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92세에 첫 졸업장…만학도들의 도전은 ‘시작’

입력 2019.02.22 (08:31) 수정 2019.02.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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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요즘 한창 졸업시즌이죠.

그런데, 조금 특별한 졸업식이 어제 있었습니다.

손자, 손녀들의 졸업식에 온 게 아니고요,

초등, 중등 학력 인정 프로그램으로 졸업장을 받게 된 만학도들입니다.

50대에서 90대까지 장·노년층이 거의 대부분인데요.

어떻게 졸업장까지 받게 됐을까요,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저녁 시간, 열심히 시 낭독을 연습 중인 이 분은 72살 정금옥 할머니입니다.

[정금옥/72세 : "어제 쪽파 열 단을 깠다."]

[정경희/서울 교동초등학교 문해교실 교사 : "어머니, 너무 잘하셨어요."]

담당 교사의 격려 방문까지 받게된건 다음날 있을 졸업식에서 대표로 자작시를 낭송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정경희/서울 교동초등학교 문해교실 교사 : "시 낭송하는 걸 다시 한번 제가 보기 위해서 (왔어요.) 내일 하시기 때문에 떨지 않고 연습해서 하시라고..."]

전국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낭독자로 선정된 정금옥 할머니. 2년 전 공부를 시작할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입니다.

[정금옥/72세 :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학교에 가긴 갔는데 앞에 나가서 자기 소개하잖아요. 그 소리가 안 나왔어요. 심장이 뛰어서."]

식당을 운영 중인 정 할머니는 7남매 중의 맏이인 탓에 집안 살림을 돕느라 초등학교를 2년도 채 다니지 못했습니다.

[정금옥/72세 : "소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남들은 학교 다니는데 나는 그 큰 소를 끌고 맨날 소 먹이러 가고 소 먹이러 가서 풀도 베어야 하고..."]

남편을 일찍 여윈 뒤에는 자식들을 데리고 생계를 꾸리느라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정금옥/72세 : "아저씨가 일찍 돌아가셔서 애들 놔두고 서울에 와서 먹고 살려니까 고생 많았죠. 식당 하느라고..."]

그렇게 70살이 넘어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초등학교 문해교실. 2년 만에 졸업장을 받게 된 겁니다.

[박선희/정금옥 할머니 딸 : "본인이 하고 싶어서 그러셨는지 몰라도 너무 행복해 보이시는 거예요. 어머님이 행복해하시니까 (도운) 보람이 좀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론 매일 공부를 거르지 않는다는 정 할머니.

12시에 식당을 닫고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공부를 이어갑니다.

[정금옥/72세 : "2시까지 하고 어떨 때 잠 안 올 때는 한 4시에 일어나서도 하고 그렇게 해요."]

더 빨리 공부를 시작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하는데요.

[정금옥/72세 : "(공부를) 못한 사람들은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늦다고 할 때가 빠르니까. 제일 빠르니까. 나도 진짜 너무 후회되는 거예요."]

자, 이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실까요?

[이순섬/92세 : "공부 하나도 못했지. 일제 강점기 때라 공부를 못했어. 농사지어놓으면 다 빼앗아갔지. 공출로 다 가니까 먹고살 게 없잖아. (일 하라고) 우리 오빠들은 다 보내도 나는 딸이라고 안 보냈어."]

그렇게 공부는 평생의 한이 됐습니다.

[이순섬/92세 : "공부 못해서 계산을 잘 못 하고. 말도 못했죠. 그 서러움을 하늘이 알고 땅이나 알지."]

90을 앞둔 3년 전 무작정 복지관을 찾아가 초등학교 과정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순섬/92세 : "학교 가는 날은 자지 않고 일어나서 가고 제일 좋은 게 학교 가는 거야."]

학교에서도 단연 돋보이셨다는데요.

[이미애/영등포구청 늘푸름학교 교무부장 : "언제나 솔선수범해서 하시고 소풍 가자고 해도 제일 먼저 손드시고 하면서 분위기를 몰아주시는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죠."]

