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누구냐! 내 차 탄 사람이?” 사라진 차의 진실

입력 2019.02.18 (07:00) 수정 2019.02.18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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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새벽, 뺑소니 사고

■ 19차례 걸쳐 남의 차 몰래 타고 다닌 10대 무면허 운전자 적발
■ 현대차 긴급출동서비스, 신원 확인하지 않고 차 문 열어줘

사건의 시작 : 의문의 뺑소니 사고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35살 남성 B 씨는 지난달 24일 오전 황당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제네시스 차량이 전날 새벽 6시 50분쯤 집에서 5km 떨어진 아파트 주차장에서 뺑소니를 냈다는 경찰의 전화였습니다.

B 씨에게는 차량이 2대 있었는데 출퇴근은 주로 SUV를 이용했습니다. 지난해 말 8천만 원을 주고 산 제네시스 차량은 애지중지하며 주로 휴일에만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뺑소니가 일어난 시간에 B 씨는 출근을 위해 SUV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졸지에 뺑소니범으로 몰린 B 씨는 회사 출퇴근 일지를 뽑아서, 당일 오후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차주 B 씨
"누가 운행했냐? 혹시 가족이냐? 아니면 다른 누가 운전할 사람이 있냐? 제 차를 운전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니까, 경찰이 아파트에서 CCTV를 한번 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돌아온 B 씨는 급한 대로 아파트 출입일지를 살펴봤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23일과 24일 차량이 4차례 운행된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CCTV에는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1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태연히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닌 겁니다.

'몰래 운행'은 계획적이고 치밀했습니다. 주차된 차량을 바깥으로 빼내고 그 자리에 오토바이를 세워뒀습니다. 몰래 타고 다니는 동안 다른 차들이 주차를 못하게 한 겁니다. 운전이 끝나면 다시 오토바이를 빼놓고, 그 자리에 차를 세워뒀습니다.

사라진 제네시스...한달 만에 막내린 '나몰래' 운전

용의자는 옆 동에 사는 18살 김 모 군으로 운전면허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김 군의 또 다른 범행도 확인됐다며, 관련 증거를 모두 확보하고나서 소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혹시 모르니까 차 문을 잠그라고 하라고 해, B 씨는 차 문도 확실히 잠갔다고 합니다.

더욱 황당한 일은 다음 날인 1월 25일 벌어졌습니다. 주차장에 있어야할 차량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겁니다. B 씨는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고, 김 군이 또다시 차를 끌고 나간 모습이 CCTV에서 확인됐습니다.

차주 B 씨
"그때는 이제 완전히 용서할 수가 없는 거죠. 이제 그때는 이제는 없다. 그래서 112에 신고해서 도난 차량 신고하고.."

지난달 27일, 이틀 만에 돌아온 차량지난달 27일, 이틀 만에 돌아온 차량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지만 김 군의 소재 파악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틀 뒤인 1월 27일 저녁 9시쯤, 김 군이 제네시스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차 곳곳에 긁힌 흔적이 있었고, 가득 찼던 기름도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차가 입고됐다는 알람이 방안에 울렸고, 집에 있던 B 씨의 어머니가 주차장으로 뛰어갔습니다. B 씨의 어머니는 김 군이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출동한 경찰이 김 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군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모두 19차례에 걸쳐서 B 씨의 차량을 타고 다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의정부 시내는 물론이고, 서울 홍대와 이태원 등을 무법 질주했는데, 몰래 타고 다닌 거리는 약 1,000km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지난 7일 김 군을 상습자동차불법사용과 무면허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소년부에 송치했습니다.

분명히 잠근 차문은 왜 열렸나?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B 씨가 확실히 잠갔던 문이 어떻게 열렸을까요? 알고 보니 현대차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은 거였습니다.

1월 25일 저녁 8시쯤, 차 문이 잠겨있자 김 군은 현대차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스마트키가 차 안에 있는데, 문이 잠겨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동한 기사는 신분 확인을 하지 않고 문을 열어줬습니다. 신고한 대로 차 안에서 스마트키가 발견됐고, 김 군이 시동까지 걸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현대차와 하청업체의 관계현대차와 하청업체의 관계

B 씨는 현대차 고객센터에 항의 전화를 했는데, "하청업체와 법적으로 계약을 맺었으니 하청업체의 책임이다. 더는 설명해 드릴게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청업체도 별다른 사과가 없었고 "매뉴얼이 있으니, 매뉴얼대로 대응하겠다"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현대차 고객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 하청업체가 넘겨받고, 열쇠기사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는데, 현장에서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신분확인 없이 차 문 열어준 기사신분확인 없이 차 문 열어준 기사

취재진이 직접 현대차 긴급출동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의 차 문을 열어달라고 해봤습니다. 20분 뒤 출동한 열쇠 기사는 신분 확인 없이 다짜고짜 문을 열어줬고 결제를 요구했습니다. 취재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때야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허술한 신분 확인이 단지 현장출동 기사만의 책임일까요?

