 씨 변호인들에게 뒤늦게 잘못을 뉘우치며 반성문을 제출했다고도 전해집니다.

# '지라시' 단순 유포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 가능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지라시'를 단순하게 유포만 해도 우리 법이 처벌하는 '사이버 명예 훼손'에 해당합니다. 또 카톡으로 받은 가짜 뉴스 내용을 주위 사람과의 대화에서 언급했을 때에도, 공공연히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남이 전해준 가짜뉴스를 받은 뒤 아무에게도 이를 재전송하거나 알리지 않아야만 처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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