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안 놓아주고, 다시 부르고”…집권 3년차 文의 포석은?

입력 2019.02.23 (09:00) 수정 2019.02.2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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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보면 젠틀하고 조용하죠? 그런데 바둑을 잘 두시잖아요. 이런 분들 특징은 싸울 때, 피할 때를 안다는 거예요. 조용히 수를 읽으며 포석(布石)을 두다 무르익었을 때 승부수를 던집니다. 참모라는 바둑돌로 말이죠."

최근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관계자의 말입니다. 문 대통령의 '참모 활용법'을 바둑에 빗댔습니다. 문 대통령은 아마 4단의 기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2012년, 바둑 전문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상대방 대응을 플랜 1·2·3… 식으로 따져보고 최종 대책이 마련되면 착점(着點)한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장고형 스타일'이란 말로 들립니다.


임종석·탁현민…안 놓아준 사람들

그런 문 대통령이 바둑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1일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으로 위촉했습니다. 사표 수리 24일 만입니다. 일부 야당은 그의 재등장이 달갑지 않은 듯 영화 '극한직업'을 패러디해 "지금까지 이런 쇼는 없었다. 이것은 사퇴인가 휴가인가"(바른미래당)라는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그동안의 경험을 앞으로도 소중하게 쓰기 위해서"라고 위촉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청와대는 '복귀' 표현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자문위원은 비상근·무보수 명예직으로, 가끔 회의 때 일정 자문비를 주고 조언을 구하는 정도라는 겁니다. 수위야 어찌 됐든, 탁 위원은 곧 닥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행사에 관여할 수 있는 직함을 얻었습니다. 그의 후임 의전비서관은 아직 공석입니다.

꼭 한 달 전(1월 21일), 문 대통령은 임종석 초대 비서실장도 재소환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 특임 외교 특별보좌관 자리를 새로 만들어 위촉했죠.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바통을 넘긴 지 13일 만이었습니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 역시 이라크 특임 외교특보로 임명했습니다. 청와대를 떠난 두 사람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들을 여전히 반상 위에 올려두고 '우회 보좌'를 받을 통로를 열어뒀습니다. '참모인 듯, 참모 아닌, 참모 같은 너'라는 노랫말처럼 말이죠.


양정철·유시민…다시 부른 사람들?

임종석·한병도·탁현민 등이 '우회 보좌역'이라면 '막후 보좌역'들의 복귀 조짐도 점차 뚜렷합니다. 최근 가장 '핫'한 인물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입니다. 이달 안에 일본에서 귀국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직을 맡을 것으로 전해집니다. "잊힐 권리를 허락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내고 돌연 해외로 떠난 그의 복귀는 2년만, 다시 말해 문 대통령 '집권 3년 차' 입니다.

양 전 비서관과의 통화는 짧았습니다. 해외 로밍으로 연결된 통화에서 그는 "예기치 않게 보도가 나와서 곤혹스럽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당직 수용, 이달 중 귀국 여부에 대해선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양 전 비서관에게는 늘 '문(文)의 남자'란 꼬리표가 붙습니다. 이 때문에 복귀 후 역할도 그렇지만, 어느 시점에 문 대통령의 '지근거리'로 되돌아올지 역시 관심입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비(양 전 비서관)는 내년 4월 총선 때 역할을 해야 그 뒤에 (BH로) 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복귀의 '조건'에 방점을 찍었지만, 한 여권 관계자는 이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의 청와대 복귀는 '조건 없는 수순'이라는 겁니다.

"민주연구원은 정책 이슈를 발굴하고 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당장은 양 전 비서관이 나름의 정치적 무게로 당의 총선 전략을 뒷받침할 것이다. 다만 이후엔 '당연히' 청와대로 들어가겠지. 함께 출발은 못 했지만, 결국은 문 대통령의 마지막 자리에 같이 있을 사람이니까. 그보다 더 확실한 '순장조'가 어디 있겠나."

집권 3년 차에 급부상한 또 다른 우군으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뒤 '알릴레오' 팟캐스트 방송으로 대중 행보를 시작한 게 지난달 4일부터입니다. "다시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선언했지만, 사실상 외곽 정치를 떠맡고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집권 3년 차 징크스…'포석'의 결과는?

문 대통령은 집권 3년 차를 알리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체감 성과'를 유독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 바람과 달리 정치권에는 '3년 차 리스크'란 말이 있습니다. 지지율 하락과 이에 따른 구심 약화 현상, 즉 대통령 권력의 누수가 시작되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단일 대오'를 유지하던 여권의 균열이 표면화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를 피해가지 못해 '리스크'에는 '징크스'라는 말까지 더해집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우회 배치, 측근들의 여권 외곽·후방 배치는 모두 문 대통령의 집권 3년 차 운영 전략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포석'(布石)은 '중반전 싸움이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벌여놓은 판'을 뜻합니다. 고도화된 포석은 상대가 바둑돌에서 손을 떼게 하지만, 그르치면 자충수가 돼 돌아온다고 합니다. 집권 3년 차, 문 대통령의 '포석'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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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3 09:00:41
    • 수정2019-02-23 22:36:33
    취재K
"대통령님 보면 젠틀하고 조용하죠? 그런데 바둑을 잘 두시잖아요. 이런 분들 특징은 싸울 때, 피할 때를 안다는 거예요. 조용히 수를 읽으며 포석(布石)을 두다 무르익었을 때 승부수를 던집니다. 참모라는 바둑돌로 말이죠."