KBS 취재결과, 현대차가 하청업체에 배포한 메뉴얼에는 "신분증을 사진 촬영할 때는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음영 촬영하라"고만 적혀있었습니다. 하청업체와 열쇠 기사의 계약서에도 "고객의 신분을 확인하고 작업을 시작해야 하고,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작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을 뿐 구체적인 메뉴얼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협력업체가 차주의 신분을 확인한 후 차량을 열게 되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유감스럽고, 앞으로 매뉴얼을 철저히 보완하고 확인 절차 등을 강화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차주는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뉴스가 보도되고 많은 시청자가 궁금해하셨습니다.

우선, 19번이나 몰래 차를 타고 다녔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B 씨는 혼자 사는데, 김 군은 주로 B 씨가 출근한 평일에 차를 몰고 나갔다고 말합니다. 또 범행 뒤 차량 매트를 털어놓고, 시트 위치도 맞춰놓았고, 기름도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B 씨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차 문이 어떻게 한달간 계속 열려있었느냐는 겁니다. B 씨는 김 군이 체포된 직후 차량의 컵 받침 자리에 스마트키가 있었다고 합니다. B 씨는 스마트키가 모두 3개였는데, 지난해 말에 1개를 차에 흘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스마트키가 차 안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차 문이 열리고 주행도 가능한데, 김 군이 우연히 이를 알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 차 안에 스마트키가 있으면 차 문이 안 잠기는데, B 씨가 차 문을 어떻게 잠갔느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스마트키가 차 안에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스마트키의 잠금 버튼을 누르면 차 문을 잠글 수 있으며, 기술적인 오류는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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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누구냐! 내 차 탄 사람이?” 사라진 차의 진실
    • 입력 2019-02-18 07:00:41
    • 수정2019-02-18 07:42:03
    취재후·사건후
▲ 지난달 23일 새벽, 뺑소니 사고

■ 19차례 걸쳐 남의 차 몰래 타고 다닌 10대 무면허 운전자 적발
■ 현대차 긴급출동서비스, 신원 확인하지 않고 차 문 열어줘

사건의 시작 : 의문의 뺑소니 사고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35살 남성 B 씨는 지난달 24일 오전 황당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제네시스 차량이 전날 새벽 6시 50분쯤 집에서 5km 떨어진 아파트 주차장에서 뺑소니를 냈다는 경찰의 전화였습니다.

B 씨에게는 차량이 2대 있었는데 출퇴근은 주로 SUV를 이용했습니다. 지난해 말 8천만 원을 주고 산 제네시스 차량은 애지중지하며 주로 휴일에만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뺑소니가 일어난 시간에 B 씨는 출근을 위해 SUV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졸지에 뺑소니범으로 몰린 B 씨는 회사 출퇴근 일지를 뽑아서, 당일 오후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차주 B 씨
"누가 운행했냐? 혹시 가족이냐? 아니면 다른 누가 운전할 사람이 있냐? 제 차를 운전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니까, 경찰이 아파트에서 CCTV를 한번 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돌아온 B 씨는 급한 대로 아파트 출입일지를 살펴봤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23일과 24일 차량이 4차례 운행된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CCTV에는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1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태연히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닌 겁니다.

'몰래 운행'은 계획적이고 치밀했습니다. 주차된 차량을 바깥으로 빼내고 그 자리에 오토바이를 세워뒀습니다. 몰래 타고 다니는 동안 다른 차들이 주차를 못하게 한 겁니다. 운전이 끝나면 다시 오토바이를 빼놓고, 그 자리에 차를 세워뒀습니다.

사라진 제네시스...한달 만에 막내린 '나몰래' 운전

용의자는 옆 동에 사는 18살 김 모 군으로 운전면허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김 군의 또 다른 범행도 확인됐다며, 관련 증거를 모두 확보하고나서 소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혹시 모르니까 차 문을 잠그라고 하라고 해, B 씨는 차 문도 확실히 잠갔다고 합니다.

