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역사 바로세우기” vs “미화”…폴란드, 유대인박물관 논란

입력 2019.02.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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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


3·1절이 다가오고 있다. 100년 전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다 수많은 순국선열이 희생됐다. 한 민족의 다른 민족에 대한 탄압은 저항을 부른다. 막대한 희생도 초래한다. 히틀러 집권 당시 나치 독일과 유대인도 그랬다.

나치는 유대인을 게토(Ghetto)라는 특정구역 안에 두고 통제했다. 게토를 거쳐 수많은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학살 당했다. 1943년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약 한 달 간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이른바 '바르샤바 게토 봉기'다. 나치는 게토 전역에 불을 질러 초토화시켰다. 막대한 유대인 희생자가 생겼다.

폴란드 정부는 무장 봉기가 있었던 게토에 역사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최근 이 박물관을 두고 다시 '역사 미화' 논란이 불거졌다. 폴란드 정부는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유대인 못지 않은 폴란드인의 피해를 알리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폴란드인들 중에도 나치에 협력해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부인한 채 역사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바르샤바의 게토박물관 예정 건물바르샤바의 게토박물관 예정 건물

■폴란드 "게토에 박물관 건립…나치 만행 고발"

독일 강점기, 폴란드 곳곳에 유대인 게토가 만들어졌다. 1940년 2월 로지(Lodz)에 첫 게토가 들어섰고, 11월엔 바르샤바에 게토가 세워졌다. 모든 유대인들에게 게토로 이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게토 밖에서 발견될 경우 사형에 처해졌다. 게토 안에서 유대인들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기아와 전염병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또 게토를 통해 하루에 수천 명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나치의 이런 유대인 말살 정책에 맞서 1943년 1월 18일 유대인 최초의 무장 투쟁이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났다. 유대인 청년단원들은 이송 열차에 몸을 숨겼다가 경비병을 사살하며 이송 작전에 타격을 줬다. 4월 19일부터는 본격적인 시가전이 벌어졌다. 5월 16일까지 약 한 달 동안 목숨을 건 전투가 계속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나치는 게토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유대인 만3천여 명이 불에 타 숨지거나 질식사했고, 5만 6천여 명이 체포됐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바르샤바 게토에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 80년인 2023년 개관을 목표로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폴란드 문화부 장관인 '법과 정의당' 소속 피오트르 글린스키 장관은 "이 박물관은 폴란드 정부가 세우는 국가 박물관으로, 폴란드 역사정책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정부는 유대인을 도운 폴란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등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바른 역사가 정립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인 셈이다.

■"반유대주의에는 침묵…역사 왜곡 우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역사 미화를 우려한다. 폴란드 정부가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똑같은 희생자 반열에 올려놓는가 하면, 유대인을 도운 폴란드인만 부각하고 폴란드인이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음을 부인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이데올로기적 역사 주입이라는 것이다.

텔아비브 대학의 역사학 교수 하바 드라이푸스는 폴란드 정부가 자신에게 박물관 건립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드라이푸스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왜곡하는 작업에 자신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폴란드인이 직간접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다수의 연구와 고증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영화 ‘Aftermath’(2012)영화 ‘Aftermath’(2012)

유대계 폴란드 역사학자인 지몬 다트너는 일찍이 1970년 논문에서 유대인 20만 명이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폴란드인 손에 숨졌다고 추산했다. '폴란드=피해자 국가'라는 이미지는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깨졌다.

역시 유대인 출신 폴란드 역사학자인 얀 토마즈 그로스는 2001년 '이웃'이라는 저서에서 1941년 폴란드 동부마을 예드바브네에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유대인을 색출해 헛간에 가두고 불을 지른 기록을 밝혀냈다. 이 이야기는 2012년 폴란드에서 'Aftermath'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로스는 2012년 '거대한 두려움'이라는 책에서 홀로코스트 당시 폴란드인의 나치 협조와 또 다른 유대인 핍박 사례들에 대해서도 저술했다.

