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0주년 김세환 “트로트 도전, 변화 없으면 발전도 없죠”

입력 2019.02.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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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구들에겐 우리 젊은 날, 김정구 선배가 신곡 취입한 느낌 아닐까요. 하하."

가수 김세환(71)은 신곡을 낸 것이 까마득한지 "족히 35년은 더 된 것 같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일흔살이 넘어 신곡을 낼지 몰랐다"는 말끝엔 부드러운 미소가 따라왔다. '사랑이 무엇이냐/ 무엇이 사랑이더냐~'. 입에 붙은 신곡 가사도 콧노래처럼 흥얼거렸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김세환이 정규 앨범 '올드 & 뉴'(Old & New)를 발표했다. 앨범 출시는 2000년 두 장의 리메이크 앨범 '리멤버'(Remember) 이후 19년 만이다. 신보에는 신곡 4곡과 1970년대 청바지와 통기타 세대를 사로잡은 히트곡 4곡이 자리했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그는 "녹음실에 들어가니 설레면서도 긴장됐다"며 "녹음 며칠 전부터 소금물 먹으며 목 관리를 잘 했는데 막상 부르려니 목이 잠기더라. 굉장히 당황했다"고 떠올렸다.

마음먹기는 어려웠지만, 신곡을 내기로 작정하자 의욕이 생겼다. 선곡에 공을 들이며 2곡짜리 싱글 계획은 앨범으로 확장했다. 몇몇 작곡가들은 그에게 젊은 날의 연장선인 이지 리스닝 계열 포크 곡들을 건넸다. 그는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만든 작곡가 정기수에게서 팝 트로트 곡 '사랑이 무엇이냐'를 받고서야 무릎을 쳤다. "이런 곡이 재미있지!" 50년 만에 처음 트로트에 도전한 계기다.

"(트로트에 대한) 선입견요? 그런 건 없어요. 플라시도 도밍고라고 팝을 안 부르나요? 하나만 고집하는 것은 아집이죠. 전 모든 장르에 열려 있어요."

사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조항조가 2015년 '사랑이 밥이더냐'로 먼저 발표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노래다. 그러나 가사와 편곡을 바꾸고, '꺾임' 없는 김세환의 담백한 창법이 입혀지니 새 노래가 됐다. 특히 도브로(금속 반향판이 달린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넣은 것은 영민한 한 수다. 구성진 멜로디에 어쿠스틱 감성의 리듬감이 깃들어 급격한 변화가 중화됐다. "도브로 연주 아이디어는 제가 냈어요. 민요에서 가야금처럼 컨트리 음악의 필수 악기거든요. 가요에선 거의 쓰이질 않아 막 유학에서 돌아온 연주자를 어렵게 섭외했죠."

정기수 작곡가는 김세환이 "다른 곡은 또 없냐"고 할 때마다 한 곡씩 꺼내왔다. 다채로운 신곡 4곡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정말 그립다'는 노랫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청바지 통기타 하나면 세상이 전부 내꺼 같던/ 그 시절이 난 너무 그립다'('정말 그립다' 중)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연주로 포크 감성이 아련한 '비가 오면 어느새', 흥겨운 록 사운드가 가미된 '내 세상'도 추가됐다.

반세기 음악 인생의 지렛대가 돼준 대표곡들은 정갈한 기타 사운드로 다시 편곡했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Simple is the best)란 생각에서다. 그중 '사랑하는 마음', '길가에 앉아서', '비'는 각각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 쎄시봉 멤버들이 만들어준 명곡이다.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형들과 유대는 청년기로 거슬러 간다. 김세환은 쎄시봉 대신 명동 오비스캐빈 무대에 주로 올랐지만 두 무대를 섭렵한 윤형주, 송창식 등과 어울리며 무리의 '막내'가 됐다. 조영남은 책 '쎄시봉 시대'(2011)에서 그를 '일상이 화보인 도련님'이라고 기억했다.

처음 인연은 연세대 의대에서 경희대로 옮긴 윤형주였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김세환은 1969년 TBC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가요계에 입문했다. 당시 수상하진 못했지만, 대학 축제에 초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만난 학교 선배 윤형주의 제안으로 1971년 MBC 라디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했다. 딱히 부를 곡이 없던 그는 비지스의 '돈트 포 겟 투 리멤버'(Don't forget to remember)를 노래해 단박에 청취자를 홀렸다.

"이후 비지스보다 제 버전 신청곡이 더 많아졌어요. 이종환 씨가 반응에 놀라 번안곡을 담은 옴니버스 앨범 '별밤에 부치는 노래 시리즈 VOL.3'(1971)를 기획하면서 사이드A에 형주 형, 사이드B에 제 노래를 담았죠."

이후 그는 '옛친구'로 1972년 TBC 방송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았고, 1974~75년 연속 MBC 10대 가수상과 TBC 7대 가수상을 거머쥐며 스타 대열에 들었다.

