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폴란드, 나치 부역”…이스라엘-폴란드 ‘홀로코스트’ 재충돌

입력 2019.02.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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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의 강제수용소가 세워졌던 폴란드. 유대인 대학살의 직접적 피해자인 이스라엘. 폴란드와 이스라엘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두고 최근 다시 충돌했다. 2차대전 동안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은 무려 600만 명. 희생자 가운데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폴란드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폴란드인도 학살의 피해자인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폴란드인 중에도 나치에 부역해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폴란드 정부는 이를 부인한다. 이런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또다시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불거졌다.

폴란드 모라비에츠키 총리(좌),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우)폴란드 모라비에츠키 총리(좌),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우)

■이스라엘 총리 "폴란드인 나치에 협력"…폴란드 총리, 이스라엘 방문 취소

18일과 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는 비셰그라드 4개국(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과 이스라엘의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회담 불참을 통보한 데 이어 대신 참석시키겠다고 한 외교장관도 결국 보내지 않았다.

폴란드가 문제 삼은 건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이었다. 1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중동평화안보회의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폴란드인들이 나치와 협력했다"고 발언했다. 폴란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트위터에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했을 당시엔 폴란드 정부가 없었다. 폴란드와 유대인 모두 독일인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다"며 발끈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총리의 발언이 언론에 잘못 인용됐다고 해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일부 폴란드인(Poles)'이라고 말했는데, 언론이 '폴란드 국민(The Poles)', 즉 폴란드인 전체로 잘못 번역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자국에 주재하는 이스라엘 대사를 불러 항의한 데 이어 모라비에츠키 총리의 이스라엘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회담에는 차푸토비치 외교장관을 대신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불을 지폈다. 카츠 외교장관 대행은 1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폴란드인들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 학살에 참여했다. 폴란드는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묘지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폴란드는 외교장관 파견 계획마저 없던 일로 해버렸다.

1933년 집권 당시 히틀러1933년 집권 당시 히틀러

■폴란드, 나치 독일과 연관성 강력 부인

폴란드는 나치 독일과 자국이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폴란드는 1939년 독일 나치 정권에 제일 먼저 점령당했지만, 친나치 정권은 세워지지 않았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국가였고, 나치가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할 때 많은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구해주기도 했다. 더구나 폴란드인 상당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유대인과 함께 학살을 당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구해준 '선한 폴란드인' 말고 '나쁜 폴란드인'도 있었다. 유대인을 직접 살해하거나 은신처를 나치에 밀고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재산을 가로챈 폴란드인들도 있었던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나치 점령 기간 폴란드인 수천 명이 유대인 학살에 협력했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폴란드인 다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엔 '홀로코스트법' 두고 충돌

폴란드의 나치 부역 부인은 2016년 '법과 정의당'(PiS) 집권 이후 심화했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법과 정의당은 지난해엔 '홀로코스트법'(나치 부역 부정법)을 제정해 이스라엘과 충돌했다. 홀로코스트법은 유대인 학살에 폴란드가 협력하거나 관여했다고 비난하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이 제정되자 폴란드인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범행 사실을 밝히기 어렵게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강력히 반발하자 폴란드는 징역형 조항을 삭제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4주년 기념식 찾은 생존자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4주년 기념식 찾은 생존자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이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4주년을 맞아 지난달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홀로코스트의 책임은 나치가 아닌 히틀러의 독일에 있다. 히틀러의 독일은 파시즘을 주입했으며 모든 악이 여기서 나왔다"고 강변했다. 홀로코스트와 폴란드는 연관이 없으며, 폴란드 역시 독일 점령의 피해자임을 부각시킨 발언이었다.

■독일 반유대주의 오히려 확산

폴란드와 이스라엘이 '나치 부역' '반유대주의'를 두고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지만, 정작 독일 사회의 반유대주의는 확산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유럽연합 회원국 11개국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28%가 반유대주의 피해자라고 답변했지만, 독일에서는 41%나 됐다. 독일 정부가 지난해 반유대주의 담당 직책을 신설하고, 반유대주의 범죄를 기록하는 기관을 만들었는데도 반유대주의 정서는 오히려 확산하는 양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해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에 즈음해 다시 한 번 반유대주의를 경계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여러 종류의 반유대주의가 출현하고 있다"며 "모든 사람이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대한 '인내력 제로'를 보여줘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600만 명의 참혹한 희생을 추모하고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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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폴란드, 나치 부역”…이스라엘-폴란드 ‘홀로코스트’ 재충돌
    • 입력 2019-02-19 14:18:39
    특파원 리포트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의 강제수용소가 세워졌던 폴란드. 유대인 대학살의 직접적 피해자인 이스라엘. 폴란드와 이스라엘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두고 최근 다시 충돌했다. 2차대전 동안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은 무려 600만 명. 희생자 가운데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폴란드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폴란드인도 학살의 피해자인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폴란드인 중에도 나치에 부역해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폴란드 정부는 이를 부인한다. 이런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또다시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불거졌다.