폴란드 역사학자인 마르친 차렘바는 2017년 4월 강연에서 1939년 10월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독일인보다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더 많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차렘바는 이 기간 동안 폴란드인이 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살해하거나 나치에 밀고했다고 밝혔다. 차렘바는 당시 나치가 선동과 추방, 살해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폴란드에 분명히 반유대주의가 존재했고, 이런 주제는 금기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렘바는 또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 당시 폴란드 경찰이 진압에 가담했다고도 주장했다.

■극우 정권 등장 이후 '영웅주의' 부각

2015년 폴란드 대선에서 승리한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2015년 폴란드 대선에서 승리한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

독일의 한 역사학자는 폴란드에 '영웅' 이미지를 덧붙인 건 68학생운동이 동구권에 들어오면서 나치시대를 자의적으로 합리화하면서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특히 2015년 대선 이후엔 티끌없는 완전무결한 역사가 강조됐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법과 정의당' 정부는 '영웅적인 폴란드 민족'이라는 역사정책을 끊임없이 추진했다.

2016년 3월에는 추방된 유대인 가족을 돌봐준 폴란드 가정을 기리는 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박물관에는 독일 점령 폴란드에서 다른 국가보다 유대인 구조가 더 많이 이뤄졌다고 기술해 놓았다. 이 박물관이 개관하는 날 폴란드 공영방송에선 2009년 상영된,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조한 '선한 폴란드'인 가족을 다룬 '코발스키 이야기'가 방송됐다.

나치 강점기, 학살당한 폴란드인도 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많은 폴란드인들이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한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에는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한 6천7백여 명의 폴란드인들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역사의 한쪽만 부각하고, 불편한 역사적 사실은 숨기려 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역사 세우기일까?

성일광 한국 이스라엘학회장은 폴란드 정부의 유대인 박물관 건립이나 지난해 홀로코스트법 통과는 "폴란드의 역사 미화 작업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폴란드 정부가 불편한 과거를 지우려는 시도로 보이며, 반유대주의가 여전히 폴란드에 만연한 것으로 분석했다. 폴란드 국내외 역사학자들, 그리고 다수 국가들이 폴란드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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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1 11:06:54
    특파원 리포트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


3·1절이 다가오고 있다. 100년 전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다 수많은 순국선열이 희생됐다. 한 민족의 다른 민족에 대한 탄압은 저항을 부른다. 막대한 희생도 초래한다. 히틀러 집권 당시 나치 독일과 유대인도 그랬다.

나치는 유대인을 게토(Ghetto)라는 특정구역 안에 두고 통제했다. 게토를 거쳐 수많은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학살 당했다. 1943년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약 한 달 간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이른바 '바르샤바 게토 봉기'다. 나치는 게토 전역에 불을 질러 초토화시켰다. 막대한 유대인 희생자가 생겼다.

폴란드 정부는 무장 봉기가 있었던 게토에 역사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최근 이 박물관을 두고 다시 '역사 미화' 논란이 불거졌다. 폴란드 정부는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유대인 못지 않은 폴란드인의 피해를 알리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폴란드인들 중에도 나치에 협력해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부인한 채 역사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바르샤바의 게토박물관 예정 건물
■폴란드 "게토에 박물관 건립…나치 만행 고발"

독일 강점기, 폴란드 곳곳에 유대인 게토가 만들어졌다. 1940년 2월 로지(Lodz)에 첫 게토가 들어섰고, 11월엔 바르샤바에 게토가 세워졌다. 모든 유대인들에게 게토로 이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게토 밖에서 발견될 경우 사형에 처해졌다. 게토 안에서 유대인들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기아와 전염병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또 게토를 통해 하루에 수천 명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나치의 이런 유대인 말살 정책에 맞서 1943년 1월 18일 유대인 최초의 무장 투쟁이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났다. 유대인 청년단원들은 이송 열차에 몸을 숨겼다가 경비병을 사살하며 이송 작전에 타격을 줬다. 4월 19일부터는 본격적인 시가전이 벌어졌다. 5월 16일까지 약 한 달 동안 목숨을 건 전투가 계속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나치는 게토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유대인 만3천여 명이 불에 타 숨지거나 질식사했고, 5만 6천여 명이 체포됐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바르샤바 게토에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 80년인 2023년 개관을 목표로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폴란드 문화부 장관인 '법과 정의당' 소속 피오트르 글린스키 장관은 "이 박물관은 폴란드 정부가 세우는 국가 박물관으로, 폴란드 역사정책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정부는 유대인을 도운 폴란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등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바른 역사가 정립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인 셈이다.