할머니들의 졸업식이 드디어 어제 열렸습니다.

[이순섬/92세 : "좋네요. 너무 재밌고 좋아요."]

주름진 얼굴에 입게 된 학사모와 가운, 그 기쁨은 어떨까요?

[김점심/69세 : "혼자만 못 배운 것처럼 어디 나가면 항상 주눅이 들고 그랬는데 지금 여기 와서 보니까 너무너무 많네요. 사람들이 많으니까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면서도 좀 그러네요."]

[박종숙/69세 : "참 좋죠. 말할 수 없이 좋죠. 나도 이제 졸업장도 갖고 한글을 배웠다는 것. 너무 좋아요."]

이들은 모두 초등. 중등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이수자들입니다.

50-80대가 97%를 차지합니다.

[이미애/영등포구청 늘푸름학교 교무부장 : "학령기에 공부를 못하셨으니까 그 아픔을 평생 숨기고 살아오시다가 학교라는데 오셔서 정규적으로 시험도 보고 시간대에 맞춰서 공부하고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을 누구나 다 하세요."]

정규 학교교육 기회를 놓쳤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컸던 어르신 만학도들. 학교에 다니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박종숙/69세 : "약속 장소에 가질 못해요. 글씨를 몰라서. 그런데 지금은 한글을 배우고 나니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꼭 가거든요."]

최고령 이순섬 할머니를 비롯해 54개 기관에서 공부한 854명에게 학위인증서가 수여됐습니다.

[이순섬/92세 : "늙은이들 가르치느라고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었어요. 선생님들도 사랑하고 다 사랑합니다."]

졸업식은 끝났지만, 이들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김소녀/72세 : "열심히 해서 지금 중학교 가서 3년하고 고등학교도 가고 대학까지 가고 싶어요."]

아들딸, 손자손녀도 공부를 다 마쳤을 나이에 시작해 새로운 행복을 찾고있는 만학도들.

혹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부모님, 어르신들이 계시다면 응원 한번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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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92세에 첫 졸업장…만학도들의 도전은 ‘시작’
    • 입력 2019-02-22 08:36:05
    • 수정2019-02-22 08: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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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요즘 한창 졸업시즌이죠.

그런데, 조금 특별한 졸업식이 어제 있었습니다.

손자, 손녀들의 졸업식에 온 게 아니고요,

초등, 중등 학력 인정 프로그램으로 졸업장을 받게 된 만학도들입니다.

50대에서 90대까지 장·노년층이 거의 대부분인데요.

어떻게 졸업장까지 받게 됐을까요,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저녁 시간, 열심히 시 낭독을 연습 중인 이 분은 72살 정금옥 할머니입니다.

[정금옥/72세 : "어제 쪽파 열 단을 깠다."]

[정경희/서울 교동초등학교 문해교실 교사 : "어머니, 너무 잘하셨어요."]

담당 교사의 격려 방문까지 받게된건 다음날 있을 졸업식에서 대표로 자작시를 낭송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정경희/서울 교동초등학교 문해교실 교사 : "시 낭송하는 걸 다시 한번 제가 보기 위해서 (왔어요.) 내일 하시기 때문에 떨지 않고 연습해서 하시라고..."]

전국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낭독자로 선정된 정금옥 할머니. 2년 전 공부를 시작할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입니다.

[정금옥/72세 :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학교에 가긴 갔는데 앞에 나가서 자기 소개하잖아요. 그 소리가 안 나왔어요. 심장이 뛰어서."]

식당을 운영 중인 정 할머니는 7남매 중의 맏이인 탓에 집안 살림을 돕느라 초등학교를 2년도 채 다니지 못했습니다.

[정금옥/72세 : "소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남들은 학교 다니는데 나는 그 큰 소를 끌고 맨날 소 먹이러 가고 소 먹이러 가서 풀도 베어야 하고..."]

남편을 일찍 여윈 뒤에는 자식들을 데리고 생계를 꾸리느라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정금옥/72세 : "아저씨가 일찍 돌아가셔서 애들 놔두고 서울에 와서 먹고 살려니까 고생 많았죠. 식당 하느라고..."]

