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의 신 양학선이 ‘햄’을 싫어하는 이유

입력 2019.02.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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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이런 기술은 없었다.' 양학선은 2012 런던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에서 자신만의 기술, '양학선'으로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양학선' 본인의 이름을 딴 이 기술은 공중에서 세 바퀴(1080도)를 비틀어 돈 뒤 정면으로 착지하는 것으로 2012년 국제체조연맹에 '양학선'이라는 명칭으로 공식 등재됐다.

하지만 양학선은 이후부터 최근까지 국제대회에서 좀처럼 활약하지 못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그가 왕좌 탈환을 위해 돌아왔다. 2019년 3월 중순에 예정된 두 차례 국제체조연맹 월드컵 대회에 참가해 복귀전을 치른다.

양학선 실종 사건 왜?

런던올림픽 이후 2016 리우올림픽에서 대회 2연속 우승을 목표했던 양학선은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해 양학선에게 '당연했던 일'들과 멀어졌다. 부상과 싸움 중이었다. 그것도 3번이나. 양학선에게는 선수 생명이 걸린 생존 전쟁이었다.

부상이라는 '끈질긴 적'은 처음 2014년 오른쪽 뒤 허벅지, 햄스트링을 공격해왔다. 첫 대응은 나름 좋았다고 판단했다.

재활을 잘 마치고 리우올림픽을 준비하던 2016년에는 허를 찔렸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평균 재활 기간보다 2배나 단축된 시간에 치료를 마치고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11일. 국가대표팀에 돌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손등뼈 골절 부상을 당했다.

'햄스트링…. 이젠 햄도 싫어요.'

지난 15일 오후 진천선수촌에서 양학선을 만났다. 손등 부상에서 회복했고 다음 달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훈련 중이다.

국가대표 경력 9년 차, 베테랑 양학선인데 진천선수촌에선 새내기다. 진천선수촌이 완공돼
대표팀이 훈련을 시작했을 무렵 양학선은 대표팀을 떠나있었다.

양학선은 진천선수촌의 훈련 시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거 있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하고... 당연했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고. 할 수 있는데 몸이 제 마음대로 안 따라주니까 은퇴까지 생각했어요. 기술은 되는데 몸이 안 되니까."

소속팀 수원시청에서는 더욱 부상에 예민했다. 햄스트링 때문에 고생한 터라 대화 중에 '햄' 소리만 나와도 깜짝 놀랐다. 이젠 '먹는 햄'이 싫다고 할 정도다.

잇따른 부상 시련을 겪은 양학선은 이젠 초연해졌다. 양학선의 기술은 최고난도. 그만이 할 수 있다. 기술 극복이 문제가 아니라 부상에서 회복해 체력만 받쳐준다면 정상 탈환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마음먹었다.

양학선은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올 시즌 여러 차례 국제체조연맹 종목별 월드컵 대회에 참가해 랭킹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을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단체전 출전에 실패하면 선수들이 종목별 세계 랭킹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2020 도쿄 프로젝트 '햄스트링과 15%'

양학선은 현재 근력 훈련에 매달리고 있다. 그동안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보다 15% ~ 20% 정도 근력이 손실됐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우람했던 어깨와 팔 근육이 다소 빈약해진 상태. 대표팀 동료들이 오랜만에 선수촌에 입촌한 양학선을 보고 던진 첫마디가 "뼈밖에 안 남았네" 였다. 상·하체 전신에 걸쳐 근육을 단련하는데 특히 허벅지 햄스트링 근력에 초집중하고 있다.

10년 넘게 체조 종목에 스포츠 과학을 접목해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송주호 박사는 양학선의 체조 연기엔 햄스트링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양학선은 공중에서 3바퀴를 회전하는데 공중회전에 필요한 게 근력이에요. 특히 회전할 때 다른 선수들은 수직축을 중심으로 몸이 흐트러지거나 퍼지는데 양학선은 축을 중심으로 일직선처럼 몸이 코어 중심으로 모여있죠. 그래서 비트는 회전에 아주 적합합니다."

공중회전에서 선수들이 감점을 받는 요인이 팔이 몸에서 떨어지거나 두 다리 틈 사이가 벌어져 간격이 노출되는 것인데 양학선은 빈틈없이 일직선의 축을 이뤄 깔끔하게 비틀어 회전한다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게 당겨주는 힘, 햄스트링의 역할이다.

