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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 오도독] 언론의 객관, 이카로스의 꿈
입력 2019.02.19 (07:00) 한국언론 오도독
[한국언론 오도독] 언론의 객관, 이카로스의 꿈
2013년 10월 29일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은 그린월드와 켈러의 “객관 저널리즘” 논쟁을 실었다.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는 누구인가?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사보도 기자다. 그린월드는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 등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들이 전세계 일반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 정보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집, 사찰해왔다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를 최초로 보도한 기자였다.

그와 “객관 저널리즘”에 대해 논쟁한 빌 켈러(Bill Keller)는 뉴욕타임스의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칼럼니스트다. 그 역시 존경받는 언론인이다.

먼저, 그린월드의 주장을 요약해보자.

“객관적 보도를 통해 좋은 저널리즘이 생산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기자들에게 주는 폐해가 더 심각하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객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여질까봐 진실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게 된다. 남의 말만 받아쓰기하면서 자신은 마치 아무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듯 행동한다.

그런 기자들의 속성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거짓 해명을 해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객관 저널리즘은 거짓 양심에 기반한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절대 객관적 기계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한다. 주관적인 인간이 객관적인 척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기자가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를 밝히고 보도를 하는 것이 보다 정직하고 신뢰할만한 저널리즘이 될 것이라고 본다 ”

켈러의 반박은 이렇다.

“나도 객관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거부한다. 객관은 진실의 완벽한 신화적 결정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신 언론인들이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기자들이 팩트에 기반해서 불편부당함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좀 더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일선 기자들에게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물리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리적 증거 그 자체로 진실이 밝혀지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걸 최대한 밝혀내려는 게 기자들의 직업적 책무인 것이다.

만약 기자 스스로 내 정치적 신념이 이러하다고 밝혀버리고 나면, 오히려 자신이 밝힌 정치적 신념에 맞춰 기사를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두 기자의 이런 공개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던 앤드루 셜리번(영국 출생의 미국인 작가이자 언론인)은 가디언의 기사에서 이런 논평을 했다.

“이번 논쟁만 놓고 본다면, 그린월드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왜냐면 저널리즘에 대한 그의 생각이 보다 정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자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중에게 말하는 것이, 그것을 감추는 것보다는 훨씬 더 투명하다. 그래서 누리꾼들도 개인의 소신을 밝히는 스타 기자들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대중들에게는 객관적인 척하는 언론사보다는 스타 기자들이 좀 더 믿을 수 있고, 또 사후적 책임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영국 가디언이 이 보도를 하면서 그린월드가 맞다는 앤드류 셜리번의 논평만 실었을 뿐, 켈리의 논점이 맞다는 또 다른 전문가의 코멘트는 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적으로 표현하자면 세계 최고의 정론지 가운데 하나인 영국 가디언지는 5 대 5 기계적 중립에 입각한 보도를 하지 않고 그린월드의‘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인간은 없다. 인간은 날 때부터 국가, 출신지, 부모, 친구, 학교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가정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인종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 그런 인간들이 생산하는 언론사의 기사나 보도가 완벽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그래 비유하자면 객관(objectivity)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결국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녹아내리고 마는 밀랍 날개를 단 이카로스(Icaros)와 같은 '꿈'이다. 아름답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할 이상이나 꿈은 명목적 가치(nominal value)일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보다 실천적인 윤리이다. 1996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언론인들의 모임인 미국 기자협회는 (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 100년 이상 진행되어 온 객관 저널리즘의 논쟁에 방점이라도 찍으려는 듯, 기자협회 윤리규정에서 객관이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하고 진실, 정확성, 포괄성 등으로 대체했다.
  • [한국언론 오도독] 언론의 객관, 이카로스의 꿈
    • 입력 2019.02.19 (07:00)
    한국언론 오도독
[한국언론 오도독] 언론의 객관, 이카로스의 꿈
2013년 10월 29일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은 그린월드와 켈러의 “객관 저널리즘” 논쟁을 실었다.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는 누구인가?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사보도 기자다. 그린월드는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 등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들이 전세계 일반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 정보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집, 사찰해왔다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를 최초로 보도한 기자였다.

그와 “객관 저널리즘”에 대해 논쟁한 빌 켈러(Bill Keller)는 뉴욕타임스의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칼럼니스트다. 그 역시 존경받는 언론인이다.

먼저, 그린월드의 주장을 요약해보자.

“객관적 보도를 통해 좋은 저널리즘이 생산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기자들에게 주는 폐해가 더 심각하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객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여질까봐 진실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게 된다. 남의 말만 받아쓰기하면서 자신은 마치 아무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듯 행동한다.

그런 기자들의 속성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거짓 해명을 해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객관 저널리즘은 거짓 양심에 기반한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절대 객관적 기계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한다. 주관적인 인간이 객관적인 척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기자가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를 밝히고 보도를 하는 것이 보다 정직하고 신뢰할만한 저널리즘이 될 것이라고 본다 ”

켈러의 반박은 이렇다.

“나도 객관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거부한다. 객관은 진실의 완벽한 신화적 결정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신 언론인들이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기자들이 팩트에 기반해서 불편부당함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좀 더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일선 기자들에게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물리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리적 증거 그 자체로 진실이 밝혀지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걸 최대한 밝혀내려는 게 기자들의 직업적 책무인 것이다.

만약 기자 스스로 내 정치적 신념이 이러하다고 밝혀버리고 나면, 오히려 자신이 밝힌 정치적 신념에 맞춰 기사를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두 기자의 이런 공개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던 앤드루 셜리번(영국 출생의 미국인 작가이자 언론인)은 가디언의 기사에서 이런 논평을 했다.

“이번 논쟁만 놓고 본다면, 그린월드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왜냐면 저널리즘에 대한 그의 생각이 보다 정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자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중에게 말하는 것이, 그것을 감추는 것보다는 훨씬 더 투명하다. 그래서 누리꾼들도 개인의 소신을 밝히는 스타 기자들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대중들에게는 객관적인 척하는 언론사보다는 스타 기자들이 좀 더 믿을 수 있고, 또 사후적 책임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영국 가디언이 이 보도를 하면서 그린월드가 맞다는 앤드류 셜리번의 논평만 실었을 뿐, 켈리의 논점이 맞다는 또 다른 전문가의 코멘트는 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적으로 표현하자면 세계 최고의 정론지 가운데 하나인 영국 가디언지는 5 대 5 기계적 중립에 입각한 보도를 하지 않고 그린월드의‘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인간은 없다. 인간은 날 때부터 국가, 출신지, 부모, 친구, 학교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가정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인종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 그런 인간들이 생산하는 언론사의 기사나 보도가 완벽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그래 비유하자면 객관(objectivity)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결국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녹아내리고 마는 밀랍 날개를 단 이카로스(Icaros)와 같은 '꿈'이다. 아름답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할 이상이나 꿈은 명목적 가치(nominal value)일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보다 실천적인 윤리이다. 1996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언론인들의 모임인 미국 기자협회는 (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 100년 이상 진행되어 온 객관 저널리즘의 논쟁에 방점이라도 찍으려는 듯, 기자협회 윤리규정에서 객관이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하고 진실, 정확성, 포괄성 등으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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