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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내 잘못이라는데” 연세대 입학 취소 학생, 결국 재수 결정
입력 2019.02.15 (13:04) 수정 2019.02.15 (18:25) 취재후
[취재후] “내 잘못이라는데” 연세대 입학 취소 학생, 결국 재수 결정
■ 현금입출금기 조작 어려워 지인 맡겼다가 대학 등록금 이체 실패
■ 30분간 계좌 이체 차단하는 '지연 이체 제도' 때문..."그냥 재수하기로 했어요"

"이번 수능에서 서울대학교에 정시 지원을 하고도 남는 점수를 거뒀다. 연세대학교 수시 모집에 합격해 입학처가 알려준 전용 계좌로 등록금을 냈다. 납부 시한을 넘긴 뒤에야 이체가 안 된 걸 알았다. 은행 전산 오류를 의심했다. 학교는 입금 확인을 제때 안 한 내 잘못이라며 합격 취소를 통보했다."

어제(14일) 오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수험생 홍 모(19)군의 글을 간략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퍼져나갔고, '학교에 입학 취소 무효소송을 걸어라', '1인 시위를 해라' 등 걱정하는 댓글도 줄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연세대학교가 내놓은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원칙과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등록금 분명히 이체했는데? ATM '지연 이체제도' 때문에...
어렵게 연락이 닿은 홍 군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올해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수시 모집에 합격한 홍 군은 지난해 12월, 등록확인 예치금 납부를 마치고 지난 1일 오후 4시까지 나머지 등록금 470만 4천 원을 보내라는 안내를 받습니다. 이에 홍 군의 어머니는 등록금으로 낼 돈을 1일 오전 10시 5분쯤 계좌로 입금받습니다.

이제 입학처가 안내한 등록금 납부 전용 계좌로 이체만 남은 상황. 현금입출금기(ATM) 조작이 익숙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친한 지인인 우체국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고 대신 이체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직원이 카드를 건네받아 계좌 이체를 시도한 시각은 오전 10시 21분. 어머니 계좌로 목돈이 들어온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습니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지난 2012년, 금융 당국은 잇따르는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자동화기기 지연 인출·이체 제도'를 도입합니다. 계좌에 1회 100만 원 이상의 금액이 입금되면 그 뒤 일정 시간 계좌 이체나 현금 인출을 막는 건데요. 2015년부터 제한 시간이 30분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계좌 이체를 시도하면 자동화기기 화면에 '30분간 지연 인출 대상이니 잠시 후에 다시 거래해 주십시오' 같은 안내 문구가 뜹니다.

하지만 홍 군의 어머니도, 이체를 부탁받은 우체국 직원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직원은 해당 화면을 보지 못하고, 곧바로 명세표를 인출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오' 버튼을 눌렀다고 전해집니다. 계좌 이체가 실패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가족들. 그 뒤 오후 1시쯤, 납부 마감 시한이 다가오니 입금을 서둘러 달라는 학교의 문자를 받고 홍 군은 한 번 더 직원에게 확인에 나섭니다. "어, 정확하게 보냈다. 왜, 영수증이 필요했니?" "예, 됐습니다." 둘이 나눈 문자 대화가 무색하게, 오후 7시쯤 학교는 등록금이 미납됐다고 알려왔습니다.

# "그래도 구제해 주셨으면..공부하느라 고생한 아이는 무슨 죄예요?"
"저희는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우체국 직원이 보냈으니까 됐을 거라고 생각을 했죠. 저희가 제대로 확인 못 한 불찰도 있지만 그래도 구제를 해 주셔야지. 애는 무슨 죄예요." 여러 차례 통화하는 내내 홍 군 어머니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습니다. 처음에는 은행 전산 오류인 줄 알았고, 나중에 우체국 직원의 실수로 드러나자 해당 직원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까지 써 학교에 냈다고 합니다. 늦게라도 계좌를 다시 열어주면 등록금을 보내겠다고도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습니다. 더구나 지난 1일은 긴 설 연휴를 앞두고 있었던 시점. 대학 측은 연휴가 끝난 7일은 되어야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홍 군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명절을 보낸 홍 군의 가족들은 지난 9일 우체국 직원과 함께 연세대를 찾아 면담까지 했지만, 끝내 지난 12일 저녁 합격 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 연세대 "입시 공정성과 형평성 고려해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연세대학교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이미 추가 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의 불이익 등 입시 공정성과 형평성을 고려하면 원칙과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홍 군이 은행 전산 오류를 지목한 것과 달리 진짜 원인은 지연 이체 제도 때문이었고, 이체 실패 시점 뒤 문자로 등록금 미납 사실을 알렸음에도 사실관계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홍 군의 과실이 인정된다는 겁니다. 우체국 직원에게 문자로 이체 잘 됐느냐고 묻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은행에서 이체 확인증을 떼거나 인터넷 뱅킹 등을 통해 추가 확인을 해야 했다는 취지입니다.