폴란드 모라비에츠키 총리(좌),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우)
■이스라엘 총리 "폴란드인 나치에 협력"…폴란드 총리, 이스라엘 방문 취소

18일과 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는 비셰그라드 4개국(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과 이스라엘의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회담 불참을 통보한 데 이어 대신 참석시키겠다고 한 외교장관도 결국 보내지 않았다.

폴란드가 문제 삼은 건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이었다. 1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중동평화안보회의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폴란드인들이 나치와 협력했다"고 발언했다. 폴란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트위터에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했을 당시엔 폴란드 정부가 없었다. 폴란드와 유대인 모두 독일인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다"며 발끈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총리의 발언이 언론에 잘못 인용됐다고 해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일부 폴란드인(Poles)'이라고 말했는데, 언론이 '폴란드 국민(The Poles)', 즉 폴란드인 전체로 잘못 번역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자국에 주재하는 이스라엘 대사를 불러 항의한 데 이어 모라비에츠키 총리의 이스라엘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회담에는 차푸토비치 외교장관을 대신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불을 지폈다. 카츠 외교장관 대행은 1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폴란드인들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 학살에 참여했다. 폴란드는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묘지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폴란드는 외교장관 파견 계획마저 없던 일로 해버렸다.

1933년 집권 당시 히틀러
■폴란드, 나치 독일과 연관성 강력 부인

폴란드는 나치 독일과 자국이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폴란드는 1939년 독일 나치 정권에 제일 먼저 점령당했지만, 친나치 정권은 세워지지 않았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국가였고, 나치가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할 때 많은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구해주기도 했다. 더구나 폴란드인 상당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유대인과 함께 학살을 당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구해준 '선한 폴란드인' 말고 '나쁜 폴란드인'도 있었다. 유대인을 직접 살해하거나 은신처를 나치에 밀고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재산을 가로챈 폴란드인들도 있었던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나치 점령 기간 폴란드인 수천 명이 유대인 학살에 협력했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폴란드인 다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엔 '홀로코스트법' 두고 충돌

폴란드의 나치 부역 부인은 2016년 '법과 정의당'(PiS) 집권 이후 심화했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법과 정의당은 지난해엔 '홀로코스트법'(나치 부역 부정법)을 제정해 이스라엘과 충돌했다. 홀로코스트법은 유대인 학살에 폴란드가 협력하거나 관여했다고 비난하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이 제정되자 폴란드인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범행 사실을 밝히기 어렵게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강력히 반발하자 폴란드는 징역형 조항을 삭제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4주년 기념식 찾은 생존자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이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4주년을 맞아 지난달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홀로코스트의 책임은 나치가 아닌 히틀러의 독일에 있다. 히틀러의 독일은 파시즘을 주입했으며 모든 악이 여기서 나왔다"고 강변했다. 홀로코스트와 폴란드는 연관이 없으며, 폴란드 역시 독일 점령의 피해자임을 부각시킨 발언이었다.

■독일 반유대주의 오히려 확산

폴란드와 이스라엘이 '나치 부역' '반유대주의'를 두고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지만, 정작 독일 사회의 반유대주의는 확산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유럽연합 회원국 11개국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28%가 반유대주의 피해자라고 답변했지만, 독일에서는 41%나 됐다. 독일 정부가 지난해 반유대주의 담당 직책을 신설하고, 반유대주의 범죄를 기록하는 기관을 만들었는데도 반유대주의 정서는 오히려 확산하는 양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해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에 즈음해 다시 한 번 반유대주의를 경계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여러 종류의 반유대주의가 출현하고 있다"며 "모든 사람이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대한 '인내력 제로'를 보여줘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600만 명의 참혹한 희생을 추모하고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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