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도쿄 도지사는 왜 매연을 병에 담아 다녔을까?

입력 2019.02.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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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도쿄는 모두 인구 천만 명을 넘는 '메가시티'로 분류됩니다. 사람이 많으니 자동차도 많고, 그러다 보니 대기오염도 다른 곳보다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두 도시의 오염 정도는 차이가 큽니다. 도쿄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연평균 12.8㎍/㎥(17년 기준)입니다. 반면 지난해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3㎍/㎥로 도쿄보다 두 배 가까이 높습니다. 서울 인구가 3백만 명 이상 적은데도 말입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축복받은 나라? '자체' 배출량도 적어!

물론 지리적 요인을 빼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베이징의 지난해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51㎍/㎥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배출된 고농도 오염물질은 바람을 타고 한반도까지 밀려오지만, 동해를 건너면서 그 농도가 뚝 떨어집니다. 이 정도면 일본이 지리적으로 축복받은 나라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지난달 중국과 한국에 고농도 미세먼지가 덮쳤을 때 일본은 청정한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출처:국립환경과학원 예측모델지난달 중국과 한국에 고농도 미세먼지가 덮쳤을 때 일본은 청정한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출처:국립환경과학원 예측모델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대기오염 물질도 우리나라와 비교해 절대적으로 적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고속 성장을 경험한 일본은 환경문제에도 더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국내에서 미세먼지라는 '존재'를 잘 알지도 못했던 1980년대 후반 이미 일본에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디젤차로 인한 오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도로 주변 관측 결과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농도가 환경 기준치 이상으로 나타났고 주범으로 낡은 대형 디젤차가 지목된 겁니다. 특히 도쿄의 오염은 가장 심각했습니다.

"내가 당선되면 배기가스 없애겠다"...대기 질 공약으로 도쿄 도지사 당선

이런 분위기 속에 1999년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소설가 출신의 우익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에서 배기가스를 없애겠다."라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습니다. 이후 이시하라 지사는 디젤차 배출가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투명한 페트병에 시커먼 그을음을 담아 다녔는데요. 트럭 1대가 1km를 달릴 때 내뿜는 매연이라며 디젤차 배출가스가 도쿄의 하늘을 더럽히고 있다고 시민들을 설득했습니다.

디젤차의 매연을 병에 담아 다닌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와 디젤차를 단속하던 모습. 출처: Bureau of Environment/Tokyo Metropolitan Government디젤차의 매연을 병에 담아 다닌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와 디젤차를 단속하던 모습. 출처: Bureau of Environment/Tokyo Metropolitan Government

2003년부터 도쿄도는 질소산화물의 절반 정도가 디젤차에서 배출된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강력한 환경조례를 시행했습니다. 대형 화물차와 버스에 저감장치를 설치하고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차량이 도쿄도에 들어오면 50만 엔이라는 무거운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경유에 적용되던 세제 혜택을 없애고 연료 전지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의 장기 개발 계획도 마련했습니다.

국내에선 과거사 관련 '망언' 정치인으로 알려졌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4선까지 성공했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과감한 실행력이 꼽힙니다. 이시하라 지사가 인구 1,300만 명인 도쿄에서 강력한 디젤차 규제를 시행하면서 순식간에 도로에서 디젤 자동차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겁니다.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도쿄는 서울보다 자동차 등록 대수가 많지만 대부분 휘발유와 하이브리드 차량"이라며 "정책이 처음 시행됐을 때는 반발도 심했지만, 지속해서 추진한 결과 (현재) 맑은 공기를 얻게 됐다."라고 말합니다. 아마 병에 들어있던 시커먼 매연이 시민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세먼지 특별법'...5등급 차량 운행 제한

우리도 내일(15일)부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됩니다. 이제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된 다음 날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서울에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이 제한됩니다. 과거 도쿄의 정책과 유사합니다. 위반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되는데 대상 차량은 40만 대 정도입니다.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 조회 사이트자동차 배출가스 등급 조회 사이트

