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알았던 ‘대우조선해양 제재’…아직도 “의결서 작성 중”

입력 2019.02.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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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해오던 하청업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를 크게 반겼다.

공정위가 대우조선해양에 과징금 108억 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반응이었다.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사내 하청업체 27곳에 해양플랜트나 선박 제조를 위탁하면서 계약서도 작성하기 전에 공사부터 시키고 나중에서야 낮은 하도급대금이 적힌 계약서를 하청업체에 지급했다는 이유에서다. 모두 1,817건에 이른다. 사전에 계약서를 발급한 것처럼 날짜나 기간을 허위로 기재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피해 업체들은 2년 반이나 기다려 온 제재가 결정 난 데 마음이 들떴다. 공정위의 제재로 대우조선해양이 압박감을 느끼고 보상을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두 달 뒤, 피해 업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은 의결서가 여전히 '작성 중'이라는 소식을 접해서이다.

의결서 완성돼야 제재 절차 밟을 수 있어


의결서가 작성 안 되면 공정위가 발표한 제재의 실행도 미뤄진다. 의결서가 완성돼서 해당 기업에 전해져야 과징금도 부과되고 고발 조치도 진행되는 것이다.

하도급 관련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피해업체들이 공정위부터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업체들이 하도급대금을 못 받아서 생활고를 겪는 형편에 민사소송까지 진행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특히 영세한 하청업체가 대형로펌을 내세운 원청업체에 맞서 이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대법원 최종심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공정위에 신고하면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다. 또 공정위가 원청업체에 제재를 결정하면 피해 사실을 '공인'받는 셈이다. 민사소송을 하더라도 공정위 조사 결과를 내세워 다투면 유리하다. 소송 여력이 안 되면 공정위가 인정한 피해 사실을 놓고 원청업체와 합의를 하거나 국회나 시민사회에 문제 해결을 호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의결서 작성이 지연되면서 제재 절차가 느려지니 피해업체는 답답하기만 하다. 2016년 상반기 처음 공정위에 피해 신고를 접수한 뒤 3년이 다 돼가고 있다. 당초 지난해 8월 전원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나오기로 예정돼있었지만 대우조선해양이 추가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시간을 끌어 결정이 지난해 12월로 미뤄졌었다.

의결서 작성 느려진 이유는?

의결서 작성이 지연된 배경에는 김상조 위원장의 강력한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안에 특별히 신경 써달라는 것. 이전 사건에서 패소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공정위는 2013년에도 대우조선해양에 고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인하해 하도급 업체에 436억 원을 지급 안 했다며 이에 대한 지급명령과 함께 2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합치면 700억 원이 넘는 규모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대형로펌인 김앤장을 내세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김앤장은 3심 때 대법관 출신까지 투입했다. 2017년 말 대법원은 대우조선해양의 손을 들어줬다. 패소한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과징금으로 냈던 267억 원과 이에 따른 4년간 이자까지 돌려줘야 했다.

쓴맛을 본 공정위는 이번에도 대우조선해양이 제재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고 의결서 문구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공정위만 막아라"...피해 업체에는 '나 몰라라'

지난해 9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지난해 9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대우조선해양은 민간분야뿐 아니라 공공분야에서도 입찰에 참가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주요 고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방위사업청으로부터 KDX-1급 구축함 3척에 대한 개조·개장 사업을 수주했다. 방사청은 올해에도 군함 10척 이상을 발주할 예정인데 이는 조선사에 2조 원이 넘는 매출을 안길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이 이번에 공정위의 제재를 받으면 이 같은 공공 입찰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 하도급법을 위반하면 쌓이는 벌점 제도 때문이다.

공정위는 하도급 위반 업체의 누산(벌점 경감까지 고려한 누계) 벌점이 5점이 넘으면 해당 업체가 공공입찰에 참가할 수 없도록 관계기관에 요청할 수 있고, 10점이 넘으면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기존에 쌓인 벌점 2.5점에 이번에 검찰 고발로 3점이 쌓이면 누산벌점이 5점을 초과하게 된다.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공공입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방위사업청에 요청할 수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군함을 수주할 수 없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런 이유 등으로 공정위 제재에 맞서기 위해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피해업체들에 대한 하도급대금 보상 문제엔 눈 감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실의 중재로 피해업체들이 대우조선해양에 합의를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모 국회의원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를 면담해 피해보상에 대해 묻자 "피해보상은 생각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주주 산업은행도 침묵...매각 작업만 서둘러


피해업체들은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에도 여러 차례 도움을 청했다. 그때마다 산업은행은 '잘 모른다'며 방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어떠한 해결책도 보고받지 못했고 이 문제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이 대응하는 대로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행정소송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대법원 최종심까지 또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피해업체들은 그러기 전에 대우조선해양이 피해 구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대응 과정에서 갑자기 들려온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은 피해업체들에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겼다. 자칫 '세계 1위 조선사 탄생 예고'라는 대형 이슈에 파묻혀 조선사들의 하도급 '갑질'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피해 구제의 길이 영영 막힐까 봐서다.

피해업체들은 하도급대금을 제대로 못 받아 이미 폐업한 상태다. 업체 대표들은 직원들에게 임금도 제대로 못 줬으니 범법자고 세금을 못 냈으니 신용불량자다.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어 한시가 급하다.

정부 앞에서 '상생', '협력'을 약속했던 대형 조선사들. 이들과 '협력업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일했다가 쓰러진 하청업체들의 피해 보상 문제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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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난 줄 알았던 ‘대우조선해양 제재’…아직도 “의결서 작성 중”
    • 입력 2019-02-25 09:45:47
    취재K
지난해 12월 26일,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해오던 하청업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를 크게 반겼다.