공중회전에서 햄스트링이 작용하는 순간 예시공중회전에서 햄스트링이 작용하는 순간 예시

양학선은 반복되는 부상에도 다행스럽게 좌우 근육의 균형이 아주 잘 잡혀 있다고 송주호 박사는 평가했다.

"보통 오른쪽 햄스트링을 부상당하면 왼쪽 다리에 힘을 줘 생활하게 돼 좌우 근육 불균형이 심하게 되는데 양학선은 좌우 균형이 잘 갖춰져 있어요. 여러 번 부상에도 큰 걱정이 없어 이제 근력을 15% 정도만 더 키우면 되는 것이죠."

최근 3년 동안 양학선의 근력 검사 결과표를 보며 분석 설명 중인 송주호 박사최근 3년 동안 양학선의 근력 검사 결과표를 보며 분석 설명 중인 송주호 박사

'헝그리' 양학선이 달라졌다.

근력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 양학선이 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있다. '헝그리하지 않기' 예전에는 체조 동작에 부담되는 것 같아 포만감이 싫어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그것도 아주 소량.

신형욱 대표팀 감독은 과거 양학선의 식사량에 대해 "거의 안 먹었다"고 표현했다. 배에 가득한 느낌이 싫었고 가볍게 뛰고 싶어 선택한 식사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양학선은 하루에 세 끼를 잘 챙겨 먹는다. 선수촌에서 식사할 때엔 감독님에게 식사량을 검사받을 정도로 영양섭취에도 꼼꼼히 신경을 쓴다.

'양학선' 기술의 데뷔전이 바로 도쿄…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정상 탈환 도전

양학선의 기술은 여전히 양학선만이 할 수 있다. 근력을 키우고 이제 체력만 갖춰지면 언제든 양학선은 도약할 것이다.

도쿄는 2011년 양학선이 '양학선' 기술을 처음 선보여 인연이 남다르다. 오랜 공백 기간을 버티고 부활을 시작한 양학선이 2020년 도쿄 올림픽 무대에서 다시 감격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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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마의 신 양학선이 ‘햄’을 싫어하는 이유
    • 입력 2019-02-19 17:00:36
    취재K
'여태까지 이런 기술은 없었다.' 양학선은 2012 런던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에서 자신만의 기술, '양학선'으로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양학선' 본인의 이름을 딴 이 기술은 공중에서 세 바퀴(1080도)를 비틀어 돈 뒤 정면으로 착지하는 것으로 2012년 국제체조연맹에 '양학선'이라는 명칭으로 공식 등재됐다.

하지만 양학선은 이후부터 최근까지 국제대회에서 좀처럼 활약하지 못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그가 왕좌 탈환을 위해 돌아왔다. 2019년 3월 중순에 예정된 두 차례 국제체조연맹 월드컵 대회에 참가해 복귀전을 치른다.

양학선 실종 사건 왜?

런던올림픽 이후 2016 리우올림픽에서 대회 2연속 우승을 목표했던 양학선은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해 양학선에게 '당연했던 일'들과 멀어졌다. 부상과 싸움 중이었다. 그것도 3번이나. 양학선에게는 선수 생명이 걸린 생존 전쟁이었다.

부상이라는 '끈질긴 적'은 처음 2014년 오른쪽 뒤 허벅지, 햄스트링을 공격해왔다. 첫 대응은 나름 좋았다고 판단했다.

재활을 잘 마치고 리우올림픽을 준비하던 2016년에는 허를 찔렸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평균 재활 기간보다 2배나 단축된 시간에 치료를 마치고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11일. 국가대표팀에 돌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손등뼈 골절 부상을 당했다.

'햄스트링…. 이젠 햄도 싫어요.'

지난 15일 오후 진천선수촌에서 양학선을 만났다. 손등 부상에서 회복했고 다음 달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훈련 중이다.

국가대표 경력 9년 차, 베테랑 양학선인데 진천선수촌에선 새내기다. 진천선수촌이 완공돼
대표팀이 훈련을 시작했을 무렵 양학선은 대표팀을 떠나있었다.