최근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관계자의 말입니다. 문 대통령의 '참모 활용법'을 바둑에 빗댔습니다. 문 대통령은 아마 4단의 기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2012년, 바둑 전문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상대방 대응을 플랜 1·2·3… 식으로 따져보고 최종 대책이 마련되면 착점(着點)한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장고형 스타일'이란 말로 들립니다.


임종석·탁현민…안 놓아준 사람들

그런 문 대통령이 바둑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1일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으로 위촉했습니다. 사표 수리 24일 만입니다. 일부 야당은 그의 재등장이 달갑지 않은 듯 영화 '극한직업'을 패러디해 "지금까지 이런 쇼는 없었다. 이것은 사퇴인가 휴가인가"(바른미래당)라는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그동안의 경험을 앞으로도 소중하게 쓰기 위해서"라고 위촉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청와대는 '복귀' 표현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자문위원은 비상근·무보수 명예직으로, 가끔 회의 때 일정 자문비를 주고 조언을 구하는 정도라는 겁니다. 수위야 어찌 됐든, 탁 위원은 곧 닥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행사에 관여할 수 있는 직함을 얻었습니다. 그의 후임 의전비서관은 아직 공석입니다.

꼭 한 달 전(1월 21일), 문 대통령은 임종석 초대 비서실장도 재소환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 특임 외교 특별보좌관 자리를 새로 만들어 위촉했죠.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바통을 넘긴 지 13일 만이었습니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 역시 이라크 특임 외교특보로 임명했습니다. 청와대를 떠난 두 사람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들을 여전히 반상 위에 올려두고 '우회 보좌'를 받을 통로를 열어뒀습니다. '참모인 듯, 참모 아닌, 참모 같은 너'라는 노랫말처럼 말이죠.


양정철·유시민…다시 부른 사람들?

임종석·한병도·탁현민 등이 '우회 보좌역'이라면 '막후 보좌역'들의 복귀 조짐도 점차 뚜렷합니다. 최근 가장 '핫'한 인물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입니다. 이달 안에 일본에서 귀국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직을 맡을 것으로 전해집니다. "잊힐 권리를 허락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내고 돌연 해외로 떠난 그의 복귀는 2년만, 다시 말해 문 대통령 '집권 3년 차' 입니다.

양 전 비서관과의 통화는 짧았습니다. 해외 로밍으로 연결된 통화에서 그는 "예기치 않게 보도가 나와서 곤혹스럽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당직 수용, 이달 중 귀국 여부에 대해선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양 전 비서관에게는 늘 '문(文)의 남자'란 꼬리표가 붙습니다. 이 때문에 복귀 후 역할도 그렇지만, 어느 시점에 문 대통령의 '지근거리'로 되돌아올지 역시 관심입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비(양 전 비서관)는 내년 4월 총선 때 역할을 해야 그 뒤에 (BH로) 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복귀의 '조건'에 방점을 찍었지만, 한 여권 관계자는 이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의 청와대 복귀는 '조건 없는 수순'이라는 겁니다.

"민주연구원은 정책 이슈를 발굴하고 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당장은 양 전 비서관이 나름의 정치적 무게로 당의 총선 전략을 뒷받침할 것이다. 다만 이후엔 '당연히' 청와대로 들어가겠지. 함께 출발은 못 했지만, 결국은 문 대통령의 마지막 자리에 같이 있을 사람이니까. 그보다 더 확실한 '순장조'가 어디 있겠나."

집권 3년 차에 급부상한 또 다른 우군으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뒤 '알릴레오' 팟캐스트 방송으로 대중 행보를 시작한 게 지난달 4일부터입니다. "다시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선언했지만, 사실상 외곽 정치를 떠맡고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집권 3년 차 징크스…'포석'의 결과는?

문 대통령은 집권 3년 차를 알리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체감 성과'를 유독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 바람과 달리 정치권에는 '3년 차 리스크'란 말이 있습니다. 지지율 하락과 이에 따른 구심 약화 현상, 즉 대통령 권력의 누수가 시작되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단일 대오'를 유지하던 여권의 균열이 표면화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를 피해가지 못해 '리스크'에는 '징크스'라는 말까지 더해집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우회 배치, 측근들의 여권 외곽·후방 배치는 모두 문 대통령의 집권 3년 차 운영 전략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포석'(布石)은 '중반전 싸움이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벌여놓은 판'을 뜻합니다. 고도화된 포석은 상대가 바둑돌에서 손을 떼게 하지만, 그르치면 자충수가 돼 돌아온다고 합니다. 집권 3년 차, 문 대통령의 '포석'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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