공정위가 대우조선해양에 과징금 108억 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반응이었다.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사내 하청업체 27곳에 해양플랜트나 선박 제조를 위탁하면서 계약서도 작성하기 전에 공사부터 시키고 나중에서야 낮은 하도급대금이 적힌 계약서를 하청업체에 지급했다는 이유에서다. 모두 1,817건에 이른다. 사전에 계약서를 발급한 것처럼 날짜나 기간을 허위로 기재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피해 업체들은 2년 반이나 기다려 온 제재가 결정 난 데 마음이 들떴다. 공정위의 제재로 대우조선해양이 압박감을 느끼고 보상을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두 달 뒤, 피해 업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은 의결서가 여전히 '작성 중'이라는 소식을 접해서이다.

의결서 완성돼야 제재 절차 밟을 수 있어


의결서가 작성 안 되면 공정위가 발표한 제재의 실행도 미뤄진다. 의결서가 완성돼서 해당 기업에 전해져야 과징금도 부과되고 고발 조치도 진행되는 것이다.

하도급 관련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피해업체들이 공정위부터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업체들이 하도급대금을 못 받아서 생활고를 겪는 형편에 민사소송까지 진행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특히 영세한 하청업체가 대형로펌을 내세운 원청업체에 맞서 이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대법원 최종심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공정위에 신고하면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다. 또 공정위가 원청업체에 제재를 결정하면 피해 사실을 '공인'받는 셈이다. 민사소송을 하더라도 공정위 조사 결과를 내세워 다투면 유리하다. 소송 여력이 안 되면 공정위가 인정한 피해 사실을 놓고 원청업체와 합의를 하거나 국회나 시민사회에 문제 해결을 호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의결서 작성이 지연되면서 제재 절차가 느려지니 피해업체는 답답하기만 하다. 2016년 상반기 처음 공정위에 피해 신고를 접수한 뒤 3년이 다 돼가고 있다. 당초 지난해 8월 전원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나오기로 예정돼있었지만 대우조선해양이 추가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시간을 끌어 결정이 지난해 12월로 미뤄졌었다.

의결서 작성 느려진 이유는?

의결서 작성이 지연된 배경에는 김상조 위원장의 강력한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안에 특별히 신경 써달라는 것. 이전 사건에서 패소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공정위는 2013년에도 대우조선해양에 고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인하해 하도급 업체에 436억 원을 지급 안 했다며 이에 대한 지급명령과 함께 2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합치면 700억 원이 넘는 규모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대형로펌인 김앤장을 내세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김앤장은 3심 때 대법관 출신까지 투입했다. 2017년 말 대법원은 대우조선해양의 손을 들어줬다. 패소한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과징금으로 냈던 267억 원과 이에 따른 4년간 이자까지 돌려줘야 했다.

쓴맛을 본 공정위는 이번에도 대우조선해양이 제재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고 의결서 문구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공정위만 막아라"...피해 업체에는 '나 몰라라'

지난해 9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대우조선해양은 민간분야뿐 아니라 공공분야에서도 입찰에 참가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주요 고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방위사업청으로부터 KDX-1급 구축함 3척에 대한 개조·개장 사업을 수주했다. 방사청은 올해에도 군함 10척 이상을 발주할 예정인데 이는 조선사에 2조 원이 넘는 매출을 안길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이 이번에 공정위의 제재를 받으면 이 같은 공공 입찰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 하도급법을 위반하면 쌓이는 벌점 제도 때문이다.

공정위는 하도급 위반 업체의 누산(벌점 경감까지 고려한 누계) 벌점이 5점이 넘으면 해당 업체가 공공입찰에 참가할 수 없도록 관계기관에 요청할 수 있고, 10점이 넘으면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기존에 쌓인 벌점 2.5점에 이번에 검찰 고발로 3점이 쌓이면 누산벌점이 5점을 초과하게 된다. 공정위는 대우조선해양이 공공입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방위사업청에 요청할 수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군함을 수주할 수 없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런 이유 등으로 공정위 제재에 맞서기 위해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피해업체들에 대한 하도급대금 보상 문제엔 눈 감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실의 중재로 피해업체들이 대우조선해양에 합의를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모 국회의원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를 면담해 피해보상에 대해 묻자 "피해보상은 생각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주주 산업은행도 침묵...매각 작업만 서둘러


피해업체들은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에도 여러 차례 도움을 청했다. 그때마다 산업은행은 '잘 모른다'며 방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어떠한 해결책도 보고받지 못했고 이 문제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이 대응하는 대로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행정소송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대법원 최종심까지 또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피해업체들은 그러기 전에 대우조선해양이 피해 구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대응 과정에서 갑자기 들려온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은 피해업체들에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겼다. 자칫 '세계 1위 조선사 탄생 예고'라는 대형 이슈에 파묻혀 조선사들의 하도급 '갑질'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피해 구제의 길이 영영 막힐까 봐서다.

피해업체들은 하도급대금을 제대로 못 받아 이미 폐업한 상태다. 업체 대표들은 직원들에게 임금도 제대로 못 줬으니 범법자고 세금을 못 냈으니 신용불량자다.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어 한시가 급하다.

정부 앞에서 '상생', '협력'을 약속했던 대형 조선사들. 이들과 '협력업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일했다가 쓰러진 하청업체들의 피해 보상 문제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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