자신이 보유한 차량이 5등급인지 확인하려면 환경부의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 조회 사이트'에 접속해 차량 번호를 알아보면 됩니다. 운행 중이거나 제작 단계에 있는 모든 차량을 디젤이나 휘발유, LPG 등 유종과 생산 연도, 오염물질 배출 정도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분류했는데요. 5등급 차량은 2002년 7월 1일 이전에 생산된 노후 디젤차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1987년 이전 휘발유·LPG 차량도 일부 포함)

임영욱 교수는 "미세먼지를 흔히 발암물질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디젤 자동차에서 배출된 초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이라고 설명합니다. 임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는 디젤차 등록 대수가 43%에 이르기 때문에 미세먼지의 성질이 건강에 매우 나쁘고 해로운 성분이 많다."라고 지적합니다. 자동차에서 배출된 초미세먼지에 의한 일일 초과 사망률이 석탄 연소에 의한 경우보다 3배 정도 높다는 해외 연구가 있고 국내에서의 연구 결과도 비슷합니다.


환경부 조사 결과 수도권의 가장 큰 미세먼지 배출원은 디젤차(23%)입니다. 디젤차를 잡지 못하면 서울의 대기 질도 결코 좋아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대형 트럭 등 낡은 디젤 차량 소유주가 대부분 영세 서민이라는 점은 정책 추진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대기 질 개선을 뒷순위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언제까지 '마스크'에만 의존?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미세먼지를 적극적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들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서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결국 정부가 보건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오염 배출원을 관리하고 농도를 낮추는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여전히 수도권에는 저공해 장치를 달지 않은 차량이 100만 대가 넘습니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면 지금처럼 국민들이 마스크에만 의존하는 날들이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임영욱 교수도 "지금까지 미세먼지 정책이 없었거나 잘못돼서 대기 질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면서 "실적 위주의 계획을 자꾸 내놓기보다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계획이 얼마나 진행됐고 이행됐는지 평가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합니다.

또 "중국에서 건너오는 오염물질은 이제 배경농도로 가정하고 여기에 국내에서 추가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라고 조언합니다. 배경농도는 인위적인 오염원이 없을 때의 농도를 뜻합니다. 중국발 먼지를 단시간에 막을 수 없다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국내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있는 수도권에서 디젤차를 줄이는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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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도쿄 도지사는 왜 매연을 병에 담아 다녔을까?
    • 입력 2019-02-14 09:08:20
    취재K
서울과 도쿄는 모두 인구 천만 명을 넘는 '메가시티'로 분류됩니다. 사람이 많으니 자동차도 많고, 그러다 보니 대기오염도 다른 곳보다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두 도시의 오염 정도는 차이가 큽니다. 도쿄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연평균 12.8㎍/㎥(17년 기준)입니다. 반면 지난해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3㎍/㎥로 도쿄보다 두 배 가까이 높습니다. 서울 인구가 3백만 명 이상 적은데도 말입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축복받은 나라? '자체' 배출량도 적어!

물론 지리적 요인을 빼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베이징의 지난해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51㎍/㎥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배출된 고농도 오염물질은 바람을 타고 한반도까지 밀려오지만, 동해를 건너면서 그 농도가 뚝 떨어집니다. 이 정도면 일본이 지리적으로 축복받은 나라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지난달 중국과 한국에 고농도 미세먼지가 덮쳤을 때 일본은 청정한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출처:국립환경과학원 예측모델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대기오염 물질도 우리나라와 비교해 절대적으로 적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고속 성장을 경험한 일본은 환경문제에도 더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국내에서 미세먼지라는 '존재'를 잘 알지도 못했던 1980년대 후반 이미 일본에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디젤차로 인한 오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도로 주변 관측 결과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농도가 환경 기준치 이상으로 나타났고 주범으로 낡은 대형 디젤차가 지목된 겁니다. 특히 도쿄의 오염은 가장 심각했습니다.

"내가 당선되면 배기가스 없애겠다"...대기 질 공약으로 도쿄 도지사 당선

이런 분위기 속에 1999년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소설가 출신의 우익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에서 배기가스를 없애겠다."라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습니다. 이후 이시하라 지사는 디젤차 배출가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투명한 페트병에 시커먼 그을음을 담아 다녔는데요. 트럭 1대가 1km를 달릴 때 내뿜는 매연이라며 디젤차 배출가스가 도쿄의 하늘을 더럽히고 있다고 시민들을 설득했습니다.

