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지일파 국회의장의 천황 사죄 요구”…일본이 당황하는 이유는?

입력 2019.02.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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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의도와 주장을 살피는 만큼, 제목에서 일본 신문이 내세운 ‘제목’을 그대로 인용해 ‘일왕’대신 ‘천황’으로 표현한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은 미묘한 시기에 일본에 상당한 충격파를 안겼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뒤 역시 '일왕 사죄' 발언을 했을 당시 한일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었다. 특히 배용준 이후 제2의 한류 붐을 타고 일본 사회 속으로 파고들던 한국 문화의 힘은 순식간에 위축되고 말았다.

"매상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었어요. 개업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내지는 않다가 완전히 적자로 돌아서서, 그거 회복하는데 한 3~4년 걸린 것 같습니다."

도쿄 내에서 손꼽는 규모의 한국 식료품 마트를 운영하던 기업체 대표는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2차 한류 붐으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일본 사회는 왜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렸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의 전형적인 '눈치 보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배용준 팬덤으로 시작된 한류 붐은 중장년층 여성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경우였다. 소비력이 강하지만 또 상대적으로 주변의 평판에 많이 좌우되는 이들 세대에게 있어서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는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는 늘 물건을 사러 가던 한국 슈퍼에 가는 것까지 눈치 보게끔 만들었다.

제2차 한류 붐을 형성했던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로 이어지는 한국 아이돌의 활발한 일본 진출(당시 도쿄에서 젊음의 거리라 할 수 있는 시부야에는 카라와 소녀시대를 선전하는 대형 트럭이 동시에 지나다니 했다)은 이러한 분위기에 버티지 못하고 짓눌려 버리고 말았다.

사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일본 식자들의 비판은 당시 한 지점에 모아졌다. 임기 말 자신의 형이 구속되는 등 정치적 궁지에 몰리자 이 전 대통령이 '일본 때리기'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즉 왜 한국 대통령이 그렇게 했는지 이유를 댈 수 있었고, 그래서 한국 너희들의 문제로 치부해 버릴 핑곗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해 일본 사회는 "왜?"라는 부분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문 의장이 밝혔듯이 일왕이나 무게 있는 지도자가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진정으로 사과하면 양국이 과거사의 앙금을 풀어낼 수 있다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가 일본 사회에서는 공감도가 낮은 때문이다.

특히 2015년 위안부 합의로 모든 게 해결됐음을 주장하는 일본 우파로서는 곧이곧대로 이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런 고민이 녹아 있는 것이 21일 자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지일파 의장, 천황 전하에게 사죄 요구'라는 제목의 심층 탐구 기사다(일본 언론의 주장을 살피는 만큼 그 표현을 그대로 빌려 '일왕' 대신 '천황'으로 표기한다). 큰 제목으로는 '한국, 가라앉지 않는 반일'이라고 돼 있지만, 고민의 시작은 '지일파 의장'이라는 글귀에 있는 듯해 보였다.

한일 의원연맹 한국 측 의장을 4년이나 지냈던,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왔던, 이번 정권에서 그나마 일본을 좀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노 정치인의 일격(?)이 일본에게는 뼈아팠다고나 할까?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경제지로서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봤을 때 중도 우파의 입장을 취하는 만큼 어느 정도 그 속에는 일본 우파의 시각이 숨어 있는 듯해 보인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정치, 외교면에서 현재의 한일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든 것은 지난 9일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이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남북과 미국이 휴전 협정이나 비핵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역할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말에 주목하며, 그가 문 대통령의 외교 브레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남북 융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급속이 저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외교부 내에서 중국을 따로 떼 '국'으로 격상시키고 일본을 인도, 호주 등에 묶는 조직개편 움직임도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하다.

니혼게이자이는 경제면서 볼 때도 한국이 일본에 부품이나 소재를 의존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나, 수출대상으로서 일본은 2000년 2위에서 2018년 5위로 떨어졌고 대신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 외교적인 면, 경제적인 면 모두 한국에 있어 일본의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권이 의도적으로 일본에 싸움을 걸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다만 일본에 대한 관심이 낮기 때문에 관계 악화를 막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지 않은 채 대일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니혼게이자이 기사 중)"

우리에게는 일본과 무관해 보이지만 지난 1월 사표를 낸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일본에서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사직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 니혼게이자이 신문이다.

"문 대통령이 (김 보좌관을) 감싸 안는 것도 없이 즉시 (사표를) 수리했다"는 기사의 어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니혼게이자이는 3.1절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올해는 대일 외교에서 안이한 타협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올 한해 한일 관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니혼게이자이가 주목한 건 미래. 신문과 인터뷰한 신각수 전 주일한국대사의 말은 새겨들을 만 하다.

"관계가 악화되더라고 수면 아래서는 개선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무섭다."

다만 기자의 관점으로 볼 때 2012년도 한일 불협화음 당시와 비교해 정치 외교적인 문제나 관계 개선과는 무관하게, 양국의 인적 교류가 연간 1,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상대국에 대한 관심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민간 교류가 계속되고 있는 점은 분명히 다른 양상으로 보인다.