지난 2016년, 법원은 입학금을 내지 않았다가 합격 취소 통보를 받은 한 수험생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습니다. A군은 당시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뽑혀, 대학에 등록 확인 예치금 30만 원과 기숙사비 135만 원을 내고 입학 안내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대학은 '전액 장학생은 수업료만 면제받는 것'이라며, A군이 예치금을 뺀 나머지 입학금 50만 원을 미납했다는 이유로 합격 취소를 통보합니다. A군은 합격자 임시 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예치금과 기숙사비를 낸 만큼, 입학 의지가 인정된다'며 A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학 생활을 겪어보지 않아 입학금은 따로 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학교 측도 등록 절차를 충분히 안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중에 본안 소송에서는 안내 사항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은 A군의 잘못이 더 크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두 재판부는 모두 학교 측이 등록 절차를 충분히 안내했는지를 주요 쟁점으로 따졌습니다.

# "재수하기로 했어요. 계속 문제 제기하면 다른 사람이 다쳐요"
홍 군은 결국 재수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홍 군의 어머니는 오늘(15일) 전화를 건 기자에게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친다. 아들도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매진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계좌 이체를 부탁했던 우체국에는 감사가 내려왔고, 우체국 은행 측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고 합니다. 홍 군이 페이스북 등에 올린 글에서 지연 이체 대신 은행 전산 오류로 납부에 실패했다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 어머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생업이 바빠 오후 4시면 닫는 은행에 갈 틈이 안 났고, 휴대전화 조작에 서툴러 인터넷 뱅킹은 꿈도 못 꾼 게 잘못이라며 어머니는 통화 내내 자신을 탓했습니다.

홍 군은 오늘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졸업합니다. 누구보다 속이 상할 당사자지만, 오히려 어머니를 다독이는 속 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지난밤 홍 군의 담임교사는 인터넷 게시판에 재수 결정 소식을 전하면서 "순박하고 우직한 학생이라 마음이 더욱 아리네요. 내일 졸업장 나눠주면서 한번 안아줄랍니다."고 적었습니다.
  • [취재후] “내 잘못이라는데” 연세대 입학 취소 학생, 결국 재수 결정
    • 입력 2019.02.15 (13:04)
    • 수정 2019.02.15 (18:25)
    취재후
[취재후] “내 잘못이라는데” 연세대 입학 취소 학생, 결국 재수 결정
■ 현금입출금기 조작 어려워 지인 맡겼다가 대학 등록금 이체 실패
■ 30분간 계좌 이체 차단하는 '지연 이체 제도' 때문..."그냥 재수하기로 했어요"

"이번 수능에서 서울대학교에 정시 지원을 하고도 남는 점수를 거뒀다. 연세대학교 수시 모집에 합격해 입학처가 알려준 전용 계좌로 등록금을 냈다. 납부 시한을 넘긴 뒤에야 이체가 안 된 걸 알았다. 은행 전산 오류를 의심했다. 학교는 입금 확인을 제때 안 한 내 잘못이라며 합격 취소를 통보했다."

어제(14일) 오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수험생 홍 모(19)군의 글을 간략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퍼져나갔고, '학교에 입학 취소 무효소송을 걸어라', '1인 시위를 해라' 등 걱정하는 댓글도 줄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연세대학교가 내놓은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원칙과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등록금 분명히 이체했는데? ATM '지연 이체제도' 때문에...
어렵게 연락이 닿은 홍 군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올해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수시 모집에 합격한 홍 군은 지난해 12월, 등록확인 예치금 납부를 마치고 지난 1일 오후 4시까지 나머지 등록금 470만 4천 원을 보내라는 안내를 받습니다. 이에 홍 군의 어머니는 등록금으로 낼 돈을 1일 오전 10시 5분쯤 계좌로 입금받습니다.

이제 입학처가 안내한 등록금 납부 전용 계좌로 이체만 남은 상황. 현금입출금기(ATM) 조작이 익숙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친한 지인인 우체국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고 대신 이체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직원이 카드를 건네받아 계좌 이체를 시도한 시각은 오전 10시 21분. 어머니 계좌로 목돈이 들어온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습니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지난 2012년, 금융 당국은 잇따르는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자동화기기 지연 인출·이체 제도'를 도입합니다. 계좌에 1회 100만 원 이상의 금액이 입금되면 그 뒤 일정 시간 계좌 이체나 현금 인출을 막는 건데요. 2015년부터 제한 시간이 30분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계좌 이체를 시도하면 자동화기기 화면에 '30분간 지연 인출 대상이니 잠시 후에 다시 거래해 주십시오' 같은 안내 문구가 뜹니다.