디젤차의 매연을 병에 담아 다닌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와 디젤차를 단속하던 모습. 출처: Bureau of Environment/Tokyo Metropolitan Government
2003년부터 도쿄도는 질소산화물의 절반 정도가 디젤차에서 배출된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강력한 환경조례를 시행했습니다. 대형 화물차와 버스에 저감장치를 설치하고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차량이 도쿄도에 들어오면 50만 엔이라는 무거운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경유에 적용되던 세제 혜택을 없애고 연료 전지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의 장기 개발 계획도 마련했습니다.

국내에선 과거사 관련 '망언' 정치인으로 알려졌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4선까지 성공했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과감한 실행력이 꼽힙니다. 이시하라 지사가 인구 1,300만 명인 도쿄에서 강력한 디젤차 규제를 시행하면서 순식간에 도로에서 디젤 자동차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겁니다.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도쿄는 서울보다 자동차 등록 대수가 많지만 대부분 휘발유와 하이브리드 차량"이라며 "정책이 처음 시행됐을 때는 반발도 심했지만, 지속해서 추진한 결과 (현재) 맑은 공기를 얻게 됐다."라고 말합니다. 아마 병에 들어있던 시커먼 매연이 시민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세먼지 특별법'...5등급 차량 운행 제한

우리도 내일(15일)부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됩니다. 이제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된 다음 날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서울에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이 제한됩니다. 과거 도쿄의 정책과 유사합니다. 위반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되는데 대상 차량은 40만 대 정도입니다.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 조회 사이트
자신이 보유한 차량이 5등급인지 확인하려면 환경부의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 조회 사이트'에 접속해 차량 번호를 알아보면 됩니다. 운행 중이거나 제작 단계에 있는 모든 차량을 디젤이나 휘발유, LPG 등 유종과 생산 연도, 오염물질 배출 정도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분류했는데요. 5등급 차량은 2002년 7월 1일 이전에 생산된 노후 디젤차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1987년 이전 휘발유·LPG 차량도 일부 포함)

임영욱 교수는 "미세먼지를 흔히 발암물질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디젤 자동차에서 배출된 초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이라고 설명합니다. 임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는 디젤차 등록 대수가 43%에 이르기 때문에 미세먼지의 성질이 건강에 매우 나쁘고 해로운 성분이 많다."라고 지적합니다. 자동차에서 배출된 초미세먼지에 의한 일일 초과 사망률이 석탄 연소에 의한 경우보다 3배 정도 높다는 해외 연구가 있고 국내에서의 연구 결과도 비슷합니다.


환경부 조사 결과 수도권의 가장 큰 미세먼지 배출원은 디젤차(23%)입니다. 디젤차를 잡지 못하면 서울의 대기 질도 결코 좋아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대형 트럭 등 낡은 디젤 차량 소유주가 대부분 영세 서민이라는 점은 정책 추진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대기 질 개선을 뒷순위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언제까지 '마스크'에만 의존?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미세먼지를 적극적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들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서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결국 정부가 보건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오염 배출원을 관리하고 농도를 낮추는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여전히 수도권에는 저공해 장치를 달지 않은 차량이 100만 대가 넘습니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면 지금처럼 국민들이 마스크에만 의존하는 날들이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임영욱 교수도 "지금까지 미세먼지 정책이 없었거나 잘못돼서 대기 질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면서 "실적 위주의 계획을 자꾸 내놓기보다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계획이 얼마나 진행됐고 이행됐는지 평가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합니다.

또 "중국에서 건너오는 오염물질은 이제 배경농도로 가정하고 여기에 국내에서 추가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라고 조언합니다. 배경농도는 인위적인 오염원이 없을 때의 농도를 뜻합니다. 중국발 먼지를 단시간에 막을 수 없다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국내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있는 수도권에서 디젤차를 줄이는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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