신인상 당시 김세환은 '영원한 햄릿'으로 불린 연극배우 김동원(2006년 별세)의 3남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영화, 드라마까지 누빈 부친은 당대 배우였다. 1994년 부친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이 자리하기도 했다. 그는 "신인상 때는 부친 명성에 시선도 받았다"며 "가수상을 받았을 때 '내가 진짜 가수가 됐구나' 싶었다"고 기억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은 물 흐르듯 순탄했다. 그는 "가요사에 미안할 정도로 저같이 고생 안 한 가수도 없을 것"이라며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고 했다. 무명이 짧았고, 운 좋게 쎄시봉 형들을 만나 좋은 곡을 받으며 거침없이 가수가 됐다. 한동안 세월 따라 침체기도 있었지만, 2011년 방송에서 '포크 산실'로 쎄시봉이 재조명돼 지난해까지 형들과 짝지어 공연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공연이 끝나고 어느 집에 모이면, 형주 형이 '길가에 앉아서'를, 장희 형이 '비'를 흥얼댔죠. 제가 '내가 부르는 게 낫겠다'고 하면 '그럼 부르라'고 곡을 줬어요. 녹음 때는 기타도 쳐주고 화음도 넣어주고. 이제 70대가 돼 신곡을 내니, 저는 정말 행복한 가수죠. 다시 태어나도 가수가 되고 싶어요."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그는 댄디한 패션 센스에 체력관리도 각별해 보였다. 그는 스키, 산악자전거(MTB), 등산 등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다. 휴대 전화에는 스키와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진이 즐비했다. 지난 2007년 자전거를 타는 행복을 담은 책 '두 바퀴로 가는 행복'을 출간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스키를 탔어요. 1986년 미국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보고 반해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취미도 많아 사진도 열심히 찍어요. 만나는 분들 사진 찍어 포토스케이프로 작업해 드리면 정말 좋아하세요." 이날도 그는 라이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에게선 내내 유쾌한 긍정 에너지가 넘쳤다. 평소 "흐름에 따르자"는 삶의 태도 덕이다. "안되는 걸 무리하게 발버둥 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아요. 콤플렉스도 없고요. 한 마디로 '렛 잇 비'(Let it be)죠."

그는 새 앨범도 가수와 작곡가, 음반제작자의 운이 맞아야 하니 결과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빙긋이 웃었다.

"바쁠 거 있나요. 사부작사부작, 거북이 마라톤을 해보려고요. 그래야 홀가분하게 웃으며 노래할 수 있죠. 음악은 제 삶이니까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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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뷔 50주년 김세환 “트로트 도전, 변화 없으면 발전도 없죠”
    • 입력 2019-02-23 13:40:51
    연합뉴스
"요즘 친구들에겐 우리 젊은 날, 김정구 선배가 신곡 취입한 느낌 아닐까요. 하하."

가수 김세환(71)은 신곡을 낸 것이 까마득한지 "족히 35년은 더 된 것 같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일흔살이 넘어 신곡을 낼지 몰랐다"는 말끝엔 부드러운 미소가 따라왔다. '사랑이 무엇이냐/ 무엇이 사랑이더냐~'. 입에 붙은 신곡 가사도 콧노래처럼 흥얼거렸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김세환이 정규 앨범 '올드 & 뉴'(Old & New)를 발표했다. 앨범 출시는 2000년 두 장의 리메이크 앨범 '리멤버'(Remember) 이후 19년 만이다. 신보에는 신곡 4곡과 1970년대 청바지와 통기타 세대를 사로잡은 히트곡 4곡이 자리했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그는 "녹음실에 들어가니 설레면서도 긴장됐다"며 "녹음 며칠 전부터 소금물 먹으며 목 관리를 잘 했는데 막상 부르려니 목이 잠기더라. 굉장히 당황했다"고 떠올렸다.

마음먹기는 어려웠지만, 신곡을 내기로 작정하자 의욕이 생겼다. 선곡에 공을 들이며 2곡짜리 싱글 계획은 앨범으로 확장했다. 몇몇 작곡가들은 그에게 젊은 날의 연장선인 이지 리스닝 계열 포크 곡들을 건넸다. 그는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만든 작곡가 정기수에게서 팝 트로트 곡 '사랑이 무엇이냐'를 받고서야 무릎을 쳤다. "이런 곡이 재미있지!" 50년 만에 처음 트로트에 도전한 계기다.

"(트로트에 대한) 선입견요? 그런 건 없어요. 플라시도 도밍고라고 팝을 안 부르나요? 하나만 고집하는 것은 아집이죠. 전 모든 장르에 열려 있어요."

사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조항조가 2015년 '사랑이 밥이더냐'로 먼저 발표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노래다. 그러나 가사와 편곡을 바꾸고, '꺾임' 없는 김세환의 담백한 창법이 입혀지니 새 노래가 됐다. 특히 도브로(금속 반향판이 달린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넣은 것은 영민한 한 수다. 구성진 멜로디에 어쿠스틱 감성의 리듬감이 깃들어 급격한 변화가 중화됐다. "도브로 연주 아이디어는 제가 냈어요. 민요에서 가야금처럼 컨트리 음악의 필수 악기거든요. 가요에선 거의 쓰이질 않아 막 유학에서 돌아온 연주자를 어렵게 섭외했죠."