하지만 홍 군의 어머니도, 이체를 부탁받은 우체국 직원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직원은 해당 화면을 보지 못하고, 곧바로 명세표를 인출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오' 버튼을 눌렀다고 전해집니다. 계좌 이체가 실패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가족들. 그 뒤 오후 1시쯤, 납부 마감 시한이 다가오니 입금을 서둘러 달라는 학교의 문자를 받고 홍 군은 한 번 더 직원에게 확인에 나섭니다. "어, 정확하게 보냈다. 왜, 영수증이 필요했니?" "예, 됐습니다." 둘이 나눈 문자 대화가 무색하게, 오후 7시쯤 학교는 등록금이 미납됐다고 알려왔습니다.

# "그래도 구제해 주셨으면..공부하느라 고생한 아이는 무슨 죄예요?"
"저희는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우체국 직원이 보냈으니까 됐을 거라고 생각을 했죠. 저희가 제대로 확인 못 한 불찰도 있지만 그래도 구제를 해 주셔야지. 애는 무슨 죄예요." 여러 차례 통화하는 내내 홍 군 어머니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습니다. 처음에는 은행 전산 오류인 줄 알았고, 나중에 우체국 직원의 실수로 드러나자 해당 직원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까지 써 학교에 냈다고 합니다. 늦게라도 계좌를 다시 열어주면 등록금을 보내겠다고도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습니다. 더구나 지난 1일은 긴 설 연휴를 앞두고 있었던 시점. 대학 측은 연휴가 끝난 7일은 되어야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홍 군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명절을 보낸 홍 군의 가족들은 지난 9일 우체국 직원과 함께 연세대를 찾아 면담까지 했지만, 끝내 지난 12일 저녁 합격 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 연세대 "입시 공정성과 형평성 고려해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연세대학교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이미 추가 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의 불이익 등 입시 공정성과 형평성을 고려하면 원칙과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홍 군이 은행 전산 오류를 지목한 것과 달리 진짜 원인은 지연 이체 제도 때문이었고, 이체 실패 시점 뒤 문자로 등록금 미납 사실을 알렸음에도 사실관계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홍 군의 과실이 인정된다는 겁니다. 우체국 직원에게 문자로 이체 잘 됐느냐고 묻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은행에서 이체 확인증을 떼거나 인터넷 뱅킹 등을 통해 추가 확인을 해야 했다는 취지입니다.

지난 2016년, 법원은 입학금을 내지 않았다가 합격 취소 통보를 받은 한 수험생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습니다. A군은 당시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뽑혀, 대학에 등록 확인 예치금 30만 원과 기숙사비 135만 원을 내고 입학 안내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대학은 '전액 장학생은 수업료만 면제받는 것'이라며, A군이 예치금을 뺀 나머지 입학금 50만 원을 미납했다는 이유로 합격 취소를 통보합니다. A군은 합격자 임시 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예치금과 기숙사비를 낸 만큼, 입학 의지가 인정된다'며 A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학 생활을 겪어보지 않아 입학금은 따로 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학교 측도 등록 절차를 충분히 안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중에 본안 소송에서는 안내 사항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은 A군의 잘못이 더 크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두 재판부는 모두 학교 측이 등록 절차를 충분히 안내했는지를 주요 쟁점으로 따졌습니다.

# "재수하기로 했어요. 계속 문제 제기하면 다른 사람이 다쳐요"
홍 군은 결국 재수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홍 군의 어머니는 오늘(15일) 전화를 건 기자에게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친다. 아들도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매진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계좌 이체를 부탁했던 우체국에는 감사가 내려왔고, 우체국 은행 측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고 합니다. 홍 군이 페이스북 등에 올린 글에서 지연 이체 대신 은행 전산 오류로 납부에 실패했다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 어머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생업이 바빠 오후 4시면 닫는 은행에 갈 틈이 안 났고, 휴대전화 조작에 서툴러 인터넷 뱅킹은 꿈도 못 꾼 게 잘못이라며 어머니는 통화 내내 자신을 탓했습니다.

홍 군은 오늘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졸업합니다. 누구보다 속이 상할 당사자지만, 오히려 어머니를 다독이는 속 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지난밤 홍 군의 담임교사는 인터넷 게시판에 재수 결정 소식을 전하면서 "순박하고 우직한 학생이라 마음이 더욱 아리네요. 내일 졸업장 나눠주면서 한번 안아줄랍니다."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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