■"반유대주의에는 침묵…역사 왜곡 우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역사 미화를 우려한다. 폴란드 정부가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똑같은 희생자 반열에 올려놓는가 하면, 유대인을 도운 폴란드인만 부각하고 폴란드인이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음을 부인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이데올로기적 역사 주입이라는 것이다.

텔아비브 대학의 역사학 교수 하바 드라이푸스는 폴란드 정부가 자신에게 박물관 건립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드라이푸스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왜곡하는 작업에 자신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폴란드인이 직간접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다수의 연구와 고증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영화 ‘Aftermath’(2012)
유대계 폴란드 역사학자인 지몬 다트너는 일찍이 1970년 논문에서 유대인 20만 명이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폴란드인 손에 숨졌다고 추산했다. '폴란드=피해자 국가'라는 이미지는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깨졌다.

역시 유대인 출신 폴란드 역사학자인 얀 토마즈 그로스는 2001년 '이웃'이라는 저서에서 1941년 폴란드 동부마을 예드바브네에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유대인을 색출해 헛간에 가두고 불을 지른 기록을 밝혀냈다. 이 이야기는 2012년 폴란드에서 'Aftermath'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로스는 2012년 '거대한 두려움'이라는 책에서 홀로코스트 당시 폴란드인의 나치 협조와 또 다른 유대인 핍박 사례들에 대해서도 저술했다.

폴란드 역사학자인 마르친 차렘바는 2017년 4월 강연에서 1939년 10월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독일인보다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더 많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차렘바는 이 기간 동안 폴란드인이 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살해하거나 나치에 밀고했다고 밝혔다. 차렘바는 당시 나치가 선동과 추방, 살해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폴란드에 분명히 반유대주의가 존재했고, 이런 주제는 금기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렘바는 또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 당시 폴란드 경찰이 진압에 가담했다고도 주장했다.

■극우 정권 등장 이후 '영웅주의' 부각

2015년 폴란드 대선에서 승리한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
독일의 한 역사학자는 폴란드에 '영웅' 이미지를 덧붙인 건 68학생운동이 동구권에 들어오면서 나치시대를 자의적으로 합리화하면서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특히 2015년 대선 이후엔 티끌없는 완전무결한 역사가 강조됐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법과 정의당' 정부는 '영웅적인 폴란드 민족'이라는 역사정책을 끊임없이 추진했다.

2016년 3월에는 추방된 유대인 가족을 돌봐준 폴란드 가정을 기리는 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박물관에는 독일 점령 폴란드에서 다른 국가보다 유대인 구조가 더 많이 이뤄졌다고 기술해 놓았다. 이 박물관이 개관하는 날 폴란드 공영방송에선 2009년 상영된,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조한 '선한 폴란드'인 가족을 다룬 '코발스키 이야기'가 방송됐다.

나치 강점기, 학살당한 폴란드인도 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많은 폴란드인들이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한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에는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한 6천7백여 명의 폴란드인들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역사의 한쪽만 부각하고, 불편한 역사적 사실은 숨기려 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역사 세우기일까?

성일광 한국 이스라엘학회장은 폴란드 정부의 유대인 박물관 건립이나 지난해 홀로코스트법 통과는 "폴란드의 역사 미화 작업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폴란드 정부가 불편한 과거를 지우려는 시도로 보이며, 반유대주의가 여전히 폴란드에 만연한 것으로 분석했다. 폴란드 국내외 역사학자들, 그리고 다수 국가들이 폴란드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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