더욱 황당한 일은 다음 날인 1월 25일 벌어졌습니다. 주차장에 있어야할 차량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겁니다. B 씨는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고, 김 군이 또다시 차를 끌고 나간 모습이 CCTV에서 확인됐습니다.

차주 B 씨
"그때는 이제 완전히 용서할 수가 없는 거죠. 이제 그때는 이제는 없다. 그래서 112에 신고해서 도난 차량 신고하고.."

지난달 27일, 이틀 만에 돌아온 차량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지만 김 군의 소재 파악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틀 뒤인 1월 27일 저녁 9시쯤, 김 군이 제네시스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차 곳곳에 긁힌 흔적이 있었고, 가득 찼던 기름도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차가 입고됐다는 알람이 방안에 울렸고, 집에 있던 B 씨의 어머니가 주차장으로 뛰어갔습니다. B 씨의 어머니는 김 군이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출동한 경찰이 김 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군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모두 19차례에 걸쳐서 B 씨의 차량을 타고 다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의정부 시내는 물론이고, 서울 홍대와 이태원 등을 무법 질주했는데, 몰래 타고 다닌 거리는 약 1,000km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지난 7일 김 군을 상습자동차불법사용과 무면허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소년부에 송치했습니다.

분명히 잠근 차문은 왜 열렸나?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B 씨가 확실히 잠갔던 문이 어떻게 열렸을까요? 알고 보니 현대차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은 거였습니다.

1월 25일 저녁 8시쯤, 차 문이 잠겨있자 김 군은 현대차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스마트키가 차 안에 있는데, 문이 잠겨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동한 기사는 신분 확인을 하지 않고 문을 열어줬습니다. 신고한 대로 차 안에서 스마트키가 발견됐고, 김 군이 시동까지 걸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현대차와 하청업체의 관계
B 씨는 현대차 고객센터에 항의 전화를 했는데, "하청업체와 법적으로 계약을 맺었으니 하청업체의 책임이다. 더는 설명해 드릴게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청업체도 별다른 사과가 없었고 "매뉴얼이 있으니, 매뉴얼대로 대응하겠다"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현대차 고객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 하청업체가 넘겨받고, 열쇠기사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는데, 현장에서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신분확인 없이 차 문 열어준 기사
취재진이 직접 현대차 긴급출동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의 차 문을 열어달라고 해봤습니다. 20분 뒤 출동한 열쇠 기사는 신분 확인 없이 다짜고짜 문을 열어줬고 결제를 요구했습니다. 취재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때야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허술한 신분 확인이 단지 현장출동 기사만의 책임일까요?

KBS 취재결과, 현대차가 하청업체에 배포한 메뉴얼에는 "신분증을 사진 촬영할 때는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음영 촬영하라"고만 적혀있었습니다. 하청업체와 열쇠 기사의 계약서에도 "고객의 신분을 확인하고 작업을 시작해야 하고,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작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을 뿐 구체적인 메뉴얼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협력업체가 차주의 신분을 확인한 후 차량을 열게 되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유감스럽고, 앞으로 매뉴얼을 철저히 보완하고 확인 절차 등을 강화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차주는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뉴스가 보도되고 많은 시청자가 궁금해하셨습니다.

우선, 19번이나 몰래 차를 타고 다녔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B 씨는 혼자 사는데, 김 군은 주로 B 씨가 출근한 평일에 차를 몰고 나갔다고 말합니다. 또 범행 뒤 차량 매트를 털어놓고, 시트 위치도 맞춰놓았고, 기름도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B 씨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차 문이 어떻게 한달간 계속 열려있었느냐는 겁니다. B 씨는 김 군이 체포된 직후 차량의 컵 받침 자리에 스마트키가 있었다고 합니다. B 씨는 스마트키가 모두 3개였는데, 지난해 말에 1개를 차에 흘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스마트키가 차 안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차 문이 열리고 주행도 가능한데, 김 군이 우연히 이를 알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 차 안에 스마트키가 있으면 차 문이 안 잠기는데, B 씨가 차 문을 어떻게 잠갔느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스마트키가 차 안에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스마트키의 잠금 버튼을 누르면 차 문을 잠글 수 있으며, 기술적인 오류는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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