'BTS'의 일본 방송 출연 무산에 많은 일본 팬들이 진심으로 아쉬움을 표하면서 해당 방송국에 항의의 뜻을 표했던 것처럼 2012년 당시와는 달리 한국 문화에 대한 일본 내 지지층이 매우 두껍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결국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토양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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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지일파 국회의장의 천황 사죄 요구”…일본이 당황하는 이유는?
    • 입력 2019-02-23 07:10:42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의도와 주장을 살피는 만큼, 제목에서 일본 신문이 내세운 ‘제목’을 그대로 인용해 ‘일왕’대신 ‘천황’으로 표현한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은 미묘한 시기에 일본에 상당한 충격파를 안겼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뒤 역시 '일왕 사죄' 발언을 했을 당시 한일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었다. 특히 배용준 이후 제2의 한류 붐을 타고 일본 사회 속으로 파고들던 한국 문화의 힘은 순식간에 위축되고 말았다.

"매상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었어요. 개업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내지는 않다가 완전히 적자로 돌아서서, 그거 회복하는데 한 3~4년 걸린 것 같습니다."

도쿄 내에서 손꼽는 규모의 한국 식료품 마트를 운영하던 기업체 대표는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2차 한류 붐으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일본 사회는 왜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렸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의 전형적인 '눈치 보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배용준 팬덤으로 시작된 한류 붐은 중장년층 여성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경우였다. 소비력이 강하지만 또 상대적으로 주변의 평판에 많이 좌우되는 이들 세대에게 있어서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는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는 늘 물건을 사러 가던 한국 슈퍼에 가는 것까지 눈치 보게끔 만들었다.

제2차 한류 붐을 형성했던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로 이어지는 한국 아이돌의 활발한 일본 진출(당시 도쿄에서 젊음의 거리라 할 수 있는 시부야에는 카라와 소녀시대를 선전하는 대형 트럭이 동시에 지나다니 했다)은 이러한 분위기에 버티지 못하고 짓눌려 버리고 말았다.

사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일본 식자들의 비판은 당시 한 지점에 모아졌다. 임기 말 자신의 형이 구속되는 등 정치적 궁지에 몰리자 이 전 대통령이 '일본 때리기'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즉 왜 한국 대통령이 그렇게 했는지 이유를 댈 수 있었고, 그래서 한국 너희들의 문제로 치부해 버릴 핑곗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해 일본 사회는 "왜?"라는 부분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문 의장이 밝혔듯이 일왕이나 무게 있는 지도자가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진정으로 사과하면 양국이 과거사의 앙금을 풀어낼 수 있다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가 일본 사회에서는 공감도가 낮은 때문이다.

특히 2015년 위안부 합의로 모든 게 해결됐음을 주장하는 일본 우파로서는 곧이곧대로 이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런 고민이 녹아 있는 것이 21일 자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지일파 의장, 천황 전하에게 사죄 요구'라는 제목의 심층 탐구 기사다(일본 언론의 주장을 살피는 만큼 그 표현을 그대로 빌려 '일왕' 대신 '천황'으로 표기한다). 큰 제목으로는 '한국, 가라앉지 않는 반일'이라고 돼 있지만, 고민의 시작은 '지일파 의장'이라는 글귀에 있는 듯해 보였다.

한일 의원연맹 한국 측 의장을 4년이나 지냈던,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왔던, 이번 정권에서 그나마 일본을 좀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노 정치인의 일격(?)이 일본에게는 뼈아팠다고나 할까?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경제지로서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봤을 때 중도 우파의 입장을 취하는 만큼 어느 정도 그 속에는 일본 우파의 시각이 숨어 있는 듯해 보인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정치, 외교면에서 현재의 한일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든 것은 지난 9일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이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남북과 미국이 휴전 협정이나 비핵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일본의 역할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말에 주목하며, 그가 문 대통령의 외교 브레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남북 융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급속이 저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외교부 내에서 중국을 따로 떼 '국'으로 격상시키고 일본을 인도, 호주 등에 묶는 조직개편 움직임도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하다.

니혼게이자이는 경제면서 볼 때도 한국이 일본에 부품이나 소재를 의존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나, 수출대상으로서 일본은 2000년 2위에서 2018년 5위로 떨어졌고 대신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 외교적인 면, 경제적인 면 모두 한국에 있어 일본의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권이 의도적으로 일본에 싸움을 걸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다만 일본에 대한 관심이 낮기 때문에 관계 악화를 막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지 않은 채 대일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니혼게이자이 기사 중)"

우리에게는 일본과 무관해 보이지만 지난 1월 사표를 낸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일본에서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사직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 니혼게이자이 신문이다.

"문 대통령이 (김 보좌관을) 감싸 안는 것도 없이 즉시 (사표를) 수리했다"는 기사의 어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니혼게이자이는 3.1절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올해는 대일 외교에서 안이한 타협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올 한해 한일 관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니혼게이자이가 주목한 건 미래. 신문과 인터뷰한 신각수 전 주일한국대사의 말은 새겨들을 만 하다.

"관계가 악화되더라고 수면 아래서는 개선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무섭다."

다만 기자의 관점으로 볼 때 2012년도 한일 불협화음 당시와 비교해 정치 외교적인 문제나 관계 개선과는 무관하게, 양국의 인적 교류가 연간 1,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상대국에 대한 관심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민간 교류가 계속되고 있는 점은 분명히 다른 양상으로 보인다.

'BTS'의 일본 방송 출연 무산에 많은 일본 팬들이 진심으로 아쉬움을 표하면서 해당 방송국에 항의의 뜻을 표했던 것처럼 2012년 당시와는 달리 한국 문화에 대한 일본 내 지지층이 매우 두껍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결국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토양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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