정기수 작곡가는 김세환이 "다른 곡은 또 없냐"고 할 때마다 한 곡씩 꺼내왔다. 다채로운 신곡 4곡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정말 그립다'는 노랫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청바지 통기타 하나면 세상이 전부 내꺼 같던/ 그 시절이 난 너무 그립다'('정말 그립다' 중)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연주로 포크 감성이 아련한 '비가 오면 어느새', 흥겨운 록 사운드가 가미된 '내 세상'도 추가됐다.

반세기 음악 인생의 지렛대가 돼준 대표곡들은 정갈한 기타 사운드로 다시 편곡했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Simple is the best)란 생각에서다. 그중 '사랑하는 마음', '길가에 앉아서', '비'는 각각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 쎄시봉 멤버들이 만들어준 명곡이다.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형들과 유대는 청년기로 거슬러 간다. 김세환은 쎄시봉 대신 명동 오비스캐빈 무대에 주로 올랐지만 두 무대를 섭렵한 윤형주, 송창식 등과 어울리며 무리의 '막내'가 됐다. 조영남은 책 '쎄시봉 시대'(2011)에서 그를 '일상이 화보인 도련님'이라고 기억했다.

처음 인연은 연세대 의대에서 경희대로 옮긴 윤형주였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김세환은 1969년 TBC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가요계에 입문했다. 당시 수상하진 못했지만, 대학 축제에 초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만난 학교 선배 윤형주의 제안으로 1971년 MBC 라디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했다. 딱히 부를 곡이 없던 그는 비지스의 '돈트 포 겟 투 리멤버'(Don't forget to remember)를 노래해 단박에 청취자를 홀렸다.

"이후 비지스보다 제 버전 신청곡이 더 많아졌어요. 이종환 씨가 반응에 놀라 번안곡을 담은 옴니버스 앨범 '별밤에 부치는 노래 시리즈 VOL.3'(1971)를 기획하면서 사이드A에 형주 형, 사이드B에 제 노래를 담았죠."

이후 그는 '옛친구'로 1972년 TBC 방송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았고, 1974~75년 연속 MBC 10대 가수상과 TBC 7대 가수상을 거머쥐며 스타 대열에 들었다.

신인상 당시 김세환은 '영원한 햄릿'으로 불린 연극배우 김동원(2006년 별세)의 3남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영화, 드라마까지 누빈 부친은 당대 배우였다. 1994년 부친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에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이 자리하기도 했다. 그는 "신인상 때는 부친 명성에 시선도 받았다"며 "가수상을 받았을 때 '내가 진짜 가수가 됐구나' 싶었다"고 기억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은 물 흐르듯 순탄했다. 그는 "가요사에 미안할 정도로 저같이 고생 안 한 가수도 없을 것"이라며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고 했다. 무명이 짧았고, 운 좋게 쎄시봉 형들을 만나 좋은 곡을 받으며 거침없이 가수가 됐다. 한동안 세월 따라 침체기도 있었지만, 2011년 방송에서 '포크 산실'로 쎄시봉이 재조명돼 지난해까지 형들과 짝지어 공연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공연이 끝나고 어느 집에 모이면, 형주 형이 '길가에 앉아서'를, 장희 형이 '비'를 흥얼댔죠. 제가 '내가 부르는 게 낫겠다'고 하면 '그럼 부르라'고 곡을 줬어요. 녹음 때는 기타도 쳐주고 화음도 넣어주고. 이제 70대가 돼 신곡을 내니, 저는 정말 행복한 가수죠. 다시 태어나도 가수가 되고 싶어요."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그는 댄디한 패션 센스에 체력관리도 각별해 보였다. 그는 스키, 산악자전거(MTB), 등산 등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다. 휴대 전화에는 스키와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진이 즐비했다. 지난 2007년 자전거를 타는 행복을 담은 책 '두 바퀴로 가는 행복'을 출간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스키를 탔어요. 1986년 미국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보고 반해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취미도 많아 사진도 열심히 찍어요. 만나는 분들 사진 찍어 포토스케이프로 작업해 드리면 정말 좋아하세요." 이날도 그는 라이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에게선 내내 유쾌한 긍정 에너지가 넘쳤다. 평소 "흐름에 따르자"는 삶의 태도 덕이다. "안되는 걸 무리하게 발버둥 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아요. 콤플렉스도 없고요. 한 마디로 '렛 잇 비'(Let it be)죠."

그는 새 앨범도 가수와 작곡가, 음반제작자의 운이 맞아야 하니 결과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빙긋이 웃었다.

"바쁠 거 있나요. 사부작사부작, 거북이 마라톤을 해보려고요. 그래야 홀가분하게 웃으며 노래할 수 있죠. 음악은 제 삶이니까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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