양학선은 진천선수촌의 훈련 시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거 있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하고... 당연했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고. 할 수 있는데 몸이 제 마음대로 안 따라주니까 은퇴까지 생각했어요. 기술은 되는데 몸이 안 되니까."

소속팀 수원시청에서는 더욱 부상에 예민했다. 햄스트링 때문에 고생한 터라 대화 중에 '햄' 소리만 나와도 깜짝 놀랐다. 이젠 '먹는 햄'이 싫다고 할 정도다.

잇따른 부상 시련을 겪은 양학선은 이젠 초연해졌다. 양학선의 기술은 최고난도. 그만이 할 수 있다. 기술 극복이 문제가 아니라 부상에서 회복해 체력만 받쳐준다면 정상 탈환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마음먹었다.

양학선은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올 시즌 여러 차례 국제체조연맹 종목별 월드컵 대회에 참가해 랭킹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을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단체전 출전에 실패하면 선수들이 종목별 세계 랭킹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2020 도쿄 프로젝트 '햄스트링과 15%'

양학선은 현재 근력 훈련에 매달리고 있다. 그동안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보다 15% ~ 20% 정도 근력이 손실됐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우람했던 어깨와 팔 근육이 다소 빈약해진 상태. 대표팀 동료들이 오랜만에 선수촌에 입촌한 양학선을 보고 던진 첫마디가 "뼈밖에 안 남았네" 였다. 상·하체 전신에 걸쳐 근육을 단련하는데 특히 허벅지 햄스트링 근력에 초집중하고 있다.

10년 넘게 체조 종목에 스포츠 과학을 접목해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송주호 박사는 양학선의 체조 연기엔 햄스트링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양학선은 공중에서 3바퀴를 회전하는데 공중회전에 필요한 게 근력이에요. 특히 회전할 때 다른 선수들은 수직축을 중심으로 몸이 흐트러지거나 퍼지는데 양학선은 축을 중심으로 일직선처럼 몸이 코어 중심으로 모여있죠. 그래서 비트는 회전에 아주 적합합니다."

공중회전에서 선수들이 감점을 받는 요인이 팔이 몸에서 떨어지거나 두 다리 틈 사이가 벌어져 간격이 노출되는 것인데 양학선은 빈틈없이 일직선의 축을 이뤄 깔끔하게 비틀어 회전한다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게 당겨주는 힘, 햄스트링의 역할이다.

공중회전에서 햄스트링이 작용하는 순간 예시
양학선은 반복되는 부상에도 다행스럽게 좌우 근육의 균형이 아주 잘 잡혀 있다고 송주호 박사는 평가했다.

"보통 오른쪽 햄스트링을 부상당하면 왼쪽 다리에 힘을 줘 생활하게 돼 좌우 근육 불균형이 심하게 되는데 양학선은 좌우 균형이 잘 갖춰져 있어요. 여러 번 부상에도 큰 걱정이 없어 이제 근력을 15% 정도만 더 키우면 되는 것이죠."

최근 3년 동안 양학선의 근력 검사 결과표를 보며 분석 설명 중인 송주호 박사
'헝그리' 양학선이 달라졌다.

근력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 양학선이 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있다. '헝그리하지 않기' 예전에는 체조 동작에 부담되는 것 같아 포만감이 싫어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그것도 아주 소량.

신형욱 대표팀 감독은 과거 양학선의 식사량에 대해 "거의 안 먹었다"고 표현했다. 배에 가득한 느낌이 싫었고 가볍게 뛰고 싶어 선택한 식사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양학선은 하루에 세 끼를 잘 챙겨 먹는다. 선수촌에서 식사할 때엔 감독님에게 식사량을 검사받을 정도로 영양섭취에도 꼼꼼히 신경을 쓴다.

'양학선' 기술의 데뷔전이 바로 도쿄…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정상 탈환 도전

양학선의 기술은 여전히 양학선만이 할 수 있다. 근력을 키우고 이제 체력만 갖춰지면 언제든 양학선은 도약할 것이다.

도쿄는 2011년 양학선이 '양학선' 기술을 처음 선보여 인연이 남다르다. 오랜 공백 기간을 버티고 부활을 시작한 양학선이 2020년 도쿄 올림픽 무대에서 다시 감격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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