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ublic of Korea” 최초 사용 외교문서 발굴…수신자는 영국 수상

입력 2019.02.26 (17:00) 수정 2019.02.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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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호인 대한민국 영문명 'Republic of Korea'를 최초로 사용한 외교 문서가 발견됐다.

한미클럽이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퍼슨 교수의 도움을 받아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19년 5월 24일 당시 파리 평화회의에 우리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김규식 선생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독립 청원 서한을 로이드 조지 수상 앞으로 전달했다. 이 서류는 며칠 후인 5월 30일 영국 정부에 의해 접수됐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파리평화회의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김규식 선생은 민족 대표로 이 회의에 파견됐다. 그는 이후 임시정부의 입법기관 격인 임시의정원 국무위원과 부주석을 지낸 인물이다.

김규식 선생은 서한의 첫 장 앞부분에 자신의 소속을 소개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the Delega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이라고 명기했다.

여기서 쓰인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는 외교문서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이라고 한미클럽은 밝혔다. 서한에는 대한민국이 엄연한 독립 국가임을 강조한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의 뜻을 파리평화회의에서 환기해달라는 당부가 담겼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한에서 평화회의가 새로운 대한민국과 임시 정부를 한국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성 있는 체제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임시정부는 일본의 지배에 항거하는 3.1운동 등 독립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졌으며, 독립선언에 따라 국제적 합의나 약속·계약은 임시정부를 통하지 않을 경우 한국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승만 대통령은 밝혔다.


한미클럽이 발굴한 영국 정부 외교문서에는 3.1운동 한 달 뒤인 1919년 4월 초순에 당시 미국 소재 대한인민국회 총회장인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영국 로이드 수상에게 전문을 보내 파리에 가 있던 김규식 선생을 우리 측 대표로 인정해줄 것과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한민족의 독립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전문에 첨부된 영국 정부 문서에는 '한국 문제를 회의에 상정할 수 없으며 한국에 귀를 기울이면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내용의 내부 의견서가 첨부돼 냉혹한 국제질서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한미클럽이 발굴한 문건에는 1919년 5월 13일에 작성해 로이드 수상 앞으로 전달한 독립청원 서한, 그리고 김규식 대표가 영국 정부를 통해 당시 파리 평화회의 의장인 클레망소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6월 11일 자 서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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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ublic of Korea” 최초 사용 외교문서 발굴…수신자는 영국 수상
    • 입력 2019-02-26 17:00:07
    • 수정2019-02-26 17:07:11
    취재K
우리나라 국호인 대한민국 영문명 'Republic of Korea'를 최초로 사용한 외교 문서가 발견됐다.

한미클럽이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퍼슨 교수의 도움을 받아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19년 5월 24일 당시 파리 평화회의에 우리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김규식 선생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독립 청원 서한을 로이드 조지 수상 앞으로 전달했다. 이 서류는 며칠 후인 5월 30일 영국 정부에 의해 접수됐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파리평화회의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김규식 선생은 민족 대표로 이 회의에 파견됐다. 그는 이후 임시정부의 입법기관 격인 임시의정원 국무위원과 부주석을 지낸 인물이다.

김규식 선생은 서한의 첫 장 앞부분에 자신의 소속을 소개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the Delega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이라고 명기했다.

여기서 쓰인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는 외교문서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이라고 한미클럽은 밝혔다. 서한에는 대한민국이 엄연한 독립 국가임을 강조한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의 뜻을 파리평화회의에서 환기해달라는 당부가 담겼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한에서 평화회의가 새로운 대한민국과 임시 정부를 한국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성 있는 체제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임시정부는 일본의 지배에 항거하는 3.1운동 등 독립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졌으며, 독립선언에 따라 국제적 합의나 약속·계약은 임시정부를 통하지 않을 경우 한국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승만 대통령은 밝혔다.


한미클럽이 발굴한 영국 정부 외교문서에는 3.1운동 한 달 뒤인 1919년 4월 초순에 당시 미국 소재 대한인민국회 총회장인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영국 로이드 수상에게 전문을 보내 파리에 가 있던 김규식 선생을 우리 측 대표로 인정해줄 것과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한민족의 독립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전문에 첨부된 영국 정부 문서에는 '한국 문제를 회의에 상정할 수 없으며 한국에 귀를 기울이면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내용의 내부 의견서가 첨부돼 냉혹한 국제질서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한미클럽이 발굴한 문건에는 1919년 5월 13일에 작성해 로이드 수상 앞으로 전달한 독립청원 서한, 그리고 김규식 대표가 영국 정부를 통해 당시 파리 평화회의 의장인 클레망소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6월 11일 자 서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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