그렇게 70살이 넘어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초등학교 문해교실. 2년 만에 졸업장을 받게 된 겁니다.

[박선희/정금옥 할머니 딸 : "본인이 하고 싶어서 그러셨는지 몰라도 너무 행복해 보이시는 거예요. 어머님이 행복해하시니까 (도운) 보람이 좀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론 매일 공부를 거르지 않는다는 정 할머니.

12시에 식당을 닫고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공부를 이어갑니다.

[정금옥/72세 : "2시까지 하고 어떨 때 잠 안 올 때는 한 4시에 일어나서도 하고 그렇게 해요."]

더 빨리 공부를 시작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하는데요.

[정금옥/72세 : "(공부를) 못한 사람들은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늦다고 할 때가 빠르니까. 제일 빠르니까. 나도 진짜 너무 후회되는 거예요."]

자, 이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실까요?

[이순섬/92세 : "공부 하나도 못했지. 일제 강점기 때라 공부를 못했어. 농사지어놓으면 다 빼앗아갔지. 공출로 다 가니까 먹고살 게 없잖아. (일 하라고) 우리 오빠들은 다 보내도 나는 딸이라고 안 보냈어."]

그렇게 공부는 평생의 한이 됐습니다.

[이순섬/92세 : "공부 못해서 계산을 잘 못 하고. 말도 못했죠. 그 서러움을 하늘이 알고 땅이나 알지."]

90을 앞둔 3년 전 무작정 복지관을 찾아가 초등학교 과정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순섬/92세 : "학교 가는 날은 자지 않고 일어나서 가고 제일 좋은 게 학교 가는 거야."]

학교에서도 단연 돋보이셨다는데요.

[이미애/영등포구청 늘푸름학교 교무부장 : "언제나 솔선수범해서 하시고 소풍 가자고 해도 제일 먼저 손드시고 하면서 분위기를 몰아주시는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죠."]

할머니들의 졸업식이 드디어 어제 열렸습니다.

[이순섬/92세 : "좋네요. 너무 재밌고 좋아요."]

주름진 얼굴에 입게 된 학사모와 가운, 그 기쁨은 어떨까요?

[김점심/69세 : "혼자만 못 배운 것처럼 어디 나가면 항상 주눅이 들고 그랬는데 지금 여기 와서 보니까 너무너무 많네요. 사람들이 많으니까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면서도 좀 그러네요."]

[박종숙/69세 : "참 좋죠. 말할 수 없이 좋죠. 나도 이제 졸업장도 갖고 한글을 배웠다는 것. 너무 좋아요."]

이들은 모두 초등. 중등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이수자들입니다.

50-80대가 97%를 차지합니다.

[이미애/영등포구청 늘푸름학교 교무부장 : "학령기에 공부를 못하셨으니까 그 아픔을 평생 숨기고 살아오시다가 학교라는데 오셔서 정규적으로 시험도 보고 시간대에 맞춰서 공부하고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을 누구나 다 하세요."]

정규 학교교육 기회를 놓쳤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컸던 어르신 만학도들. 학교에 다니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박종숙/69세 : "약속 장소에 가질 못해요. 글씨를 몰라서. 그런데 지금은 한글을 배우고 나니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꼭 가거든요."]

최고령 이순섬 할머니를 비롯해 54개 기관에서 공부한 854명에게 학위인증서가 수여됐습니다.

[이순섬/92세 : "늙은이들 가르치느라고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었어요. 선생님들도 사랑하고 다 사랑합니다."]

졸업식은 끝났지만, 이들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김소녀/72세 : "열심히 해서 지금 중학교 가서 3년하고 고등학교도 가고 대학까지 가고 싶어요."]

아들딸, 손자손녀도 공부를 다 마쳤을 나이에 시작해 새로운 행복을 찾고있는 만학도들.

혹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부모님, 어르신들이 계시다면 응원 한번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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